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55.소요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1. 3. 00:55

                                        소요산 (2)

 

               *산행일자:2007. 4. 7일

               *소재지  :경기 동두천/포천

               *산높이  :587미터

               *산행코스:주차장-공주봉-의상대-하백운-자재암-주차장

               *산행시간:9시38분-15시22분(5시간44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총6명     

                (21이두성, 24이규성/우명길, 27송기훈, 29정병기/유한준)

 


  신라의 서라벌을 출발해서 몇 날 몇 밤이 지나서야 이 산에 당도했을 요석공주가 다시 환생했다면 엄청 부러워했을 전철을 타고 소요산을 찾았습니다. 이 시대의 교통총아 전철이 작년 12월에 소요산역까지 연장 개통된 후 1호선 전철이 반시간 간격으로 운행해 의정부역에서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경원선 열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몇 배 편해졌습니다.  어제 고교동문들과 더불어 이 산을 오른 것도 그동안 교통이 불편해 소원했던 경기북부지역의 소요산이 전철개통으로 접근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천수백년 전에도 지금처럼 경주에서 소요산이 KTX와 전철로 연결되었다면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을 데리고 수시로 이 산을 찾아와 원효대사를 만나고 돌아갔을 터이고, 원효대사 또한 자주 요석공주와 사랑을 나눌 수 있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범인들의 속된 생각일 뿐입니다.  세속의 연을 과감히 끊고 소요산으로 숨어 든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의 잦은 출현이 엄청 불편했을 것이고 천리 길 멀다 않고 달려왔을 요석공주는 눈길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먼발치서 바라다만 보다 서라벌로 되돌아가야해 매몰찬 원효대사가 많이 야속했을 것입니다.


  아침9시28분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산림청 직원들이 토요일인데도 쉬지 않고 이 산 입구에서 산불예방캠페인을 벌이고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기꺼이 서명했습니다. 산림청이 내년부터 우리나라산들을 새롭게 분류하고 등급을 매겨 관리하겠다는 기사를 읽고 난 후 그 후속조치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환경단체들은 대간과 정맥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백두대간과 9정맥을 국가지정등산로로 정해 직접 관리하겠다는 산림청의 정책에 치열하게 반대하고 있어 모처럼 대간 길 전 구간을 합법적으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날려버리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됩니다. 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을 환경파괴범으로 보는 환경단체들의 몰이해에 답답해하는 저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소요산 도립공원 측의 입장료징수였습니다. 올 들어 국립공원은 통행료 징수를 아예 없앴는데 도립공원은 여전히 받고 있고 같은 도립공원끼리도 그 금액이 크게 달라 혼란스러웠습니다. 지난 달 충남의 대둔산은 500원을 내고 올랐는데 여기 소요산은 그 4배인 2,000원을 내야 입장이 가능하니 초과분 1,500원은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러브스토리를 전해 듣는 값이라고 생각해야 속이 덜 쓰릴 것 같았습니다.


  9시58분 속리교를 건너 공주봉으로 향했습니다.

원효대사가 세상을 등지고자 건너간 이 다리가 속리교로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면,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만나지 못하고 눈물지며 돌아온 이 다리는 옥루교라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비연의 러브스토리에 자주 등장하는 다리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공원측이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세워놓지 않은 속리교를 건넜습니다. 계곡길을 버리고 오른 쪽의 희미한 산길을 오르다가 왼쪽으로 꺾어 계곡 옆 옛날 절터였던 공터에 다다라 잠시 의자에 앉아 쉬었습니다. 나무계단 길을 올라 큰 규모의 너덜겅이 바로 앞에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오름길은 오른 쪽으로 가파르게 이어졌습니다. 이 곳에서 본격적인 산 오름이 시작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두성선배께서 후미로 쳐졌지만 이번 산행은 원점회귀산행에다 중간에 능선 길에서 출발지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여러 곳 나있어 지난 번 한북천마지맥의 주금산을 종주할 때처럼 초조하거나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11시4분 해발526미터의 공주봉을 올랐습니다.

가파른 산등성을 올라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조금 더 가 천애의 절벽 끝에 소나무가 서있는 전망바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의상대와 나한봉을 조망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공주봉에 오르는 길에 시들음병에 걸린 참나무들을 베어내서 토막을 낸 후 숨어있는 벌레를 훈증해 죽이고자 비닐로 감싸 밀봉한  나무토막 뭉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사람만 포악해지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벌레들도 참 독해진다 싶었습니다. 신라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가 이곳 소요산 아래 별궁에서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올라가 원효대사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배를 올렸다는 공주봉에 올랐어도 요석공주의 애절한 사연을 감지할 수 없는 것은 공주봉 꼭대기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미리 올라와 진을 치고 있어서였습니다.


  11시53분 해발587미터의 뾰족한 암봉인 의상대에 올랐습니다.

공주봉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의상대와 상백운대를 거쳐 하백운대에 이르기까지 노송과 기암이 빚어낸 절경과 함께 해 암릉 길을 오르내려도 힘이 드는 줄 모르는 아기자기한 코스입니다.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옛 절터로 내려가는 안부로 내려섰다가 급경사의 나무계단 길을 따라 소요산 최고봉인 의상대에 올라서자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는 원효대가 어느 곳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원효대사라면 당연히 가장 험하고 높은 곳을 골라 올라 수도를 했으리라는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해 유추해보면 이 봉우리가 틀림없겠는데 의상대로 불리는 것은 혹시 대사께서 같이 유학길에 올랐다가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서로 가는 길을 달리했던 의상대사에 봉우리 이름을 빌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가 흐려 전망은 별로였지만 서쪽으로 빤히 보이는 공주봉에서 예불을 드리는 요석공주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12시47분 정감 있는 점심시간을 끝내고 칼바위로 향했습니다.

의상대에서 얼마고 내려섰다가 철계단을 따라 나한봉을 올랐습니다. 높이는 방금 전에 지나 온 의상대에 16m 못 미치지만 정상부가 비교적 평평한데다 노송이 자리하고 있어 오랜 시간 머무르며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 나한이 되는 데는 의상대보다 나을 것 같았습니다. 나한봉에서 조금 내려와 동행한 동문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유한준 동문이 정성들여 준비해온 음식들로 김밥만 달랑 사온 저도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칼바위 0.5Km 전방의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기묘하게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뿌리를 박고 있는 칼바위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칼바위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은 국사봉과 왕방산을 거쳐 의정부의 축석고개에서 한북정맥과 합류하는 한북천보지맥으로 이 산악회에서 한번은 종주할 지맥이기에 눈여겨보아 두었습니다.


  13시36분 상백운대를 조금 지나 만난 묘지에서 15분 남짓 쉬었습니다.

찌푸린 하늘을 뚫고 태양이 햇빛을 비춰주어 모처럼 등 뒤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뒤쳐진 한분을 기다렸다가 함께 하백운대로 출발했습니다. 백운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산 이름입니다. “한국의 산하”에 나오는 백운산만도 대간 길의 백운산을 비롯해 9개에 이르는데 여기 소요산의 상백운대, 중백운대 및 하백운대와 북한산의 백운대, 그리고 용문산의 백운봉 등 “백운패미리”들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 땅에 유독 흰 구름의 백운산이 많은 것은 우리 조상들께서 산을 두 다리로 오르기보다는 두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530봉에서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중백운대에 다다르자 왼쪽 사면을 직벽의 암벽이 받쳐주는 암반과 고송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사진 몇 커트를 찍었습니다.


  14시50분 자재암에 도착했습니다.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하백운대에서 청량폭포의 물소리가 시원한 자재암으로 내려서는데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속리교에서 공주봉으로 오르는 길보다 훨씬 경사가 급한 된비알 길이어서 이번 산행을 힘들어하는 몇 분들에는 이 길을 하산코스로 택하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산 길 중간에 전망바위에서 조망한 암봉들과 깊숙한 계곡이 잘 어울려보였고 만개한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들이 향기가 없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지는 못했어도 그 자태만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큼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봉우리가 높지 않고 계곡을 둘러 싼 능선 길도 그리 길지 않아 거산의 위용은 느낄 수 없었지만 깎아지른 암벽과 그 위의 고송들, 그리고 깊숙한 계곡과 폭포 등이 볼만했습니다. 자재암에 내려서자 소원성취를 비는 분들로 경내가 붐볐으며 나한전 옆에 자리한 청량폭포의 물소리는 여전히 청량했습니다.


  15시22분 산행시작 거의 6시간 만에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원점회귀 산행을 마쳤습니다.

역으로 가는 길에 간이음식점을 들러 간단하게 뒤풀이를 한 후 전철에 올랐습니다. 정병기 후배님이 금남정맥 종주를 축하한다며 과천의 한 호프집에다 또 다른 뒤풀이를 마련해줘 마지막 2%의 알콜을 보충한 후 하루 일정을 끝냈습니다.


   혈압이 높아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도 끝까지 완주한 이 두성 선배님과 지맥종주 때의 고전을 상당히 극복한 송기훈 후배님의 적극적인 동참이 고마웠고, 이번 산행을 주선한 이규성 회장과 부인과 함께 맛깔스런 음식을 준비한 유한준 후배, 금남정맥 단독 종주를 외롭지 않게 해준 정병기 후배님도 고마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연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어 문학적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 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에도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산행사진>

 

 

 

  • 자운영 2007.04.10 00:16 답글 삭제
  • 전철로 소요산을 갈수있다는 소식을 알고 바로 갔으니 지난 1월 초순이였습니다
    마뇽님과 꼭 같은 코스로 다녀왔는데 한번을 가봐야 할것 같은 산이였습니다
    어느 부분은 좋기도 하고 어느부분은 실망하기도 한 그런 산행이였나 봅니다
    아직은 산의 색갈이 변하지 않아 그때와 같아 보이는군요
    그때도 식사할집이 마땅치 않아 역근처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시인마뇽님 산행기 읽고 다시 한번 다녀온듯 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시인마뇽 2007.04.10 09:36 수정 답글 삭제
  • 대학다닐 때 하이맛친구와 다녀온 후 37년후인 작년 가을에 다녀왔습니다. 고교동문산악회장으로 선출된 하이맛 친구가 주도해 이번에는 전철로 다녀왔습니다. 전철과 전설이 만나는 곳이 소요산일 듯 싶습니다. 그래서 자주 들를 것 같습니다. 언제고 산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릎조심하시고 안산하시기 바랍니다.
  •  

     

     

                                                   소요산 (1)

     

                    *산행일자:2006. 10. 7일

                    *소재지  :경기 동두천

                    *산높이  :의상대 587미터

                    *산행코스:관리사무소-자재암-하백운대-상백운대-의상대-공주봉-관리사무소

                    *산행시간:9시35분-14시39분(5시간4분)

     


     

      신라의 고승 원효는 과연 대사였습니다.

    암릉 길의 이 산 능선을 소요하듯이 가볍게 거닐었다면, 그래서 이 산을 소요산으로 명명했다면 이제는 길이 잘난 도립공원의 소요산을 지금도 헉헉대며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고승 원효 스님이 축지법이라도 씀직 싶어 영락없이 대사로 보일 것입니다. 소요란 마음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거나 산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그가 뜰을 거닐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하여 소요학파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소요는 천천히 가까운 곳을 산책하는 것이지 결코 숨을 헐떡거리며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원효대사가 해발 6백미터가 다되는 높고도 험준한 바위산을 소요산으로 이름진 것은 대사인 그에게는 이 산 정도는 소요하듯 오르내릴 수 있어서일 것입니다.


     

      어제는 37년 만에 소요산을 올랐습니다.

    닐 암스트롱이 지구의 위성 달에 첫발을 내디딘 1969년에 고교동창과 둘이서 소요산을 처음 올랐는데 기억나는 점은 바위 길을 통과하기가 무서웠고 단풍이 깨끗하고 화사했다는 것입니다. 요 몇 년 동안 연천의 고대산을 오르느라 경원선 열차로 소요산 역을 지나면서 다시 한번 소요산을 오르자고 별러오다가 추석연휴를 맞아 다른 산을 다 제쳐놓고 이산으로 달려왔습니다. 한수 이북인 고향 땅 파주에서 그리 멀지 않는 동두천에 자리한 소요산은 도립공원이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명산으로 노송과 기암의 고봉, 깎아지른 절애의 절벽과 화려한 단풍으로 잘 알려진 경기도의 소금강입니다.


     

      아침9시35분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본에서 의정부는 전철로, 의정부에서 소요산까지는 버스로 이동하여 국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을 걸어 관리사무소 앞 안내판에 당도했습니다. 안내판에는 시간 반 코스에서 4시간 코스까지 모두 5개의 등로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 하-중-상백운대를 모두 오르고 칼바위 암릉길을 지나 나한봉에 이른 다음 소요산 최고봉인 의상대에 올랐다가 서진하여 공주봉을 들른 후 관리사무소로 되돌아오는 8.2키로의 가장 긴 등로를 골라 오르기로 하고 관리사무소를 출발했습니다. 7-8분을 걸어 다다른 매표소에서 입장료 2천원을 내면서 1천6백원하는 국립공원 북한산보다 25%가 비싼 도립공원 소요산이 과연 그 값을 해줄지 궁금해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일주문을 거쳐 10시 정각에 속리교 돌다리를 건너 사바세계를 벗어났습니다. 수험생들의 공통된 염원을 담고 있는 연등이 자가암 앞뜰에 수 백 개가 걸려있어 형형색색의 그 화사함이 아직은 철 이른 단풍을 대신해 이산을 밝혔습니다. 산 깊이를 더해주는 독경소리, 목탁소리, 그리고 크지 않은 계곡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가을의 산소리를 들려주고 미풍이 살랑거려 산사의 아침이 삽상했습니다.

     

      10시47분 해발440미터의 하백운대에서 짐을 풀고 쉬었습니다.

    자아암에서 하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된비알의 직등길이어서 산오름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름 길의 반 정도는 주상절리의 아주 작은 바위들이 30도로 등을 눕혀 디딤돌을 만들어 주었고 나머지 반의 얼마큼은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힘은 들었지만 안전했습니다. 중간의 전망바위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나한봉과 원효봉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산오름을 계속해 돌무덤이 서있는 하백운대에 올랐습니다. 차안에서 집에서 들머리까지의 긴 시간을 죽이기 위해 가져온 책을 꺼내 읽으며 20분 여 푹 쉬었습니다. 왼쪽으로는 등로가 폐쇄되었고 반대방향인 동쪽으로 10분 남짓 올라 바위와 소나무가 쉼터를 이룬 중백운대에 다다랐습니다. 중백운대에서 조금 더 올라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북쪽으로는 감투봉을 지나 이시랑고개로 이어지는 길이 나있고 상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남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11시40분 해발 559미터의 상백운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바로 1.2키로 떨어진 나한대로 향했습니다. 칼바위로 이름 붙여진 암릉 길을 타는 것이 아슬아슬하면서도 그 재미가 오붓했습니다. 왼쪽 남동쪽으로 재작년 겨울에 오른 국사봉이 분명하게 보여 왕방산-국사봉-소요산을 잇는 선의 산행을 조만간 해보겠다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상백운대 출발 25분 후 오른 쪽 아래로 선녀탕가는 길이 갈리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나한봉에 이르는 0.5키로는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은 가파른 오름 길이어서 20분이 걸렸습니다. 암봉 정상이 공터로 된 해발571미터의 나한봉에 올라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지나온 능선 길의 실루엣이 더할 수 없이 곱게 보였습니다. 땡볕을 가릴 그늘이 없어 나한봉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철계단을 지나 의상대로 옮겼습니다.


     

      12시40분 소요산 정상인 해발 587미터의 의상대에 올라섰습니다.

    사방을 휘둘러보자 동쪽의 왕방산과 국사봉, 서쪽의 감악산은 분명하게 보였고 북쪽의 고대산과 남쪽의 도봉산은 위치만 어림짐작될 뿐 산의 실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먼 산을 응시한 눈길을 바로 아래 자가암으로 돌리자 소요산의 계곡이 깊기도 하려니와 절애의 암봉들이 우뚝 솟아있어 과장에 능한 문사들이 이 산을 경기의 소금강으로 부르고도 남았겠다 싶었습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지 않아 푸르름이 가시지 않았지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을 골짜기 골짜기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의상대에서 조금 내려와 그늘에서 쉬면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조카가 해준 떡을 들면서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도 제게 산에서 들라고 떡을 손수 만들어 챙겨준 일이 있어서였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이 아름다운 만큼 고통도 따르나봅니다. 사랑하면 헤어질까 두렵고 미워지면 만날까 두려운 것이 사람들의 상정인바 애증의 감정을 갖지 말라는 어느 고승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제 누구를 새로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짐스러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초혼은 사랑의 열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재혼은 대다수가 사랑보다는 객관적인 조건을 먼저 따져 맺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새삼 그분의 건강이 궁금했습니다. 생각은 다부진데 몸은 생각만큼 다부지지 못해서입니다.


     

      13시12분 1.1키로 떨어진 공주봉을 향해 의상대를 출발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암릉 길이 위험할 듯싶어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0.3키로 남겨둔 안부까지 능선을 옆 지르는 우회길이 나있어 편안했습니다. 왼쪽 사면아래 미군 부대가 들어앉았는데 하산 길로도 위험할 정도로 경사면이 엄청 급해 보였습니다. 의상대 출발 15분후에 다다른 안부에서 15분을 더 걸어 공주봉에 올라서는 길은 비탈길로 가팔랐습니다.


     

      13시42분 해발525미터의 공주봉에 올랐습니다.

    목판을 이어서 넓은 이착륙장을 만든 헬기장이 독특했습니다. 헬기장 바로 옆에 아마햄과 같이 쓰는 안테나가 세워져 있었고 동두천 시내가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였습니다.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 산에 온 요석공주는 원효봉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는 원효대사를 그리며 예배를 올렸다 하는데 그 봉우리가 바로 공주봉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하백운대에서 반원을 그리며 진행한 능선산행은 공주봉에서 끝내고 오른쪽으로 확 꺾어 속리교로 하산하는 중 전망바위를 들러 상백운대와 의상봉을 잇는 주능선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너덜지대 옆으로 난 돌길을 걸어 구 절터로 내려서자 평상복 차림의 몇 분들이 편히 쉬고 있어 날머리가 멀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14시39분 관리사무소로 되돌아와 5시간 남짓한 원점회귀산행을 마쳤습니다.

    20분전에 속리교를 건너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오면서 다리 한쪽은 속리교로 건너편에는 환속교로 써 붙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은 속된 세상을 영원히 등질 뜻이 없어 이 다리를 건너 사바세계로 환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주문을 막 지나 약수로 페트병 2통을 채운 후 부지런히 관리사무소로 되돌아갔습니다. 주 능선에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서있는 하백운대-상백운대-의상대-공주봉의 고봉들이 원의 중심에 위치한 자가암을 온전하게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 안심하고 소요산을 떠났습니다. 


     

      어귀적어귀적 옷자락을 날리며 이산을 느긋하게 거닐었을 원효대사가 앞뜰을 소요하는 서양의 소요학파를 뛰어넘는 것은 바로 그의 파계를 부른 휴머니즘일 것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휴머니스트인 예수그리스도와는 달리 요석공주와 결혼해 설총을 아들로 둔 원효대사의 휴머니즘이 범인인 제게는 보다 가깝게 느껴집니다. 37년만의 소요산 나들이가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휴머니즘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 기뻤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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