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52.관악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41
                                          관악산(2)


               *산행일자:2007. 5. 9일

               *소재지  :경기과천/안양/서울

               *산높이  :관악산629미터/삼성산455미터

               *산행코스:남영동관음사입구-관악산-팔봉능선-삼성산-경인교대

               *산행시간:9시05분-17시50분(8시간45분)

               *동행    :나홀로

 


   암릉 길 산행에 맛 들인 많은 분들이 육봉과 팔봉의 두 능선을 오르내리기 위해 관악산을 찾는다는데 저는 재작년 여름까지 14년 동안 과천에서 살면서 수도 없이 관악산을 올랐어도 한번도 두 능선을 타보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다른 약속이 있어 장시간 산행이 불가능할 때만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정상을 다녀오는 땜방산행으로 이 산을 주로 올라서이기도 하지만,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겁이 많아 위험한 리지산행을 애써 피해온데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3년 전에 한북정맥을 종주했을 때도 운악산의 암릉 길을 바로 타지 못하고 그 밑으로 한참을 에돌아 지나간 제가 지금도 정맥 종주 중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아슬아슬한 암릉 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입니다. 젊은 시절 아주 짧은 기간이나마 암벽등반을 했노라고 내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것도 바위길이 무서워 리지산행을 피하는 주제에 록 크라이밍을 했다고 떠벌린다는 것이 낯간지럽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관악산의 암릉 길을 오르내리며 긴 시간을 바위와 함께 했습니다.

나무와 바람과 새들처럼 중요한 산식구의 하나인 바위를 우리의 산에서 들어낸다면 전설의 반은 덜어내야 할 정도로 먼 옛날부터 바위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한강의 방어를 뚫을 만큼 강력한 바위산 관악산의 화공을 제압하고자 광화문에 해태를 세웠다는 전설이 바위가 이 나라 선조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를 실증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저는 1970년 고교선배들로부터 암벽등반을 배우는 것으로 바위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한 여름에 바위가 내뿜는 지열만큼 강렬했던 암벽등반에 대한 저의 열정을 오래 이어가지 못한 것은 암벽등반이 지겨워서가 아니고 그 반대로 이러다가는 너무 빠져 중독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록크라이밍에 빠져 직장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하루 빨리 취직을 해야 했던 급박한 저로서는 더 이상 바위를 하는 것이 과분한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래도 바위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만큼이나 넓고 속이 깊은 바위, 열연에 빠진 연인들의 입맞춤보다 더 뜨거운 바위, 오랜 친구들만큼이나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바위, 여인의 다리보다 더 밋밋한 바위, 물보다 더 빨리 뜨거워지고 차가와지는 감정이 살아있는 바위, 그러나 어떠한 애련에도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는 의지의 바위가 제가 기억하고 있는 바위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바위를 부둥켜안고 있노라면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안온함이 느껴집니다.


  아침 9시5분 남현동의 관음사입구 다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사당역에서 십 여분을 걸어 올라와 다다른 관음사입구에 매표소로 보이는 간이건물이 문을 닫은 것으로 보아 관악산 어디에서도 다른 국립공원의 산들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년을 넘긴 비보사찰 관음사의 절터가 너무 좁아 대웅전도 석탑도 일주문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크게 보였습니다. 철쭉꽃과 연등이 화사한 관음사를 빠져나와 이 절을 이곳에 들어앉힌 절 뒷산을 올랐는데 태극기가 펄럭이는 319봉을 거쳐 거북바위로 올라서는 길이 가파른 바위길이어서 처음에는 긴장했습니다. 멀리서보면 도저히 못 오를 것처럼 험난해보여도 막상 다가서면 나름대로 손잡을 홀드와 발 딛을 스탠스가 있어 이제껏 무난히 올랐던 바와 같이 이 암릉 길도 보기보다는 오르기가 쉬웠습니다.


  11시1분 너럭바위인 마당바위에 올라섰습니다.

관음사에서 헬기장삼거리의 1.3Km 구간이 처음 오른 암릉 길인데다 중간에 자주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느라 사당에서 바로 마당바위로 오를 때보다 1시간은 더 걸렸습니다.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한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천리가 넘는 길을 도도하게 흘러와 넓어진 하류에 닿은 한강이 강변에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에 가려 상류의 물길보다 더 옹색하고 답답해 보였습니다.  웬만한 산의 주말 인파에 버금갈만한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아올라 주중의 관악산이 결코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마당바위에서 목탁바위를 거쳐 559봉에 오르는 중 바위가 닳고 헤어져 떨어져 나간 바위들의 편린을 보면서 이 고통을 감내하고 자리를 지켜온 바위가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11시43분 헬기장이 들어선 559봉을 들렀습니다.

과천 살 때 숱하게 올랐던 추억의 산길은 이 봉우리에서 남동쪽으로 똑바로 내려서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과천성당으로 내려서는 능선 길로, 이 길을 카메라에 담고자 이 봉우리를 우회하지 않고 바로 올랐습니다. 과천시내 건너 청계산과 대공원안의 청계저수지, 그리고 경마장이 뚜렷하게 보이는 559봉에서 4-5분을 머무른 후 남서쪽 가까이에 자리한 관악산 정상에 오르고자 삼거리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관악문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관음사 뒷길보다 더 어려운 암릉 길이지만 여러 번 오른 터라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12시22분 해발629미터의 관악산 정상에 올라 처음으로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얼떨결에 미적지근한 맥주 한 캔을 4천원에 사들고 나자 턱없이 비싼 가격에 술맛이 텁텁했습니다. 청계산의 망경봉과는 달리 관악산의 연주대는 고려수도 개경을 등지고 있어 임금이 계셨던 곳을 바라보며 연모하기에는 불편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에 암릉 길을 타고자 나선 길이기에 연주암으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대로 내려서는 안부를 거쳐 이름모르는 암봉을 올랐습니다. 방송중계탑과 관악산 정상의 중간쯤에 자리한 뾰족한 이 바위를 올라서기가 이번 산행에서 가장 어려웠습니다. 맞은편으로는 여러 번 올랐지만 이 길로는 이번이 처음으로 아무리 찾아보아도 적당한 홀드와 스탠스가 눈에 띄지 않아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우회를 할까 고심하는 중 마침 젊은 한 분이 먼저 올라가 밑에서 눈여겨보았다가 그대로 따라해 성공했습니다. 서울대쪽 계곡에서 쉴 새 없이 골바람이 불어와 그 시원함이 세상만사를 잊게 하는 이 암봉에 걸터앉아 잠시 쉬다가 조금 내려가 점심을 들었습니다.


  13시50분 국기봉 못 미쳐서 서쪽방향으로 팔봉능선이 갈리는 고개 마루에 닿았습니다.

육봉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인 국기봉의 태극기만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이 산에 국기가 휘날리는 봉우리가 몇 개 더 있는데 이 봉만이 국기봉으로 불리는 것은 힘들게 육봉능선을 타고 이 봉우리에 오르면 저절로 이 나라가 고맙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방송중계탑을 에돌아 팔봉능선 갈림길에 이르기까지 나지막한 암봉 몇 개를 우회 길로 비껴가지 않고 그대로 오르내렸습니다. 관음사를 출발한 후 길이 난 암봉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오르내렸기에 눈앞에 펼쳐진 팔봉능선 길이 그리 험난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안부로 내려섰다가 바로 붙은 바위 길은 제법 경사진 길이지만 곳곳에 홀드와 스탠스가 있어 생각보다 쉽게 올랐습니다.


  15시20분 안양시와 서울시 관악구를 경계 짓는 무너미고개에 올랐습니다.

팔봉능선의 첫 봉을 무사히 오른 후 나머지 봉들은 일일이 세지 않았습니다. 한두 개 봉우리는 내림 길이 더 힘들었습니다. 관악산에서 이 능선처럼 깨끗하게 보존된 산길이 더 있겠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능선 길이 깔끔했습니다. 맑은 날씨가 한 부주해 능선 양 옆으로 들어선 포근한 두 계곡에 내려앉은 5월의 신록이 더욱 선명해 보였습니다. 어느 분이 마지막 8봉이라고 일러준 암봉에서 잠시 쉬면서 왕관바위를 카메라에 담은 후 개구멍바위를 지나 계곡 앞 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팔봉능선이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따를 수는 없어도 암릉 길이 아기자기하고 깨끗한데다 코스도 그리 길지 않아 친구들과 다시 한번 찾을 뜻입니다. 안양시와 관악구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계곡을 건너 관악구방향으로 2백m 떨어진 무너미고개에 오르자 예의 조그마한 돌무덤이 보였습니다. 이 고개에서 잠시 쉬었다가 왼쪽 길로 올라서 삼성산으로 향했습니다. 


  16시22분 해발455미터의 삼성산을 올랐습니다.

무너미고개를 출발해 삼성산중계소에 다다르는 오름길은 사당에서 관악산에 오르는 길 못지않게 흙먼지가 너풀거렸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안양유원지 계곡을 일별한 후 조금 더 올라가 포장도로로 들어섰습니다. 포장도로는 중계소 앞에서 끝났고 철 계단을 올라 중계소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남진했습니다. 모자를 날릴 뻔 한 엄청 센 바람이 먹구름을 몰고 와 능선 길을 덮었습니다. 잠시 후 빗방울이 떨어진다 했는데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우의를 꺼내 입고 방수카바로 배낭을 가렸습니다. 마지막 암릉 길을 걸어 깃발이 펄럭이는 삼성산 정수리에 섰습니다. 빗줄기는 더욱 드세졌고 안개가 시야를 가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데다 비를 맞은 바위가 미끄러워 예정했던 호압사 행을 포기하고 일단 삼막사로 내려섰습니다.


  17시50분 경인교대 정문에서 하루산행을 끝냈습니다.

안개가 에워싼 삼막사가 한껏 고즈넉해 보였고 단비를 맞은 나뭇잎들도 더욱 생기를 띠어 길 가의 연등에 불만 밝힌다면 석탄절을 기다릴 것 없이 당장이라도 부처님이 내달려 오실 것 같았습니다. 삼막사를 일별한 후 경인교대를 향해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산허리를 빙빙 도는 시멘트 길을 걷는 데는 땡볕보다는 차라리 비를 맞는 편이 낫겠다 싶어 내리는 빗줄기가 그리 밉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연이어 걸어놓은 연등을 보자 과연 부처님이 이 길로 오실까 궁금했습니다. 플래카드에는 이 길이 부처님 오시는 길이라고 적혀 있는데 정작 차를 타고 이 길을 다니는 분들은 스님이나 불신도등 그 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겠는 가 싶었고 또 부처님이 오시는 길은 이렇게 잘 포장된 차도가 아니고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는 산길이 아니겠는 가 싶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연등이 밝힐 길은 시내에서 절을 오르는 찻길이 아니고 산꼭대기에서 절을 잇는 산길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 50분이 후딱 지나 경인교대 정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의지의 시인 청마 유치환님은 이렇게 “바위”를 노래했습니다.


              바위

  

     내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트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디지털문명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이 시대의 중심에 서있지 못하고 언저리로 밀려나 속상해하는 사람들은 죽으면 두 쪽으로 깨트려도 소리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가 되어 제 자리를 지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럴 때 훌훌 털고 관악산을 오르면 모진세월에 끄떡도 않고 자리를 지켜온 바위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애련에도 물들지 않고 희로에도 움직이지 않는 의지의 바위들을 하루 종일 만나볼 수 있는 관악산을 널리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올립니다.  

 

 

                                                            <산행사진>

 

 

 

  

 

                                              관악산(1)


                          *산행일자: 2004. 5. 1일

                          *소재지  : 경기 과천/안양/서울

                          *산높이  : 관악산 628미터/삼성산 455미터

                          *산행코스: 사당동-연주대-불성사-삼성산-안양유원지입구

                          *산행시간: 9시18분-16시56분(7시간38분)

 


 

  저는 관악산에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집에서 2-3분이면 들머리에 들어 설 정도로 가까이 있는 관악산은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다른 산을 오를 수 없을 때 자주 찾는 산이기에 친근하기는 해도 제대로 산다운 산으로 대접해주지 못하고 종주한번 하지 않아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큰맘먹고 관악산과 삼성산을 이어 제대로 종주를 했습니다.

사당에서 출발하여 관악산에 오른 후  불성사를 거쳐 소공원까지 내려가, 다시 천진암을 지나 삼성산 정상을 밟은 후 안양유원지로 하산하기까지 7시간 반 동안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침 9시 18분 사당을 출발하여 오르는 중 몇몇 집에서 김밥과 떡, 사과와 맥주를 준비, 긴 시간의 먹거리를 마련했습니다. 남현동의 들머리를 지나 한참 후에 만난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목을 추긴 후 마당바위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10시30분 해발 390미터의 마당바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첫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관악산은 불의 산으로 일명 화성산으로도 불리 웁니다. 조선조 초기 개경에서 한성으로 천도할 때에 한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관악산의 화공을 제압하기 위하여 광화문에 해태를 세웠다 하니 관악산이 분명 악산 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난 3월 서울대 AFB 교우들과 함께 오를 때에는 산을 오르내리는 인파들로 마당바위가 꽉 찼는데 오늘은 노동절로 쉬는 날임에도  토요일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한적했습니다. 먼발치에 자리한 연녹색의 산봉우리들이 보기 좋아서 연신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11시33분 해발 628미터의 관악산 정상에 섰습니다.

바로 밑의 깔딱고개가 치받이 길이어서 10분 가까이 로프를 잡고 올라 정상에 섰습니다. 사당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는 그리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정상에 오르니 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기에  바로 연주대로 옮겨 맞은 편의 청계산을 조감한 후 하산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패망한 고려의 충신과 열사들이 신라시대 서기 677년에 세워진 여기 연주대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며 망해간 고려의 임금을 기렸다하니, 관악산의 연주대는 여말의 충신 조견이 오른 청계산의 망경대와 더불어 망국의 한을 품고 오늘까지 그 자리를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시 57분 효녕각을 조금 지나 긴 휴식을 취했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여서 나뭇잎이 볕을 가린 그늘을 찾아 두 다리를 뻗고 푹 쉬었습니다. 사과를 안주삼아 맥주 한 캔을 마셨는데 미덥지근하여 한 겨울의 맥주 맛이 아니었습니다.


  12시 20분 안양유원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산본에서 오셨다는 아낙네 네 분이 동행을 요청해 왔으나 삼성산도 올라야하기에 저 혼자 서둘러 내달렸습니다. 오늘은 능선의 바위 길을 피해 안전한 길로 트래파스를 해가면서 전진했습니다. 출발 30분 후 팔봉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을 지났습니다. 팔봉의 연봉을 타고 무너미재로 내려가 삼성산을 오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데 굳이 마다하고 안양의 소유원지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 삼성산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팔봉의 바위길을 피하고보다 안전하게 산행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육봉능선 초입에서 불성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3시 32분 불성사를 15분 가량 지난 길섶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오늘 산행에서 확인한 야생화는 애기나리입니다. 제가 쉬었던 자리에서 쉽게 찾은 야생화 애기나리는 여기 저기에 산재해 흰 꽃을 살며시 내보였고, 철쭉도 제철을 만난 듯 연분홍의 꽃들이 그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습니다.


  10분여 계속된 계곡의 물이 땅속으로 기어 들어간 건천을 보니 지난 여름 오른 백두산의 한천이 생각났습니다. 더불어 같이 오른 분들의 면면들이 떠올랐고 백두산 여기저기에 만개한 야생화들이 그리워졌습니다. 통일이 되면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을 다시 올라 백두대간을 제대로 타 볼 생각입니다. 백두산에서 가물가물 보이는 개마고원도 원 없이 밟아볼 생각입니다.


  14시14분 무너미고개로 갈라지는 갈림길 소공원을 지나 망월사로 향했습니다.

시원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편안해 오랜 시간을 걸었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지치면 내일 제암산-사자산-일림산 종주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어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할 생각은 없었기에 팔봉능선을 포기한 것입니다. 망월사를 조금 못 미쳐서 계곡을 벗어나 왼쪽으로 치켜 올라가 만난 능선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 들른 천진암의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친절하게 일러준 대로 능선을 타고 올라 삼성산에 다다랐습니다.


  15시30분 해발 455미터의 삼성산 정상에 섰습니다.

청계산과 백운산이 먼발치로 보였고 산본의 수리산이 가깝게 조망되었으며, 바로 밑에 자리잡은 삼막사가 반가웠기에 이 모두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곧바로 호압사로 방향을 정해 하산했습니다. 오늘처럼 배가 나와 당혹스럽기는 처음입니다. 바위틈바구니를 따라 내려가야 하기에 배낭을 먼저 내려놓고 틈바구니에 몸을 집어넣는데 불룩 나온 배가 걸려 집어넣을 수 없어 한참 당황했습니다. 숨을 들이마셔 억지로 배를 조금 집어넣은 후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제2 전망대를 거쳐 16시 32분 제1 전망대에 다다라 잠시 짐을 풀었습니다. 먼저 온 부부 한 쌍이 정자에서 두다리를 벌리고 자고 있어 쉴 자리가 거북해 바로 하산했습니다.


  16시 56분 유원지주차장에 다다라 확인해보니 하산길이 호압사 길이 아니고 안양유원지 길이었습니다. 삼성산 정상에서 지도를 꺼내 보지 않고 그냥 내려 온 것이 착오의 큰 원인이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확인을 하지 않으면 꼭 실수를 하게 됩니다. 시원한 맥주로 관악산-삼성산 종주를 무사히 마쳤음을 자축한 후 택시로 과천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오늘로 서울 근교 5대 명산 중 북한산과 청계산을 지난 4월에 마쳤고 5월 첫날 관악산을 올라 이제 도봉산과 수락산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이 두 산은 바위 길이어서 혼자 타기는 위험하기에 누군가와 함께 오르고자 합니다. 오늘 관악산과 삼성산을 이어 종주를 끝내고 나니 그 동안 가져왔던 관악산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씻을 수 있어 홀가분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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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관악산(E)

*산행일자:2009. 11. 28일(토)

*산행코스:구세군학교-연주사-연주대-헬기장-관음사-사당전철역

*동행 :경동고24회이규성/29회정병기 외 다수

(29기주선 24기회갑기념산행)                                  

관악산 (D)

 

*산행일자:2008. 1. 5일

*산행코스:공진청-육봉능선-불성사-방송탑아래고개

-케이블카 운행능선-구세군학교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 23기 정하선 동문등 총 15명

 

 

                                              

관악산(C)

*산행일자:2005. 3. 26일

*산행코스:과천-연주암-과천

*나홀로

관악산(B)

*산행일자:2005. 3. 6일

*산행코스:과천-연주암-과천

*나홀로

관악산(A)

*산행일자:2005. 2. 27일

*산행코스:사당동-연주암-과천

*동행 :서울대AFB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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