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2)
*산행일자:2007. 9. 20일
*소재지 :충남예산
*산높이 :495m
*산행코스:둔리1리 팔각정-덕숭산-수덕사-주차장
*산행시간:14시50분-18시38분(3시간40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충남의 명찰 수덕사가 자리한 예산의 덕숭산을 올랐습니다.
꽤나 긴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면서 새삼 느낀 점은 같은 거리라면 교통수단별로 소요시간에 반비례해 요금을 책정한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업무상 떠나는 출장이라면 당연 요금이 좀 비싸더라도 가장 빠른 것을 골라 타야겠지만 그리 급할 것이 없는 산 나들이에 번번이 보다 빠른 고급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slow and steady)"를 본질로 하는 산 나들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비용도 부담스러워 저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열차 무궁화호로 오르고자 하는 산과 가까운 도시로 이동해서 그 지역 군내버스를 이용해 산 들머리에 닿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이른 새벽 집을 나서기가 일쑤이고 종종 전날 밤에 떠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컴퓨터에 익숙지 못한 제 경우 인터넷에 들어가 필요한 교통관련 자료들을 검색해내는 데도 적지 아니 시간이 걸립니다. 이래저래 드는 그 많은 시간에 비례해 비용이 계산된다면 매달 두 차례 2박3일로 다녀오는 호남정맥종주를 꾸준히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곧바로 돈으로 환산되는 바쁜 분들은 좀 비싸더라도 빠른 교통편을 이용하고 저처럼 시간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좀 늦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소요시간에 반비례하는 요금 덕분입니다.
어제 오른 덕숭산은 작년 5월 금북정맥을 종주 할 때 지났던 산입니다.
가야산 아래 나분들 고개를 출발해 덕숭산을 오른 후 수덕고개로 내려서는 데 길을 잘 못 들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다시 덕숭산을 찾은 것은 이 산보다 더 이름이 알려진 수덕사를 둘러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산줄기만을 오르내리는 선의 산행만으로는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덕숭산이 명산 100산의 반열에 이름이 오른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는데 어제 둔리1리 궁마을 입구에서 369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정혜사를 들렀다가 계곡아래 수덕사에 다다라 경내를 둘러보는 점의 산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이 절을 만나 당대 명승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절을 품고 있는 덕숭산을 명산으로 부른다고 어느 누구도 감히 시비를 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 시간이 걸리는 백제시대로의 시간여행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공간여행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반비례하는 요금체계 덕분이라는 뚱딴지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시 넘어 산본 집을 출발해 전철로 천안까지 간 다음 터미널로 옮겨 12시반경에 예산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겠다는 시외버스가 14시가 다 되어 예산에 도착한 것은 천안-아산 사이의 도로가 교통사고로 한동안 길이 막혔기 때문이었는데 곧이어 14시에 수덕사행 버스가 출발해 다행이었습니다. 삽교를 거쳐 덕산에 이르자 덕숭산이 용봉산 및 가야산과 더불어 아주 가까이 보였습니다.
14시50분 둔리1리 팔각정을 출발했습니다.
궁마을로 들어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누런 벼들을 보고 가을이 완연하다 했는데 벌써 이 들판을 떠나버린 여름이 깜박 잊고 두고 간 것이라도 있는지 다시 돌아와 내리쬐는 햇볕에 목덜미가 후끈거렸습니다. 콸콸 물이 흐르는 수로를 따라 마을을 막 지나자 공사장이 나타났고 이 공사장에서 길이 잘 나있는 왼쪽으로 꺾어 들어선 것이 반시간이상 엉뚱한 길에서 헤매게 된 단초였습니다. 풀들을 다 깎아 시원한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서 별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집 한 채를 지나는 중 별안간 여러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어 깜짝 놀랐습니다. 이내 묘지가 나타났고 오른 쪽 위로 이어지는 길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다른 묘지가 나타났는데 길은 다시 마을로 내려서는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혹시라도 능선으로 올라서는 제 길이 있을까해 몇 곳을 숲 속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길이 없어 첫 번째 묘지로 돌아가다가 중간에 오른 쪽 위로 희미한 길이 보여 이 길로 올라섰는데 이 길 또한 또 다른 묘지에서 끝나버려 헛걸음만 계속했습니다.
15시40분 세 번째 만난 묘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천안과 예산에서 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버스가 연결되어 점심을 거른 채 반시간 넘게 이 길 저 길을 찾아 헤맸더니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준비해간 떡을 꺼내 들어 요기를 하고나자 이제는 길 찾을 일이 난감했습니다. 묘수가 나오지 않아 별 수 없이 머리 위로 빤히 보이는 봉우리까지 풀 숲길을 헤치고 나가기로 작정하고 가시들과 쐬기의 공격을 막고자 상의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무지막지한 오름 길은 계속 되었습니다. 비옷이 통풍을 막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간벌 후 버려진 나무들과 잡목들이 길을 막아 20분 남짓한 산 오름이 엄청 고통스러웠습니다. 덕을 숭상하는 덕숭산(德崇山)도 깝죽대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제게는 손톱만치도 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16시14분에 오른 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넓은 제 길을 제 길을 찾은 후 왼쪽으로 4-5분을 더 걸어올라 묘지가 들어선 무명봉의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사과를 들며 12분 동안 땀을 식혔습니다. 무명봉에서 조금 내려가다 이내 돌계단을 따라 걸어 395봉에 올라서자 시야가 확 트여 좌우로 용봉산과 가야산이, 바로 앞에 정상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정상을 오르는 중 벌초를 하고 내려가는 한 분을 만나 정상 길을 물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본 후 건너고 아는 길도 물어가는 신중함이 있었다면 생 풀 숲길을 죽기 살기로 헤치고 길을 내는 못난 짓은 아니 했을 것을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빤한 길을 물었더니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17시6분 해발495m의 덕숭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395봉을 출발해 평탄한 솔밭 길을 잠시 걸은 후 완만한 비알 길을 올라 밋밋한 암반의 정상에 다다르자 현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목은 나뒹굴고 있었지만 해발고도를 알려주는 표지석은 제 위치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표지석보다 더욱 반가운 것은 정남쪽 오서산에서 천안 쪽으로 뻗어 올라가는 장대한 금북정맥의 산줄기였습니다. 작년에 이 산에 올랐을 때는 저 산줄기를 미쳐 밟기 전이어서 금북정맥이 한눈에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작년 여름에 진땀을 흘리며 이미 오르내린 터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남서쪽으로 바다가 흐릿하게 보였고 용봉산과 홍성시내도, 가야산과 이 산 너머 먼발치로 비껴선 서산 시내도 눈에 잡혔습니다. 하늘은 영락없는 여름의 형세를 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먹구름 사이로 하얀 뭉게구름이 얼굴을 빠끔히 내보이곤 했습니다. 덕숭산은 그 정상이 하도 밋밋해 홍주마을의 수덕도령이 건너 마을 덕숭낭자와 어렵사리 연을 맺었다는 애절한 전설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나분들 방향으로 몇 분을 걸어 만난 철조망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나무계단으로 내려섰습니다.
18시10분 수덕사에 도착해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정상 출발 25분 후에 정혜사를 들러 수덕사 일원으로 들어섰습니다. 누가 이 깊은 산 중에 이리 넓은 채소밭을 일구는 가 궁금했는데 바로 아래 정혜사가 자리하고 있어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경내로 들어서자 과연 명 선원이다 싶었습니다. 넓은 경내에 정적이 감돌아 숨소리를 크게 내기도 민망스러울 정도인 정혜사 능인선원은 앞이 탁 트인 데다 절 마당이 꽤 넓었으며 마당 거의 끝머리 바위 위에 올려 있는 두 개의 탑이 몇 그루의 큰 나무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어 선원 전체가 밝으면서도 평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 근대불교를 개창한 경허 스님이 무던히도 아꼈던 제자 만공스님을 기리는 만공탑을 지나서 직접 바위를 깎고 다듬어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미륵불의 조금은 익살스러워 보이는 용안을 만나 보았습니다. 만공스님이 선을 하셨다는 금선대 바위 중간쯤에 자리한 초가집 소림초당은 정진중이라서 출입이 금해져 바로 앞 이뭐꼬 다리에서 잠시 멈춰 서서 태풍으로 물이 불어난 계곡물이 낭떠러지를 지나며 만든 바로 위 폭포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정혜사에서 시작된 돌계단 길을 계속 내려가 관음바위 옆을 지나 수덕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대웅전은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같이 기둥의 중앙부가 가늘 게 보이는 착시현상을 막고자 밑동에서 1/3이 되는 점을 굵게 하는 배흘림 공법으로 지어졌다 합니다. 대웅전 바로 앞의 수덕사 3층 석탑과 탑 꼭대기를 금분으로 바른 금강보탑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나이차보다 훨씬 더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대웅전의 안녕을 비는 데는 그 역할이 같아 서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천왕을 만나본 후 일주문을 지나면서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느꼈던 여유로움을 수덕사 가람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비좁게 들어선 건축물 때문일 것입니다.
18시30분 수덕사 주차장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며 덕숭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일주문을 빠져나가 얼마 후 만난 상가는 1978년 1월에 집사람과 함께 찾았던 그 때와는 영 딴 판이어서 번화가로 변했습니다. 둘 다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저희들은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은 겨울방학을 그냥 보내기가 아까워 수덕산과 대천해수욕장을 찾아 나섰습니다만 첫날부터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려 일엽보살님이 머무셨다는 수덕사는 들러보지도 않고 그 앞의 허름한 여관에서 죽치고 앉아 한수산님의 소설집 부평초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 그 이튿날 대천 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긴 기억이 났습니다. 어둠이 나래를 폈는데도 번화한 상가 몇 점포가 불을 켜지 않아 아직도 관광경기가 제대로 살아난 것은 아니다 했습니다.
정상을 올라선 후에도 초반에 길을 잘 못 드는 해프닝이 없었다면 참으로 싱겁고 단조로운 산행이 될 뻔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혜사를 시작으로 일주문을 빠져나오기까지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수덕사 일원을 둘러보고 나자 덕숭산도 이만하면 명산100산에 들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능선을 종주하는 선의 산행만으로 명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역시 2%가 부족했던 가 봅니다. 그 부족한 2%를 점의 산행으로 채우고 나자 가슴이 뿌듯해져 역시 명산탐방에는 점의 산행이 제 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댓글(2)
- 시인마뇽
- 2007.09.27 10:31
- 거사께서 시간만 난다면 한수 이북에 참 좋은 산 많습니다. 매월 첫주 토요일과 셋째 주 일요일은 경동동문산악회의 길 안내를 맡고 있고, 주 중에 월 2회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은 비슷한 가 봅니다. 수덕사 대웅전 앞이 좀 답답하다 했는데 말입니다. 거사께서 세속의 범사에 관심을 가지시면 누가 거사님을 무심으로 불러드릴런지요?
요즈음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산행 중 어떻게 나무나 산새들처럼 산식구가 될 수 있는가입니다. 산과 내가 한몸이 되었을 때 다른 산식구들과도 다투지 않고 또 멧돼지도 벗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산 생각이 나시면 전화바랍니다. 시인이 거사를 모시리다.
덕숭산 (1)
*산행일자:2006. 5. 24일
*소재지 :충남예산/홍성
*산높이 :453미터
*산행코스:나분들고개-덕숭산-육괴정-홍동산-까치고개
*산행시간:10시17분-17시19분(7시간2분)
몇 번이고 계속된 알바로 넋이 나가 이번 종주산행의 목적지인 신성역까지 반 거리도 안 되는 까치고개에서 하루산행을 접었습니다. 나분들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덕숭산에 올랐다가 육괴정으로 내려가는 길을 잘 못 들어 한 시간 이상을 헤맸고, 홍동산을 조금 지나 산불로 시꺼멓게 그른 죽어 있는 소나무 밭의 잡목 숲을 헤쳐 나가며 제 길을 찾느라 20분은 지체되었으며, 까치고개 전방 약 1키로 지점에서 엉뚱하게 왼쪽 능선 길로 빠져 또 한 시간 가깝게 까먹었습니다. 총 7시간 산행 중 최소한 2시간 넘게 알바로 헤매어 까치고개에 이르자 심신이 많이 지쳤고 자신감도 잃어버려 더 이상 정맥 길을 이어가다가는 사고라도 날 것 같아 그 곳에서 중단하고 홍성읍으로 옮겼습니다. 사소한 부주의로 한번 된 알바를 경험하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갈림길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선답자의 산행기를 잘 못 읽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 또 다른 알바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어제는 늦잠으로 시작부터 삐걱댔습니다.
아침 6시 반에 남부터미널을 출발하는 해미행 첫차를 포기하고 7시40분 발 다음 버스시간에 대느라 사당에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해미에서 9시55분발 덕산행 버스를 타고 가다 나분들고개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했는데 첫차를 탔을 때보다 시간 반은 늦은 셈이어서 목적지를 아홉골고개에서 신성역으로 짧게 고쳐 잡았습니다.
아침10시17분 나분들고개의 도로공사장에서 공사 중인 도로를 건너 절개면 오른 쪽 끝에서 덕숭산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조금 후 표지리봉들이 여러 개 걸려있는 곳에서 스틱을 꺼내느라 잠시 멈춰서는 동안 지난번에 산행을 마치고 맥주를 마시며 쉬었던 길 건너편의 음식점이 눈에 들어오자 막 돌이 지난 그 집 외손녀아기의 사진을 집에 두고 왔음이 생각났습니다. 아기를 돌보는 할머니에 사진을 보내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고자 사진을 빼 놓고도 갖고 오지를 못해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죄송했습니다. 낙엽송들이 들어선 숲을 빠져 나오자 왼쪽 사면은 나무들이 베어져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벌목지를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길 양옆으로 둥굴레가 군락을 이루어 땅 바닥이 원통 초록색이었습니다.
10시59분 전망바위에 오르자 목덜미를 내리 찌는 햇볕이 따갑게 느껴져 목에 두를 것을 찾는 중 집 떠날 때 아기사진만이 아니고 손수건도 두고 왔음을 알게 되어 하나하나 리스트를 만들어 챙겨야 할 정도로 기억력이 감퇴했나 싶어 씁쓰레했습니다. 얼마 후 철조망을 비껴 들어가 안에 서있는 경고판을 보고나서 제가 이제껏 걸어온 길이 무단출입 시 50만원의 벌금을 내야하는 출입금지구역임을 알았습니다. 오른 쪽 산 밑에 자리 잡은 수덕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고 나서는 정상까지 길이 더욱 넓어졌습니다. 수덕사는 1978년 1월 집사람과 함께 들른 곳으로 줄기차게 비가 퍼부어 이 산에도 올라오지 못하고 꼼짝 없이 여관에 갇혀 하루해를 보낸 기억이 났습니다.
11시19분 해발495미터의 덕숭산에 올랐습니다.
몇 개의 바위들이 자리 잡은 정상에는 눈을 가릴 나무들이 없어 시야가 탁 트였지만 지난 번에 생고생한 가야산 정상은 그리 멀지 않은데도 아주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의 하나인 덕숭산의 명소는 수덕사일진데 들러보지 못하고 정맥길을 이어가야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표지석 옆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잘 못 판단해 북동쪽으로 내려섰다 바로 올라와 남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육괴정으로 향하기까지 정상에서 15분을 머물렀습니다.
12시57분 1시간이 훨씬 넘는 첫 번째 알바를 끝내고 삼거리에서 제 길로 들어섰습니다.
정상에서 8-9분을 내려와 11시40분 조금 넘어 이 삼거리를 지났는데 누군가가 죽은 소나무가지로 왼쪽의 육괴정 가는 길을 막아 놓아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갈림길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는 선답자의 산행기에 신경을 써가며 천천히 하산하다 샘터가 있는 사거리를 만났는데 한 길은 암자로 가는 길로 출입을 금해 놓아 이곳이 선답자가 지적한 삼거리로 알고 왼쪽 길을 택해 더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내려서자 산행기에 적힌 대로 묘지 2기가 나왔고 바로 삼거리가 나타나 제 길로 내려왔다고 안도하고 왼쪽 길로 들어서 얼마고 걷자 왼쪽 가까이에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여 불안했습니다. 곧 이어 계곡을 건너게 되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아채고 정상방향으로 되올라가자고 마음을 먹고 고도계를 보니 197미터로 나타났습니다. 묘지로 돌아와 7-8분을 쉰 후 12시19분에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약수터를 지나 얼마고 올라가자 오른 쪽으로 난 희미한 길이 보였고 소나무가지가 입구를 막고 있었습니다. 제 길이다 싶어 이 길로 들어서 조금 내려가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여 뛸 듯이 기뻤습니다.
13시30분 일명 수덕고개로 불리는 육괴정의 정자나무아래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갈림길에서 육괴정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도 가파르고 좁았지만 곳곳에 표지기가 달려있어 길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를 헛갈리게 했던 묘지를 막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드는 곳이 이 길에도 있었습니다. 넓은 바위지대를 내려서 철조망을 넘어 육괴정에 도착했습니다. 40번 국도가 지나는 육괴정에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 거목들이 그늘을 만들었고, 저는 그 아래 설치한 벤치에 걸터앉아 점심을 들고 난 후 맥주 1캔을 사들며 알바로 지친 심신을 달랬습니다. 잰 걸음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나분들고개-육괴정 구간을 지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려 이번 산행을 신성역에서 29번 국도가 지나는 하고개에서 마치기로 하고 20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13시50분에 홍동산으로 향했습니다.
14시47분 죽은 소나무 몇 그루가 여기 저기 서있는 해발 309미터의 홍동산을 올랐습니다. 육괴정을 출발해 임간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만난 산소 옆길로 들면서 250봉에 올라서기까지 7-8분간 급한 오름길이 계속되었습니다. 250봉에서 290봉을 거쳐 홍동산에 이르는 산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길도 좋아 오전의 알바를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막상 홍동산에 올라서자 표지기가 여러 개 걸려있다는 것 말고는 이 봉우리가 정상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전망도 사진을 남길 만큼 신통치 못해 선채로 잠시 숨을 돌린 후 내쳐 10분가량 내달리자 산불로 타다 남은 시꺼먼 소나무들의 고사목 밭이 시작됐습니다. 지리산의 고사목 또한 산불로 그리됐다는데 오랜 세월의 치료를 받아서인지 고풍스럽게 보였는데 이곳의 고사목은 불에 탄 잔흔이 그대로 남아 있어 흉물스러웠습니다.
15시36분 고사목 밭을 완전히 빠져나와 십자안부를 지났습니다.
약 40분전에 고사목 밭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왼쪽 아래로 아담한 저수지가 보여 황량한 느낌을 덜었는데 조금 더 진행하자 고사목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고 소나무가 울창한 다른 곳과는 달리 제 멋대로 자라 난 잡목들이 길을 덮었으며 중간 중간에 흙모래가 길을 끊어 놓아 제 길을 이어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에 나타난 대로 190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전진하며 좀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다시 지형을 관찰하고 발걸음을 떼어놓느라 신경도 많이 쓰였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었지만 결정적인 알바는 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16시14분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 선 것이 또 한번의 큰 알바를 가져온 실수였습니다. 십자안부에서 125봉으로 올라선 다음 산길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흙길에 그늘이 잘 지고 경사가 거의 없는 평평한 편한 길이어서 마음껏 속도를 냈습니다. 외길이어서 산행기를 접어둔 채 내달리다가 아주 흐릿한 삼거리를 만나 혹시나 해서 다시 보았더니 왼쪽 길로 가야할 것 같았습니다. 4-5분을 내려가도 표지리봉이 보이지 않아 잘 못 들어섰다 싶어 다시 원위치를 한 다음 나침판을 꺼내 방향을 잡아보니 제 방향이 분명한 듯싶어 다시 그 길로 내려섰습니다. 얼마 후 만난 묘지에서 산행기에는 오른 쪽으로 틀도록 되어 있으나 그 방향으로는 길이 나있지 않아 예감이 안 좋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진행했습니다. 한참 후 시멘트 길로 내려서 지도를 보니 까치고개가 아님 중리마을이었습니다. 다시 원위치할 엄두가 나지 않아 용봉산을 바라보며 시멘트길을 따라 가다가 아스팔트길을 만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개마루로 향했습니다.
16시53분 아스팔트 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5분가량 더 걸어 까치고개에 다다랐습니다. 2시간이면 충분해 어둡기 전에 하오고개에 다다를 수 있겠지만 몇 번의 알바로 더 이상 산행을 진행시키기가 무리일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멈추고 대신에 빼먹은 정맥 길을 제대로 잇겠다고 마음먹고 삼거리 갈림길로 향했습니다.
17시6분 노랑표지기가 2개 달린 삼거리로 되돌아왔습니다.
이 삼거리는 산행기에 나와 있는 삼거리와 관계없는 갈림길로 어쩌다가 가끔씩 동네사람들이나 지나다녔을 법한 흐릿한 샛길을 가지고 제가 법석을 떨었습니다. 종합해보면 안부사거리에서 오른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이어지는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난 다음 묘 2기가 나옵니다. 이 묘에서 오른 쪽길로 들어서면 홍성쓰레기소각장 철망을 만나게 되고 이 철망을 따라 얼마큼 걷다가 큰 길로 내려서 진행하면 바로 까치고개에 다다르게 되는 것을 산행기를 잘 못 읽어 엉뚱한 곳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바람에 생고생을 한 셈입니다.
17시19분 고개쉼터 음식점이 들어선 까치고개로 되돌아와 7시간 동안의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마침 이 음식점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한 젊은이가 고맙게도 자기 차를 타라고 해 홍성역까지 쉽게 이동했습니다. 홍성읍에서 노선버스가 닿지 않는 까치고개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다음에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출발하는 용산행 열차에 몸을 실고 알바로 얼룩진 하루산행을 되새겼습니다. 녹음이 우거져 시야가 막히는 한 여름에는 알바가 더 잦아 질 수도 있겠다 싶어 이제껏 미루어 온 GPS 사용법 배우기를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편으로는 이번처럼 긴 시간 알바만 아니면 지도와 산행기를 갖고 하는 아날로그식 종주산행이 더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이글을 썼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지런한 논 뜰을 막 이식이 끝난 앙증맞은 모들이 연녹색으로 바꿔가는 것을 보고 이번의 알바도 저 모가 매년 치르는 자리 옮기기와 같은 생명행위이다 싶었고 이러한 아날로그식 생명행위는 어떤 디지털도 대신 할 수 없을 것이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알바기록을 상세히 남겼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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