도봉산(3)
*산행일자:2011. 10. 23일(일)
*소재지 :서울
*산높이 :도봉산740m
*산행코스:서울인강학교정문-다락능선-신선봉갈림길-오봉
-여성봉-북한산탐방지원센터(송추)
*산행시간:9시35분-15시29분(5시간54분)
*동행 :대구참사랑산악회원 및 성봉현님등 서울팀 5명
대구분들과 함께 서울 시내 도봉산을 올랐습니다. 2007년부터 봄가을로 번갈아 대구와 서울근교 산들을 같이 올라, 아주 반가운 분들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뒷사람에 밀려서 산행을 해야 하는 근교 산의 주말산행을 멀리 한 것이 꽤 오래 되어 여기 도봉산도 4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대구분들이 아니었다면 올해도 그냥 넘겼을 근교산행도 막상 해보니 혼자서가 아니고 여럿이서 함께 하는 산행이라면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이 목청 높여 나누는 대화가 소음으로 들렸기에 짜증이 났던 것인데 같이 산행하면서 저도 대화에 참여하자 남들 얘기에 그리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도봉산에 올라 맞는 가을이 절정에 이르러 만산홍엽의 진수를 보았습니다. 다락능선을 오르며 둘러본 도봉산은 전후좌우로 온통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다 색상도 네 해 전보다 훨씬 고와 이 정도면 청정지역인 가평 화야산의 단풍에 견줄만하다 싶었습니다. 윗자리에 위치한 큰 바위 선인봉과 만장봉이 분이라도 바른 듯 해말끔하게 보이는 것은 치마 삼아 둘러 입은 울긋불긋한 단풍들과 대비되어서일 것입니다. 제가 도봉산과 첫 인연을 맺은 해는 고교2학년 때 망월사로 가을소풍을 다녀간 1966년입니다. 45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분명치 못하지만 그때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려 이번처럼 단풍들이 제 색을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기 도봉산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때만 되면 단풍잔치를 벌여왔지만, 잔칫상이 항상 풍성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모처럼 서울 근교산으로 나들이를 나선 대구분들이 곱게 물든 단풍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새삼 도봉산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아침9시35분 도봉산역에서 멀지 않은 인광학교 정문을 출발했습니다. 버스를 대절해 상경한 대구 팀을 만나 산행을 시작한지 몇 분 안 되어 도봉옛길로 들어섰습니다.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을 타고 오르다 광륜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북진했습니다. 다락원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해 왼쪽 위에 자리한 암자 은석암을 잠시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 경사가 가파른 북쪽능선을 올랐습니다. 열흘 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무릎이 새큰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통증을 줄이고자 보폭을 작게 해 오르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에 밀려 빨리 가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락능선에 올라서자 오른쪽 아래로 단풍들이 불타고 있는 원도봉계곡 골짜기가 잘 보였습니다. 골짜기 건너로 단풍들을 헤집고 수줍은 듯 반신만 내보인 망월사가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다락능선을 타고 조금 올라가자 능선 왼쪽에 자리한 선인봉의 의젓한 자태가 한 눈에 잡혔습니다. 이 암봉을 보노라니 저리 큰 바위가 저리 넓게 평면을 이루어 어떻게 곧추서있을 수 있을까 절로 신비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젊어 한 때 저 바위에 붙어 박쥐코스를 올랐던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감히 올라볼 엄두조차 낼 수 없도록 몸이 굳어 깎아지른 거암을 그저 바라다만 볼 뿐입니다.
12시가 못되어 널찍한 마당바위(?)에서 점심을 든 후 곧바로 치고 올라 포대능선에 다다랐습니다. 눈이 쌓인 겨울철이라면 아이젠을 차더라도 쉽지 않은 치받이 암릉 길을 걸어 올라선 포대능선에서 다른 대원들은 왼쪽으로 꺾어 이 능선을 이어갔지만 오르내림이 엄청 심한 암릉 길을 따라가다가는 무릎이 힘들어할 것 같아 저 혼자서 포대능선을 오른쪽으로 에돌았습니다. 얼마 후 신선암 갈림길에 이르러 몇 몇 대원들을 만났는데 포대능선 길이 밀려 다른 대원들은 아직도 이 능선을 통과중이라 했습니다. 걸음이 느린 제가 앞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여서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다 K-Crack 코스의 주봉을 오르는 바위꾼들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습니다.
직진하는 우이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꺾어 오봉을 올랐습니다. 바위 봉우리 5개가 연이어 자리한 오봉의 첫 봉만 오르고 곧바로 여성봉으로 향한 것은 나머지 봉우리들은 자일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오를 수 있는 봉우리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0년 대학교 3학년 때 고교선배들과 함께 5개 암봉을 모두 올라본 후 이제껏 다시 오르지 못했습니다. 암벽등반은 일반 산행보다 훨씬 수준 높은 기술을 요합니다만, 일단 그 기술을 익혀 암벽을 오르는데 성공하고 나면 짜릿한 쾌감에 좀처럼 바위를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암벽등반은 일반산행보다 중독성이 몇 배 강해 자칫 바위에만 매달리게 되고 공부를 내팽개칠 수 있어 4학년이 되고나서 의도적으로 멀리하다가, 졸업한지 얼마 안 되어 허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는 바람에 바위와의 인연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볼거리인 여성봉은 암봉으로 그 형태가 여성의 은밀한 곳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합니다. 점잖은 사대부들이 입에 오르기에 민망해할 이름들을 바위나 봉우리에 붙이는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남근암이나 옥녀봉에 성과 관련된 전설들이 전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사대부들이 점잖을 떠는 것도 점잖은 자리에서나 하는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는 자연으로 나오면 그들 입에서도 저잣거리에서나 들을 수 있는 비속한 말들이 더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입니다.
15시29분 북한산 송추탐방지원센타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번 산행 코스가 작년 가을 대구 팀과 함께 오른 의상능선 코스보다 짧았던지 시간 반은 일찍 끝난 것 같습니다. 자리를 옮겨 함께 저녁을 들면서 내년 봄 대구 산행을 기약했습니다. 서울-대구 합동산행이 어느새 10회를 기록했습니다. 산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아무 문제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열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다른 시시콜콜한 것들이 문제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산악회들은 저희들 같지 않은가 봅니다. 산행 그 자체에 뜻을 둔 것이 아니고 세를 모으고 얼굴을 알리는 데 더 큰 목적이 있기에 이들 산악회에는 선거철이 성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내년 한 해 이런 정치 산악회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우리의 산하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산행사진>
도봉산 (2)
*산행일자:2007. 11. 1일
*산높이 :자운봉740m
*소재지 :서울/경기의정부
*산행코스:원도봉탐방지원센터-다락능선-포대정상-신선대
-오봉-여성봉-송추남능선-오봉탐방지원센터
*산행시간:12시3분-17시31분(5시간28분)
*동행 :나홀로
단풍만 보기로 나선다면 굳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찾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 다녀온 도봉산에도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불바다를 이루고 있어 산행 중 내내 눈이 부셨습니다. 지난 9월부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끈질기게 내린 가을비를 흠뻑 머금어 온 나무들이 예년과는 달리 어느 잎 하나 말려 죽이지 않고 곱디곱게 물들여 바짝 다가가서 보아도 이 산의 단풍들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화사하고 말끔했습니다. 지난 주 지리산을 종주할 때는 절정에 이른 단풍들이 안개와 숨바꼭질하느라 제 모습을 내보여주지 못했는데 어제는 날씨도 11월답게 냉랭하고 쾌청해 만산홍엽의 도봉산이 벌이는 가을잔치가 볼만 했습니다. 수도권명산들도 이리 곱게 단풍이 들면 일 년 내내 산을 외면해오다가 가을이면 단풍나들이를 나서는 많은 분들이 즐겨 다녀오는 설악산, 지리산, 주왕산이나 내장산 등 단풍명산들과 충분히 겨룰 만하겠다 싶었습니다.
도봉산이 뭇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는 것은 단풍보다는 바위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시사철 주말이면 이 산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것도 계절을 타지 않는 우람한 바위들이 딱 버티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도봉산의 한 중심에 우뚝 솟은 선인봉, 만장봉과 자운봉의 세 암봉들이 모두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어제 다락능선을 오르며 이 봉우리들이 하나같이 동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은 장엄한 해오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람한 이 봉우리들의 위용에 겁먹은 듯 건너편 수락산과 불암산이 혹시라도 떠오르는 해를 가릴 까 굳이 키를 낮추고 납작 엎드려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쪽의 사패산과 남쪽의 우이암은 이 산의 경계석으로 쓰고자 일으켜 세웠다하더라도 서쪽의 오봉과 여성봉만은 일몰의 전망대로 포진해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한 치도 어김없이 이렇게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자리하고 있는 도봉산의 암봉들을 중생대 때 땅 속의 마그마가 서서히 굳어 만들어진 화강암이 지표면으로 올라 온 후 긴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분석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여기 도봉산이 지질학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젊은 크라이머들에 도전의 현장이 되거나 저 같은 트레커들에 안식처가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암봉들도 요즈음은 여기 저기 붉게 물든 단풍들을 둘러보느라 많이 바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제는 간단히 눈인사만 건네고 돌아왔습니다.
한 낮 12시3분 처음으로 다락능선을 타보고자 원도봉산탐방지원센터를 찾았습니다.
10시가 다되어 산본 집을 출발해 11시50분경 1호선의 망월사역에 도착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도시외곽순환도로 밑을 지나 탐방지원센타 앞에 다다라 거리가 나오는 안내도를 사진 찍자 직원 한분이 똑 같은 내용이 담긴 리프렛 한 장을 제게 주었습니다. 매표소가 탐방지원센터로 바뀐 후 직원들의 역할이 긍정적으로 바뀐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흐뭇했습니다. 심원사 왼쪽으로 난 능선 길을 얼마고 오르자 암릉길이 가파르고 아슬아슬해 와이어로프를 타고 올랐습니다. 첫 번째 통천문(?)을 지난 다음 마땅히 뛸 만 한 곳을 찾고자 윗몸을 일으켜 세운 개구리 형상을 하고 있는 기암을 바라보며 바로 앞 너럭바위에서 10여분을 쉬었습니다. 아직도 공사 중인 도시외곽순환도로가 산속을 관통하는 수락산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개발과 보존의 갈등을 환경운동가들이 더 잘 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허망했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13시37분 왼쪽 아래로 도봉산대피소 길이 갈리고 만장산을 1.2Km 앞에 남겨둔 능선삼거리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2시45분에 너럭바위를 출발해 잠시 동안 낙엽이 바닥을 덮은 흙길을 밟았습니다. 다시 암릉 길을 올라 왼쪽의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한 것은 너럭바위를 떠난 지 반시간 후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오른 쪽 산 중턱에 자리한 망월사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1966년인가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가보았던 망월사가 제게는 도봉산과 첫 번째로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해 감회가 일었습니다. 왼쪽 위로 보이는 자운봉, 만장봉과 선인봉도 1970년에 고교선배들과 낑낑대며 함께 오르내린 암봉 들이어서 반갑기는 망월사 못지않았습니다. 목제계단 길을 지나 두 번째 통천문(?)을 지나며 정상에 오르는 의례가 참으로 엄격하다 싶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12분을 걸어 다다른 자운봉1Km 전방지점에서부터 철제난간이 세워진 급경사 바위 길을 올랐습니다. 4년 전 한 겨울에 패션업계사장 분들과 같이 이곳을 오를 때 잔설로 바위가 미끄러워 고전하는 저를 한 분이 뒤를 받쳐주어 간신히 올랐는데, 이번에는 길이 미끄럽지 않아 쉽게 올랐습니다. 마침 겁을 집어 먹고 절절 매는 한 여성 바로 뒤에 제가 바짝 붙어 그 분이 안심하고 오르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길을 힘들게 올라 14시28분에 산불감시초소와 벙커가 있는 포대정상에 올라 포대능선과 합류했습니다. 서쪽의 고령산, 북쪽의 사패산, 그 뒤로 불곡산과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을 카메라에 옮겨 실은 후 포대능선의 백미코스인 왼쪽으로 내려서 거암을 끼고 돌았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가는 길도 모두 경사가 모두 급하고 발 딛을 만한 곳이 그리 신통치 않은 바위 길을 철제난간을 잡고 어렵게 통과하고 나자 양 어깨가 뻐근했습니다.
15시 조금 못되어 신선대를 올라 도봉산의 정상 오름을 가름했습니다.
포대능선 길이 끝나고 직진하면 오봉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신선대를 올랐습니다. 해발 740m로 도봉산 최고봉인 왼쪽의 자운봉은 맨몸으로 오를 수 없기에 맞은 편 철제난간이 쳐진 신선대에 올랐습니다. 신선대에서 휘 둘러 본 도봉산은 이 가을의 마지막 제전인 단풍놀이에 정신이 빠져 제게 반갑다고 눈길을 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이 거센데다 정상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 정수리에 박혀 있는 삼각점에 서둘러 눈인사를 건넨 후 바로 내려와 오봉 가는 길로 되돌아왔습니다. 오봉 가는 길은 폐타이어를 잘라 입힌 목제계단 길로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며 왼쪽의 커다란 암봉을 에돌았는데 일단 신선대를 올라서인지 좀 길다 싶은 오르내림 길이 조금은 지겹게 느껴졌습니다. 송추 쪽 계곡의 단풍도 반대편 도봉계곡의 단풍에 못지않아 우이동으로 하산할 까 송추로 내려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오봉 갈림길에 올라섰습니다.
16시10분 오봉의 다섯째 봉에 올랐습니다.
갈림길에서 고민을 끝내고 오봉으로 향한지 20분 만에 바로 앞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오봉에 도착했습니다. 오봉의 다섯 봉우리는 1970년 록 크라이머인 고교선배들의 도움으로 딱 한번 전봉을 올랐는데 이번에 오르지 못하는 1-4봉의 자태는 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깔끔했습니다. 두 주전에 오른 상장능선 길과 백운대를 사진 찍은 후 무인산불감시탑을 수리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에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고 오봉을 떴습니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대로 오봉에서 여성봉을 거쳐 오봉탐방지원센터에 이르는데 1시간20분이 걸린다면 해가 지기 전인 17시40분이면 산행을 모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비로소 안심이 됐습니다. 오봉에서 여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모처럼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걷기에 참 좋았습니다.
16시56분 이번 산행의 마지막 암봉인 해발 504m의 여성봉에 올라섰습니다.
바위 모양이 여성의 은밀한 곳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여성봉의 짧은 슬라브 길은 하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서 그런지 제법 미끄러웠습니다. 여성봉에서 서쪽 아래로 내려다 본 계곡의 단풍은 석양의 햇살을 받아 적황색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 듯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한 분도 아래 계곡의 단풍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댔습니다. 남성보다 감성이 훨씬 뛰어난 여성들이 이 여성봉에 올라 저 아래 불타는 단풍들을 바라본다면 어찌 표현할 지 궁금했습니다. 여성봉에서 내려서서 오른 쪽 능선을 타고 오봉탐방지원센터로 하산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바위 길이었습니다만 이내 능선 길은 흙길로 바뀌었습니다. 도봉산에서 이 정도로 부드러운 흙길을 만나보기는 어렵겠다 싶어지자 여성봉으로 이름을 잘도 갖다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부드러움이 이제는 더 이상 여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아닌 것 같아 조금은 혼란스럽습니다. 부계사회에서 최고의 여인상으로 당연시한 현모양처가 이제는 더 이상 바람직한 여인상이 아니라며 신사임당의 초상을 지폐에 새겨 넣는 것을 몇몇 여성단체가 반대하고 나서는 판에 부드러운 이미지가 여성을 대표해야한다고 우긴다면 웃음거리 밖에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바람직한 여인상을 따진다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면 어느 산이 여성답고 어느 산은 남성답다는 표현도 적절한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여성의 앙칼짐을 얘기한다면 당연 설악산이 여성의 산이겠지만 어머니의 포근함이 여성의 상징이라면 지리산이 여성의 산으로 뽑혀야하기 때문입니다. 만장봉과 자운봉 그리고 선인봉을 남성봉으로, 사패산과 여성봉 및 오봉을 여성봉으로 분류한 국립공원 북한산에서 발간한 도봉산 탐방안내서는 부계사회에서 굳어진 고정관념의 산물이기에 극성스러운 여성단체들이 이 내용을 안다면 삭제하라고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17시31분 오봉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 도봉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첫 번째 횡단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여성봉에서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한 봉우리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탐방지원센타로 내려가는 중 사유지이니 들지 말라는 경고판을 보았습니다. 남의 땅에 괜스레 발을 들일 뜻은 없지만 아직도 벼를 베지 않고 방치해 놓은 사유지 논배미를 보자 저것은 농심이 아니다 했는데 바로 아래에 전기 줄을 쳐놓고 감전을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보자 불쾌했습니다. 경고문으로 언짢아진 기분이 풀린 것은 오봉탐방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최영주님의 자세한 도봉산 안내 설명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저보다 한 살 연배이신 이 분이 센터도착시간을 메모하는 저를 보고 안으로 들것을 권해왔습니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 십 수분 간 이분으로부터 도봉산 여러 길을 설명 듣고 나자 저리도 열심인 그 분이 고맙고 부러웠습니다. 대간 길을 막고 벌금을 때리는 설악산 국립공원의 백두대간종주 산객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 때문에 그동안 견지했던 국립공원에 대한 저의 부정적 태도가 많이 바뀌게 되었음도 기록해 둡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고자 하는 것은 멧돼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송추 차도로 나가 버스를 타고 연신내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탐방지원센터에서 건네받은 도봉산탐방 안내서를 꺼내 보았습니다. “숲길 따라 만나는 자연 친구들” 안에 나오는 포유동물이야기에 너구리, 고라니와 족제비는 소개되었는데 도봉산 곳곳에 경고판을 세우게 한 멧돼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논의 벼를 보호하고자 예광탄을 설치한 농민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북한산 국립공원조차 멧돼지를 적으로 치고 있는 것은 아닌 가해서 의아했습니다. 먼저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사람을 헤치지 않는다는 멧돼지를 몹쓸 산짐승 취급을 해서 넣지 않았다면 국립공원답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국립공원에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공원 안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동물들과 또 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갖가지 식물들, 이에 더하여 바위들도 전부 똑 같은 한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서 정맥 길을 종주하며 은근히 걱정되는 것은 멧돼지와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만, 산속에서는 저나 멧돼지나 똑 같은 산식구라는 제 믿음을 멧돼지가 이해해서인지 6번째 정맥 길을 종주하는 동안 몇 번 멧돼지를 만났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먼발치에서나마 멧돼지도 만나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국립공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덧붙였습니다.
<산행사진>
2007.11.04 22:00
- 시인마뇽
- 2007.11.06 09:13
- 자전적 소설인듯한 님의 2편 소설을 잘 읽었습니다. 한번 얘기한 것처럼 조정래씨 소설은 싸움싸우듯이 척을 짓고 읽기에 긴장됩니다. 아리랑도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주장입니다. 어차피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은 나름대로 작가의 도전이기에 사실과의 부합을 따진다는 것이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내용을 사실처럼 믿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도봉산 (1)
*산행일자: 2004. 9. 4일
*소재지 : 서울/경기 의정부
*산높이 : 도봉산 740미터/사패산 552미터
*산행코스: 우이동-우이암-자운봉-포대능선-사패산-회룡역
*산행시간: 11시-18시50분(7시간 50분)
*동행 :나홀로
끝 더위의 마지막 저항이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를 이틀 남긴 초가을의 수은주를 한껏 높여 놓은 어제, 저는 서울시민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켜온 근교의 명산들을 찾아 올랐습니다. 제대로 된 산행기를 한번 써 보고자 지난 4월 북한산에서 시작하여 어제 도봉산에서 마무리 진 서울 근교 5대 명산의 종주는 제게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이 아름다운 수도 서울을 감싸고 있는 북한, 청계, 관악, 수락과 도봉의 5대 명산을 앞으로는 서울을 지키는 5대 수호산으로 부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제 도봉산과 사패산을 연이어 올라 5대 수호산의 종주를 모두 마친 저는 이 아름다운 산들을 외곽으로 하고 한강이 그 중심부를 관통하여 도도하게 흐르는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여 개경에서 천도한 태조 이성계의 혜안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수도가 이리도 아름답고 건강한 산들을 수호산으로 삼고 있는가를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북으로는 북한, 동으로는 도봉과 수락, 남으로는 관악의 암릉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외적의 막아내고, 서로는 한강이 차단해주었기에 한양이 오백 년 도읍지로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뿐만 아니라 남쪽의 청계산과 함께 서울시민의 젖줄기인 한강을 보다 맑고 건강하게 지켜왔다고 생각하자 저절로 이 산들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오전 11시 우이동을 출발하여 우이암으로 향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늦은 시간이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등산로가 제법 붐볐습니다. 8월초 우이암을 거쳐 솔고개로 산행할 때와 똑 같이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진 종일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12시 정각 원통사를 조금 벗어난 널 다란 바위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옛날에는 한강이 조망되는 원통사는 도봉산 최고의 수행기도처로 자리잡았다는데 이제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쉬었다 가느라 북적대어 기도처로서 옛날의 그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래도 주위를 압도하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많은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해 시끄러움은 면한 듯 싶어 다행이었습니다.
13시5분 만장봉을 1키로 남짓 앞에 둔 능선에서 조금 비껴나 점심을 들었습니다.
우이암에서 시작되는 도봉주능선을 40분 동안 밟아 다다른 이곳에서 떡을 꺼내 들고 잠시 바위에 기대어 눈을 붙였습니다. 미풍이 살갗을 달래주어서 인지 어느새 잠이 들어 7-8분간 단잠을 즐겼습니다. 정말 얼마 만에 산 속에서 가지는 여유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한북정맥을 저 혼자 종주하느라 산행 중 손톱만치도 여유가 없었는데 서울근교 산행은 길을 잃을 염려가 없어 마음이 놓였기에 잠시나마 잠이 들었나 봅니다.
이번 산행 중에는 내내 날씨가 쾌청하여 도봉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눈에 들어 온 오봉의 다섯 봉우리를 먼발치서 지켜보며 도봉주능선을 탔습니다.13시 57분 주봉에 조금 못 미친 안부에서 K-크랙을 힘들여 타고 있는 한 여성 크라이머의 바위 오름을 안스럽게 지켜보았습다.
수직의 크랙을 오르려면 크랙의 한 면에 발을 대고 손으로 크랙을 잡아야 하기에 자연 몸 모양새가 K자형을 이루게 되어 K크랙으로 명명되었다는데 저도 1970년 선배들과 함께 K-크랙을 올랐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4시17분 도봉산 정상인 해발 740미터의 자운봉에 올라섰습니다.
지난 7월 울대고개-우이암의 한북정맥 종주시에는 비바람이 드세어 저도 모르게 자운봉을 그냥 지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수많은 인파로 발 딛을 틈이 없어 사진 한방 찍지 못하고 바로 하산해야 했습니다. 맞은 편의 만장봉에서 자일을 타고 바위를 내려오는 한 크라이머에 많은 분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크라이머가 바위를 등지고 하강을 해 선배들로부터 바위를 안고 하강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 온 제게는 그리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14시25분 포대능선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지난 7월에는 때마침 쏟아진 폭우로 포대능선을 우회했는데, 이번에는 쾌청한 날씨의 도움으로 포대능선을 제대로 탔습니다. 그러고 보니 포대능선을 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경사가 급하고 바위 길이어서 쇠줄을 잡고 오르내리기가 어려웠지만 길이 좁아 반대편의 등산객들이 다 지나가기를 마냥 기다려야 했기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곳곳에 포대를 보관해둠 직한 참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14시 49분 포대능선 밑에서 반대편의 많은 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주위의 암벽들의 자태가 정말 절경이었습니다. 이 절경은 포대능선을 타지 않고는 맛볼 수 없는 것이기에 카메라에 모두 옮겨 실었습니다.15시23분 헬기장을 조금 지나 짐을 풀어놓고 남겨 놓은 떡을 들어 요기를 한 후 20분 가까이 포대능선을 오르내려 망월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포대능선이 끝나고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사패능선이 시작됩니다. 갈림길에서 사패산까지 거리가 2.2키로여서 1시간 남짓 걸으면 사패산에 다다를 것 같습니다.
15시52분 산불감시초소를 들러 맞은편의 수락산을 조감하고 주능선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곧이어 나무계단의 하산 길을 7-8분 걸었는데 나뭇잎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고즈넉한 계단길을 비추고 있는 저녁 햇살이 운치를 더 해주었습니다. 16시17분 회룡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 부지런히 사패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사패산까지 1.2키로가 남아 있어 서둘러야 어둡기 전에 이 산을 빠져나갈 것 같아 쉬지 않고 계속 걸었습니다. 사패능선은 포대능선과는 달리 비교적 평탄한 길이기에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16시45분 해발 552미터의 사패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지난 7월에는 비가 내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북정맥 종주시에 밟았던 한강봉과 첼봉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와 모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한강봉에서 고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도 함께 담았습니다. 사패산 바위에서 아주 짧은 슬라브 코스를 오르내리는 어린애들을 지켜보며 꿈나무를 보는 듯해 기뻤습니다. 요즈음은 대학의 산악부에서 장학금을 준다 해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가 힘들다는데 저 애들이 어서 커서 이 나라의 산악운동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16시 51분 사패산을 출발하여 회룡매표소 갈림길로 향했습니다.
그 30분 후 갈림길로 되돌아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지나 회룡계곡으로 내려서자 편안한 철계단이 이어졌습니다. 이 철계단과 잘 어울리는 다리를 건너 조금 더 내려와 회룡골 계곡에서 발을 닦았습니다. 이 또한 오랜만에 가져본 탁족의 기쁨이었습니다. 회룡골 계곡에는 돌탑이 많이 세워져 눈길을 끌었는데, 제가 앞서가자 한 청년이 돌팔매질을 해 잘 올려진 돌탑을 무너트렸습니다. 돌팔매질 재주를 같이 온 친구에 뽐내고자 별 생각 없이 한 것 같지만 정성스레 돌탑을 쌓아올린 어느 분의 염원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행위는 자제되었을 것입니다.
회룡사의 노스님이 입적을 하셨나 봅니다.
많은 신도분들로 절이 붐볐고 노스님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근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18시13분 회룡사를 지나자 계곡에 본격적으로 물이 흘렀지만 낭간을 세워 출입을 막고 있기에 명경지수의 계곡이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극심한 반대로 중단되었던 사패산을 관통하는 도시외곽순환도로의 터널공사가 얼마 전에 재개되었는데 계곡에는 공사를 반대하는 불교신자들의 플래카드가 여전히 걸려 있었습니다. 개발과 환경보존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난제입니다. 천성산을 지나는 고속전철공사가 다시 중단된 사례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환경보존의 절대성을 고집하는 시민단체들에 항상 의견을 같이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동안 환경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인 당국의 잘못이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거의 모든 국가적인 대사업에 환경보존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시켜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킨 시민단체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반드시 진실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란서의 기소르망이 지은 "진보와 그의 적들"이나 덴마크의 비외론 롬보르의 저서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그 분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8시35분 매표소를 지났습니다.
아파트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 18시 50분 회룡역에 도착, 우이동을 출발한지 7시간 50분만에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어제로 지난4월 시작한 서울의 5대 수호산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년에는 가을과 겨울철에 이 수호산 들을 다시 올라 또 다른 관점에서
산행기를 써 볼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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