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매요마을-사치재-복성이재-봉화산-광대치-중재
*산행일자:2005. 9. 11일
*소재지 :전북 남원, 장수/경남 함양
*산높이 :봉화산 920미터/월경산980미터
*산행코스:중기마을-중재-광대치-봉화산-복성이재-사치재-매요마을
*산행시간:5시21분-17시21분(12시간)
*동행 :나홀로
지난 7월 시작한 속리산발 지리산행 남하 행진은 중재-봉화산-매요마을구간을 어제 마지막으로 종주해 일단락 지었습니다. 작년 10월 안내산악회를 따라 속리산 갈령삼거리에서 북진한 대간종주를 함백산의 싸리재에서 일단 멈추고 남진하기로 방향을 바꾼 것은 낮이 긴 여름철에는 저 혼자서도 대간 길을 해 안에 마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였습니다. 작년에 짬을 내어 천왕봉-노고단, 육십령-빼재와 궤방령-추풍령구간을 종주했기에 이번에는 이 구간들을 빼고 나머지 구간인 노고단-육십령, 빼재-궤방령과 추풍령-속리산 갈령삼거리를 뛰었는데 구간별 4회씩 총 12회 “나홀로 종주”로 어제 남진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새벽4시45분 함양에서 택시를 불러 중기마을로 향했습니다.
여명을 가르며 시골 길을 달려 중기마을에 저를 내려놓은 기사분이 대간 종주 차 중재를 찾는 산객들을 많이 모신 터라 제게 조심해 다녀가시라는 인사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두 주전 중재-육십령구간을 뛸 때와 거의 같은 시간에 중기마을에 도착했는데 그 때에 그 토록 짖어대던 동네 개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 온 세상이 조용했고, 아직도 곤히 자고 있을 뭇 생명들을 너무 일찍 깨우는 것 같아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기가 조금은 미안했습니다.
5시21분 중기마을을 출발했습니다.
두 주전에는 중재 못 미쳐서 랜턴 불을 껐는데 이번에는 고개마루에 다다라서도 어둠이 전혀 가시지 않았습니다. 5시49분 랜턴 불을 켠 채 중재에서 왼쪽으로 난 대간 길로 올라서 12.1키로 떨어진 복성이재로 향했습니다.
6시31분 첫 번째 산소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저 혼자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산속을 걷기는 처음이어서 새들도 숨죽이는 새벽의 적막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산소 도착 15분전에 랜턴을 끄고 아침을 맞았지만 운무가 해를 가려 장엄한 해돋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 서운했습니다. 새들도, 그리고 다른 산 짐승들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비비적대는 동안 그보다 훨씬 하등동물인 날파리가 윙윙대며 제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아침 벽두부터 저를 반기는 날파리의 성의가 갸륵해 이번에는 그들의 근접비행이 그리 밉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비슷비슷한 봉우리를 우회해 한 봉우리에 오르자 북쪽의 백운산이 안개를 비집고서 잠시 얼굴을 내보여주었습니다. 곧이어 축협축산단지에서 최근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철조망 울타리가 나타나 4-5분을 따라 걸어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지는 내림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번 산행 중 최고봉인 해발 980미터의 월경산을 그냥 지나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어제 산행에서 그냥 지나친 곳이 월경산만이 아니었습니다. 월경산은 지도 상 대간 길에서 약간 벗어 난 곳에 있어 몰랐다 해도 조금은 변명이 되겠지만, 광대치는 어엿한 대간 상의 고개이기에 언제 지났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기가 당혹스러웠습니다. 7시15분 경 철조망 울타리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내리막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서자 자욱한 안개와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에 스산한 느낌이 들어 쉬지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어제따라 고도계가 기압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봉우리의 고도가 안부보다 낮게 나타났고, 지도상의 산행시간도 역방향으로 운행해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좀처럼 안개가 가시지 않아 독도가 불편했으며, 이래저래 제 위치를 제 때에 확인할 수 없어 답답하고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산했던 안부를 그냥 지나쳤는데 바로 그 안부가 광대치였습니다.
8시 41분 전망바위를 지났습니다.
40분전에 944봉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에 올라 10분 간 쉬면서 그동안 오름길을 정리했습니다. 광대치에서 5-6개봉을 오르내려 944봉에 다다르기까지 정신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한시 빨리 봉화산에 올라 위치를 확인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944봉에서 키를 넘는 억새밭을 지나느라 옷이 다 젖었습니다. 급전직하의 직벽이 동사면을 받치고 있는 널찍한 암반위에 서자 계곡에서 안개를 몰고 올라온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 사진 몇 장을 후딱 찍고 계속해 전진했습니다. 9시5분에 발을 들인 억새밭은 광활한 초원이어서 너울거리는 붉은 색의 억새꽃들이 장관을 연출해 부지런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9시47분 해발 920미터의 봉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정확하게 제 위치를 확인한 봉화산 정상에서도 안개에 가려 사진으로 남길 만한 것을 찾지 못했기에 표지봉 밑에 제 배낭을 놓고 등정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중재에서 매요마을로 코스를 잡으면 일요일이라서 반대방향으로 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다 기대를 했는데, 정상에서 처음으로 울산에서 왔다는 젊은 남자 2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안개를 몰고 올라온 시원한 바람과 안개를 제치고 잠깐이나마 진면목을 보여준 광활한 억새밭이 제 때 위치를 확인 못해 불안해했던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정상에 다다르기 40분전에 후손들이 정성들여 성묘한 깨끗한 산소에서 10여분 간 편히 쉬면서 떡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임도까지 이어진 억새밭 사이로 난 대간 길 양 옆의 풀들을 베어내 모처럼 편안하게 지날 수 있어 몇 번이고 가던 길을 멈추고 광활한 평원에서 군무를 보여주는 억새들의 춤사위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임도에서 봉화산에 이르기 까지 억새밭은 계속되어 안개만 가셨다면 더 넓게 담을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진했습니다.
9시54분 봉화산에서 돌계단을 따라 풀숲으로 내려서자 해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재에서 봉화산까지는 이렇다 할 야생화를 보지 못했는데 다리재에 내려서 풀숲에 들어서자 때 맞춰 내리 쬐는 햇볕의 도움으로 안개비로 막 얼굴을 닦아낸 야생화들이 한껏 청아하게 보였습니다. 고리봉에서 매요마을까지 계속되었다가 이곳까지 이어진 솔밭의 소나무들이 많이 죽어 있었고 살아있는 나무들도 그리 푸르르지 못했으며 비를 맞은 등줄기가 시꺼멓게 변해버려 빗속의 숲을 더욱 어둡게 하기에 소나무가 우리나라 대표수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이 더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제 산행을 즐겁게 한 것은 산딸기가 뒤 엉킨 풀밭을 어렵게 헤쳐 나와 만난 야생화 군락지와 다시 풀숲으로 들어가 따먹은 보리수 열매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조만간 춤사위를 접을 나비들이 곳곳에서 나풀거려 다리재에서 꼬부랑재를 지나 치재에 이르기 까지 철쭉나무 숲과 억새 밭을 힘들게 헤쳐 나가는 저를 외롭지 않게 했습니다.
11시 치재에 내려섰습니다.
조금 전에 뿌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해 산행수첩과 카메라를 배낭 속에 넣고 비닐카바로 배낭을 가렸습니다. 광대치와 마찬가지로 치재 또한 아무런 표지기가 없어 그냥 지나쳤습니다. 복성이재에서 되돌아 생각해보니 우측의 철쭉나무 턴널 밑으로 길이 나있는 삼거리 안부가 치재임이 확실했습니다. 치재에서 철죽나무 숲을 지나 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비가 그치고 훤해져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북동쪽에 자리 잡은 봉화산까지 이제껏 걸어온 대간 길이 펼쳐졌고, 북서쪽으로는 길쭉한 동화호의 잔잔한 물결이, 동쪽 산 밑으로는 자그마한 일대저수지가, 남쪽 바로 밑으로 2차선 포장도로인 복성이재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11시40분 해발550미터의 복성이재에 내려서 남은 떡을 마저 들었습니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다 길을 건너 고개 동쪽 마을로 사라진 누런색의 산양(?)한마리가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차길을 따라 한참 아래 흥부마을 성리까지 내려가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되었습니다. 15분을 쉬고 사치재로 출발하자 햇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하늘의 변덕이 죽 끓듯 해 비를 뿌렸다 거두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간헐적으로 비추는 햇볕이 아직은 따갑게 느껴져 해를 가릴 나무들이 없는 풀 숲길을 걷기가 편하지 못했습니다.
12시28분 아막산성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쟁탈전을 벌였다는 아막산성은 백제에서 아막성으로, 신라에서는 모산 성으로 불렀다는데 현재는 전북지방기념물 제 38호로 선정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쟁탈전만은 백제가 승리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막산성을 출발해 3개의 돌탑이 세워진 너덜지대를 비껴 지나는 동안 매요리에서 출발했다는 부부한 팀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3시35분 시루봉 가까이의 헬기장을 조금 벗어난 한 봉우리에서 10여분을 쉬었습니다.
복성이재-사치재 구간중 가장 높은 781봉에 오르자 한 산악회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 쉬지 않고 산행해 그 35분 후에 헬기장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날이 들어 하늘이 맑아졌고 안개도 완전히 가셨습니다. 새맥이재로 내려서면서 죽은 나무들을 간벌을 해 너무 듬성듬성 들어 서 있는 시꺼먼 소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져 이 느낌을 사진에 담고자 카메라를 작동했습니다.
14시14분 해발 570미터의 새맥이재에 도착해 구두 속에 흥건히 젖어 있는 양말을 벗어 짜내면서 1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새맥이재에서 40여분을 오르내리다 어느 한 봉에 올라서자 남동쪽에 자리 잡은 지리산 휴게소가 확연하게 눈에 잡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고생스럽게 오른 정남쪽의 고남산도 분명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사치재까지 40분 가까이 땡볕에 풀숲을 헤치고 진행해 힘들었지만 시야가 탁 트여 전망만은 일품이었습니다. 마지막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사치재의 솔밭에 94-5년 두해 겨울 산불로 시꺼멓게 타다 남은 소나무들이 흉물스런 잔해만 보여주어 안타까웠습니다.
15시38분 사치재에서 88고속도로를 건너 응달진 곳을 찾아 짐을 풀었습니다.
15분 남짓 쉬면서 원기를 회복해 618봉에 올라서기 까지 마지막 안간힘을 다했지만 , 이 봉우리에서 88고속도로를 육교로 건너는 우회도로와 만나는 유치까지 석양을 가리는 솔밭 길을 지나며 야생화들과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한 산행을 마음 놓고 즐겼습니다.
17시17분 유치의 포장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지난 7월 매요마을을 지나 사치재로 향하는 중 큰 비로 산행을 멈춘 곳이 바로 이곳 유치삼거리였습니다. 장수와 함양, 운봉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들어 선 제기그릇 공장의 주인분이 비에 흠뻑 젖은 제게 커피를 끓여주고 택시를 불러주어 고마웠었기에 인사를 드리고자 했으나 개들이 덤벼들 듯이 지져대 그냥 차도를 따라 매요마을로 향했습니다.
17시21분 매요마을 앞에서 버스를 집어타 12시간 만에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종점인 봉대마을까지 가서 택시를 불러 인월로 나갔습니다. 18시 정각 인월에서 함양가는 버스를 타고가, 18시 반에 함양을 출발하는 수원행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기에 생각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12번의 단독 대간 종주로 속리산 발 지리산행 남진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자축하고자 인월에서 맥주1캔을 사 마셨습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제가 과연 산악회를 따라서 대간종주를 해낼 수 있을 까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8월에 한북정맥 종주를 마치고 대간 종주에 욕심을 내다가 가을에 안내산악회를 따라 속리산 갈령삼거리에서 북진을 시작했습니다. 올 들어 5-7월 중 사리재까지 빼먹은 구간을 6회에 걸쳐 저 혼자 보충을 하자 내친 김에 속리산 이남의 구간도 마저 하자고 덤벼들었던 것이 어제야 비로소 천왕봉-싸리재의 전 구간을 모두 밟게 된 것입니다.
이번 남진종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확인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두드리는 자에 문이 열림을 배웠습니다. 또 단독종주를 해낸 제 스스로가 고맙고 믿음이 갔습니다. 종주의 중간결실로 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음은 백두대간이 저를 내치지 않고 감싸 주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마워하면서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백두대간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종주기6(육십령-삿갓재) (0) | 2007.01.03 |
---|---|
백두대간 종주기5(중재-육십령)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3(고기리-매요마을)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2(노고단-고기리)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1(천왕봉-노고단) (0) | 200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