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49.추월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30

                                       추월산(2)


            *산행일자:2008. 4. 25일(금)

            *소재지  :전남담양/전북순창

            *산높이  :추월산731m, 치재산591m, 용추봉508m

            *산행코스:오정자재-용추봉-치재산-추월산-밀재

            *산행시간:7시22분-19시18분(11시간56분)

            *동행    :나홀로

 


  호남정맥 종주 길에 산등성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뵈었습니다.

이 분께 인사를 드리고 몇 말씀을 나누면서 길옆에 철선으로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은 손수 재배하는 고사리를 지켜내기 위해서이고, 고사리 밭에 고사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지난 밤 서리가 내려 미리 낙엽을 덮어 놓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고사리와 서리가 충돌하는 것은 우선은 이미지입니다.

고사리의 주 이미지는 아기들의 고사리 손에서 읽혀지는 연약함입니다. 고사리는 독특하게 씹히는 맛과 연약함 덕분에 산나물로 대접받고 사랑받습니다. 고사리도 때가 되어 줄기가 질겨지면 연약함이 사라져 저작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어 산나물에서 퇴출당하게 됩니다. 서리가 풍기는 이미지는 단연 서슬 퍼런 냉랭함입니다. 어느 누구든 어른들의 추상같은 불호령에 오금을 제대로 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을 터인데 여기 추상(秋霜)은 가을의 찬 서리를 뜻합니다. 이렇듯 고사리와 서리는 서로 상징하는 이미지가  다릅니다. 고사리가 서리와 대립하는 것은 이미지만이 아닙니다. 호남정맥 종주 중에 이 둘이 대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북 순창과 전남담양을 어우르는 오정자재 고개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을 따라 오르는 길에 고사리 밭 옆을 지났습니다. 산등성에다 고사리를 재배하는 한 할아버지께서 지난밤 올해 마지막(?) 서리가 밤새 내려 냉해를 입을까봐 미리 낙엽을 덮어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사리와 서리는 서로 이미지만 충돌하는 것이 아니고 삶의 문제를 갖고도 대립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고사리와 서리의 음운은 마치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들리지만 소리와는 달리 실제는 이토록 다르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고사리와 서리의 충돌을 막아 준 것은 고사리 밭의 주인이신 할아버지였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한 낮의 기온이 섭씨 25도를 오르내려 초여름 날씨를 방불했었는데 별안간 수은주가 급강하하는 것을 지켜본 할아버지께서 이런 날씨라면 서리가 내리리라 예상하고 고사리 밭에다 낙엽을 덮어주어 냉해로부터 고사리를 구해 낸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또 다른 표현은 노인(老人)입니다. 노인이 대접받은 것은 단순히 먼저 늙어서가 아니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지혜 때문입니다. 일본어나 중국어에는 노인이란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다 합니다. 연세든 노인들로부터 젊은이들의 순발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도 우리나라와 다름없을 진데 이분들이 현인(賢人)으로 대접받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온고지신을 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부끄럽다고 지워버릴 뜻이 아니라면 역사로부터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이 나라 산업화의 원동력이었던 노인 분들로부터 각 분야에서 고사리를 지켜내는 지혜를 배우는 것 또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치재에서 종주를 끝낸다면 더 할 수 없이 편안한 산행을 추월산을 넘어 밀재까지 진출하기로 욕심을 내자 제 걸음으로 12시간은 족히 걸릴 만큼 산행거리가 늘어나 요전처럼 당일새벽 산본 집을 나서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날 낮에 미리 내려와 화순의 운주사를 탐방하고 광주 내방동의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후 아침5시50분에 광천터미널을 출발하는 순창행 직행버스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후 순창에서 내려 확인해본 즉 오정자재를 지나는 정읍 행 첫 버스가 8시20분에 출발한다기에 포기하고 택시로 오정자재까지 이동했습니다.


 아침7시22분 오정자재를 출발했습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하늘이 쾌청해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운행시간단축에 욕심을 냈습니다. 오정자재고개에서 오른 쪽으로 들어가 왼쪽의 고사리 밭과 오른 쪽의 밤나무 밭 사이로 난 산길을 걸어 오르는 중 고사리 밭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송전탑이 서있는 310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밤나무 밭가에 쳐놓은 철책 선을 따라 북쪽으로 내달리다가 전망바위에 잠시 머무르며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추월산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마루금 왼쪽으로 나무들을 베어낸 방화선을 지나 480봉의 어깨에 자리한 한 암봉에 다다른 시각이 8시44분이었습니다.


  9시58분 해발508m의 용추봉을 올랐습니다.

암봉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날등의 암릉길을 걸어 480봉의 암봉에 다다르기까지 20분 가까이 서로 뚜렷하게 대비되는 진달래와 연달래를 만나보았습니다. 빨그스름한 진달래꽃은 거의 다 지고 가지 끝에 한 두 송이 남아 있는데, 철쭉꽃 연달래는 연분홍 꽃을 활짝 피어 이 산에서는 신록의 5월이 오기 전에 진달래의 자리물림이 끝날 것으로 보였습니다. 480봉에서 조금 내려가 평평한 길을 걷다가 삼각점을 만났는데 경사가 하도 완만해 삼각점 봉이 508.4봉인지는 모르고 지났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산죽 길로 내려가 임도에 다다르자 “連理枝- 朴OO*李OO 湖南正脈 從走”라는 표지기가 걸려있어 오지의 호남정맥에서도 곁을 같이하는 그들 부부가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산죽 가지가 얼굴을 때리는 길을 올라 봉우리 하나를 넘은 다음 가파른 된비알 길을 올라 헬기장이 들어선 용추봉에 오르자 시야가 확 트여 시원했습니다. 왼쪽으로 추월산과 산성산이 보이고 오른 쪽 바로 아래로 밤재를 넘나드는 차들이 보여 빨치산의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회문산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은데 어느 산인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용추봉에서 20분 남짓 쉰 후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밋밋한 능선 길을 걷다가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다시 치켜 올라 8부능선 쯤에서 아래로 내려섰다가 10시46분에 구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11시25분 해발591m의 치재산을 올랐습니다.

구 헬기장을 출발해 6-7분 후 내려선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해 임도를 따라 올랐습니다. 치재산을 화원을 만들어가는 봄꽃은 양지꽃 및 바람꽃의 풀꽃과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과 철쭉꽃등 나무 꽃이었습니다. 치재산 정상은 용추봉에 비해 비좁고 전망이 트이지 않아 조금은 답답했지만 호남정맥 종주 길에 자주 보아온 꼬막껍질이 이 봉우리에서도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가파르게 내려갔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어 임도사거리에 닿아 직진한 후 꾸준히 올라 헬기장에 다다르자 고개를 떨 군 할미꽃 몇 송이가 보였습니다.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오른 무명봉에서 490봉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편안한 산길을 걸었습니다. 12시반경에 마지막 10여m를 올라 다다른 490봉에서 가파른 길로 내려섰습니다.


  13시45분 29번 도로가 지나는 천치재를 지났습니다.

490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묘지를 지나 바로 아래 차가 다니는 넓은 임도로 내려선 것까지는 순조로운 산행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오른 쪽으로 임도 따라 내려가면 될 것을 표지기가 보이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 것이 이번 종주산행에서 치른 유일한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몇 분 후 산불감시초소 앞에 더 이상 차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임도 길에 차단 목을 설치해 놓았고 하얀 색의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초소 앞 임도사거리의 왼쪽으로 여러 개의 표지기가 보여 490봉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길은 벗어난 길이고 이제야 비로소 제 길을 찾았다 싶어 안도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한참을 진행해 임도 길을 벗어났는데도 표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뒤늦게 이 길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3시가 가까워져 일단 가던 길을 멈추고 점심을 든 후 먼저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야 이 분들도 저와 똑 같이 알바를 했음을 알았습니다. 초소에서 오른 쪽으로 난 임도는 영산강의 발원지인 가마골로 내려가는 길이었고 천치재는 처음 내려선 임도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점심시간을 빼더라도 반시간 가까이 알바를 한 셈으로 다시 원 위치해 임도 따라 내려가다 축사 딸린 가옥(?) 뒤로 난 산길로 들어서 천치재로 내려섰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에게서 오른 쪽 아래로 200-300m 가량 내려가야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맥주 한 캔 사들겠다는 소박한 꿈을 접고 차도를 건너 추월산으로 들어섰습니다. 추월산은 작년 4월 한 번 오른 데다 전남의 도립공원이어서 알바를 할 염려는 덜었지만 한 번 들어서면 중간에 탈출할 만한 곳이 적당치 않아 5시간이 넘겨 걸리는 밀재까지 진출해야 해 힘이 달리지 않을까 부담되기도 했습니다. 연초록의 깔끔한 둥굴레가 떼 지어 있는 산길을 지나 385.6봉을 넘어 임도사거리인 큰부래기재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른 후 직진해 산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얼마 후 가파른 길을 지나 송전탑 옆의 510봉에 오른 것은 천치재 출발 1시간이 거의 다 된 14시30분이었습니다.


  16시32분 삼각점이 서 있는 해발710.1m의 깃대봉에 올랐습니다.

510봉에서 산죽지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넘어 다다른 500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동안 내려가자 꽤 넓은 밭과 공터가 나타났습니다. 길도 넓고 경사도 완만해 내림 길이 모처럼 편안했는데 눈앞에 우뚝 솟은 깃대봉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리 마음이편하지 않았습니다. 15시40분에 오른 쪽 아래로 시멘트 길이 이어지는 안부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여기에서 710.1봉으로 올라서는 길이 이번 산행 중 최고의 깔딱 길이었습니다. 직등 길을 20분 가까이 올라 암릉 길에 걸쳐 있는 로프를 보자 작년 4월 자그마한 저수지인 견양제를 지나 이 길을 오를 때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게 났습니다. 직등 길을 오르느라 몸은 고됐지만 곧추선 암벽과 연초록의 나뭇잎들, 그리고 활짝 핀 철쭉꽃들을 두루두루 보느라 두 눈만은 즐거웠습니다. 작년 4월보다 후덥지근한 더위가 좀 누그러졌고 골바람도 살살 불어와 생각보다 직등 길을 오르는 것이 힘이 덜 들었습니다. 커다란 암봉을 우회해 올라선 능선에서 남쪽으로 진행해 깃대봉에 올라서자 왼쪽으로 조금 비켜 서 있는 깎아지른 추월암과  그 아래 담양호의 빼어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와 역시 추월산이다 했습니다.


  18시24분 해발 731m의 추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봉우리로 오르며 되돌아본 710.1봉은 절애의 암벽이 받쳐주는 웅장한 암봉이었습니다. 왼쪽 아래로 견양동마을과 복리암마을이 갈리는 안부삼거리를 차례로 지난 후 진달래가 활짝 핀 해발726m의 수리봉에 도착하자 시꺼먼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바람이 세게 불어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곧바로 하늘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남진하면서 틈틈이 왼쪽 아래 담양호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추월산이 명산 100산의 반열에 든 데는 절애의 암벽 추월암과 그 아래 초록색 물빛을 띄고 있는 담양호 덕분일 것입니다. 월계리 갈림길을 지나 추월산 정상에 오르자 해지기 전에 목적지인 밀재에 충분히 다다를 것 같아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정상에서 추월암으로 가는 길은 동쪽으로 이어졌고 정맥 길은 그 반대방향인 서쪽으로 뻗어나갔습니다.


  19시18분 담양-정읍 노선버스가 넘어 다니는 밀재에 도착해 장장 12시간의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봉우리에서 밀재로 가는 길은 거의다가 완만한 내림 길로 뛰다시피 걸으면서도 어둠에 조금씩 화사함을 잃어가는 철쭉꽃을 그냥 지나치기가 안쓰러워 근접촬영을 했습니다. 밀재로 내려서자 이번 종주산행이 조금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치재까지는 그리 힘든 줄 몰랐는데 몇 개의 고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추월산을 오르는 데 진이 많이 빠졌고 산행 내내 해지기 전에 밀재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밀재에 다다르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나마 남아 있는 기운도 온 몸에서 사르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복흥 택시를 불러 기사분으로부터 정읍 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녁 6시35분에 이미 복흥을 지났음을 확인하고 나서 추령으로 직행했습니다.


  추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손님이 거의 없는 여기 모텔의 잠자리가 정읍의 찜질방보다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아 다시 택시를 불러 정읍으로 옮기느라 이번 구간의 종주산행에 모두 4만원의 택시비가 들었습니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거리 정맥종주를 떠나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현지의 교통정보가 대단히 중요한 것은 과다한 택시비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해 필요정보를 챙기는데도 정보부족으로 이번처럼 생비용을 날릴 때가 더러 있습니다. 밀재에서 복흥 택시 대신 맞은편의 금성택시를 불러 담양으로 나갔다면 2만원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고 나서 유용한 정보는 바로 돈이 됨을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장장 12시간을 걸어 오정자재-천치재-밀재의 긴 구간 종주를 무탈하게 마쳤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아직도 20대에 버금갈 에너지가 제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정맥종주에 필요한 에너지는 단순히 오랜 시간 걸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전에 계획하고 정맥종주를 실행하고 끝난 후 산행기로 남기는 과정 하나하나가 새로운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에 말입니다. 어떤 계에 존재하는 에너지는 그 형태만 변화할 뿐 총량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 에너지보존의 법칙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도 변화가 없기에 쓸 데 없는 일에 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않고 정맥종주에 모아준다면 앞으로도 몇 십 년이고 계속해 산줄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추월산(1) 
 

               *산행일자:2006. 4. 30일

               *소재지  :전남 담양

               *산높이  :731미터

               *산행코스:부리기고개-견양동마을-깃대봉-추월산-추월암-주차장

               *산행시간:11시30분-17시10분(5시간40분)

 


  어제는 전남 담양의 추월산을 올라 4월을 환송했습니다.

시베리아의 냉기가 한 겨울을 지배한 한반도 남단의 이 산하에 훈훈한 남녘의 봄을 옮겨 놓고자 찾아온 4월을 올해는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두대간에서 맞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저항으로 긴긴 겨울의 마지막 터널을 힘들게 빠져나온 봄이 미시령-진부령의 능선 길에 채 자리를 잡지 못해 마지막 대간종주가 힘들었지만, 그 후 4월이 안내한 명산 나들이로 우리의 산하에서 약동하는 새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강원도 춘천의 삼악산, 대구 달성의 비슬산, 충남 금산의 서대산 등 명산을 순례하며 보아온 농익어가는 4월의 색깔이 추월산의 연초록 나뭇잎들을 어우르는 담양호의 진초록 물색에서 완성됨을 보고나서야 저는 미련 없이 4월을 보냈습니다.

    

해마다 4월이면 떠올리는 시가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친” 이 4월에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울부짖은 시인 신동엽 님의 “껍데기는 가라”가 지금도 읽혀지고 있는 것은 아직도 사월의 알맹이를 에워싸고 있는 이런 저런 껍데기가 그대로 남아있어서일 것입니다. 4월의 알맹이가 진실과 옳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껍데기는 거짓과 위선 그리고 목청을 돋우어 외쳐대는 구호일 것입니다. 입산이 금지된 유네스코지정 보호구역을 남몰래 산행해 대간완주의 명성을 얻고자 한 허영,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섣부르게 산행기를 써대어 산의 참모습을 왜곡하는 오만함, 내 갈 길이 바쁘다고 지쳐서 뒤쳐진 이들을 나 몰라라 하며 내닫는 몰인정등 모두가 추월산 정상에서 4월과 함께 보내버렸어야 할 제게 남아 있는 껍데기들입니다.


 

  오전 11시32분 견양동정류장에서 하차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남 장성의 백양톨게이트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장성댐을 끼고 돌며 추월산으로 향하는 중 “꿈과 슬기를 가꾸는” 학교  옆을 지나며 때 묻지 않은 이런 시골학교라면 학생들에 점수와 지식보다는 꿈과 슬기를 가꾸어 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곡두재 못미처서 호남정맥팀을 내려놓고 천치재를 넘어 부리기고개에서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땡볕을 받아가며 시멘트 길을 얼마고 걷자  여름을 가불한 듯한 철 이른 더위가 이번 산행을 어렵게 만들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11시43분 아담한 저수지를 지나 시멘트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추월산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묵통골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 죽사이로 난 길을 걷는 것도 잠시이고 이내 오른 쪽의 산등성이로 치고 올랐습니다. 된비알의 오름길 옆에 만개한 연분홍의 철쭉꽃을 보고 봄이 다해 감을 느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점점 날씨도 양극화되어 봄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져 그렇지 않아도 웰빙 상품에 밀려 덜 팔리는 패션의류가 사계절이 분명하지 못해 더욱더 매기가 떨어진다며 걱정하는 중소기업사장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르기가 이리도 고된 것은 들머리를 조금 지나서부터 직등길이 계속되어서인데 그래도 간간히 불어오는 봄바람이 피로를 덜어주었습니다.


 

  12시39분 깃대봉까지 한숨에 오르겠다는 뜻을 접고 전망바위에서 목을 축였습니다.

이곳에서 7-8분을 쉬면서 북쪽 끝의 담양호와  맞은편의 기암절벽을 바라보며 추월산의 명성을 확인한 후 전망바위에 주저앉아 먼발치의 산들을 조망하는 여성대원의 뒷모습이 뒤에서 그늘을 만들어주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과 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1990년대에 2년 반을 이지방의 영업부장으로 일하면서 오며가며 추월산을 올려다만 보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두발로 걸어 오른다고 생각하니 밧줄을 잡고 가파른 암릉 길을 오르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전날 밤 과음으로 제 몸이 아니라는 한분은 어느새 원기를 되찾아 깃대봉 바로 밑에서 발견한 산 작약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열심이셨습니다.


 

  13시18분 호남정맥상의 한 봉우리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에 우회한 봉우리가 깃대봉이라면 정상 방향으로 첫 번째 봉우리에서 점심을 들면서 20분가량 쉬었습니다. 커다란 암봉인 깃대봉을 만나 어떻게 오를까 걱정을 하면서 다가서니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나있어 안도했습니다. 정맥 길에 올라서기까지 정말 힘들었던 것은 80Kg을 조금 넘는 과체중 때문이었지만 때 이르게 찾아온 여름 날씨로 더했다는 생각입니다. 녹음이 한껏 우거진 여름날에는 산길이 대부분 그늘져 그래도 나은 편인데 이제 나뭇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4월의 철 이른 더위는 볕을 가릴 나무들의 그늘이 없어 더욱 힘들게 느껴집니다. 715봉을 지나 수리봉에 오르자 범나비 두 마리가 날개 짓을 해대며 4월의 마지막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는 듯 했습니다. 수리봉에 올라 견양동에서 깃대봉으로 오르는 능선 길을 받쳐주고 있는 깎아지른 암벽들을 보자 아찔했습니다.


 

  14시46분 730봉에서 잠시 쉬면서 단전호흡을 하신다는 남자대원 한분이 건네준 거봉포도를 맛있게 들었습니다. 하늘재에서 730봉을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직등 길을 오르느라 몹시 지쳐 보이는 한 분이 뒤로 쳐진 것을 보고 기다려서 같이 가야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는 이분에 후미를 맡고 있는 또 한분이 모시고 올 것이니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라  말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든 혼자만 시간 안에 닿겠다는 저의 속 좁음이 시인 신동엽 님이 얘기하는 껍데기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깃대봉에서 730봉까지 능선 길은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간간히 암릉 길이 있어 단조롭지 않았고 서쪽의 순창 쪽에서 불어올라오는 골바람과 능선 길을 붉게 물들인 화사한 진달래꽃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잊게 해 고마웠습니다.


 

  15시16분 해발 731미터의 추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730봉에서 왼쪽의 월계리로 하산하는 안부를 지나 13분을 더 걸어 정상에 올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워낙 후미로 쳐진 터라 오래 쉬지 못하고 바로 추월암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산죽길로 들어섰다가 10분도 안되어 빠져 나왔습니다.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났지만 높낮이가 그리 크지 않아 보리암전망대인 추월암까지 한 걸음에 내달았습니다. 중간에 노란 풀꽃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 뿐이어서 정상 출발 40분도 채 안되어 추월암에 도착했습니다.


 

  16시2분 추월암에서 하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추월산의 비경은 이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담양호변의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큰 병풍모양을 하고 있는 암봉이 바로 추월암이고 이곳에서 내려다 본 담양호는 추월산의 진정한 벗처럼 느껴졌습니다. 절애의 기암절벽이 보여주는 추월산의 날카로움을 담아내는 담양호의 포근함이 없었다면 산림청에서 명산 100산의 하나로 추월산을 선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추월암을 받쳐주는 암벽과 보리암, 그리고 초록의 농도가 더해가는 담양호를 카메라에 담으며 보리암을 비껴가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급경사의 철계단과 로프길을 내려와 적송 숲을 지났습니다.


 

  17시12분 주차장에 도착해 5시간 40분간의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산악회에서 준비한 홍어내장으로 포식을 하고나서 정맥 팀의 한 분이 탈진하여 119팀을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턱대고 정맥 팀을 쫓아가 내달렸다면 저라고 탈진하지 않았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던 무더운 하루였습니다. 서울로 먼저 출발하면서 그 분의 빠른 회복을 빌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담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그렇습니다. 시인 신동엽 님이 끝맺은 대로 추월산 정상에 올라 그 모든 껍데기 쇠붙이는 4월과 함께 다 보내고 4월의 알맹이인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 만은 제 가슴에 담고 5월로 질주할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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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용화산 산행기(1-3)  (0) 2007.01.03
46.주왕산 산행기(1-2)  (0) 2007.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