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47.용화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07. 1. 3. 00:22

                                                          용화산(3)

 

 

                                     *산행일자:2010. 4. 11일(일)

                                     *소재지 :강원춘천/화천

                                     *산높이 :878m

                                     *산행코스:배후령-사여령-고탄령-용화산-큰고개

                                     *산행시간:9시28분-16시1분(6시간33분)

                                     *동행 :범솥말님, 조부근님, 성봉현님, 경동고 이규성 동문

 

 

 

    1년 반 만에 추락사고를 당했던 용화산을 다시 찾아 올랐습니다. 3월1일 한남서봉지맥 종주를 같이 마치고 산본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용화산을 다시 올라 사고지점을 확인하고 싶은데 겁이 나서 못가겠다고 이야기를 하자 성봉현님께서 자일을 가지고 동행을 하겠다고 해 엄청 고마웠습니다. 범솥말님과 조부근님도 합류하고 하이맛 친구를 끌어들여 총5명이 용화산을 같이 올라 사고지점을 확인하고 정상에 올라섰다가 큰고개로 하산했습니다.

 

 

  제가 굳이 사고지점을 지나보고자 하는 것은 추락사고 이후 부쩍 심해진 바위공포증을 덜어보고 싶어서입니다. 작년10월에 시작한 낙남정맥 종주산행을 삼신봉에서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옛날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날만한 외삼신봉 아래 암릉길을 위험하다며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용화산을 다시 오르며 사고지점을 보고 제가 느낀 것은 그 때 뭔가 모르게 쫒기며 산행을 하느라 소나무에 매여 있는 밧줄도 보지 못하고 발 딛을 자리를 제대로 확인안하고 바위를 잡은 손을 놓는 바람에 사고를 당한 것이지 코스가 위험해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혼자서 다시 이 코스를 다시 한다면 줄을 잡고 내려가는 것이어서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 싶고 앞으로 바위공포증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용화산 산행사고가 제게는 끔찍한 악몽만은 아니었습니다. 사고 후 제가 받은 고마움은 탑을 쌓아도 될 만큼 크고 높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제 삶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들인가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저의 쾌유를 빌어준 덕에 이번에 다시 용화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수년간 몇 번 어려움을 겪은 후 내 스스로 하찮은 존재라고 여긴 제 생각을 바꾸어 자존을 되찾은 것도 고마움의 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고나서였습니다. 이번에도 내일처럼 생각하고 동행해준 친구들이 있어 고마움의 탑이 또 높아졌습니다. 아직도 다친 부위가 다 낫지 않아 저녁때면 허리에 통증이 오곤 합니다. 어쩌면 웬 만큼의 통증은 평생 달고 살아야할 지도 모릅니다. 이 통증을 뛰어넘는 고마움의 탑이 계속 높아가기에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9시28분 배후령을 출발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아침7시에 출발한 직통버스는 기차로 두 시간이 다 걸리는 춘천에 1시간10분만에 도착했고, 30분 가까이 기다려 승차한 양구 행 버스는 그 반시간 후인 9시10분경에 배후령에 다다랐습니다. 명산100산으로 선정된 용화산과 오봉산을 가름하는 배후령은 38선이 지나는 고위도에 위치해서인지 바람이 써늘하고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배후령에서 산행채비를 마친 후 오봉산장 뒤쪽 능선으로 붙어 군용삼각점을 지난 다음 능선 길에 낸 교통호를 따라 걸어 헬기장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범솥말님이 가리켜준 대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자 작년 5월 잔뜩 찌푸린 날씨에 올라 어둡기만 했던 사명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헬기장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 쳐놓은 로프를 잡고 봉우리에 올랐다가 조금 더 가 왼쪽 아래가 천애 절벽으로 시야가 탁 트인 전망바위에 멈춰 선 후 한눈에 잡히는 춘천시내와 의암호 및 의젓한 자태의 화악산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배후령을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더 지나 “용화산4.6Km/배후령2.7 Km"의 이정표가 세워진 봉우리에서 10분 여 쉬면서 홍천의 가리산을 조망했습니다.  이내 764봉을 우회해 이제껏 밟아온 도솔지맥과 헤어지고 북쪽으로 직진해 사여령으로 향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다 샛노란 꽃을 피운 앙증맞은 양지꽃 몇 송이를 보고 남풍에 실려 여기 38선까지 힘들게 올라온 봄이 아직은 제 자리를 잡지 못했구나 했습니다.

 

 

  11시14분 깊숙한 안부인 사여령을 지났습니다. 왼쪽 아래로 용화산자연휴양림 길이 갈리는 사여령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 오른 쪽으로 수불무산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는데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동그란 목판의 색다른 이정표가 걸려있는 778봉 삼거리에서 10분가량 더 걸어 다다른 고탄령고개는 사여령처럼 안부가 깊지 않았습니다. 왼쪽 아래로 절골 길이 나있는 고탄령에 이르자 재작년 10월 허리를 크게 다친 사고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 긴장됐습니다. 사고지점을 다시 지나 바위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둔 이번 산행에 베테랑 친구들이  동행을 해주어 든든했습니다. 지난 번처럼 저 혼자가 아니어서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는 데도 암릉 길에 다가서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스틱을 접어 넣고 두 손을 다 써 암봉에 올라서자 눈에 익는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이 암봉이 바로 재작년 가을 안부로 내려서다 오른 쪽으로 10m이상 굴러 떨어져 사고를 낸 곳이었습니다. 조심해서 내려가면 혼자서도 충분히 내려갈 수 있겠다 하면서도 먼저 내려간 성봉현님에 줄을 잡아달라고 청한 후 안전하게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 아래 사고지점을 사진 찍으면서 왜 제가 그날 소나무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지 않고 그냥 내려가다 사고를 냈는지 그 때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성봉현님이 확보용 자일을 가져온 것은 제가 소나무에 밧줄이 걸려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인데 밧줄이 오래된 것으로 보아 그 때도 걸려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날 사고가 나려고 제 눈에 뭐가 씌워 이 밧줄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사고지점을 같이 확인한 성봉현님과 하이맛 친구도 사고가 날 만큼 위험한 길이 아니라면서 저렇게 깊이 떨어졌는데도 살아난 것은 참으로 천행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12시25분 널찍한 안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사고지점 바로 앞의 위험한 암봉을 우회하지 않고 바로 넘은 조부근님과 범솥말님은 제가 사고가 난 곳이 방금 넘어선 암봉인지 알았다고 했습니다. 위험한 암봉을 우회해 왼쪽 아래로 양통길이 갈리는 이 안부로 내려가 다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한 참을 쉰 후 1.3Km 남은 정상으로 향하는 중 위험하다 싶은 암봉들은 모두 우회했는데 고도가 높은 북사면에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암봉 우회가 끝난 후 가파른 암릉 길을 줄을 붙잡고 오르면서 서쪽 멀리 정상부에 하얀 눈이 쌓여 있는 화악산의 응봉을 조망했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불알바위도 같이 보았습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오르내리는 산객들이 많아 암릉 길이 붐볐고 산행이 생각보다 더뎠습니다.

 

 

  14시6분 해발878m의 용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커다란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파로호선착장 매표소에 배 시간을 물어보았으나 자기 배는 개인 배라며 화천군청에 물어보라는 퉁명스런 대답만 들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일단 파로호 선착장으로 내려가 화천댐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배 시간을 확인 못한데다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서쪽의 큰고개로 내려갔습니다. 정상아래 세워진 삼각점을 확인 한 후 큰고개로 길이 갈리는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전망바위를 들렀습니다. 이 바위도 기묘하지만 오른 쪽 건너로 보이는 용화산을 대표하는 거대한 암벽이 일품이어서 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다시 공터로 돌아와 북서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 깎아지른 직벽의 거암이 받쳐주는 바위 길에 안전가드를 설치해 놓지 않았다면 평평한 길이지만 마음 졸이며 걸었을 것입니다.

 

 

  마음 편히 암릉 길을 걸으며 범솥말님으로부터 몇 가지 전설을 들었습니다. 장군바위에 있는 움푹 들어간 곳은 한 장군이 화악산에서 여기 바위로 뛰어내려 생긴 발자국이라 합니다. 이보다 더 엉뚱한 이야기는 주전자부리바위에 얽힌 전설입니다. 기우제를 지내려 올라온 주민들이 이 바위에 돼지피를 뿌려놓으면 화가 난 산신령이 이 피를 씻어내고자 비를 뿌린다는 내용인데 이 전설을 통해 산신령도 사람들이 얼마든지 골탕 먹일 수 있는 인격신임을 알았습니다. 하기는 이 산을 다스리는 분은 산신령이 아니고 부처께서 열반하시고 수 십 억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시는 용화(龍華) 미륵불이실 것이기에 산신령에는 더 할 수 없이 불경스런 이런 전설이 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6시1분 큰고개로 내려가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번 산행의 백미 길은 주전자부리바위가 자리한 암벽 윗길일 것입니다. 이 길 끝자락에 자리한 의자바위(?)는 사진 찍기에 최고의 장소여서 걸터앉아 사진을 찍으며 쉬어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건너편의 수려한 암봉을 배경삼아 사진을 다 찍고도 더 오래 머무른 것은 머지않아 낙남정맥종주 길에 오를 제가 외삼신봉을 지나 암벽길을 내려갈 때 써 먹고자 성봉현님에게서 자일 및 하네스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서였기에, 어렵게 배워 익힌 사용법을 까먹기 전에 써먹고자 조만간 낙남정맥 종주에 나서려고 합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 도착한 큰고개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난감했는데 고맙게도 경기도 오산의 신우리산악회의 채두병회장께서 흔쾌히 편의를 봐주어 이 산악회차로 편하게 춘천시내로 나갔습니다.

 

 

  춘천시내 시외버스터미널부근에서 저녁을 들었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를 알게 된 세분과 하이맛 친구는 초면이어서 산행 중 조금 서먹서먹했을 것입니다. 뒤풀이가 조촐했어도 분위기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어 2주후에 대구로 내려가 대구팀과 다 함께 수도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고마움의 탑은 또 높아졌습니다. 고마움의 탑을 쌓아준 동행분들과 오산의 신우리산악회에 고마움을 표하며 이만 산행기를 맺습니다. 고맙습니다.

 

 

 

                                                                 <산행사진>

 

 

 

 

 

 

 

 

 

 

 

 

 

 

 

 

 

 

 

 

 

 

 

 

 

 

 

 

 

 

 

 

 

 

 

 

 

 

 

 

 

 

 

 

 

 

 

 

 

 

 

 

 

 

 

 

 

 

 

 

 

 

                                                                 용화산 (2)


 

          *산행일자:2008. 10. 24일(금)

          *소재지  :강원춘천/화천

          *산높이  :878m

          *산행코스:배후령-764.6봉-사야령-고탄령-830봉(?)사고지점

          *산행시간:8시30분-12시10분(3시간40분)

          *동행    :나홀로

 

 

   산상의 가을은 어느새 조락의 계절로 들어섰습니다.

진작 왔어야 할 비가 뒤늦게 내리는 바람에 한창 절정을 이루리라 생각했던 용화산의 단풍이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극심한 가을가뭄으로 올 가을 단풍은 잎이 마르고 색상이 칙칙해 여느 해보다 훨씬 부실하다 했는데 그동안 오래 참았던 제우스신이 지지난 밤에 가을비를 한꺼번에 쏟아 붇는 바람에 능선 길의 넓은잎나무들은 잎이 거의 다 떨어져지고 이 산의 가을축제는 이제 끝난 듯 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자켓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냉랭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그나마 가지에 붙어 있던 나뭇잎들이 힘없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을 보자 더 스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가을에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산상의 나뭇잎만이 아니었습니다.

진원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9월의 경제위기설이 헛소문이었음이 밝혀져 얼마간 안도했었는데 10월 들어 1997년의 IMF환란에 버금가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밀어닥쳐 주가가 급락하고 원화가치가 한 없이 떨어져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우리나라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치닫는 것은 시간문제이기에 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 뻔 할진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떨어져나가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됐습니다. 11년 전의 IMF환란은 당시 정부가 자초한 면이 컸고 그래서 집권세력교체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번의 금융위기는 생뚱맞게도 전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해온 미국에서 시작되어 그 여파 또한 전 세계적인 것이기에 해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하니 이번에도 애꿎은 서민들만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이 가을이 더욱 우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가을이 조락의 계절임을 확인하는데 저 또한 한 몫을 해 부끄러웠습니다.

배후령 출발 3시간 반이 지나 다다른 용화산의 암릉지대에서 로프를 잡고 암봉에 올라 한 숨을 돌린 후 높이 2m 가량의 바위를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디어 경사가 70도 이상 되는 절벽 아래로 10m(?) 가까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흉추 세 곳과 요추 두 곳이 골절되는 등 척추를 크게 다쳐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단독산행이어서 누가 대신 연락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도 휴대폰이 터져 119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2시간 후에 구조되어 헬기로 이송되었습니다. 조락의 계절인 이 가을에 저의 부주의로 인한 산행사고로 우울함을 더했다 싶어 여러 산객님들에 죄송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이번 산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춘천과 화천을 경계 짓는 용화산(龍華山)이었습니다.

강원도의 도봉산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만장봉 등 수려한 암봉이 많이 있는 악산이지만,  파로호, 의암호, 소양호와 춘천호가 한 눈에 조망되어 산수를 두루 둘러보기에 이만한 산이 흔치않을 것입니다. 부처께서 열반하시고 수 십 억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시는 용화(龍華) 미륵불께서 세 번에 걸쳐 설법을 해도 좋을 만한 용화삼회(龍華三會)로 터를 잡아도 그리 손색이 없겠기에 이 산중에 용화사(龍華寺)가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2003년 여름 큰 비를 만나 큰고개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출발지로 되내려오는 짧은 코스로 산행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배후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춘천시내와 의암호를 조망하며 정상에 오른 후 파로호전시관으로 하산하는 긴 종주코스를 택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중간에 하산해 용화산의 종주산행은 내년으로 미뤘습니다.

 

  아침8시30분 배후령을 출발해 용화산으로 향했습니다.

일출 준비를 막 마친 동녘 하늘이 불그스레해 이른 아침 한강의 강변 풍경이 황홀했습니다. 6시15분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직행버스가 7시 반이 채 못 되어 춘천버스터미널에 도착해, 7시40분에 오음리를 거쳐 화천가는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춘천 출발 반시간 남짓 지나 다다른 배후령에서 하차했는데 같이 내린 한 분은 동쪽의 오봉산으로 향했습니다. 고개를 막 넘어 38선 경계석을 확인 한 후 길 건너 오른쪽 바로 아래 오봉산수 휴게소로 내려가 들머리를 찾았지만, 길이 막혀 허탕 치고 다시 고개마루로 올라오는 바람에 10분가량 지체됐습니다.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표지기가 보여 절개지 위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해발600m의 배후령의 아침공기는 생각보다 냉랭했습니다. 장갑을 꺼내 끼고 자켓을 껴입고 산길로 들어서자 춘천 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얼굴을 때려 늦가을 한기가 만만치 않다 했습니다. 출발 4-5분 후 절개면 꼭지점에서 내려선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바로 아래 오봉산수로 내려가는 길이 갈렸습니다. 군부대에서 세운 삼각점을 지나 교통로를 따라 올라 헬기장에 다다르기까지 30분이 걸렸습니다.


 9시50분 서쪽 사면이 천애의 절벽인 전망바위에 다다랐습니다.

헬기장을 조금 지나 춘천시와 의암호를 카메라에 담고 나자 서쪽 건너로 화악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능선 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전날 내린 비를 일부 머금고 있어 미끄러질까보아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햇살이 퍼지자 능선 길이 따뜻하고 바람도 약해져 산상의 한 순간이 더할 수 없이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로프가 쳐진 산길을 올라 760봉에 올랐고 그 몇 분 후 천애 절벽 위의 소나무를 붙잡고 서서 춘천시와 의암호를 조망했습니다. 산과 강이 에워싼 춘천시내는 아늑하고 포근해 보여 언제고 짬이 날 때 몇 달 간 옮겨와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이번 산행을 통해 제가 춘천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먼 옛날 맥국(貊國)이라는 소국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역사기록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권제1의 신라본기 제1에 신라의 3대 임금 유리이사금의 “즉위 17년 9월에 화려, 불내의 이현인이 공모연합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경을 침범하므로 맥국의 거수가 군사로써 곡하서쪽에서 이를 깨뜨리니 왕은 기뻐하며 맥국과 호의를 맺었다. 19년8월에 맥국의 거수가 금수를 사냥하여 왕에게 바쳤다.”고 적혀 있는데 이 맥국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춘천이라 합니다. 상고시대에 발해만을 사이에 두고 산동반도, 요동반도, 조선반도를 서로 연결하여 동이문화권을 만들었으며 북쪽의 예맥, 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를 세운 예맥족의 한 종족으로 알려진 맥족이 과연 북쪽에서 한반도 중심부인 춘천까지 진출해 맥국을 세웠을까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번에 오르는 용화산에는 옛날 춘천 지방에 있던 고대국가 맥국(貊國)의 성문역할을 하던 배후령, 성불령, 사야령, 큰고개, 모래재 등의 고갯길 10여 곳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춘천맥국설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나 출토된 유물·유적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하니 더욱 그러했습니다.


  10시25분 남쪽의 수리봉으로 도솔지맥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첫 번째 고봉인 760봉을 지난 지 30분 만에 삼각점이 세워진 764.6봉에 올라섰습니다. 삼각점을 사진 찍고 나자 배터리가 다됐으니 갈아 끼우라는 메시지지가 떠 꼭 필요한 때 찍고자 얼른 카메라를 껐습니다만, 기라성 같은 용화산의 암봉들과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한 파로호의 정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카메라에 옮겨 실어 가겠다는 욕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각점이 파손된 764.6봉에서 5분을 더 걸어 봉우리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배후령에서 여기 삼거리까지 이어온 도솔지맥은 남쪽의 수리봉으로 향했고, 저는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용화산 가는 길로 갈라섰는데 비로소 북서쪽으로 용화산 정상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공터 봉우리에 오르자 바람이 거칠어져 헬기장에서 벗어 넣었던 쟈켓을 다시 꺼내 입었습니다. 잎이 거의 다 떨어진 철쭉나무들은 전날 내린 비로 세속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서인지 그 수피가 뽀얗게 보였습니다. 10시50분에 나무계단 길을 걸어 내려선 사야령에서 커피를 곁들인 빵과 사과를 들며 쉬고 있는 제게 그동안 숨죽였던 새들이 노래를 들려주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배후령 출발 2시간 반 동안의 산행 중 아직은  남아있으리라 기대했던 야생화들을 하나도 만나보지 못한 제게 새소리와 빵을 보고 달려드는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이 가을이 전해주는 마지막 음악 같아 귀를 쫑긋 세워 경청했습니다.


  도솔지맥은 백두대간의 매자봉에서 분기되어 도솔산, 사명산, 오봉산 등을 일군 다음 춘천의 우두산을 마지막으로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합수점에서 침잠하는 산줄기로 도상거리가 약 124Km에 이른다고 합니다. 작년에 대암산과 오봉산을 오르며 발을 들였던 제가 이번에도 배후령에서 시작해 2시간 가까이 도솔지맥 길을 밟았습니다. 용화산을 오르며 도솔지맥을 떠올린 것은 용화산이나 도솔지맥 모두 그 어원이 미륵불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서였습니다. Daum의 신지식란에 실린 천연기념물 님의 “한국의 지리”에 따르면 미륵불은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수기를 받은 후, 현재는 도솔천에 계시다가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6억 7천만년 뒤에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용화수 밑에서 성도한 다음,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을 이릅니다. 도솔산, 도솔봉, 두솔산, 두솔봉은 미륵이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하는 염원이며 미륵산, 미륵도, 용화산, 용화동 등은 미륵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지명”이라 합니다. 신라말기 궁예가 혹시라도 도솔지맥이 지나는 용화산을 오르지 않고 미륵불을 자처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11시36분 십자안부인 고탄령으로 내려섰습니다.

사야령에서 18분간 쉰 후 20분 가까이 걸어 올라선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수불무산 행 길이 갈렸고 저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왼쪽 길로 들어서 10분 후 고탄령으로 내려섰는데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아 중간에 전망바위를 그냥 지났습니다. 고탄령에서 830봉(?)으로 오르는 길이 본격적인 암릉 길이어서 로프를 잡고 조심해 올랐습니다.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은 여전히 냉랭했습니다. 830봉에 오르자 정상이 가까워서인지 용화산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와 여벌의 밧테리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12시 10분경 휴대폰으로 119에 사고신고를 하고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830봉(?)에 올라 사방을 휘둘러보며 잠시 숨을 고른 후 저 아래 안부로 내려가는 바위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높이가 2m가량 되어 보이는 바위를 타고 내려 가야하는데 길이 분명치 않아 찜찜한 기분으로 소나무 오른 쪽으로 내려서서 바위를 안고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했습니다. 바위 끝머리에서 왼 손을 놓고 왼쪽 발을 내려놓는 다는 것이 잘 못되어 경사가 70도 이상 되는 암벽으로 10m(?)가까이 굴러 떨어지면서 이러다가 죽겠다 했는데 다행히도 중간에 넓은 턱이 있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멈췄습니다. 한 순간 숨이 탁 막혀 고통스러워 하다가 간신히 숨을 되찾은 후 주기도문을 외우며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위를 보자 직벽이어서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밑을 내려다보자 이 역시 낭떠러지여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어 별 수 없이 배낭에서 휴대폰을 꺼내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구조요청을 마치자 허리가 끊어진 것처럼 아팠고 가슴의 통증도 허리통증에 못지않았습니다. 버스에서 읽다만 조간신문을 깔고 누운 다음 배낭의 옷가지를 꺼내 덮고 나자 제가 누워 있는 곳이 넓은 침니의 한 중간임을 알았습니다. 빠끔히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래 그나마 다행이다 했는데 먹구름이 몰려들자 다시 불안했습니다. 시간 반가량 걸린다는 구조대를 맥 놓고 기다리자니 통증만 더 심하게 느껴져 가지고 간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땅 속 깊이 자리한 지구의 내부구조에 관한 글을 읽다가 사고로 지표면에 등을 눕힌 저를 보자 구조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구의 안의 용암이 지표로 분출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14시10분 경 춘천산악구조대의 대원 셋이서 저를 끌어 올린 다음 헬기를 불러 춘천시내로 이송했습니다. 구조요청 후 구조대원이 사고지점에 당도한 것은 대략 2시간 후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은 큰고개로 정상을 오른 후 사고지점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해 제가 오른 코스와는 정반대방향이어서 혹시라도 그냥 지나칠 까 걱정을 했었는데 사이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큰 소리로 구조대원을 불러 제 위치를 알렸습니다. 구조대원 한 명이 추락지점으로 내려와 확보해주고 두 명이 위에 남아 저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해 비로소 안심됐지만, 허리통증이 더 심해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어 그들은 헬기를 부른 후 저를 다시 830봉 암반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때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 몇 번의 시도 끝에 헬기에서 한 명이 줄을 잡고 내려와 저를 묶고 헬기 안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헬기를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사고로 몸을 다친 제게 헬기를 내주어 춘천시내로 운송한 구조대가 고마웠고 이 나라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북한 땅에서 사고가 났다면 과연 헬기구조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생각하자 이 정도를 국부를 이룬 이 나라가 한 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많은 이들로부터 고마움을 받아 쌓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었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나서 처음에는 세상사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싶어 앞으로 또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하나 겁도 났습니다. 8년 전에 집사람을 여의고 두 해 후에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으며 그 3년 후 수 년간 꾸려온 회사를 접으면서 이번이 마지막 시련이기를 주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물론 제 부주의로 바위에서 떨어져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왜 제게는 이렇게 시련이 계속되는지 짜증스럽기도 했고 참으로 세상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고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 실수로 바위에서 떨어지고 난 후로는 주님의 구조프로그램이 곧바로 작동되어 구조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허리와 가슴부분 외에는 다친 곳이 전혀 없고 휴대폰이 터져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분의 프로그램이었기에 저는 주저 않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번처럼 대한민국이 고맙고 자랑스러울 때가 없었습니다. 구조대를 보내고 헬기를 내준 이 나라의 구조시스템이 고맙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춘천에서 산본 집으로 데려다 준 고마운 후배와 수많은 친지들이 병원으로 문병 와 걱정해주고 빠른 쾌유를 빌었습니다. 또 여러 친구들이 4주간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에서 요양 중인 저를 잊지 않고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인터넷카페와 산 사이트를 통해 인연을 맺어온 산님들도 격려해주셨습니다. 어느새 제가 받은 고마움이 탑이 되어 높이 쌓인 것을 보자 세상사는 일이 이리도 신나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들에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용화산 산행으로 잃은 것은 몸을 다친 것이지만 얻은 것은 매사를 고마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큽니다. 이 고마운 용화산에 먼 훗날 미륵불께서 나타나셔서 설법을 해도 좋을 것 같아 과연 이 산의 명성이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용화산 (1)

 


 

                           *산행일자:2004.7.4일

 

                           *소재지  :강원 춘천

 

                           *산높이  :878미터

 

                           *산행코스:큰고개마루-만장봉-용화산정상-만장봉-큰고개마루

 

                           *산행시간:10시2분-11시23분(1시간21분)

 

                           *동행       :과천시산악연맹

 

 

 


 

 

 

  한반도가 태풍 민들레의 영향권 안에 들어서기 시작한 어제는 많은 분들이 산행계획을 취소해 한국의 명산들이 모처럼 편안한 휴일을 보냈으리라 생각됐습니다. 그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굵은 빗줄기가 어제도 하루종일 이어져 산 독이 오른 산 꾼 들만 산을 찾았을 것 같아서입니다. 과천시 산악연맹의 용화산 산행에도 평상시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13 분만이 같이 했습니다. 그제 한북정맥을 종주한 저도 새벽까지 참여여부로 고민하다, 아침 6시에 주일미사를 올리고 조금 늦게 과천시 산악연맹의 산행버스에 올랐습니다.

 


 

  태풍의 북상으로 북설악의 신선봉을 오르기로 한 애당초의 계획을 바꾸어 아침 7시 15분경강원도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짓고 있는 용화산으로 출발한 버스는 팔당댐, 청평댐, 의암댐과 춘천댐을 차례로 지나 화천에 이른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9시 57분 용화산의 큰고개 마루에 도착했습니다.

 


 

  10시 2분 해발 6백미터대의 고개마루를 출발하여 용화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산과 우비나 방수복으로 무장한 일행들은 길을 따라 설치된 로프를 붙잡고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비가 내려 오름 길이 미끄러웠지만 출발 25분 후 모두 만장봉에 조금 못 미친 산등성이에 올라섰습니다. 양통개울의 계곡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용화산의 신비감을 더해주었고 도봉산의 암벽들에 못지 않을 만장봉이 간간이 그 모습을 내보였지만, 전신촬영이 가능하도록 전부를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만장봉을 우측으로 끼고 돌며 하늘벽 옆으로 20분을 더 올라 다다른 산마루의 넓은 공터에 세워진 안내판에 따르면 정상이 50미터밖에 안 남았기에 잠시 숨을 고르고 안개로 흐려진 주위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고개마루에 다다르기 전에 길 우편의 가파른 직벽인 하늘벽을  내려다보자 현기증이 났습니다.

 


 

  10시 42분 해발 878미터의 용화산 정상에 섰습니다.

 

표지석에 용화산의 산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어 한글세대가 제대로 읽어 낼까 궁금했습니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한 커플에 기념사진을 찍어 드린 후 제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8.2키로만 걸으면 파로호에 도착한다는데, 이 절호의 기회를 접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출발점으로 되 내려가기가 아쉬웠습니다.

 


 

  10시52분 정상에서 오른 길로 되돌아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저희들처럼 산 독이 오른 분들을 몇 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큰고개 마루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맞은 편의 양통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제 코스를 밟은 산 꾼 들이었습니다.

 

11시 23분 출발지로 되돌아 와 1시간 20분만에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토록 편하게 산행을 일찍 마친 것은 2000년 3월 과천시 산악연맹의 산행에 참여한 후 처음이어서 당연 후속 프로그램이 이어졌습니다. 호반에서 매운탕을 먹기로 하고 버스를  파로호로 돌렸는데 유감스럽게도 음식점들이 문을 닫아 파로호 호변에서 매운탕을 들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오봉산 고개를 넘어 춘천호반으로 옮겼습니다.

 


 

  13시 2분 춘천호반에 자리잡은 한 음식점에서 매운탕을 안주 삼아 반주를 즐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는 호반은 주위의  산들과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듯 싶었고, 이를 편안하게 관조하는 저희들도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해 한껏 느긋해졌습니다. 14시45분 버스에 다시 올라 의암댐을 거쳐 등선폭포를 잠시 들렀습니다. 조심을 했는데도 철 계단을 내려오다 엉덩방아를 찧은 저는 산행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통증을 심하게 느껴 내일은 병원에 들를 생각입니다.

 


 

  상경 길은 여전히 막혀 생각보다 늦게 과천으로 돌아와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번 산행이 어려운 때에 산악회를 맡아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시스템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전임 회장의 노고를 기리는  산행도 겸하게 되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음을 말씀드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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