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8(빼재-덕산재)

시인마뇽 2007. 1. 3. 09:08
                                         백두대간 종주기8

 

                  *대간구간: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산행일자:2005. 8. 31일

                  *소재지  :전북무주/경남거창/경북김천

                  *산높이  :삼봉산1,254미터/삼도봉1,248미터/대덕산1,290미터

                  *산행코스: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산행시간:7시32분-16시50분(9시간18분)

                  *동행      : 나홀로 

 


  

  여름이 열음과 같이 발음되는 것은 여름의 역할이 열음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장마철에는 비가 너무 자주 온다는 이유로, 복 중에는 30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듯한 폭서로 사람들로부터 내내 원성을 들어오면서도 그동안 남모르게 가을을 열 준비를 착실히 해왔기에 8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도 이 여름은 서두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바짝 9월의 문턱으로 다가서서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열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올 여름 마지막으로 빼재-삼봉산-삼도봉-대덕산-덕산재 구간의 백두대간을 종주했습니다. 경남 거창의 한 찜질 방에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미역국으로 아침을 든 후 6시45분 고제 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가을이 막 들어서기 시작한 시골의 아침 길을 반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고제에서 9천원을 들여 한 대 뿐이라는 택시를 타고 빼재로 옮기는 중 기사분이 작년 9월에 삿갓재-향적봉-빼재 구간의 긴 산행을 마치고 들렀을 때 문을 닫아 당혹해 했던 휴게소가 다시 문을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아침 7시32분 경남거창과 전북 무주를 잇는 고개인  빼재를 출발했습니다.

휴게소를 조금 지나 도로변 오른 편의 된비알 길을 4-5분가량 걸어올라 오른 쪽으로 난 능선 길로 접어들었는데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불결하다 싶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어서인지 버스를 타자마자 부글대기 시작한 뱃속이 빨리 비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상황이 급해져 별 수 없이 배낭을 내려놓고 먼저 숲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나무 잎이 우거진 여름철이고 저 혼자여서 별 문제가 안 됐지만 겨울에 단체로 산행 시에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면 가릴 만한 적당한 곳이 없어 퍽 난감했을 것입니다.


  8시30분 된새미기재를 지났습니다.

속을 비운 후 완만한 오름길을 천천히 걸어 20여분 후에 수정봉에 올라서자 나무 잎이 시야를 막아 답답했습니다. 이른 아침 자기 영역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까마귀가 격렬하게 짖어대 아직도 곤히 잠자고 있는 다른 새들을 깨울 까  마음 조렸습니다. 잡초와 억새풀이 땅을 뒤덮은 된새미기재를 막 빠져나와 삘기장다리처럼 큰 키의 노랑꽃 마타리에 아침 인사를 건넸습니다.


  8시57분 전망바위에서 쉬면서 관조한 산중의 아침 풍경은 가을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낮게 깔린 여름의 먹구름을 대신해 하늘 높이 자리한 새털구름이 가을을 불러들이고 있었고 늦잠에서 막 깨어난 산새들이 여름이 다해 감을 아쉬워하는 듯 짖어대기 시작했는가 하면, 능선 오른 쪽에 산자락에 걸쳐있는 운해가 산속의 여름을 가을에 그냥 내놓기 아쉬운 듯 좀처럼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처럼 안개를 짙게 들여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바람 또한 그러했습니다. 먹구름을 몰고 다니는 여름의 광풍보다 살갗을 보드랍게 매만지는 미풍에서 여름이 열고 있는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9시48분 해발1,254미터의 삼봉산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왼쪽으로 삼오정 가는 임도로, 오른 쪽으로 금봉암가는 길이 나있는 십자 안부인 호절골재에서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호절골재 출발  23분 후 삼봉산에 이르기 까지 또 다른 전망바위를 지나고 돌무덤이 세워진 해발 1,200미터 이상의 고봉을 거쳐서 다다른 정상에 거창산악회에서 덕유삼봉산으로 명명한 표지석을 세웠고 국립지리원에서는 이 산의 경도와 위도를 알려주는 삼각점과 전국적으로 16,000개나 되는 이 삼각점의 중요성을 알리는 안내판도 같이 세웠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삼봉산에 올라 쾌청한 날씨 덕에 먼발치 남동쪽의 지리산과 가까이 남서쪽의 덕유산을 조망하고 다시 북쪽 대간 길의 삼도봉과 대덕산에 눈길을 주자 무주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를 시샘하듯 구름을 불러들여 비를 뿌릴 듯한 기세였습니다.


  10시1분 삼봉산을 출발해 30분여 오른 쪽 동사면이 절애의 암벽인 암릉길을 탔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암릉 길을 타다가 위험할 것 같아 우회 길로 내려섰는데 로프를 잡고 거의 90도 가까운 짧은 암벽을 어렵게 내려서자 등 뒤에 진땀이 흘러 옷이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암릉길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 쪽으로 난 급경사의 돌가닥 길을 힘들게 내려오다가 비를 만나 우의를 꺼내 입는 등 부산을 떨었는데 이내 비가 그쳐  8월이 결코 가을이 아님을 강변하기 위한 시위성 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시48분 소사고개로 내려서 소사마을 입구의 휴업중인 한 가게 마당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소사고개를 중심으로 남서쪽의 삼봉산과 북동쪽의 삼도봉의 4부 능선까지는 채소밭이 개간되어 고랭지채소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한북정맥의 마루금에 아파트가 들어 선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낙엽송을 베어내고 밭을 개간해 대간을 훼손했다면 문제되는 것은 한가지일 터인데 시민단체 등에서 별 말이 없는 것은 훼손의 내용이 아니고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문제의 경중이 달라지나 하는 의문이 들었고, 벌써 여덟 잎이 나온 배추가  비가 제 때에 안와서인지 그리 실하게 보이지 않아 수만 포기의 저 많은 배추들이 혹시라도 돈이 안 될까봐 걱정되었습니다.


  12시9분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소사고개에서 삼도봉으로 향했습니다.

산길로 들어섰다가 이내 묘지를 지나고 밭 가장자리로 난 길을 걸었다가 잠시 산길을 다시 만나고 얼마 후 소사분교에서 시작된 시멘트 도로를 만나기까지 표지리봉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이 엄청 쓰였습니다. 밭 한 귀퉁이가 큰비로 잘려나가 절벽을 이룬 곳이 몇 곳 있어 여기도 난 개발의 현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간벌이 끝난 몇 곳은 계속 밭으로 개간되는 것이 아닌 가해서 염려되었습니다.


  12시55분 삼도봉을 향한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 한 떼의  아주머니들이 빙 둘러 앉아 일 중간의 간 참을 맛있게 들고 있는 부산 농장의 비닐하우스를 지나 오른편의 산길로 다시 들어서 10여분을 걸은 후 차 2대가 정차한 모래 길 삼거리로 내려서 5분여 걷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선 것이 12시55분이었습니다. 왼쪽 위로 목장이 들어섰고 오른 쪽 옆으로 마지막 밭이 들어서있는 산길로 들어서 5분여 걷다가 해를 가릴 만한 나무그늘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해발 9백미터가 넘는 고지대여서 날 파리가 윙윙대지는 않았으나 공사장의 소음과 인근 목장의 개소리에 짓 눌려 새들과 매미들이 제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시끄러웠습니다.


  14시 정각 해발1,248미터의 삼도봉에 올라서기 까지 50분 동안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50분 중 초반 시간은 햇빛을 가릴 길 가의 나무들이 간벌된 바람에 그늘이 없어 힘들었고 후반의 시간에는 오름 새가 더해진 데다 억새와 싸리나무가 길을 가려 이를 헤쳐 나가기가 고됐습니다. 삼도봉에 올라서자 날 개미들이 여태껏 기다렸다는 듯이 덤벼들어 바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에 좋은 전망처인 정상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 9월 덕유산의 삿갓봉에서도 똑 같은 경험을 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숲 속으로 얼마고 옮겨 쉬었습니다.


  삼도봉이란 3개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봉우리로 대간 길에는 지리산과 이곳, 그리고 민주지산에 인접한 삼도봉의 모두 3곳이 있으며 대간을 조금 벗어난 곳에 어래산이 있어 총 4곳에 있다 합니다. 이 중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가 만나는 민주지산 근처의 삼도봉이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리산의 삼도봉이나 전북무주, 경남 거창, 경북김천을 경계 짓는 이 봉우리와 충청, 강원과 경상도 3도를 어우르는 어래산보다 유명한 것은 산 높이에 있지 않고 지역갈등의 심각도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해 그리 개운한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15시4분 해발 1,290미터의 대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삼도봉에서 대덕산에 이르는 길은 풀 숲길이어도 좋았던 것은 불그스레한 억새풀 꽃이 바람에 흩날려 집단으로 춤을 추는 군무가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삼도봉에서 안부로 내려서자 왼쪽 밑에 자리 잡은 목장 축사의 빨갛고 파란 지붕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안부에서  대덕산으로 오르는 중 마지막 여름 날  “단풍샘 비”가 잠시 흩뿌렸습니다. 가는 겨울이 오는 봄의 꽃피움을 시샘해 꽃샘추위를 하는 것처럼  여름이라고 가을에 예쁜 단풍이 드는 것을 늦추고자 비를 뿌리는 심술을 부리지 말라는 법이 없을 터이기에 저는 이 여름의 심술을 “꽃샘추위”에 대응해 “단풍샘 비”라고 이름 짓고자 합니다.  “단풍샘 비”가 끝나자 가을이 하늘을 열어 날씨가 쾌청했고 바람도 선선해 한참을 정상 헬기장에 퍼져 앉아 떠나가는 이 여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 한해 이 여름과 때로는 벗해가며, 때로는 싸워가며 정말로 백두대간을 열심히 종주했습니다. 7-8월 두 달 동안 총 14번을 대간 종주에 나섰는데 이 여름이 저의 대간사랑을 테스트 하고자 큰비를 뿌리거나 천둥번개를 쳐 등로를 막고자 했으며 때로는 불볕더위로  집에 주저앉히고자 몇 번을 시도했습니다. 이 모두가 무위로 끝나자 마지막 세 번은 저를 도와주기로 마음을 바꿔 먹은 듯 비를 거두고 천둥번개도 접고 땡볕 대신 구름이 해를 살짝 가려주기도 해 고마웠습니다. 온갖 욕을 다 먹어가며 말없이 준비해온  가을을 열어주는 이 여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마지막 여름날인 어제 대간 종주에 나선 저는 사방을 돌아보며 떠나가는 여름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모처럼 손놀림이 바빴습니다.


  15시20분 대덕산을 출발해 덕산재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키의 산죽사이로 난 하산 길은 편했습니다. 해발 1,100미터대의 얼음골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페트병 2병을 가득 채웠습니다. 약수터에서 얼마고 내려서자 물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 길을 잘 못들은 것이 아닌 가 했는데 그 큰 물소리는 낙차 큰 얼음폭포의 물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길은 얼음폭포 가까이에서 다시 반대방향으로 꺾여 가다 산사태 지역을 지나 덕산재를 만났습니다.


16시50분 해발 640미터의 덕산재에 도착해 9시간 넘는 종주산행을 끝냈습니다.

2주전 비구름 속에 이 곳에서 삼마골재로 출발할 때의 스산함은 사라지고 저녁 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덕산재 고개마루에서 덕산쪽에서 불어오는 미풍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마지막 여름의 편안함과 평화가 느껴졌습니다. 환경부에서 덕산재 고개마루 밑쪽에 만들어준 생태다리와 철조망 울타리가 뒤늦기는 했어도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 여름과 대덕산 정상에서 한참동안 얘기를 나눈 뒤에 오는 편안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