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덕산재-부항령-삼도봉-삼마골재
*산행일자:2005. 8. 18일
*소재지 :경북김천/충북영동/전북무주
*산높이 :삼도봉1,176미터/백수리산1,034미터
*산행코스:덕산재-부항령-백수리산-삼도봉-삼마골재-해인산장
*산행시간:8시15분-17시35분(9시간20분)
*동행 :나홀로
정년을 지난 분들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공리에 정년퇴직을 한 분들도 한 번 일손을 놓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늙어 버리고 정신적 공황을 극복하지 못해 고생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답니다. 이는 그토록 힘들어했던 직장생활이 규칙적으로 일을 하도록 해 육체적 건강을 유지시켜 주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며 휴먼네트워크를 구축토록 해 정신건강에 크게 기여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년을 넘긴 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부러워하나 봅니다.
어제는 덕산재에서 시작하여 부항령을 거쳐 삼도봉을 오른 다음 삼마골재로 내려서 대간 종주를 마친 후 오른 쪽으로 난 계곡 길을 따라 김천시 부항면의 해인리로 하산했습니다. 삼막골과 암골이 만나는 합수점 바로 밑에 자리한 해인산장에서 하루 밤을 머무르며 인사를 나눈 주인분이 바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줄곧 도시 생활을 해오다가 6년 전 귀향하여 여기에다 그림 같은 산장을 지어 놓고 남북으로 백두대간을, 동서로 삼도봉-석기봉-민주지산-각호산을 연이어 오르내리는 산객들에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온 이 분은 내 후년에 환갑을 맞는 정통산악인으로 일찍이 중학생 때부터 암벽등반을 해왔다 합니다. 손때가 잔뜩 묻은 등산장비와 등산관련 서적들을 진열해 놓아 산장의 진수를 맛보게 했고, 이에 더하여 정성들여 준비한 정갈한 음식과 아주 저렴한 숙박료로 누구라도 다시 와 묵고 싶은 마음을 일게 했습니다.
그제 밤 덕산재-삼도봉-우두령구간을 두 구간으로 나누어 이틀 연속해 오르고자 열차에 올랐습니다. 새벽 1시반경 김천에 도착해 찜질방에서 눈을 붙였다 아침7시10분 무주행 직행버스를 타고 50분간 한 여름의 시골아침을 달렸습니다. 어느새 논에는 더러 더러 벼들이 노랑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길섶의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추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을을 맞고 있었습니다.
아침 8시 해발 644미터의 덕산재 고개에서 하차했습니다.
버스는 횅하니 무주로 내달렸고 안개가 잔뜩 끼어 어느 봉우리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며 고개마루 집 앞 에 승용차가 한대 세워져 있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모두 문이 잠겨 있고 대덕산에서 채취한 산삼을 감정하고 판매한다는 안내판만 걸려있어 덕산재의 아침이 마냥 스산하게 느껴졌습니다.
8시15분 고개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난 들머리로 들어서 834봉으로 향했습니다.
산속은 안개가 자욱했고 키를 넘는 풀숲을 지나느라 바지와 구두는 물론 상의에도 아침이슬이 스며들어 얼마 후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반시간이 채 못 되어 다다른 834봉에서 폐광터로 내려섰다 차돌들이 흩어져 있는 작은 봉우리를 오르는데 과연 일기예보대로 큰 비가 내릴까 의심이 갈 정도로 해가 쨍쨍 내리쬐었습니다. 속살이 해맑은 차돌을 보자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서 밤에 양손에 차돌을 쥐고 서로 부딪는 장난을 해 누가 더 밝은 불빛을 내는가 하고 시합을 했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전기 불을 본 제게는 마찰로 생기는 불빛이 마냥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9시33분 선황당재에서 10분여 깨끗하게 쪽 뻗은 낙엽송 밭을 오르다 산 중턱에서 짐을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덕산재를 출발해 얼마간은 짙은 안개로 산속의 새들과 매미들이 늦잠을 자고 있어서인지 조용했는데 안개가 걷히자 새들이 울어대고 날파리가 본격적으로 덤벼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7-8분을 쉰 후 다시 대간 길을 이어가다 25분 후에 853봉에 올라서 삼각점과 찢어진 깃발을 확인했습니다. 대덕산 방향으로 먼발치의 높은 봉우리를 안개가 휘둘러 감은 것만 간신히 보일 뿐 나무들이 앞을 가려 다른 산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마침 새들과 비행기가 경쟁을 하듯 큰 소리를 냈는데 다행히도 산 속에서는 청음과 소음의 다툼에서 자연의 청음이 기계음의 소음을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10시42분 부항령 임도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853봉에서 낙엽이 깔린 편안한 길과 앞을 막는 풀숲의 길을 번갈아 걸으며 부항령으로 내려서자 오른 쪽으로 삼도봉 터널입구로 내려서는 길이 나있고 고개 밑의 터널을 지나는 차도가 나무사이로 간간이 보였습니다. 20분 가까이 쉬면서 양말을 벗어 짜내고 방울토마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와 산행기를 참고로 백수리산까지의 코스를 점검해 묵묘를 우회하기로 하고 11시5분 백수리봉으로 출발했습니다.
부항령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 25분후에 묵묘를 우회하는 묘지 바로 위의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앞 봉우리가 묵묘 지점으로 보여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올랐는데 25분간을 쉬지 않고 올라 갈림길에서 우회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기운을 빼는 곰같이 미련한 짓을 했다 싶었지만, 묵묘지점에 오르자 무풍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고 또 그동안 곰같이 살아왔어도 큰 탈 없이 살아왔기에 이 봉우리에 곰같이 오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28분 해발 1,034미터의 백수리산에 올라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백수리산에 오르는 중 지난 2년간 제가 맡은 한 친목산악회에서 총무를 맡아 궂은일을 마다않고 같이 일 해온 여성회원 한 분이 전화를 해왔는데 감이 안 좋아 제대로 통화를 못했습니다. 묵묘에서 4-5분간 경사 길로 내려서자 그 다음부터 백수리산까지는 오르내림이 편안한 길이 계속되었습니다. 묵묘를 우회하는 길과 다시 만난 후 몇 곳의 암릉 길을 지나 헬기장이 들어서있는 백수리산에 올라서 점심을 들기 시작하자 일기예보의 적중도를 높이려는 듯 그동안 참아 왔던 비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14분을 쉰 후 백수리산을 출발해 북서쪽으로 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섰습니다. 암릉 길을 지나 오른 쪽이 급경사인 한 바위에 다다르자 비는 멈추었으나 안개가 가시지 않아 아무것도 조망되지 않았으며 번개는 보이지 않고 공포의 천둥소리만 들려왔습니다.
14시14분 1,171봉을 지났습니다.
20분전에 올라선 전망지점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돌리는 동안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해 5분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삼각점에서 내려서 평원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를 건너는 동안 넓은 초원이 한 눈에 들어왔고 무풍 쪽으로 골짜기를 꽉 메운 운해가 장관이었습니다. 전망지점에서 제대로 쉬지를 못한 채 몇 개의 봉우리를 옆 질러 산행을 계속해 많이 지친 듯싶었기에, 15시6분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10분여 휴식을 취했습니다.
15시59분 해발 1,176미터의 삼도봉에 올라섰습니다.
삼도봉에 500미터 못 미친 안부에서 해인산장에 전화를 걸어 하루 밤을 예약하고, 오전에 전화를 준 여성사장분과 통화해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삼도봉은 경북 금릉(지금은 김천 시로 통합)과 전북 무주, 그리고 충북 영동의 삼도 땅이 한 자리에 만나는 곳으로 이 봉우리에 3개 군의 군수와 문화원장들이 합동으로 커다란 삼도봉대화합기념탑을 세웠는데 3개 군의 군민뿐만 아니라 3개도의 도민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과연 무엇일까 찾아내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밑의 헬기장에서 2001년 여름에 올랐던 민주지산을 거쳐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이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16시26분 삼마골재로 내려서 대간 종주를 마치고 삼막골을 따라 해인리로 하산했습니다.
집을 떠날 때에는 반대쪽의 물한리로 내려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각호산-민주지산-삼도봉 능선종주를 먼저하고 삼도봉-화주봉-우두령 대간을 뛸 생각이었는데 호우주의보가 발령된다하여 포기하고 대간 길만 종주하고자 해인리로 하산했습니다. 풀숲을 헤쳐 길을 찾아 제대로 들어서자 돌 가닥 길이 계속되어 하산 길이 고됐습니다. 삼마골재에서 20분을 내려서자 계곡에서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그 곳에서 다시 50분을 힘들게 걸어 해인산장에 다다랐습니다.
17시35분 해인산장에서 9시간 20분의 긴 산행을 마쳤습니다.
비에 젖은 옷들을 모두 벗어 손빨래를 한 다음 세탁기로 탈수해 다음 산행에 대비했습니다.
주인장과 인사를 나눈 후 맥주 2병을 시켜놓고 이런 저런 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 이외에도 영동에서 함께 온 두 가족이 이 산장에 머물러 주인분이 바빴습니다. 많은 산객들 중 현실을 등지고 산에만 몰두해 생활이 엉망인 분들이 꽤 있다는데 중학생 때부터 암벽등반을 해온 분들 중 이토록 훌륭하게 산장을 꾸려나가는 분들도 흔치 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산을 좋아하는 분이 이렇게 산장을 차려 산을 아끼는 분들을 손님으로 모시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럽게 보였습니다. 물론 건물에 상당액을 투자했을 터라 손님이 어느 정도 차지 않는 다면 산장운영도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덕산재 초입에 해인산장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운 홍보에 더하여 실속 있는 가격에 친절한 서비스가 이 산장에 머물렀던 분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기에 걱정할 일이 아닐 듯싶었습니다.
정년을 넘긴 분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9시간 넘게 대간 길을 걸으며 아무도 만나지 못하다가 여기 해인산장에서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분을 만나고 나니 기쁘고 반가워 이 글을 남깁니다.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백두대간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종주기11(우두령-궤방령) (0) | 2007.01.03 |
---|---|
백두대간 종주기10(삼마골재-우두령)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8(빼재-덕산재)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7(삿갓재-빼재)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6(육십령-삿갓재) (0) | 200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