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50.감악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35

                                  감악산(2)


            *산행일자:2007. 12. 25일

            *소재지  :경기파주/양주/연천

            *산높이  :감악산(설인귀봉)675m, 임꺽정봉674m

            *산행코스:스르레미고개-수레네미고개-설머치고개-감악산-간패고개

            *산행시간:8시45분-17시45분(9시간)

            *동행    :경동고29회정병기 동문

 

 

 

 서로 다른 둘이 손잡고 공존하면 평화이고, 대립하고 싸우면 전쟁입니다.

한북감악지맥의 종주 길에 오른 감악산 정상에서 평화와 전쟁의 상징들을 모두 보았습니다. 이 산 정상에서 강 건너 북쪽의 송악산을 뚫어져라 지켜보는 초병의 얼굴을 보고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했는데, 이 초병에 안온함을 안겨주는 4-5분 거리의 성모 마리아 상 앞에 다가가서는 무한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이 산의 최고봉을 놓고 자웅을 겨루다 단 1m 차이로 설인귀봉에 정상을 넘겨준 임꺽정봉에 올라서자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한 이 봉우리가 날카로운 바위를 곧추세우고 한판 붙어볼 기세여서 섬뜩함이 느껴졌지만, 산 아래 신암저수지와 원당저수지등 두 저수지가 산꼭대기 암벽들과 자기자리에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믿음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이런 것들이 바로 평화이다 했습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것을 다 감싸고 있어 볼거리가 훨씬 많은 감악산이 명산100산으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관악, 운악, 화악 및 송악과 더불어 경기5악으로 불리는 감악산도 바위가 많은 악산임에 틀림없지만, 이처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들과  또 갈등하며 상쟁하는 것들을 모두 어우르는 산이 어디 이 산 말고 달리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상에 올라 휘 한번 둘러보고 나서는 때로는 웃고 더러는 분노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자화상을 본 것 같아 친근감이 더해졌습니다. 비석에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세워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설인귀봉의 빗돌대왕비가 이 산이 겪어온 과거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라면 바로 아래 신설 중인 거대한 KBS DMB 방송탑은 미래의 상징물일진데 이 둘에서 과거와 미래의 평화로운 공존을 보는 듯해 과연 감악산이다 했습니다.


  아침8시45분 해태상이 세워진 스르레미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의정부 가능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32번 금촌행 버스를 타고 50분 가까이 달려 다다른 스르레미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973년에 처음 정상을 오른 후 7번 째 찾는 감악산을 이번에는 파주와 양주를 경계 짓는 산줄기를 따라 올랐습니다. 이 고개에서 오른 쪽 구릉에 올라서자 군용차도가 넓게 나있어 동행한 후배동문과 함께 이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고 한 참을 더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차도와 헤어지고  바로 앞의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안지나 266.1봉에 올라서서 서쪽 저만치에 자리한 파평산을 카메라에 담은 후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잣나무 숲길로 내려섰습니다.


 9시45분 수레네미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파주 쪽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노인 분들이 시멘트 길을 따라 고개 마루를 넘어 양주 쪽으로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격동기의 젊은 날을 엄청 고생하며 보냈을 저분들이 이제는 뒤따라오는 젊은이들에 뒷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로건너 가파른 길을 올라 오래전에 지어놓았을 은둔용(?) 가건물이 세워진 바로 앞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서자 다시 군사도로가 나타나 이 길을 따라 무건리고개에 닿기까지 계속 북진했습니다. 사격장통제용 깃대와 넓은 헬기장 다음으로 무언가를 숨겨놓을 목적으로 만들었을 커다란 벙커 같은 군 시설물을 지나 어느 한 일가의 아담한 묘지 앞에 다다랐습니다. 호화분묘는 아니더라도 상석과 묘비 등의 즐비한 석조 구축물들이, 산 속의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 끝에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시스템에 반하는 것들이어서, 정맥 길의 다른 묘들처럼 언제고 이장명령을 받아 옮겨질 때 석조구축물들만 덜렁 남겨두어 볼꼴사납게 나뒹구는 것이 아닐까 싶어 같이한 동문에 수목장이 가장 친환경적인 매장이어서 좋겠다는 제 뜻을 전했습니다. 묘지를 지나고 헬기장도 지나 넓은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가 무건이고개에 닿기까지는 더할 수 없이 산행이 여유로웠습니다.


  10시49분 2층망루가 세워진 무건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설머치고개까지는 계속 길을 잘 못 들어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철문 안으로 도로가 내려서는 무건이고개에서 오른 쪽 도로를 따라 가다가 왼쪽 봉우리로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시 군사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2-3분을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풀들이 덮인 임도를 따라 낮은 구릉을 올라섰다가 천천히 내려서자 가파른 내림 길이 보였는데 뭔가 찜찜해 잠시 멈춰 서서 지도를 보았습니다. 무건이고개에서 동진해야 설마치고개에 다다를 수 있는데 정신없이 북진해 지맥 길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얼마 후 삼거리에서 다시 들어선 군사도로를 되짚어 가다가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공터를 만나 지맥 길로 복귀한 것이 첫 번째 알바였습니다. 시멘트공터 5거리에서 직진해 공동묘지 옆의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다 산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삼각점이 세워진 365.7봉에 올라섰습니다. 이봉우리에서 내려선 고개마루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자 능선 왼쪽으로 사계를 시원스레 정리한 산줄기가 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길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잡목을 베어내고 유일하게 소나무만이 몇 그루 서있어 전방만 아니라면 운치를 느낄만한 능선 길에서 고개마루로 다시 내려와 군부대에서 설치한 철조망을 건넜습니다. 하얀 눈이 덮인 응달 길을 따라 동쪽으로 3-4분을 내려가 만난 맨 흙의 넓은 공터에서 지맥 길에 합류한 것이 두 번째 알바였습니다. 3번째 알바는 다 내려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보고서야 확인한 것이어서 맥이 더 빠졌습니다. 토치카 같은 군 시설물을 지나서 한참 후에 다다른 가족묘표지석이 세워진 능선삼거리에서 다음카페의 한 산악회가 걸어놓은 표지기를 보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 것이 실수였습니다. 넓은 길로 먼저 내려선 동문이 이 카페의 표지기를 다시 보고 제 길이라며 따라오라 했으나 앞에 놓인 계곡이 이 길이 아님을 분명하게 얘기해주어 별 수 없이 가족묘 표지석이 세워진 능선삼거리로  다시 올라서 3번째 알바를 끝냈습니다. 마지막 4번째 알바도 바로 전 알바와 유사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직진해 능선 길을 따라 걷다가 7-8분 후 능선 왼쪽으로 난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4-5분 후 만난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을 왼쪽으로 꺾어 한참을 내려가자 집 한 채와 그 아래 계곡 건너로 3번 째 알바에서 만났던 넓은 길이 다시 보였습니다. 산줄기를 이어가는 종주산행에서는 계곡을 건너면 무조건 안 되기에 오른 쪽의 군부대 울타리에 바짝 붙어 4-5분을 전진하자 의정부에서 적성 가는 371번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이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군부대 정문을 지나서 한창 도로공사중인 설머치고개마루에 올라가 감악지맥의 마루금을 밟고서야 제 길을 찾았다 싶어지자 저를 따라 나선 후배동문에 된 고생을 시킨 것이 새삼 미안했습니다.


  13시31분 설마치고개로 올라섰습니다. 

도로확장공사로 어수선한 고개 마루에서 10분여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은 후 오른쪽의 군부대 울타리에 바짝 붙어 파헤쳐진 공사장을 건넌 다음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뿌리 채 뽑혀 내동그라진 삼각점을 지나 오른 무명봉에서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20분 가까이 푹 쉬었습니다. 스르레미고개에서 설머치고개까지는 군사도로와 임도가 얼기설기 나있어 길 잃기가 십상이었지만 설머치고개에서 감악산에 오르는 길은 거의 외길이어서 더 이상 딴 길로 들어서 헤맬 일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는데 넓은잎나무들이 떨어낸 낙엽들이 소북이 쌓여 있는 능선 길이 얼마고 계속되어 알바로 생고생했던 발바닥이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왼쪽 아래 사기막 골에서 굿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한참을 오르자 다시 군사도로가 나타나고 뒤이어 가스실습훈련장 건물이 보였습니다. 얼마 후 군사도로에 벗어나 가파른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출입을 금한다는 군부대경고판을 뒤로하고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암릉 길이 나타나 왼쪽으로 에돌았습니다.


 15시38분 법륜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임꺽정봉 0.7Km 전방의 고개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응달진 길의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이젠을 찼는데 이내 만난 아기자기한 암릉 길을 오르내리느라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안개가 자욱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여기 암릉 길에서 저 아래 원당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일만큼 하늘이 쾌청해 바위의 소나무를 배경으로 저수지를 향해 몇 번이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16시 정각에 해발674m의 임꺽정봉에 올라 운무 위로 능선만 빠끔히 보이는 북녘 땅 송악산을 바라보자 이제껏 떼돈을 퍼주고도 북한정권이 쳐놓은 커튼을 거둬내지 못한 햇빛정책을 계속 끌고 가야하는 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임꺽정이 숨어살았다는 임꺽정굴을 내려 가보지 못하고 바로 설인귀봉으로 향했습니다.


  16시21분 감악산 정상인 해발675m의 설인귀봉에 올랐습니다.

넓은 공터 한 쪽에 세워진 빗돌대왕비는 글자가 한자도 남아 있지 않아 몰자비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유격대장 설인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은 비록 적장이지만 용맹스럽고 인간적인 면이 있어 설인귀전이라는 군담소설이 조선 땅에서도 번역되어 민중들에 널리 읽힌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정상봉을 설인귀봉으로 부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진흥왕 순수비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빗돌대왕비를 이렇다 할 고증 없이 설인귀비로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서둘러 바로잡을 일이다 싶었습니다. 정상에서 건너편 마리아상으로 옮기는 중 작년에 보지 못한 커다란 송전탑 같은 것이 서있어 다시 보니 KBS DMB라는 작은 표지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마리아 상에서 기도를 올린 후 오른 쪽으로 꺾어 커다란 암벽을 왼쪽으로 돌아 지성소로 내려갔습니다.


  17시45분 간패고개에서 2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지성소가 가까워지자 더 이상 굿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일몰을 얼마 앞둔 산속이 고요했습니다. 지성소 역내로 들어가 길을 잃고 헤맸던 작년 산행이 생각나 이번에는 지성소에 다다르기 직전 오른 쪽 능선으로 붙었는데 얼마 후 헬기장으로 내려서서야 길을 제대로 들었음에 안도했습니다. 헬기장을 출발해 한 번도 쉬지 않고 죽어라고 내달렸어도 간패고개로 내려서는데 1시간이 다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나지 않는 낙엽 쌓인 한적한 능선 길을 따라 나지막한 고개를 몇 개 넘어 동쪽으로 내달리는 저희들을 땅거미가 바로 쫓아왔습니다. 혼자라면 닥쳐올 어둠에 불안했을 산길을 둘이서 부지런히 걸어 차도가 얼마 남지 않은 묘지에 내려서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묘지에서 조금 내려서 간패고개에 도착해 길옆에서 웃옷을 갈아입은 후 10분여 오른 쪽으로 걸어 내려가 황방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10분가량 기다렸다가 어유지리를 출발한 동두천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동두천역 앞에서 삼겹살을 들며 되새김한 이번 종주산행은 숱한 알바로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감악산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물줄기와 그 건너 북녘 땅의 송악산 산줄기를 본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만한 산행이었다고 자평을 했습니다. 짙은 안개로 작년 산행에서 제대로 못 본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암릉길 절애의 바위들이 볼만했고 성탄절 날 산상에 세운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이 땅에 평화가 깃들 것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린 것도 뜻 깊었습니다. 장장 9시간을 함께 땀 흘린 후배 동문에 특별히 감사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감악산(1)  

 

                                    *산행일자:2006. 11. 28일

                                    *소재지  :경기 파주/양주

                                    *산높이  :675미터

                                    *산행코스:설마교-법륜사-숯가마터-임꺽정봉-감악산정상-지성터 -

                                                  봉암사-원당삼거리

                                    *산행시간:13시15분-16시55분(3시간40분)

 


 

  겨울을 재촉하는 마지막 가을비가 제법 드셌습니다.

겨울 속으로 사라져가는 이 가을이 안개 속에 숨겨놓은 흙살을 어루만지고자 어제는 경기 파주의 감악산을 올랐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는 겨울의 냉기를 불러오기에 미흡했던지 어제도 오전 중에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다행히도 들머리에 들어서기 얼마 전에 비가 그쳐 우중산행은 면했습니다만 대신에 십수미터 밖에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가 온 산을 뒤덮어 암릉길을 걸어 오르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고 눈에 익은 먼 산들이 드러나지 않아 조금은 서운했습니다.


 

  고향 땅 파주에 자리한 감악산은 8년 전에 집사람과 마지막으로 오른 산입니다.

총각시절 이 산을 처음으로 다녀 간 후 1998년 가을 25년 만에 다시 찾은 감악산이 그녀와의 마지막 산행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공해에 찌든 서울 근교 산들보다 한결 단풍이 곱게 들었다며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을 산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그녀에 사랑의 한마디를 살짝 건네주어도 좋았을 것을 당시로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에서 무덤덤하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것이 지금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13시15분 342번 차도가 지나는 설마교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본 집을 출발해 의정부역에서 내리자 주룩주룩 비가 내렸습니다. 구터미널에서 적성가는 25번 버스를 타고자 십 수분을 걷는 동안 등산화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12시 정각에 의정부를 출발해 이번 산행의 출발점인 설마교에 다다르기까지 몇 번이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해 우중산행을 각오했는데 막상 산행을 시작한 후로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아 암릉길을 오르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십수분간  시멘트 차도를 걸어올라 법륜사에 다다랐습니다. 해탈교를 건너 한 데서 이 절을 지키는 사천왕을 보고서 온몸을 불살라 글을 쓴 최명희님이 생각난 것은 소설 “혼불”에서 사천왕을 상세하게 묘사한 그녀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기 때문입니다. 안개가 자욱한 늦가을 오후 아담한 이 절을 한번 훅 훑어보고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지만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치고자 서둘러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13시47분 만남의 광장으로 조성된 숯가마터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법륜사 출발 14분 후에 다다른 쉼터에서 3-4백 미터 가량 널게 난 돌길을 걸었습니다. 돌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낙엽송 잎들이 길의 운치를 더 해주었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밭가를 지나 다다른 만남의 광장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된비알의 산등성을 올랐습니다. 가을이 버리고 간 계곡은 오랜 가뭄으로 물이 흐르지 않아 황량한 느낌이 들었지만 오름 길은 오전에 내린 비로 가랑잎이 흥건히 젖어 미끄러질까 조심스러웠습니다. 25분을 걸어 올라선 460봉은 우측면이 절애의 암벽인 널찍한 암봉으로 소나무 몇 그루가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잠시 내려섰다가 산오름을 계속해 본격적인 암릉길에 다다랐습니다. 남사면이 낭떠러지인 암릉길을 조심스레 걸으며 안개로 가려진 비경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중 등로가 그려진 안내판과 감악산 4-3의 긴급구조용 표지목이 세워진 암봉에 다다르자 태양이 잠시 얼굴을 내밀어 암벽을 비춰주었습니다.


 

  14시45분 해발640미터의 임꺽정봉에 올랐습니다.

법륜사와 봉암사, 그리고 임꺽정봉과 부도골로 갈리는 능선 사거리를 지나자 이 산이 서부전선 고산 중에 최북단의 산임을 알려줄 듯이 사격연습을 하는 총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얼마 후 한 암봉에 올랐다가 밧줄을 잡고 내려서 바로 앞의 임꺽정봉에 조심해서 올라섰지만 안개가 시야를 가려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내려와 장군봉 바로 아래 암굴인 임꺽정굴을 보고자 했으나 이 역시 짙은 안개로 위치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이 암봉이 임꺽정봉으로 명명된 것으로 보아 양주의 불곡산 및 황해도의 구월산과 더불어 이 산도 비적 임꺽정의 주 활동무대였던 것 같습니다. 임꺽정과 같은 비적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백성들에 등 따듯하게 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덕이어야 한다는 정치의 요체일 것입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지 못하고 젊은이들에 반반한 일자리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서 시끄럽기만 한 현 권력의 주체들에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시6분 해발675미터의 감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임꺽정봉에서 어름골재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감악산 정상은 헬기장이 들어선 넓은 공터여서 전망이 좋은 곳인데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은 것은 소요산과 파평산, 그리고 개성의 송악산  만이 아니었습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 한 곁에 자리 잡은 초소 안의 장병들도 북쪽 만 바라볼 뿐 얼굴을 돌리지 않아 그들의 노고에 고마워하는 제 표정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설인귀비 안내문을 다 읽고 나서 감악산휴게소에서 출발해 능선을 타고 올라왔다는 부부들을 만나 어름골재를 거쳐 법륜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을 알려준 후 정상을 떴습니다. 3-4분 후에 다다른 성모마라이상 앞에서 성모송을 소리 높여 읽으면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16시7분 650봉 바로 아래 삼거리에 도착해 반시간 넘게 걸린 알바를 끝냈습니다.

성모마라아 상을 15시17분에 출발해 10분 후 650봉을 에돌아 안부로 내려서자 왼 쪽 바로 아래로 능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차가 다닐 만한 임도가 널게 나 있었고 오른 쪽 아래로 하산하는 넓은 길이 나있었습니다. 오른 쪽 길로 내려서자 여기 저기 산신령을 모시는 지성소가 자리 잡고 있어 하산 길이 끊어져버려 길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안부로 다시 올라가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오고 지성소 부근의 많은 길을 전부 확인했지만 마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심하다가 마차산행 능선길을 타다가 중간에 봉암사로 내려서는 긴 코스를 포기하고 지성소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하여 650봉에서 뻗어 내려가는 능선에 다다랐습니다. 길을 알고 있는 법륜사로 내려갈 요량으로 정상으로 되돌아가고자 다시 산오름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만나 그 길로 내려서 이내 봉암사로 하산하는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 다다르자 비로소 안심됐습니다. 길을 찾느라 지성소 부근을 왔다 갔다 하는 중 LPG 가스통이 바깥에 방치된 가건물 안에서 사람소리가 나 섬뜩했습니다. 산신령을 모시는 그들의 무속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산을 해치는 행위만은 단속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16시33분 봉암사를 지났습니다.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서 가파른 돌길을 십 수분 걸어 내려가 쇳골 계곡을 건넜습니다. 어름골재 너머 편의 안골 계곡 길과는 달리 잡목이 우거진 풀 숲길이어서 한 여름에 지나기가 애 먹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고 풀 숲길을 지나자 고즈넉한 오솔길이 이어졌습니다. 나무다리를 건너 법륜사보다 더 작은 봉암사를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제 안개는 완전히 가셨고 하늘이 쾌청했습니다. 시멘트길로 들어서 뒤돌아보자 임꺽정봉을 둘러싼 구름이 석양을 받아 붉게 변해가며 수직으로 용솟음치고 있었습니다.


 

  16시55분 황방2리의 원당삼거리에서 산행을 마쳤습니다.

조성기의 소설 “우리시대의 무당”의 모델이 됐음직한 굿당에서 굿을 하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굿당을 지나 숲속의 하얀집 음식점 앞의 원당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택시를 불러 원당저수지를 거쳐 신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의정부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굿당과 지성소를 찾는 택시승객이 꽤 있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으로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없듯이 기성종교로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현대인들  모두가 치유 받을 수는 없나봅니다. 어려서부터 무속을 미신으로 배워온 제가 이제 와서 샤머니즘을 떠받들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요란한 굿소리가 귀에 익은 듯 반갑게 들린 것은 우리의 가슴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원형 속에는 싫든 좋든 샤머니즘적 어떤 요소가 들어있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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