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53.방장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50

                                   방장산(2)


           *산행일자:2008. 6. 6일(금)

           *소재지  :전남장성/전북고창 및 정읍

           *산높이  :742m

           *산행코스:양고살재-벽오봉-방장산-장성갈재-연월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10시43분-18시18분(7시간35분)

           *동행    :나홀로

 


  영변의 약산을 온통 연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꽃도 요절한 서정시인 소월 김정식이 아니었다면 그 애절한 아름다움이 두 세대가 더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에 맨 먼저 봄의 화신을 전하는 목련꽃도 시인 김남조가 그 꽃 그늘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지 않았다면 소담한 꽃의 아름다움을 찬하는 목소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계 최대 여자대학교의 교화인 배꽃도 고려조의 시조시인 이조년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라고 그 아름다움을 시조로 남기지 않았다면 달콤한 과실을 맺는 이로운 꽃으로만 생각했지 달빛에 빛나는 고고한 꽃으로는 기억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이제껏 그 꽃을 탄상하는 언어의 조율사들이 있었기에 그 꽃 이름이 온전하게 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산 밖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자 목 놓아 시인을 기다리는 꽃나무를 보았습니다.

더러는 기다리다 진이 빠져 땅바닥으로 떨어진 꽃잎들도 보았습니다. 지리산,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 땅 삼신산의 한 산인 방장산을 오르내리며 만난 때죽나무에 정말 미안했던 것은 그토록 기다리는 시인을 모셔가지 못하고 저 혼자 올라서였습니다. 능선 길에 가득 깔린 때죽나무의 하얀 꽃잎들을 소월 선생이 친히 보았다면 연분홍 진달래에 바친 연정을 잠시 되찾아와 새하얀 때죽나무 꽃에 바쳤을 것입니다. 갈 봄 여름 없이 산에서 피는 꽃들을 노래하는 산유화라는 시를 발표해 단순히 4월의 진달래시인으로만 머무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소월선생이 이번에 저와 함께 방장산을 올랐다면 6월의 산유화인 때죽나무 꽃을 보고 틀림없이 이 꽃을 칭송하는 명시를 남겼을 것입니다.


  열매를 찧어 냇물에 풀면 에고사포닌이라는 독성분이 물고기들을 기절시켜 죽인다는 것은 예부터 전해오는 사실이지만 그래서 이 나무가 고기를 떼로 죽인다하여 때죽나무로 부른다는 일설은 떼와 때를 구분하지 못한 낭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나무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이름으로 스노우벨(snowbell)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나무는 그 별명에 걸맞게 꽃송이가 눈송이처럼 하얗습니다. 여기저기에 하얀 꽃을 피워 6월의 방장산을 환하게 밝힌 꽃나무는 때죽나무 말고도 산딸나무가 있습니다. 탐스럽게 커다란 그리 많지 않은 하얀 꽃송이들이 하늘을 향해 목을 쭉 빼고 활짝 웃고 있는 산딸나무가 이 산의 귀족나무라면, 잔가지 사이마다 아래를 향해 두 서너 송이씩 은방울 같은 꽃을 피우고 있는 때죽나무는 그 꽃송이가 헤일 수 없이 많고 또 산속 여기저기에 골고루 퍼져 있어 6월의 방장산이 회심작으로 내놓는 최고로 대중적인 꽃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을 기다리다 지쳐 떨어진 꽃송이들이 온 땅을 빈틈없이 덮고 있어 이 꽃잎들을 지려 밟지 않고서는 이 나무 그늘 아래 땅을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이니 아무리 바쁘게 살다간 소월선생이라 해도 이 꽃나무를 칭송하는 시 한수 남기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0시43분 양고살재에서 방장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호남정맥 종주 길에 들른 방장산(方丈山)은 전북 정읍과 고창 그리고 전남장성을 어우르는 명산입니다. 천안역에서 승차한 호남선 열차로 3시간 가까이 달려 10시경 백양사역에 도착했습니다. 20분 가까이 역사에서 머뭇대다 택시를 타고 양고살재로 이동했습니다. 전북고창과 전남장성을 경계 짓는 양고살재는 병자호란 때 청태종 누루하치의 조카인 양고리가 이 고장 박의 장군이 쏜 화살에 눈이 맞아 전사한 고개라 하는데 개전한지 두달도 못되어 일찌감치 조선임금의 항복을 받아낸 청태종이 무슨 이유로 이 멀리까지 청군을 진군시켜 조카(?)를 잃었는지 확인해 볼 뜻입니다. 양고살재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계단 길은 밀알탑에서 끝났습니다. 밀알탑에서 몇 분을 더 올라 다다른 방장사는 절애의 암벽을 뒤로 한 자그마한 절로 명산100산의 반열에 오른 방장산의 명성에는 훨씬 못 미쳤습니다. 방장사를 들러본 후 대나무 밭을 지나 배넘어재에 올라서서 왼쪽 벽오봉 쪽으로 향했습니다. 호남 땅에는 배와 관련된 전설이 살아있는 명산들이 몇 있습니다. 한국판 노아의 방주를 매달아 놓은 배맨바위의 조계산, 거북이 모양의 바위에 큰 배를 매어 놓았다는 배맨바위의 선운산, 그리고 큰 홍수로 물이 넘쳐 배가 산을 넘어갔다 하여 이름 붙여진 주월산이 그들 산입니다. 여기 배넘어재도 이들 산처럼 배에 관련된 유사한 전설이 깃들어 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11시41분 방장굴을 들렀습니다.

배넘어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오름길이 그리 급하지 않았고 명산답게 길도 넓고 고창군에서 등산로를 그려 넣은 안내판을 곳곳에 세워놓아 모처럼 느긋하게 산행했습니다. 갈미봉을 넘어 방문산에 오르기 얼마 전에 능선 길에서 오른 쪽 아래로 1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방장굴을 들렀습니다. 어느 극성스러운 사람들의 이름 석 자가 벽에 새겨진 동굴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아 도적떼들이 함께 은신하기로는 엄청 비좁을 것 같았습니다.


  방장산의 원래 이름은 방등산(方等山)이라 합니다.

굴 옆의 안내판에 적혀 있는 방등산가(方等山歌)는 고려사악지에 나오는 백제가요 5편 중 하나로 신라 말 도둑들에 잡혀간 장일현의 한 여인이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음을 원망한 노래라 하는데 이 동굴에 방등산가의 유래가 얽혀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가사가 전해지는 정읍사(井邑詞)와 어떤 내용인지만 알 수 있는 지리산가, 무등산가, 선운산가와 방등산가 등 5수가 전해지는 백제가요는 가사가 완벽하게 전해지는 25수의 신라의 향가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산을 넘어 실어 나르는 곡물을 약탈하는 도둑들이 소굴로 이용했던 이굴에서 병인박해를 피해 피난 온 천주교신자들이  기거하기도 했고 한국전쟁 때에는 빨치산들이 숨어 활약했다고 합니다. 도둑들이 들끓던 방등산(方等山)을 산이 넓고 커서 백성들을 감싸준다 하여 방장산(方丈山)으로 이름을 고쳐 부른 후에도 이 굴이 은신처로 쓰였다는 것은 결국 백성들이 먹고살만해진 뒤에야 비로소 이 굴이 그 쓸모를 잃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맞을 것입니다.


  12시3분 일명 벽오봉으로도 불리는 해발 640m의 방문산을 올랐습니다.

진회색의 줄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때죽나무의 새하얀 꽃들이 능선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잔가지에 다닥다닥 맺혀 있는 이 꽃은 그 송이가 아까시아 꽃을 많이 닮은 듯 했지만 꽃송이수가 십 수 배는 많아 아까시아 꽃보다 훨씬 화사해 보였습니다. 모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봉만 달랑 서있는 방문산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2-3분 거리의 억새봉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습니다. 바위 몇 개가 들어앉은 방문산과는 달리 경주의 커다란 봉분을 연상시키는 억새봉은 봉우리가 밋밋해 패러글리이딩 활공장으로 쓰이고 있어 방장산 최고의 전망지로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장성갈재를 출발한지 3시간40분만에 여기 억새봉에 다다랐다는 한 젊은 분으로 부터 주변 명소들을 설명 받았습니다. 서쪽의 고창읍과 고창읍성 및 북쪽 방향의 신림저수지와 중앙저수지는 선명하게 보였으나 날씨가 흐려 그 너머 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억새봉에서 북동쪽으로 10분을 걸어 내려가 2003년 12월에 휴양림관리사무소에서 걸어 올라온 시멘트임도 길을 만났습니다. 임도길 바로 위로 몇 분간 진행하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휴양림 대표수종인 편백나무숲속으로 들어섰습니다.


  13시23분 해발 743m의 방장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왼쪽으로 용추계곡 길이 갈리는 고창고개에 다다랐습니다. 고창고개에서 송전탑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중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불러들인 벌들이 내는 윙윙대는 소리가 이산을 지키는 텃새들이 조잘대는 소리에 맞먹을 만큼 크게 들렸습니다. 억새봉에서 만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 산 정상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이미 이 봉우리를 오른 터라 표지봉과 삼각점, 그리고 바위들이 모두 낯익었습니다. 정상에서 점심을 들면서 15분을 쉬었습니다. 북동쪽의 쓰리봉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시원스러웠고 중간에 자리한 암봉들이 이번 산행의 묘미를 더해줄 것 같았습니다. 양고살재에서 여기 정상까지는 대체로 육산으로 부드러운 산줄기가 이어졌다면, 정상에서 쓰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더러 더러 깎아지른 절벽이 오른 쪽에서 받쳐주고 있어 전혀 다른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안부 깊숙이 내려갔다가 암봉을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진초록 풀잎으로 뒤덮인 곧추선 거암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14시37분 695봉 바로 앞 낮은 봉에서 30분을 쉬었습니다.

헬기장 봉우리를 넘고 왼쪽 아래로 용추폭포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조금 올라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 무명봉에 올라서자 전망도 좋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을 벗어 내려놓았습니다.  장성갈재에서 구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20분여 내려가야 정읍 가는 버스가 들어오는 연월리 마을에 닿게 되는데 버스시간이 애매했습니다. 16시에 정읍을 출발해 30-40분 후에 연월리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려면 엄청 서둘러야 하고 그 다음 버스는 18시20분에 정읍을 출발해 시간이 너무 남는 상황에서 잠시 재어보다가 뒤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가져간 책 한권을 꺼내 읽었습니다. 어디서건 시간 죽이는 데는 책읽기가 최고이기에 산행할 때는 반드시 가벼운 책 한권을 챙겨 갑니다. 워낙 걸음이 느려 실제 산에서 책을 꺼내 읽을 만큼 시간여유가 있었던 적이 거의 없어 도 2005년 여름 대간을 종주할 때 한 번 읽은 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5시7분에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급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땅바닥을 덮은 때죽나무 꽃잎을 지려 밟고 비알 길을 올랐습니다. 이제 급할 것이 없다 싶어지자 발걸음이 더 느려졌고 걸음이 느려진 만큼 주변 산세와 꽃나무, 그리고 새소리가 정답게 다가왔습니다. 언제 보아도 산딸나무는 고귀해 보였습니다. 고개를 바짝 들어 절대로 나뭇잎에 가리는 일이 없는 산딸나무 꽃은 꽃송이나 나 나무그루 숫자는 때죽나무에는 턱없이 적지만 꽃잎이 넓고 큰 얼굴을 다 내보여 산 숲을 밝히는 일은 때죽나무에 지지 않을 것입니다.


  16시27분 해발734봉인 쓰리봉에 도착했습니다.

675봉(?)에 오르자 구름이 걷혀 남쪽 멀리로 무등산이 보였고 서쪽 아래 자리 잡은 달성저수지가 더욱 가깝게 보였습니다. 방장산 서쪽 사면에는 산허리를 에도는 임도 길이 꽤 길게 잘 나있어 개방되어 있다면 MTB코스로도 각광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반시간도 채 못 걸어 다다른 675봉(?)에서 다시 책을 꺼내 읽으며 20분을 쉰 후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름 길을 천천히 걸어 올랐습니다.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는 무명봉을 출발해 암릉길을 오르내리다 장성갈재를 1.8Km남겨 놓은 쓰리봉에 올라서자 스테인리스 표지봉이 서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나가 여기 쓰리봉으로 이어지는 2.2Km의 능선 길을 걸어 5-6개의 봉우리를 넘는 동안 오른 쪽 서쪽 사면이 가파른 능선 길 중간 중간에 암릉 길이 나타났고 허리에 치마를 두른 것 같은 적상산의 암벽 띠를 빼어 닮은   또 하나의 암벽대가 바로 앞 입암산(?)의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17시33분 1번 국도가 지나는 장성갈재로 내려섰습니다.

쓰리봉에서 조금 내려가 만난 묘지에서 표지기가 걸린 왼쪽 바위로 올라갔다가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똑바로 내려갔습니다. 하산 길에 물기가 있어 돌 가닥 내림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큰 돌로 축대를 쌓은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계속 내려가자 임도 길이 나타났고 이내 1번 국도로 내려섰습니다. 4-5시간이면 충분한 코스를 중간에 마냥 퍼져 쉬노라 7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조국통일기원비가 세워진 장성갈재에서 웃옷을 갈아입은 후 1번 국도를 따라 연월리로 내려갔습니다.


  18시18분 연월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장성갈재를 출발해 느티나무 거목 옆의 연월리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는데 반시간이 넘겨 걸렸습니다. 바로 옆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든 후 올해 76세의 주인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9시20분발 정읍행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나이 서른을 갓 넘어 남편을 사별하신 할머니께서 6남매를 혼자서 키워 시집장가를 다 보내고 이 마을에 홀로 남아 가게를 열며 살아가신다 했습니다. 인천과 서울에 산다는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는 것은 이렇다 하게 아는 친구들도 없는 도시에 갇혀 살기 싫어서라는 말씀을 듣자 1980년대에 교편을 잡고 있던 집사람을 대신해 손자 녀석들을 돌보시려 용인의 저희 집에 와계셨던  어머니께서 서울로 이사를 가면 당신은 시골로 돌아가시겠다고 막무가내로 버티신 것도 이 할머니와 같은 이유였겠다 싶었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혼자서 살아오신 할머니께서 8년 전에 사별한 제게 재혼하라고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보아 혼자서 자식 키우며 살아오기가 참으로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살기 힘들다고 유기하는 요즈음의 일부 어머니들과는 달리 홀로 자식 키우고 굳건하게 살아온 할머니나 자식 키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손자까지 도맡아 길러주신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나라의 전통적인 어머니 상일 것입니다. 방장산을 하얗게 밝힌 것이 때죽나무와 산딸나무의 흰 꽃들이라면 오늘까지 이 사회를 환하게 밝힌 분들은 우리 어머니들입니다. 새삼 이 분들이 즐겨 입으신 옥양목 치마저고리가 산 속의 흰 꽃들보다 더 하얗게 기억됐습니다. 

 

 

 

                                                      <산행사진>

 

 

 

  

 

 

 

 

 

                                        방장산(1)


                      *산행일자:2003.12.7일

                      *소재지  :전남 장성

                      *산높이  :743미터

                      *산행코스:휴양림 입구-벽오봉-방장산 정상-휴양림입구

                      *산행시간:10시55분-14시5분(3시간10분)


  어제  방장산을 다녀왔습니다.

방장산은 전북고창과 전남장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그 높이가 743미터여서 인근의 내장산(763미터)이나 백암산(741미터)과 겨룰 만하나 명성만은 그렇지 못한 듯 싶습니다.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까지는 대부분의 산들이  산불예방목적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어 산행지 선정이 쉽지 않은데 과천시 산악연맹의 방장산 산행은 집행진의 슬기어린 결정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의 하나일 뿐 만 아니라  내장산과 백암산을 찾는 산꾼들의 발걸음을 바꿔 놓기에 충분한 눈이 그제 이곳 방장산에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과천을 출발한 버스가 여명을 가르며 내 달음쳐 10시 50분 저희들을   전남 장성의 방장산휴양림에 내려놓았습니다.  그제 내린 눈이 온산을 하얗게 뒤덮었고, 바람에 조금씩 휘날리는 눈발이 첫눈을 맞는 저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잠시 짐을 추스린 후 10시 55분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11시 10분 들머리에 들어서 15분 여 산을 올랐으나 더 이상 길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선두그룹의 발자국을 따라 이름모를 봉우리를 끼고 돌기도 하고 치받이로 올라가기를 30분 여 계속하는 동안 산성의 잔해도 지나고, 선두에서 길 내느라 고생했을 산 죽 들을 헤치고 올라  간신히 능선 길을 찾았습니다. 


  11시 55분 수월리 분기점의 작은 봉우리에서 숨을 돌린 후 12시 정각에 벽오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2시 20분 패러글라이딩의 활공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벽오봉에 도착하기까지 모처럼 완만한 능선 길을 걸으며 편안한 산행을 즐겼습니다.  640 미터의 벽오봉 바로 밑에 자리잡은 전주 이공 지묘는 그 위치의 높이만큼 전주 이씨 일가가 효도로 이름높은 명가임을 전해주는 듯 싶었습니다.


  12시 25분 방장산 정상으로 향하는 미끄러운 길을 오르내리는 동안은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며 내려가는 아주머니들에 길을 빼앗겨 늦어지는 바람에 맨 후미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이젠 한짝이 풀어져 잃어버린 것도 모른 채 산행을 서둘러 13시 25분 743미터의 정상에 섰습니다. 북동쪽으로 멀리 내장산의 신선봉과 백암산의 상왕봉이 눈 안에 들어 왔고 남동방향으로 장성댐이, 북서방향으로 너른 들판과 작은 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장성갈재까지의 4키로 코스는 봉수대를 비롯하여 5개의 연봉이 줄이어 있어 종주하기에 딱 좋은데 출발지로 되돌아가기가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13시30분 정상을 출발하여 하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침엽수종인 편백나무 숲은 주왕산의 소나무 군에 비견될 만하게 푸르렀습니다. 잘 조림된 상록수인 편백의 가지가지에 걸쳐 있는 흰눈은 마치 학과 같이 청아하고 순백해 보였습니다.


  14시 5분 정상에서 더 나아가 734미터고지까지 다녀오느라 늦은 선두팀원들과 거의 같은 시각에 출발지로 되돌아 와 3시간 10분 동안의 방장산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어제의 산행은 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산행이었습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등산로가 정상으로 이어진다면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선현들의 말씀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은 곳에서 멈추지 않고 새 길을 내어가며 계속 올라 정상에 섰습니다. 그래서 더욱 땀을 많이 흘렸고, 또 뜻 깊은 산행이 되었습니다.


  시인 정호승님의 “길”을 올려 드리며 방장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길”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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