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6(육십령-삿갓재)

시인마뇽 2007. 1. 3. 08:38
                                        백두대간 종주기6

 

                         *대간구간:육십령-장수덕유-삿갓봉-삿갓재

                         *산행일자: 2004년9월16일

                         *소재지  : 전북장수/ 경남함양

                         *산높이  :남덕유산1,507미터/장수덕유산1,492미터

                         *산행코스:육십령-장수덕유-남덕유-삿갓봉-삿갓재대피소                  

                         *산행시간:8시30분-16시47분(8 시간17분)

                         *동행       :나홀로 

          

   이제야 원 없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봄을 보낼 수 없었던 시인 김 영랑님처럼 저도 높고 깊은 고산나들이를 다녀오지 않고서는 여름을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여름에는 키나바루산을, 작년 여름에는 백두산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회사 일로 여름휴가를 내지 못해 이렇다 할 고산나들이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러다가 앉아서 겨울을 맞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지난주에 휴가를 얻어 한반도 남단에서 네 번째로 높은 덕유산을 이틀 간 종주하여 이 나라 국토의 등뼈인 백두대간을 원 없이 밟고 돌아왔습니다.


  육십령에서 시작하여 삿갓재에서 하루를 묵은 후 정상인 향적봉을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구천동으로 하산하지 않고 백암봉으로 되돌아 와 백두대간을 따라 신풍령까지 총 36.3키로를 걸어 덕유산 종주를 마쳤습니다. 그 동안 저는 5차례 향적봉에 올랐으나 모두가 구천동 삼공리에서 시작하여 삼공리로  되돌아오는 원점 왕복산행이거나 회귀산행이어서 덕유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언제고 한번은 종주를 해보겠다고 별러 왔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산 속에서 하루를 묵어가며 여러 봉우리들을 원 없이 오르내리고 나니 그 동안 종주 한번 못했던 덕유산에 느껴온 미안함을 모두 털어 내어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그제 밤11시 함양 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고 서울을 빠져나갔습니다.

주로 안내산악회를 따라 지방의 산들을 다녀왔기에 이번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원거리 산행 길에 나서기는 십 수 년 만에 처음입니다. 새벽 2시에 함양에 도착, 찜질 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어제 아침 6시20분에 서상으로 출발하는 첫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1시간 10분 걸려 서상에 도착, 반찬이 무려 11가지나 나오는 5천 원짜리 백반을 들고 나서  택시로 육십령까지 이동했습니다.


  8시 30분 육십령에서 할미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백두대간에 올라섰습니다.

육십령휴게소에서 배낭을 챙기다가 버스에 모자를 두고 내린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휴게소의 주인 할머니가 내준 모자를 새로 사 써  안경에 들이치는 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9시 28분 헬기장을 지나 해발 930미터 지점의 능선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서봉 까지는 오름 새가 계속될 것이기에 한 시간 가량 걷고 쉬는 나름대로의 산행리듬을 지키고자 비를 맞으며 쉬었습니다. 할미봉을 오르는 암릉 길이 위험하다는데 줄기차게 내리는 큰비로 더욱 더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9시 42분 걱정했던 할미봉을 무사히 올랐습니다.

짙게 깔린 운무로 시계가 거의 제로 상태여서 해발 1,026미터에 세워진 안내판에 소개된 지리산 천왕봉은 물론 그 밖의 어느 산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할미봉에 오르기 직전의 7-8분간은 암릉 길이 조심스러웠지만 그 후 한 시간 가량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편안한 산행을 했습니다.


  11시 2분 육십령에서 5.2키로를 걸어 덕유교육원 갈림길을 지났는데 아직도 3.6키로가 남은 남덕유까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갈림길에 다다르기 5분전에 소나무밭에서 잠시 짐을 풀고 떡으로 요기를 하여 본격적인 오름 길에 대비했습니다.


  11시 57분 해발 1,235미터 지점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추겼습니다.

쉬는 짬짬이 떡을 꺼내 먹는 것이 몸에 뱄는데 따로 긴 식사시간을 낼 필요가 없어 좋아합니다. 빗줄기가 약해지고 비를 피해 숨어 있던 새들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의 빨라진 몸놀림을 잡아내고자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저의 손놀림도 빨라졌습니다.


  12시 45분 일명 장수덕유산으로도 불리는 해발1,492미터의 서봉에 올라섰습니다.

서봉 직전의 돌무더기가 눈을 끌었고 이곳에 떼를 지어 울어대는 산새들이 제 머리 위를 낮게 날아 시위를 하는 듯 했습니다. 꾸륵꾸륵 울어대는 새소리의 섬찍함과는 달리 까만 꽁지에 연이은 몸통 뒷부분의 하얀 털과  까치만한 크기의 몸통의 주황색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새들의 비상하는 모습에 잠시 넋을 뺏겼습니다. 길에서 0.1키로 떨어진 약수터를 찾지 못하고 되돌아와 준비해간 식수로 땀 보충을 하는 동안 태양이 빠끔히 얼굴을 내 보였지만 그도 잠시였습니다.


  13시 42분 육십령에서 8.8키로를 걸어 해발 1,507미터의 남덕유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2월 영각사에서 오를 때도 눈이 쌓인 계단 길을  아주 힘들게 올랐는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 코스가 훨씬 길어 힘에 부쳤지만 정상 가까이에 흠뻑 비를 맞고 피어 있는 초가을의 야생화들이 저를 반겨 피로감을 덜었습니다.  이제 제우스의 심술도 막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태양이 서봉에서 보다 긴 시간을 머물렀기에 막 시작된 먼발치의 단풍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4시 40분 해발 1,240미터의 월성재에 다다랐습니다.

작년 2월에는 이곳에서 횡계매표소로 하산했는데 이번에는 똑바로 삿갓봉으로 향했습니다. 삿갓봉에 이르는 길도 경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비가 그치어 운무에 가렸던 산자락이 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를 카메라에 옮기느라 짬짬이 쉬어가며 산행을 했습니다.


  16시 12분 해발 1,419미터의 삿갓봉에 올라섰습니다.

표지석 밑에 개미들이 득시글대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전 내내 극성을 부렸던 비구름이 태양에 자리물림을 확실히 한 모양입니다. 지나온 남덕유와 서봉을 잇는 능선의 실루엣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16시 47분 해발 1,280미터의 삿갓재 대피소로 내려섰습니다.

육십령에서 13.1키로를 8시간 15분간 걸어 다다른 삿갓재 대피소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대피소에서 컵 라면 2통을 사먹고 나니 시장기가 가셨습니다. 텅 빈 대피소의 큰 방을 저 혼자 썼는데 남의 눈치를 볼일이 없어 방안에다 비에 젖은 옷가지와 양말을 짜 널어 말렸습니다.


  밤이 되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높은 산 위에서 얼마 만에 쳐다보는 별들인가 헤아리다 자연 먼저 간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1975년 지리산의 제석당에서 야영을 하며  함께 지켜본 그 별들이 오늘도 여전히 빛났습니다.  제게는 그녀의 삶이 별 같이 빛나 보여 하늘의 별들에 그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