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2005.2.20일
*소재지 :경북문경
*산높이 :1,077미터
*산행코스:안생달-작은차갓재-황장산-황장재-폐맥이재-벌재
*산행시간:10시5분-15시37분(5시간32분)
영국의 서정시인 에이츠의 "술노래(A Drinking Song)"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Wine comes in at the mouth
님은 눈으로 들어온다.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그렇습니다.
“모든 인력은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님은 눈으로 들어온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칙에 따르면 가까이 있을수록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서양의 명구가 가슴에 와 닿는 것도 님은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산은 어디로 들어올까 자문해봅니다.
산은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올라보지 못한 높은 산줄기를 보노라면 가슴이 먼저 뜁니다. 백두대간을, 한북정맥을 ,또 미답의 고산을 오를 때면 전날 밤부터 뛰는 가슴으로 잠을 설치기 일 수입니다. 산은 가슴으로 들어오기에 산객 중에 가슴이 따뜻하고 어진 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저는 에이츠의 “술노래”를 이렇게 이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산은 가슴으로 들어온다. And mountain comes in at the heart
어제는 뛰는 가슴을 안고 송백산악회를 따라 백두대간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작은차갓재에서 황장산을 거쳐 저수재에 이르는 14.3키로의 백두대간 길은 암릉 길이 많아 상당히 위험하다며 반드시 자일을 가지고 가라는 기사를 보고 은근히 겁도 나고 걱정도 됐습니다만 백두대간 종주에 이력이 난 송백산악회와 함께 하기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침 7시 10분 경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9시 26분 충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10시 조금 지나서 경북 문경시 동로면의 안생달에 도착했습니다.
10시5분 배창골로 이어지는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약 30분간 눈길을 걸어 해발 550미터대의 작은 차갓재에 올라섰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의 기점이 되는 작은차갓재는 서쪽으로 대미산이, 동쪽으로 황장산이 갈리는 백두대간상의 안부이기에 이곳에서 1시간 거리의 황장산 방향으로 길을 잡아 본격적으로 대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눈이 제법 많이 쌓인 능선 길을 걷노라니 산 밑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제법 찼고, 기온도 급강하하여 얼굴이 시렸습니다.
11시20분 묏등바위 바로 밑에서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약 20미터의 암벽을 올라서야 하는데 바위가 미끄러워 한번에 한사람씩 로프를 잡고 오르느라 이 오름 길이 병목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150여명의 대부대가 이 암봉을 올라서는데 1시간 반은 족히 걸려 후미에 선 저는 별수 없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늘진 비탈길의 눈 위에서 맥 놓고 기다리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고역인 것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족히 될 만한 강추위로 손발이 시린 끝에 아려왔고, 2년 전 고루포기산을 오르다 얼굴에 심하게 동상이 걸린 일이 있어 다시 재발할 까 염려가 되어서였습니다. 무사히 묏등바위에 오르자 먼저 올라 1시간 반 동안 후등자들을 일일이 챙긴 대장분들의 노고가 정말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12시46분 해발 1,077미터의 황장산 정상에 섰습니다.
묏등바위에서 황장산까지 암릉 길도 눈이 덮여 걷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산행대장 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에 힘입어 어려운 리지코스를 전원이 무사히 마치고 헬기장이 들어선 황장산을 올랐습니다. 문경시에서 세운 황장산 표지석에 원래의 이름인 작성산이 조그맣게 새겨 있었습니다. 나무속이 노랗다 하여 황장목으로 불리는 이 산의 소나무는 임금님의 관으로 주로 쓰였다는데 일제 때 대부분 베어버려 지금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험난한 암릉길을 무사히 마치고 황장산 정상에 오른 몇 분들의 장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발걸음을 재촉해 벌재로 내달렸습니다.
13시5분 양지바른 능선 길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대원 한 분이 준비한 따끈한 김치찌개가 입맛을 돋우어 차디찬 김밥의 소찬이 성찬처럼 풍성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분이 3년 전 힘들게 오르내린 도락산의 위치를 알려주어 먼발치서나마 반갑게 눈인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13시17분 황장재로 출발했습니다. 막 내려선 고개에서 짜릿한 칼날능선을 타고 감투봉에 올랐습니다. 길이 위험할수록 지형지물을 제대로 이용해 안전하게 산행을 하는 것처럼 경기가 안 풀릴수록 시장기회를 최대로 활용해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지혜를 이 산행을 통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35분 해발 900미터대의 황장재로 내려섰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작성을 지나게 되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면 생달분교로 내려서는 십자안부인 황장재에 눈이 덮여 갈림길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서 벌재까지 2시간 40분 걸린다니 쉬지 않고 내달려도 16시가 넘어 도착할 터인데 저수재까지 완주하기는 쉽지 않을 듯싶었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늦게 출발해 양재에서 잠실까지 택시를 탔는데 산에 와서도 부지런히 들머리에 들어서지 못해 후미로 쳐졌고 그 결과 완주를 하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와서 벌재-저수재 구간을 뛸 수 있겠는가 생각하자 게으름을 부린 제 자신에 짜증이 났습니다. 남한 땅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인 테라스바위와 헬기장을 지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저수재까지 완주를 하고자 쉬지 않고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14시25분 1004봉에 올랐습니다.
힘들게 지나온 황장산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난 후 한 약 10분간을 평평한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내내 오르내림이 심했는데 이 능선만이 유일하게 편안한 길이어서 걸으면서 모처럼 피로를 풀었습니다. 다시 내림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반시간을 알바로 헤맸다는 일행 몇 분을 만났는데 알바를 하고도 기운이 넘쳐 어느새 저를 앞질러 쏜살같이 폐백이재로 내달렸습니다.
15시9분 928봉에 다다랐습니다.
폐백이재에서 산 오름을 시작해 이 봉우리에 올라서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봉우리에 다 와서 네다섯 그루의 잘생긴 소나무가 저를 반겨주어 이 대간 길도 한국의 산줄기임을 확실하게 알려주었습니다. 한 달 전에 다녀 온 포암산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눈꽃을 이번 산행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동안 내린 눈이 다져져 설질이 단단했기에 이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가 듣기에 좋았습니다. 공중에서 난무하는 눈발은 결국에 땅에 안착해 질서를 갖고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단단한 설질의 눈은 태양열을 받아 녹아서 물로 변한 후 증발되어 구름이 되었다가 겨울에 눈발이 되어 돌아오기에 내년 겨울에도 다시 이 눈길을 밟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15시37분 해발 615미터의 벌재에 내려섰습니다.
벌재에 내려서기 직전의 내리막길은 이번 산행 중 가장 경사가 급한 하산 길인 듯싶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놓았습니다. 황장산 정상에서부터 서두른 덕에 약 40분을 단축해 벌재에 이르렀는데, 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가 무리라고 판단한 산행대장께서 저수재행 을 불허해 아쉽지만 이 곳에서 약 5시간 반의 하루산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수재로 옮겨 간단히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먼저 내려와 쉬지도 못하고 식사를 준비하신 몇 분들의 정성이 깃 들인 두부찌개에 밥을 말아 다 들고 나서 다시 찌개 한 그릇을 더 들었습니다. 산행 중 강추위로 움츠렸던 가슴을 펼 수 있었던 것은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 정성 들여 차린 따뜻한 먹 걸이 덕분이었기에 이 분들에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서울로 돌아와 잠실에서 철산리에 사신다는 송백회원 한 분과 전철을 같이 탔습니다.
저보다 11년이나 연배이신 그 분은 저수재까지 완주를 하셨다는 데 젊은 제가 그리하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미완의 종주산행을 산행기로 올리기가 쑥스러워 다음부터는 반드시 완주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부끄러운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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