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54.강천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53

                                강천산(2) 

 

           *산행일자:2008. 3. 26일(수)

           *소재지  :전남담양/전북순창

           *산높이  :광덕산564m, 산성산598m, 강천산584m

           *산행코스:방축리금과동산-덕진봉-광덕산-시루봉-산성산-강천산

                          -522봉-오정자재

           *산행시간:6시48분-16시18분(9시간30분)

           *동행      :나홀로

 


  두주 전만 해도 썰렁하기 그지없던 호남정맥 산길에 물밀듯이 봄이 밀려왔습니다.

섭씨 100도 미만의 온도에서는 표면에서 증발만 일어나다가 100도가 되어야 속에서도 요동치며 펄펄 끓는 물처럼 봄도 내부적으로 쌓아온 에너지가 일정수준을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봅니다. 지난번에는 산행 중에 어떤 종류의 꽃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생강나무의 노랑꽃을 필두로 연분홍의 진달래, 진분홍의 매화, 하얀 색의 목련과 매화, 진적색의 동백과 노란 수꽃의 오리나무 등 이런 저런 나무 꽃들을 꽤 많이 만났습니다. 호남정맥 산길에 꽃을 피운 것은 나무뿐만 아니었습니다. 조금은 철이 이른 듯 연약하고 여려 보이는 연파란 색의 제비꽃(?)과 노란 양지꽃이 살그머니 봄을 열었습니다.


  올 봄에는 얌전하게 그냥 지나치나보다 했던 꽃샘추위가 산위에 봄꽃이 웬만큼 피었다 싶어서인지 어제는 어느 한 순간 호남정맥을 급습해 깜짝 쇼를 부렸습니다. 산성산 최고봉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인 후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시꺼먼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금방 캄캄해지고 곧이어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얼마 못 걸어 배낭과 겉옷이 모두 눈에 젖어 잠시 멈춰 서서 우의를 꺼내 입고 산행을 계속했는데 퍼붓는 함박눈이 안경을 가려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만 계속해 퍼붓는다면 눈 속에 새 길을 내며 산행을 해야 할 것 같아 처음에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아이젠을 빼 놓고는 웬만큼 눈이 와도 견뎌낼 만큼 겨울산행 준비물을 챙겨온 터라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폭설로 산행이 늦어지면 목적한 오정자재까지는 포기하고 중간에서 강천사로 하산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았습니다. 눈을 맞고 15분 남짓 걸어 내려가 북문에 도착하자 언제 그리했느냐는 듯이 눈발은 뚝 그쳤고 햇빛이 다시 났습니다.


  물려주고 물러남이 가장 뚜렷한 계절의 변화에도 이런 생 쇼가 벌어지는데 10년간 계속되어온 권력의 전이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 번 대선에서 패한 세력들은 입법권마저 내줄 수는 없다고 이번 총선에 전력투구할 것이고, 승리한 쪽에서는 입법권이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 생각하여 과반수 의석확보를 위해 사투를 벌일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두 세력 간의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가 이 나라의 근간을 흔들  겠지만, 선거법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정해 한판 붙는 것이기에 그리 걱정 안 해도 될 것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두 세력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얼굴색을 바꾸고 그들 간의 힘겨루기를 국회라는 점잖은 장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동토의 왕국 북한 땅에서는 선거라는 공정한 게임이 존재하지 않아 지난 60년간 이렇다 할 봄꽃을 피우지 못했기에 북녘 땅에는 저처럼 봄꽃을 찾아 산줄기를 종주하는 산 꾼들이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옛 시인 이상화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명시가 북한 땅에서는 지금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고자 자유롭게 정맥길 종주에 나설 수 있는 이 나라가 정말 자랑스럽고 이 산하가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산객이 분명 저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침6시48분 방축리 금과동산을 출발했습니다.

하룻밤을 묵은 담양에서 여기 순창의 금과까지 버스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종주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금과에서 내려 담양 쪽으로 5-6분을 되걸어가 담양의 금성면과 순창의 금과면을 경계 짓는 금과동산에 다다르자 오른 쪽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길 옆에 표지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마루금을 놓치지 않으려고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 산줄기를 따르고자 했으나 이내 길이 사라져 도저히 마루금을 온전하게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풀숲 길의 산줄기는 논밭개간으로 바로 끊겼고 다시 이어진 산줄기도 분명치 못해 난감해하다가 둔덕에 원두막 같은 것이 눈에 잡혔습니다. 먼저 지나간 한분의 산행기에 나오는 세심정이 저 곳이겠다 싶어 이미 끊겨 사라진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넓은 농로로 들어서 둔덕으로 올라서기까지 몇 번이고 논둑을 왔다갔다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연됐습니다.


  7시55분 해발 370m의 덕진봉을 올랐습니다.

둔덕 위의 정자는 과연 세심정이어서 이제는 길을 찾았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붉은 꽃과 하얀 꽃이 소담스러워 보이는 매화꽃이 저를 반겨 냉랭한 아침공기도 삽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철망을 넘고 갈아놓은 밭의 왼쪽 가를 지나 표지기가 걸린 산길로 들어서자 묘지가 나타나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만난 사거리에서 직진해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큰 길과 합류하기까지 3-4분 동안 길이 희미해 애를 먹었습니다. 큰길로 들어선 후로는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어 덕진봉에 오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금과동산에서 마을을 통과해 세심정 앞을 지나는 큰길로 계속 오르면 될 것을 가지고 잇지도 못한 마루금을 고집하다 반시간은 늦어졌습니다. 담양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음식점이 없어 준비해온 김밥으로 조반을 대신하느라 돌탑이 세워진 덕진봉에서 14분을 쉬었습니다. 오른쪽 사거리안부로 내려섰다가 뫼봉에 오르는 길에 생강나무와 오리나무(?)의 연두색 봄 색깔에 매료되어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기도 했습니다. 전망이 일품인 해발 332m의 뫼봉에 다다른 시각은 8시35분으로, 곧바로 내려섰다가 이내 그리 높지 않은 전망 좋은 봉우리에 올라 북서쪽의 광덕산과 산성산을 잇는 산줄기를 한껏 조망했습니다. 전망 봉에서 급경사 길로 내려서자 편안한 능선길이 몇 분간 이어졌는데 이 동안 힘을 비축해 된비알 길을 쉬지 않고 걸어 350봉에 올라선 시각이 정각 9시였습니다. 


  10시11분 해발564m의 광덕산에 올라섰습니다.

커다란 돌로 축대를 쌓은 묘지 바로 위에 간벌한 소나무 가지가 나뒹구는 350봉에 오르자 눈에 익은 표지기들이 한꺼번에 걸려 있어 반가웠습니다. 오른 쪽으로 급하게 내려섰다가 삼각점이 서있는 262.9봉을 넘어 경사가 완만한 길을 따라 사거리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쪽으로 광덕산을 휘감아 도는 꽤 넓은 비포장차도가 보였고 왼쪽으로 예림복지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해발고도 200m대의 안부에서 광덕산을 오르는 길이 이번 산행 최고의 깔딱 길이었습니다. 비포장차도를 3번을 건너 흉물스런 절개면 앞에 서기까지 진이 좀 빠졌는데 정작 된 고비는 여기서 부터였습니다. 절개면을 올라서서 광덕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반시간 동안 수직으로 고도를 200m넘게 높이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절개면을 비스듬히 오르다가 경사가 60-70도는 됨직한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 다다른 암봉 밑에서 거암을 에돌아 능선에 올라서니 헬기장방향에서 올라오는 주홍색 철제계단이 바로 아래 놓여있었습니다. 왼쪽아래 예림복지원과 문암제 저수지를 조망한 후 오른쪽 암릉 길을 잠시 로프를 잡고 올라 광덕산 정상에 올라서자 2년 전에 걸었던 산성산-강천산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와 비를 쪼록 맞고 한 산행이 새롭게 기억났습니다.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인 광덕산에서 15분간 푹 쉰 후 앞서 본 주홍색 철제계단으로 되돌아가 헬기장으로 내려섰습니다. 헬기장에서 오른 쪽 길은 선녀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었고 정맥 길은 맞은 편 봉우리를 오르는 똑바른 길이었습니다. 헬기장을 출발해서 그 45분 후인 11시22분에 시루봉아래 철 계단에 다다르기까지 봉우리를 몇 개 넘는 동안 노란 꽃을 활짝 피운 생강나무도 만나보았고, 또 몇 곳의 전망바위에서 시루봉과 왼쪽아래 시골 논 정경을 카메라에 실기도 했습니다. 


  12시16분 산성산 최고봉인 해발 598m의 연대봉에 다다랐습니다.

철 계단을 올라 바로 밑에서 치올려본 시루봉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엄청 큰 바위여서 오르기가 쉽지 않겠다했는데 밑으로 에돌아 산성 능선에 올라서자 길이 나있어 오를 만했습니다. 산성산의 첫 봉우리인 해발515m의 시루봉에 오르자 덕진봉에서 밟아온 마루금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왼쪽 아래로 금성산성의 망루가 보이는 동문을 지나 산성 길 위에 곧추선 해발585m의 운대봉을 오른 것은 시루봉 출발 23분 후였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산성 길에서 조금 더 올라 이 산 최고봉에 올랐는데 정상석이나 삼각점 등 정상을 알려줄 만한 어떤 표지물도 없어 갈라진 목제 표지판이 놓여있었던 두 해전에 이 봉우리를 오르지 않았다면 과연 상봉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루봉에서 싸락눈이 한두 번 떨어지다가 말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연대봉을 뜨자마자 함박눈이 쏟아져 잠시 긴장했습니다. 북문에 다다르자 눈발이 그쳤고 하늘이 열려 서쪽의 추월산과 그 아래 그림 같은 담양호가 그 전모를 드러내 다음 산행이 기대됐습니다. 서쪽 아래로 산성이 이어지는 북문에서 점심을 들은 후 12시54분에 자리를 떴습니다.


  14시12분 해발 584m의 강천산을 올랐습니다.

북문에서 강천산으로 가는 길은 이미 한 번 밟은 터라 한 번도 쉬지 않고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490봉 두 봉을 왼쪽으로 연이어 에돌아 내달리는 중 산 중턱 길에서 식사를 하시는 노인 두 분을 만나 인사를 드렸는데 이 분들이 이번 산행에서 만난 분들 전부였습니다. 480봉을 에돌아 안부로 내려섰다가 형제봉 삼거리로 올라서는 중 속 털만 샛노란 새를 카메라에 담아보고자 몇 번을 시도했지만 계속 자리를 옮기며 날아다니는 통에 단 한 커트도 찍지 못했습니다. 형제봉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강천산으로 오르는 길은 넓고 편했습니다. 정맥에서 길이 갈리는 왕자봉삼거리에서 동쪽으로 200m를 옮겨 강천산을 오르자 오전에 올랐던 광덕산이 계곡 건너 남쪽으로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광덕산에서 계곡을 끼고 시계방향으로 “ㄷ”자를 그리며 강천산에 올라서기까지 4시간 가깝게 걸어온 산줄기를 빙 한번 휘둘러보면서 10분을 쉰 후 왕자봉삼거리로 되돌아가 정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15시29분 522봉에 올랐습니다.

되돌아온 삼거리에서 3-4분 거리인 병풍바위 갈림길까지는 잘 닦인 공원길이었고, 그 다음부터는 전혀 손이 가지 않은 정맥 길이어서 길 찾기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520봉을 가볍게 넘어 급하게 내려가 오른 쪽으로 외양제 저수지가 보이고 왼쪽으로 임도 길이 흐릿한 사거리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안부에서 삼각점이 세워진 522봉에 올라서는 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고됐습니다. 직등 길을 힘들게 올라 다 왔다 했는데 522봉은 그 뒤에 서 있었습니다. 전망 좋은 봉우리의 북쪽 사면이 까까 비탈 암벽 길이어서 가는 줄을 잡고 에돌아 조심해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가 522봉에 올라서 삼각점은 확인했지만 전망은 앞서 올라선 봉우리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앞으로 1시간 남짓이면 오정자재에 충분히 닿을 것이고, 16시40분에 순창을 출발하는 정읍 행 버스가 이 고개를 지나는 시각이 대략 17시 경이어서 시간은 충분하겠다 싶어 남은 커피를 마시며 10분을 쉬었습니다.


  16시18분 오정자재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522봉에서 내려서 오정자재로 향하는 중 오른 쪽으로 송전탑이 보여 혹시나 길이 아닌 가  해서 들러 확인하느라 7-8분을 까먹었습니다. 정맥 길은 그 아래 보이는 송전탑을 지나 곧바로 왼쪽으로 꺾여 밤나무 농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농원에서 능선 길에 출입을 금하는 경고판 2개와 철선을 쳐 놓아 내림 길이 엄청 불편했습니다. 오정자재에 내려서기까지 수없이 이리저리 철선을 넘나들며 짜증을 냈던 것은 길은 어느 길이든 그 공공성 때문에 여암 신경준 선생의 말씀처럼 걷는 사람이 임자가 되어야하는데 이 산길에서는 막는 사람이 임자노릇을 하고 있어서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오정자재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79세의 연노하신 할아버지 한 분과 같이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말씀을 나뉘면서 저 나이가 되어서도 할아버지처럼 정정하려면 이제껏 해온 산행을 쉬지 않고 이어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17시5분경 버스에 올라 다음 산행의 목적지인 천치재를 지나는데 10분 남짓 걸렸습니다. 순창 땅 복흥을 지나고 내장산의 추령을 넘어 정읍에 도착한 것이 18시10분경이었으니 순창 출발 시간 반이 지난 셈입니다. 19시발 강남행 고속버스에 올라 다음 산행을 머리에 그리는 동안 눈이 지그시 감겼습니다.


  두 주후의 다음 산행에서는 더 분명한 봄을 만날 것입니다.

그 때쯤이면 겨울은 완전히 사라지고 봄이 이 땅을 확실하게 점할 것입니다. 중간에 작은 곡절은 있어도 때가 되면 저절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에서 우리는 이 자연의 로고스를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 됩니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도 이와 같아야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개인의 생로병사와 국가의 흥망성쇠가 변화의 근간이라면 몹쓸 망나니들이 지배하는 국가가 빨리 무너지는 것이 인간세상의 로고스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강천산(1)


                  *산행일자:2006. 7. 9일

                  *소재지  :전북 순창                 

                  *산높이  :584미터

                  *산행코스:101번도로-금성산성-산성산-강천산-793번도로

                  *산행시간:11시35분-18시9분(6시간34분)

 


 

  올 들어 처음으로 한반도 남단에 태풍이 상륙할 것 같다는 일기예보로 많은 분들이 산 나들이를 포기해 잠실벌 아침이 조용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롯테호텔의 너구리상 앞길에 즐비하게 주차한 버스들로 시끌벅적했는데 어제는 주차한 차량이 몇 대 되지 않아 한가했으며 제가 따라다니는 산악회에서도 두 대의 버스를 한 대로 줄여 운행했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꽤 많은 산악회가 성원이 안 되어 계획했던 산행을 취소했을 터인데 이 산악회만은 약속대로 전북 순창의 강천산으로 명산순례에 나서 믿음이 갔습니다. 지난 3월 점봉산을 오르고자 몇몇 산악회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으나 금요일 오전에 버스가 차지 않아 떠날 수 없다며 산행취소를 통보해와 낙담한 일이 두 번이나 있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한반도를 찾는 태풍도 믿음이 가고 고맙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태풍이 계속해서 한반도를 비껴간다면, 그래서 수 년 동안 한번도 이 땅을 지나지 않는다면 심각한 강수부족에 직면할 것입니다. 육지의 물은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데 바닷물을 육지로 끌어올리는 수단이 오직 따뜻한 기단과 찬 기단이 만나 전선을 형성해 내리는 일상적인 비나 눈에 국한된다면 유출량과 유입량간의 불균형으로 물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계속될 수 없을 것입니다. 태풍의 피해를 줄이고자 발생초기에 인공강우로 바다에 비를 뿌리도록 만들어 육지로 상륙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에도 그리하지 않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물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가공할 사태가 더 두려워서일 것입니다. 태풍이 바다에서 껴안고 오는 그 많은 물을 바닷물을 담수해 얻고자 한다면  이에 드는 비용과 에너지가 엄청날 것이기에 말입니다.


 

  11시35분 금성산성 안내판이 세워진 101번도로에서 하차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호남정맥 종주팀을 전남 담양의 24번도로가 지나는 금과고개에 내려놓고 십 수분을 더 달려 금성리 삼거리에서 하차하자 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은 한껏 찌푸렸지만 고속도로운행 중 세차게 뿌렸던 빗줄기가 멈추어 산행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걸어 매표소를 지나고 왼쪽으로 동자암가는 길이 분명하게 나있는 고개마루를 넘고 주차장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저만치 앞서가는 선두를 불러 세워 진행을 잠시 멈추고 점검한 결과 길을 잘 못 든 것을 알고 나서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 풀숲을 헤치고 산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산행시작 약 반시간이 지나서 고개마루에서 동자암으로 이어지는 임도상의 넓은 공터를 만나 제 길로 들어섰습니다.


 

  12시47분 금성산성의 내남문 망루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넓은 임도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선 것이 12시15분이었고 이 시간 즈음해서 잠시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뿌린 것 말고는 산행 중 더 이상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외남문을 지나 내남문의 망루에 올라서자 서쪽으로 담양호가 일부 보였는데 지난 4월에 추월산에서 하산 길에 내려다 본 담양호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처럼 댐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없었고 저녁 햇살을 받아 반사하는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래도 망루에서 바라다보는 산과 호수가 빚어낸  정경은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산자락을 가득 메운 운무가 바람에 쫓겨 산등성이로 올라설 때의 날렵한 움직임에 눈을 주고 나면 마치 제가 신선이 된 것 같아 이를 수묵화로 그려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사진 찍기로 달랬습니다.


 

  13시16분 반시간 가량의 휴식을 끝내고 산성탐방에 나섰습니다.

동자승들이 어디론가 나들이 길에 나섰는지 텅 빈 동자암을 잠시 들러 본 후  시루봉을 왼쪽으로 옆 질러 동문에 다다르기 까지 27분이 걸렸습니다. 동문에서 북문까지 40분간 산성 위를 걸으며 이 산성이 참으로 아담하고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움푹 내려앉은 분지를 끼고 도는 능선을 따라 성을 쌓은 포고식 석성의 금성산성은 외성의 길이가 6.5키로로 그리 큰 규모가 아니어서 아담할 뿐만 아니라 외성에 붙여 전장 859미터의 내성을 쌓은 이중석성이어서 더욱 견고해 보였습니다. 고려 말 우왕 때 축성되었다는 금성산성이 6백년 넘는 세월을 견뎌오면서 소실과 개축을 반복하며 이제껏 지켜낸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천혜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놔두고 해발 500미터대의 이 높은 산속으로 올라와 백성들이 살았을 리가 만무하다면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이곳에 올라와 항전했듯이 외적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위란에 처했을 때 성안으로 들어와 필사항전을 벌이지 않았겠나 싶었습니다. 최근 들어 동학혁명과 6.25 전쟁 중 소실된 성을 개축한 것은 관광객을 늘리는 것만 아니라 이 나라의 안위 및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 등 이제껏 이 성이 지켜낸 가치들을 길이 기리고자 함인데 며칠 전 북한에서 쏘아댄 미사일과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시3분 해발 603미터의 산성산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커다란 암봉인 운대봉을 왼쪽으로 옆 지른 후 얼마고 더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585봉을 지나자 산성산 정상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정상인 연대봉에 올랐어도 산자락들을 가득 메운 운무로 시계는 거의 제로 상태였지만 여름 산의 진수가 이런 것이다 싶어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오른 쪽의 광덕산과 왼쪽의 강천산이 모두 5백미터대의 산들이어서 최고봉은 분명 여기 산성산인데 반반한 표지석 하나 없이 두개로 쪼개진 표지판이 돌무더기 위에 놓여 있어 이 두 판을 잇대어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면서 조금은 씁쓰레했습니다. 정상에서 북문으로 내려서는 중 오른쪽으로 구장군 폭포로 내려서는 길이 나있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120미터의 높이를 두 줄기의 폭포가 나란히 떨어져 볼만하다는 강천산 최고의 폭포인 구왕산 폭포를 들러보지 못하고 마한시대 때 아홉 장군이 이 폭포에서 자결할 뜻을 접고 죽기로 항전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설만을 되씹었습니다. 네 곳의 문 가운데 성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북문은 문루는 사라져 없었어도 주초석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이 성의 아담하고 견고함을 그대로 볼 수 있었으며  왼쪽 산 밑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은 담양호와 중턱에 걸쳐있는 구름에 가려 하반신만 내보여준 건너편의 추월산과 잘 어우러져 한동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15시26분 강천산 정상인 해발 584미터의 왕자봉에 올라섰습니다.

서문 못 미쳐 북문에서 내남문으로 돌아가는 산성 길과 헤어지고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북문에서 산성탐방을 끝내고 산길로 내려서 북진을 계속하다가 495봉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확 틀었습니다. 저희 명산 팀보다 5-6키로를 더 뛰는 호남정맥 종주팀이 뒤따르고 있어 어느 때보다 느긋했기에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인 형제봉삼거리 안부에서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연 이틀 맥주를 들이마셔 다른 때보다 힘들었지만 북문에서 왕자봉에 오르기까지 산길이 비교적 평탄해서 견딜 만 했습니다. 왕자봉삼거리에서 4분을 더 걸어 강천산 정상봉인 왕자봉에 다다르자 산성산과 광덕산도 끼지 못한 산림청 지정 명산100산에 이름을 들인 산답게 매끈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어 배낭을 옆에 세워 놓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왕자봉을 출발하여 반시간 남짓 가파른 길을 내려와 현수교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6시40분 해발425미터의 삼선대에 올라 팔각정에서 쉬었습니다.

현수교 삼거리에서 삼선대까지 거리는 0.6키로에 불과하지만 고도가 170미터가량 차이 날 정도로 된비알의 오름길이어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일행분이 가져온 참외를 까먹으며 쉬었는데도 삼선대로 오르는 길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팔각정에서 13분을 쉬면서 먼저 온 일행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중 척추디스크 수술을 받아 산행이 조심스럽다는 한분은 젊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저와 나이가 같았고  40대의 또 한분은 띠 동갑임을 알았습니다.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현수교와 낙차 큰 폭포가 비경이었고 광덕산을 거쳐 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부드럽게 보였습니다. 강천사에서 출발하여 광덕산과 산성산을 들러본 다음 강천산까지 능선 길을 종주한 후 현수교로 내려가 강천사에서 마감 짓는 원점회귀산행도 해볼 만 코스겠다 싶었습니다. 삼선대에서 하산하여 비룡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75미터의 현수교를 건너 다시 삼거리로 돌아오기까지 1시간10분이 걸렸습니다.


 

  17시50분 병풍폭포를 지났습니다.

현수교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서자 모래를 깔아놓은 큰길을 만났습니다. 적우재골, 분통골과 지석골 등 수 많은 골짜기의 물을 받아 넓은 계곡을 이룬 강천천을 끼고 돌며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아 주마간산 격으로 빨리 지나쳤어도 눈동자가 바빴습니다. 계곡류가 잠시 숨을 돌려 쉬어가는 아담한 소들이 눈을 끌었고 높은 바위에서 내리 떨어지는 유난히 많은 폭포들도 훌륭한 볼거리였습니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강천사를 거쳐 극락교를 지나면서 극락세계가 다리 이쪽인지 저 쪽인지 궁금했습니다.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시장기가 느껴지는 이번만은 저녁밥을 빚어 놓고 저를 기다리는 다리 건너 저쪽이 극락처럼 여겨졌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는데 어찌해 소가 신통치 않을까 궁금했는데 귀성길 옆자리의 한 분이 그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병풍폭포도 인공폭포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흉내 내어 폭포를 만들었어도 오랜 세월을 함께 만들 수는 없었기에 폭포는 있으되 폭포수를 담아내는 소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8시9분 주차장에서 한참 더 가 793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명산팀의 후미인 제가 산행을 마치기 직전에 호남정맥 종주팀에서 후미를 맡으신 한 분을 만나 5-6분을 함께 걸었습니다. 저보다 연배이신 이 분께서 이번산행에서 처음으로 GPS를 사용하셨다고 뿌듯해 하시는 것을 보고 지난 해 11월 며느리로부터 GPS를 선물 받고 어떻게 쓸 줄을 몰라 집에다 쳐 박아둔 제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GPS뿐만 아닙니다. 결혼 후 10년이 다 되어 전화를 놓았고 운전면허도 마흔이 훨씬 넘어 받았으며 인터넷을 시작한지도 불과 5년밖에 안되어 이제껏 문명의 이기를 제 때에 받아들인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럴바 에는 제게 어울리는 닉네임을 새로 정해보는 것도 뜻있겠다 싶어 내년부터는 “시인마뇽”으로 바꿔볼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제 뜻과는 달리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은 최고의 승용차를 탐하는 사람처럼 보여 한 번은 바꿔야겠다고 벼르는 중 학생시절에 불렸던 원시인 크로마뇽의 축어인 시인마뇽이 떠올랐습니다. 이 별명 또한 시를 쓰는 작가로 오해될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디지털 대양에 빠져 허덕이면서 아나로그적 가치를 애지중지하며 붙잡고 있는 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별명이다 싶어 벌써부터 애착이 갔습니다.


 

  쌍치고개(?)를 넘으며 귀가 길 버스 안에서 내다본 산풍경이 절묘했습니다.

석양빛을 받아가며 해넘이를 지켜보는 산줄기들이 첩첩산중을 이루어 강원도의 대간을 넘나드는 것 같았습니다. 밤하늘의 한 가운데서 빛을 내는 꽉 찬 달이 저와 함께 부지런히 서울로 내달려 밤 10시 50분 쯤 해서 잠실에서 헤어졌습니다. 제3호 태풍 에위니아가 산행을 포기한 많은 분들에 비를 뿌린 것은 산행을 마친 하루 후였기에 속이 좀 쓰렸다면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를 맹신해 무턱대고 예약을 취소한 업보려니 생각하는 것이 속을 달래는 길이다 싶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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