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종주기2
*대간구간:노고단-만복대-고기리
*산행일자:2005. 7. 27일
*소재지 :전남구례/전북남원
*산높이 :만복대1,433미터
*산행구간:성삼재-노고단-종석대-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
*산행시간:4시57분-16시10분(11시간13분)
*동행 :나홀로
어제로 여덟 번째 찾은 지리산은 정말로 큰 산이었습니다.
시인 이 성부님의 대간 산행기인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고"라는 제목처럼 웬만큼 큰 산이 아니면 작은 산에 가려 진면목을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는데 지리산만은 높고 드넓어 어디서 보아도 봉우리나 이 봉우리들을 잇는 주능선이 그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 산객들에 어서 들라고 손짓하는 듯싶었습니다.
작년 8월 32년 만에 천왕봉-노고단의 주 능선을 성공적으로 종주한 제가 어제 다시 지리산을 찾은 것은 노고단에서 대간 종주를 이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작년 10월 속리산에서 대간 종주를 다시 시작해 함백산까지 진행했습니다만, 노고단에서 속리산까지 대간 길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머리가 무거워 일상에서 탈출해 보고자 무리하게 짬을 내어 어제 대간 종주에 나섰습니다.
그제 밤 11시 30분 용산 역에서 30년 만에 전라선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새벽 4시 조금 전에 구례구역에서 하차, 버스로 구례를 거쳐 성삼재로 옮겼습니다. 구례 버스터미널에서 김밥을 사 든 후 새벽 4시20분에 성삼재행 버스에 올라탔는데 새벽의 시골버스가 지리산을 찾는 산객들로 러쉬아워 때 서울의 시내버스처럼 붐볐습니다.
아침 4시57분 성삼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덥지 않아서인지 다른 때보다 20분을 단축한 성삼재출발 40분 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다다랐습니다. 아침을 맞는 노고단 대피소는 하루 산행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산 꾼들로 부산했고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취사장에서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운 후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 노고단고개에 올라 서 새날을 여는 노고단과 반야봉의 아침정경을 카메라에 실었습니다.
6시20분 노고단 고개에서 대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올라온 길을 되짚어 노고단 대피소로 내려섰고, 화엄사로 내려서는 코재까지는 대간 길이 따로 나있지 않아 성삼재에서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갔습니다. 하산 길에 길섶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찬 물로 야간열차에 시달린 얼굴을 닦아냈습니다. 승무원의 정류역 안내 방송소리가 너무 커 어렵게 청한 잠을 깨우곤 해 얼굴에 짜증기가 서려있었는데 심산유곡의 냉수로 세안을 하고나자 얼굴이 환히 피는 듯싶었습니다.
7시25분 해발 1,356미터의 종석대에 올라섰습니다.
코재에서 20여분 간 아침 이슬이 풀잎마다 알알이 맺힌 초원을 질러 오르느라 구두와 양말이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노고단에서 성삼재로 가는 편한 길이 나있어 대간 꾼들도 종석대를 그냥 지나쳐서인지 길섶에 그 흔한 표지 리본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8시8분 3시간 11분 만에 돌아온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올라섰습니다. 만복대까지 6키로의 오름 길을 2시간 10분에 오른다면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리봉에 오르기 30분전에 다다른 작은 봉우리를 고리봉으로 잘 못 알고 20분 가까이 쉬면서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냈습니다.
9시19분 해발 1,248미터의 작은고리봉에 올라섰습니다.
산세를 일별한 후 바로 만복대로 향했는데 키를 넘는 산죽사이로 난 길을 헤쳐 걷느라 영 산행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리봉 출발 50여분 후에 헬기장이 들어 서있는 묘봉치를 지나자 때까치로 보이는 산새들이 호들갑을 떨며 날아갔습니다. 초등학교시절 산에서 때가치 새끼 한 마리를 갖고 내려와 방아깨비 등 곤충을 잡아다 먹여 한해 여름을 키웠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그해 늦가을 비 오는 날 정성들여 키웠던 때까치가 집을 나가버려 얼마나 서운했던지 그 후로는 다시 새를 잡아다 기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묘봉치를 지나 산 오름을 계속하는데 풀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크게 들려 깜짝 놀랐습니다. 움직이는 소리가 하도 커 멧돼지가 아닌 가해서 무섭고 신경이 바짝 쓰였습니다.
10시35분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수건으로 목을 감싸야 할 만큼 햇살이 따갑고 날씨가 후덥지근했습니다. 한번 양말을 짜서 신었는데도 걷기가 불편해 다시 짜서 신느라 20분은 족히 쉬었더니 조금은 피로가 풀린 듯 했습니다. 만복대를 오르는 중 오랜만에 황뱀을 만났습니다. 저를 보자 한껏 느긋하게 사르르 숲 속으로 사라지는 황뱀을 보고 속 좁게도 마음 졸인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11시30분 해발1,433미터의 만복대에 올랐습니다.
묘봉치에서 얼마고 산을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만복대까지 광활한 억새밭을 지나는 편한 길이어서 성삼재에서 2시간 10분이면 충분히 다다를 수 있는 길을 3시간 15분 만에 오른 것은 쉬는 시간이 길었고 길섶의 잡목이 진행을 더디게 해서였지만, 날씨가 너무 무더워 몸에 탈이 날까 서두르지 않아서였습니다. 정상의 돌무덤이 만복대를 찾는 산객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무엇을 빌 까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우선은 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십사 빌었습니다.
산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하도 시원해 만복대의 햇살이 전혀 따갑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방을 찬찬히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찾아 볼 수 없기에 소변을 보는 김에 팬티를 무릎 밑으로 내리고 사타구니에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록했습니다. 이슬 밭을 지나느라 젖은 사타구니가 짓무르는 것을 막고자 처음 해본 일인데 하도 정말 시원해 좋았습니다. 한밤에 홀로 대간을 종주할 때에는 30분가량은 발가벗고 산행을 한다는 어느 대간 꾼의 책 내용이 이제는 결코 퍼포먼스 쑈를 위한 기행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2시4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정령치로 출발했습니다.
만복대에서 2키로밖에 안되는 짧은 구간에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모처럼 편안한 산행을 즐겼습니다. 길섶에 군락을 이룬 노랑꽃의 산나리가 활짝 꽃을 피워 너무 아름다웠기에 이 꽃들을 카메라에 남겼습니다.
13시3분 정령치로 내려섰습니다.
휴게소에 들러 맥주 1캔을 사들며 느긋하게 휴식을 즐겼습니다. 세걸산이 백두대간상의 산으로 잘못 알고 있는 지리산 국립공원에 근무한다는 젊은이에 제대로 된 대간 길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쉬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14시10분 해발 1,305미터의 고리봉에 다다랐습니다.
정령치 출발 30분 만에 올라선 고리봉에서 북동쪽으로는 세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나있으며, 남동쪽으로 내려서야 대간 길을 이어가게 됩니다. 고리봉에 오르는 길에서 작년 5월 한북정맥 종주 시 복주산에서 보았던 운모를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물고기의 편린모양을 한 운모들이 햇빛을 반사해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백두에서 지리까지 고산준령을 일구어 온 대간 길 마루금이 해발 1,305미터의 고리봉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세로 환속하고 싶어서인지 한껏 몸을 낮추어 해발 500미터대의 고기리로 내려섰습니다. 고리봉에서 시작된 내리막길이 얼마 후 끝나자 솔밭사이로 난 편안한 하산 길이 고즈넉해 모처럼 느긋하게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이 고즈넉한 길을 걸어 고도를 900미터대로 낮추자 제 철을 만난 매미의 울음소리가 반갑게 들렸습니다.
지리산의 대표수종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침엽수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해 기온이 다른 산보다 높지 않을 까 생각이 되어서였습니다. 어제는 내내 제 생각대로 침엽수를 보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고리봉 중턱에서 고기리까지 약 45분간 솔밭을 지났습니다. 넓디넓은 여기 솔밭이 강원도의 송림처럼 건강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시꺼멓게 죽어 가는 고송이 그대로 서있어 산이 우중충하고 칙칙했습니다.
15시49분 해발 600미터대의 고기리로 내려섰습니다.
남원과 운봉, 그리고 정령치로 갈리는 고기삼거리에서 운봉으로 가는 730번 지방도로를 따라 10여분을 걸어 하룻밤을 머무를 송학모텔에서 11시간 남짓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어렵사리 나선 길인데 내친 김에 육십령까지 내달려 볼까 하는 마음에 가슴 설레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백두대간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종주기6(육십령-삿갓재) (0) | 2007.01.03 |
---|---|
백두대간 종주기5(중재-육십령)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4(매요마을-중재)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3(고기리-매요마을)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1(천왕봉-노고단) (0) | 200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