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48.천관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28
                                                     천관산(2)

 

 

                               *산행일자:2009. 11. 17일(화)

                               *소재지 :전남장흥

                               *산높이 :연대봉723m

                               *산행코스:관산읍주차장-문바위-연대봉-대장봉

                                              -구룡봉-탑산사-천관문학관주차장

                               *산행시간:11시33분-15시21분(3시간48분)

                               *동행 :은하수 산악회

 

 

  서울에서 정남쪽에 위치한 장흥은 남해 바다에 면한 군소재지입니다.

서울의 남해안 정남진인 장흥이 동해안의 정동진보다 훨씬 멀어 군포시청을 출발해 장흥의 관산읍에 도착하기까지 버스로 무려 5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KTX로 부산을 왕복할 만한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산악회 버스가 중간에 회원편의를 위해 여러 곳을 들러서이기도 했지만 아직도 장흥은 고속도로가 나있지 않은 시골이어서 더 그러했습니다.

 

  제가 6년 만에 이 먼 곳의 장흥을 다시 찾은 것은 천관산의 평원을 점하고 있는 억새들의 군무를 보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이만한 억새는 굳이 천관산이 아니어도 집에서 가까운 다른 산에서도 능히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왔다 갔다 하는데 12시간이 다 걸리는 이 먼 산을 억새만 보려고 달려온 것이 아닙니다. 이번 탐방의 주목적은 소설 “신화의 시대”의 무대로 나오는 천관산을 다시 보는 데 있습니다. 이 소설은 장흥이 낳은 이 나라 최고의 문인으로 평가받는 이청준 선생의 유작으로 아쉽게도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년에 작고하신 선생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73년 소설 “조율사”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문학도가 아니어서 직접 뵐 기회는 한 번도 없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선생의 작품에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천착해왔기에 애독자로서 선생과 맺은 긴 인연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재작년 여름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 선생의 대표작인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이 된 소록도를 방문했던 제가 선생의 마지막 작품인 “신화의 시대”의 무대가 된 천관산을 다시 오르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읽은 선생의 작품 중 천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이 작품이 유일한(?) 것이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선바위골 뒷산 너머로 이 지역 사람들이 흔히 ‘큰 산’이라 부르는 천관산(天冠山)이 높이 솟아 있었다.”

 

  오전 11시33분 관산읍 주차장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길가의 샛노란 유자가 여기 장흥 땅이 따뜻한 남해안 시골임을 일러주었습니다. 주차장에서 큰 길 따라 남쪽으로 걸어 가다가 장안사를 얼마 남겨둔 지점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넜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비알 길을 치고 올라가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연대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타고 남진했습니다. 산행 시작 45분 후 해발450m대의 문바위를 지나자 동남쪽으로 펼쳐지는 남해바다가 한눈에 잡혀,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배경 삼아 이 바위를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시베리아 기단이 몰고 온 북서풍이 생각보다 냉랭하고 드셌습니다.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에 모자를 날릴 뻔 하고나서야 윈드자켓을 꺼내 입고 산 오름을 계속 했습니다.

 

  남해가 섬이 많은 바다임은 이번 산행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일망무제의 동해바다에서는 수평선만 보이는 데 비해, 여기 천관산에서 내려다 본 남해에는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이 여기 저기 둥실둥실 떠 있었고 해안선도 일직선으로 둑을 쌓아 이어놓은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이어서 절로 정감이 갔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제주도도 보인다는 데 설사 보인다 해도 하도 섬이 많아 어느 섬이 그 섬인지는 누군가가 따로 가리켜주지 않는다면 구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바위를 지나며 부부로 보이는 두 분에 북쪽으로 보이는 높은 산이 무등산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집에 돌아와 지도를 보니 위치로 보아 제암산인 것 같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두 분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저 많은 섬들을 조망하면서 섬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가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섬이란 다름 아닌 바다 속의 산이라고 저 나름대로 풀이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섬들이 모두 작아 평야가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만, 국어사전에는 섬의 뜻이 “둘레가 물로 둘러싸인 육지”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전이라고 다 맞지 않은 것이 둘레가 물로 둘러싸인 커다란 땅덩어리인 유라시아대륙을 어느 누구도 섬이라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산의 뜻풀이는 어떠한 가도 궁금해 다시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을 산이라 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바다보다 훨씬 높이 솟은 저 아래 섬의 산들은 산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을 미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로 다 담아내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면 사람들은 이 자연에 보다 더 겸손해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6분 해발723m의 천관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문바위를 지난 지 십 수분 후 예쁘장한 나무계단을 올라 서쪽 건너편 금강굴 주변의 곧추선 바위 군들을 사진 찍었습니다. 천관산의 볼거리는 바위와 억새 그리고 바다라고 같이 오른 한 분이 말씀한대로 잘 생긴 바위들이 여기저기 보였는데 좀 색달랐던 것은 다른 산의 바위들을 여기 천관산으로 옮겨와 평평한 능선에다 듬성듬성 세워 놓은 것 같아 능선 길이 꽉 차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우거진 숲이 별로 없어 산이 조금은 헐벗어 보였습니다. 양근암을 지나 이 산의 정수리인 연대봉의 봉수대에 오르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어 곧바로 내려섰습니다. 천관산이 자랑하는 억새평원은 주봉인 연대봉에서 북서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졌는데 휘몰아치는 삭풍에 넋을 잃어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연대봉 출발 20분 후 억새평원이 끝나는 북서쪽의 대장봉에 이르러 환희대를 사진 찍고 바람을 피하고자 억새밭으로 들어가 10분여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 산이 헐벗어 보이는 데는 그만한 역사적인 아픔이 있었습니다.

 

  “멀리로는 고려조 때의 일본 공략에 나선 여몽연합군의 군선 건조를 위해 산의 수림이 크게 남벌 당했고, 다음으로 조선조 왜란 때 우리 군선 건조와 왜인들의 방화 약탈로 다시 울창한 수목과 사찰들이 큰 수난을 겪었으며, 봉수제도가 폐지된 한말 이후 일제 강점기부터는 일본인 회사들의 건축재 반출사업으로 온산이 크게 헐벗게 되었다.”고 선생께서 그의 소설 “신화의 시대”에 적어놓았습니다. 억새평원이 이 산 정상부에 들어선 것이 이런 저런 수난으로 나무들이 다 베어진 후의 일이라면 억새들의 군무는 한풀이의 한 표현이겠다 싶었습니다.

 

  13시58분 구룡봉을 올랐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대장봉을 출발해 남서쪽으로 0.6Km 떨어진 구룡봉으로 향했습니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장군이 한 때 사랑했던 가야의 천관녀가 이 산 아래 천관사에서 은신했었다는 데 이번에도 천관사를 들르지 못한 것은 이 절은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관사능선 끝머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였습니다. 이미 결혼한 김춘추에 여동생을 시집보내 출세의 발판으로 삼고자 애쓴 장군에는 아무리 본인이 가야출신이라 해도 이미 망해버린 가야의 여인 천관녀를 연인으로 사귈 수는 있어도 부인으로 삼을 뜻이 전혀 없었기에 천관녀 집으로 향하는 애마의 목을 과감히 베었을 것입니다. 건너편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들이 우뚝 서 있는 진죽봉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편안한 능선 길을 걸어 구룡봉에 당도했습니다. 연대봉-대장봉-구룡봉을 잇는 능선 길은 이 봉우리들의 고도차가 50m가 채 안될 만큼 적은 평평한 길이어서 산행이 편안했습니다. 그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천애의 절벽이 받쳐주는 구룡봉의 암반은 아홉 마리의 용이 동시에 승천해도 될 만큼 넓고 평평했지만 강풍에 등 떠밀려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곧바로 남동쪽 아래에 자리한 탑산사로 향했습니다. 구룡봉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다 큰 바윗돌들이 4층으로 포개진 곧추 선 기암을 사진 찍고 조금 내려가자 이 기암은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신병(神兵)을 동원해 하룻밤사이에 세운 아육왕탑(阿育王塔)이며 원래 6층이었던 이 기암에서 맨 위층이 떨어져 나가 5층만 남게 되었다고 안내판은 설명했습니다.

 

  구룡봉에서 남동쪽으로 20분 남짓 내려가 만난 탑산사지에는 탑산사라 이름 붙은 양철지붕의 초라한 일자 건물 한 채가 서있었습니다. 텃밭 한쪽에 땅바닥을 기고 있는 가느다란 가지 끝에 새빨간 꽃이 매달려 있는 풀을 보고 보살님에 그 이름을 여쭸더니 법애란이라며 몇 가지를 꺾어주어 고맙게 받아 왔습니다. 천관산의 옛 이름이 탑산일 만큼 이 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은 탑산사입니다. 절 마당 안내판에는 이 땅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다는 서기372년(고구려 소수림왕2년)보다 5세기 앞서 인도에서 건너 온 불교가 이곳에다 처음으로 자리 잡았고, 그래서 여기 탑산사가 바로 우리나라 불교의 첫 도래지라는 신문기사 복사본이 붙어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반야굴 깊숙이 모신 부처님을 사진 찍으면서 이 굴이 반야용선을 서방정토로 띄우기에는 턱 없이 좁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14시53분 천관산 탑산사 문탑(文塔)앞에 섰습니다.

반야굴을 지키고 있는 몇 기의 돌탑을 뒤로 하고 문탑(文塔)으로 내려가는 길에 진홍색의 동백꽃과 붉은 색의 단풍잎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는데 제 철을 만난 듯 물오르기 시작한 새빨간 동백꽃은 요염해 보였고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단풍잎들은 빨간 색이 많이 바래어 조금은 칙칙했습니다. 반야굴에서 만난 돌탑은 이번 산행의 끝점인 천관문학관에 이르기까지 계속됐습니다. 문탑 아래 문학공원 안에는 우리나라 유명문인들을 기리는 여러 기의 바위들도 같이 세워져 있어 천관산의 진수는 억새가 아니라 돌과 바위와 탑에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어느 시절 누가 무슨 뜻으로 시작한 일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사람들은 언제부턴지 그렇게 산속을 찾아들어 며칠씩 머무는 동안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산과일을 따는 일 외에, 산 길 곳곳에 각기 자기 마을 이름의 크고 작은 돌탑을 하나씩 쌓고 돌아갔다.”

 

  어린 시절 이 산을 지켜봤을 선생께서는 역시 이 돌탑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으니, 선생의 “신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 돌탑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수수께끼 같은 돌탑들이 늘어나면서 일제 관서에서 대흥과 이번에 저희들이 오른 관산면 쪽으로 입산 자체를 금하기도 했고, 울력꾼들을 동원해 모든 탑들을 일시에 부셔버리기까지 했으나 이 지역 주민들의 신앙이 되어버린 돌탑 쌓기는 중단되지 않았다고 선생은 덧붙였습니다.

 

  15시21분 천관문학관 주차장으로 내려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문탑에서 조금 내려가 천관산 문학공원을 일별한 후 돌길을 따라 걸어 천관문학관 주차장으로 내려서기까지 반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천관산의 볼거리에 천관산문학공원과 천관문학관이 들어 있는 것은 이번 산행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탑산사 문탑에서 이어지는 천관산문학공원에는 우리나라 유명문인 54분의 짧은 문구가 새겨진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고,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현대식 2층 건물의 천관문학관에서는 조선조 가단(歌壇)을 빛낸 기봉 백광을 비롯한 몇 분들과 이 시대를 같이 살아 온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선생 및 한강 님 등의 문인들을 체취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잘 지은 문학관에 비치된 책들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았고 정식 휴관일이 아닌데도 안내인이나 관리원이 한 분도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쉬웠습니다.

 

  “신화의 시대”가 말하는 신화는 단순히 역사를 비춰주는 원형의 거울이 아니며 이 소설의 야심은 우리의 근대적 삶이 곧 신화의 생성 그 자체라는 것을 웅변하는 데 있다는 소설가 이인성님의 서평에 저는 동감합니다. 선생께서 몇 해만이라도 더 사셔서 이 소설을 마무리하셨으면 얼마나 좋겠는 가만은 그리하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먼 훗날이라도 장흥의 한 작가가 선생의 유작을 이어받아 이 소설을 마무리 짓기를 빌어봅니다.

 

  지방으로 원정 산행을 다녀오노라면 산을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버스 안에서 긴 시간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도 과제입니다. 저는 주로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자고, 자다가 깨면 다시 읽곤 하며 차 안 독서를 즐기는 편입니다만, 이번에는 마침 옆자리의 한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긴 시간 이동이 지겹지 않았습니다. 통영의 미륵산에 올라 바라다 본 남해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는 이 분에 비운의 천관산에 올라 남해바다를 조망하며 이번에도 눈물을 훔쳤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은 “신화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신화적 삶속에는 아예 눈물이 말라 없어졌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천관산이 낳은 작가  고 이청준 선생을 기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천관산(1)

 


                           *산행일자:2003.10.26일

                           *소재지: 전남 장흥

                           *산높이: 723미터

                           *산행코스:주차장-장지천-중봉-연무대정상-장지천-주차장

                           *산행시간:11시25분-15시55분(4시간30분)


  어제 한반도 남단의 장흥에 위치한 해발 723터의 천관산을 다녀왔습니다.

과천시산악연맹의 제 18차 산행지인 천관산은 때마침 열린 억새꽃 축제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하루 종일 북적댔읍니다.


  수 년전 임권택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영화"서편제"의 모태는 이청준 선생의 소설"남도기행"입니다. 선생은 고흥의 소록도를 배경으로 하는 "당신들의 천국" 이라는 걸작을 내놓아, 해방 후 최 인훈,김 승옥님과 더불어 우리의 말과 글을 갈고 닦아 보다 아름답고 풍요롭게 했다는 찬사를 받아온  이곳  장흥이 배출한  소설가입니다.


  우리의 소리 "서편제"를 담고 있는 남도의 풍취에 매료되어 그동안 남도기행을 원해왔는데 어제 버스로나마 남도 땅을 지났습니다. 아침 6시30분 과천을 출발한 버스가 남도에 들어선 것은 10시가 다되어 서입니다. 영산강하구의 대불단지에서 시작되는 남도여행은 영암-해남-강진을 거쳐 장흥의 관산에서 끝났지만 차창가로 펼쳐진 남도의 풍경은 한가을의 풍요로움과 남도만의 넉넉함이 어우러진 푸근한 것이었습니다.


  11시25분 관산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15분여 걸은 후 천관산의 들머리인 장지천에 도착하였습니다.이곳에서 제3등산로를 택해 산등성을 올라 금강굴로 향했습니다. 12시40분 중봉을 가로질러 전진하던 중 입구에 자리한 어느 여인네가 "금붙이를 몸에 지녀야  들어 갈 수 있다"고한 금강굴을 지났습니다.


  13시 10분 중봉에서 시작된 기암괴석이 끝나는 환희대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에서 억새밭이 시작됩니다.포천의 명성산 억새보다 키가 조금 낮은 듯 싶으나, 억새 밭은 더 넓게 느껴졌읍니다. 평평한 능선 길을 숨 고르며 걸어 13시 30분 정상인 연대봉에 도착했습니다. 이조초기부터 봉수대로 쓰였던 연대봉에서의 전망은 단연 일품입니다. 멀리 동남쪽으로 소록도가,그 반대편으로 완도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밑의 다도해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깔끔해 보였습니다.


  요즘들어 지방마다 열리는 축제가 흔합니다.

그 중 함평의 나비축제나 과천의 마당극 축제 등은 지역민을 하나로 묶는 일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는 세평이지만, 단체장들의 욕심 때문에 열리는 그저 그런 축제들도 많다 합니다. 마이크소음이  이곳 천관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천관사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되었습니다. 천관사는  가야의 후예라는 이유로 또 다른 가야의명문가였던 김유신일가로 부터 버림받은 비련의 여인 천관녀가 은신한 사찰이기에 소음으로  그녀가 오랜 역사의 잠을 설칠까 염려되어서입니다.


  연무대에서 조금내려와 동료 4분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연맹에서 준비해준 도시락 외에 별다른 반찬은 다른 동료 분들이 정성스레 마련해 온것입니다. 점심을 들면서 한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한후 제1등산로로 길을 잡아  14시 20분경 장지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4시 40분 정원암을 지나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내려와 15시 40분 장지천에 도착하였습니다. 어제의  천관산 산행은 장지천에서 시작하여 약 8키로의 코스를 4시간만에 마친 원점회귀산행이었습니다.


  15시 55분  출발지인 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천관산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그리고 동행한 어린아이를 잃지 않았나 하는 회장님의 노심초사도 끝냈습니다.


  별양동의 특별한 분이 장지천을 다 내려와서  어느 나무에 입맞춤하느라 조금 늦었다는 말씀이 오늘따라 새롭게 들렸습니다. 나무의 고마움을 터득한 말씀이었습니다. 33살의 나이로 전사한 미국의 시인 조이스킬머(Joyce Kilmer)의 "나무"(Trees)를 올리며 천관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나무(Trees)


나는 생각한다,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A poem lovely as a tree


대지의 단물을 흐르는 젖가슴에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온 종일 하느님을 보며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잎이 무성한 팔을 들며 기도하는 나무: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여름엔 머리칼에다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가슴에 눈이 쌓이는;                               Upon whose bossom snow has lain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사는 나무.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 > 명산100산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감악산 산행기(1-2)  (0) 2007.01.03
49.추월산 산행기(1-2)  (0) 2007.01.03
47.용화산 산행기(1-3)  (0) 2007.01.03
46.주왕산 산행기(1-2)  (0) 2007.01.03
45.도봉산 산행기(1-3)  (0) 2007.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