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10(삼마골재-우두령)

시인마뇽 2007. 1. 3. 09:12

                                                 백두대간종주기10


                                 *대간구간:삼마골재-밀목재-화주봉-우두령

                                 *산행일자:2005. 8. 21일

                                 *소재지  :충북영동/경북김천

                                 *산높이  :화주봉1,207미터

                                 *산행코스:우두령-화주봉-밀목재-삼마골재-물한리

                                 *산행시간:11시24분-18시14분(6시간50분)

                                 *동행      :나홀로


  처서를 하루 앞둔 어제는 대간 길의 새들과 매미들이 제우스신에 감쪽같이 속아 마지막 여름을 제대로 노래하지 못한 아쉬운 하루였습니다. 오후에 천둥번개를 수반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이번 대간종주도 구질 맞겠구나 생각했는데 제우스신이 하루 종일 구름으로 태양만 가렸을 뿐 더 이상 비를 뿌리는 심술을 부리지 않아 생각지도 않게 최적의 날씨 속에서 여름산행을 즐겼습니다. 산자락을 덮은 짙은 구름이 때때로 천 미터가 넘는 능선까지 바람에 밀려 올라와 온 몸으로 습도를 읽어내는 새들과 매미들이 비가 올 것으로 잘못 판단, 노래를 멈추고 숲 속으로 숨어 들어가 대간 길이 쥐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삼마골재-화주봉-우두령의 대간 구간을 역순으로 밟은 어제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고 구름이 하늘을 덮어 땡볕을 피할 수 있었으며 산행시간도 짧아 모처럼 편안하게 대간 종주를 즐겼습니다. 지난 금요일 해인산장에서 우두령까지 대간길을 종주하고자 아침 일찍 서두르다가 이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고 천둥번개까지 친다는 텔레비전의 일기예보를 보고 나서 대간 종주를 포기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기에, 어제 다시 삼마골재-화주봉-우두령 구간의 종주 길에 나섰는데 날씨가 한 부주해 어렵지 않게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11시24분 우두령에서 남쪽으로 난 대간 길에 들어섰습니다.

황간에서 지난 토요일에 탔던 택시를 불러 우두령으로 이동하는 중 칠십 가까운 기사분이 6.25때 노근리에서 살았던 양민이 떼죽음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양민을 공산군으로 잘못알고  미군이 노근리주민들을 무참하게 죽였다는 것이 주 내용인데, 이분은 공산군은 공산군대로, 미군은 미군대로 적을 찾느라 혈안이었고 이 와중에 진짜배기는 다 도망가고 양쪽으로부터 애꿎은 주민들만 죽음을 당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두령에서 815봉까지 산 오름은 비교적 경사가 급해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참새만한 예쁘장한 새가 저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길옆에 서있는 나무줄기를 기어오르고 있어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날개달린 새는 날기만 하지 다람쥐처럼 기어오르지는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신기했습니다.


  12시21분 헬기장의 1067봉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새들이 울지 않고 매미도 숨죽이고 있어 일기예보대로 머지않아 비가 뿌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최근 여덟 번의 대간 종주 중 단 두 번만 날이 개여 우중산행에 상당히 익숙해졌기에 큰 걱정은 안 됐지만 비를 맞고 나면 무좀이 성해지고 온 몸이 근질근질해 구질맞 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13시8분 해발1,207미터의 화주봉에 올랐습니다.

석교산으로도 불리는 화주봉은 막힘이 없는 높은 봉우리여서 좋은 전망처로 알려졌는데 구름이 산자락을 덮어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김천 쪽에서 구름을 몰고 온 바람이 계곡물 소리도 함께 실어와 새들과 매미들이 휴업 중인 여름 산의 적막을 깼습니다. 화주봉에서 우두령까지 하산 길은 1시간코스인데 그 반대방향으로 오르는데  1시간 반이나 걸려 쉬지 않고 바로 1175봉으로 향했습니다.


  13시47분 지도상에 경사가 급해 위험하다고 표기된 암릉 길을 올라 1175봉에 다다르자 편히 앉아 쉴 만한 넓은 바위가 있어 짐을 내려놓고 푹 쉬었습니다. 오름길은 로프가 걸려있고 급경사가 아니어서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새들과 매미들이 숨 죽인지 오래됐는데 비가 오지 않아 혹시나 날씨를 핑계 삼아 하루를 푹 쉬겠다는 뜻이 아닌지 궁금했고, 구름 속에 가린 봉우리들과 이 봉우리들을 이어주는 능선의 실루엣이 간간히 제 모습을 드러내  반가웠으며, 바위에 내버려진 참외껍질이 한 떼의 산군들이 이곳에서 쉬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려주어 씁쓰레했습니다.


  서너 개의 나지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옆 지르자 긴 풀숲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25분 넘게 계속된 풀숲 길을 헤치며 나가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언제 잠자고 있는 뱀을 밟을지 모르는 일이고 쐬기에 쏘일지도 몰라 키를 넘는 풀숲을 지나는 시간은 공포의 시간이었는데 김천시에서 세운 안내판이 두려움의 도를 더해 주었습니다. 폐광지역인 이곳은 땅이 꺼질 위험스런 곳이니 5미터 이상 간격을 두고 걸으라는 내용을 보고 자칫 졸지객사를 하는 것이 아닌 가해서 섬뜩 했습니다. 길고 긴 풀숲길이 끝나자 편안한 길이 이어져 20분을 더 걸어 15시에 능선 길에서 쉬면서 목을 축였습니다.


  15시 27분 밀목재를 지났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새들이 조금씩 소리를 내 날씨를 탐색하는 듯싶었습니다. 밀목재에서 1124봉까지 반시간 넘게 산 오름이 계속되었고 오름 새도 급해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밀목재를 조금 지나 한 봉우리를 지나는 중 2-30미터 가량 떨어진 숲 속에서 짐승의 괴성이 들려와 멧돼지가 아닌 가해서 겁이 났지만 조용히 지나가자 괴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들도 노래를 멈추었고 온 산이 적막 속에 빠져버려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6시2분 1124봉의 삼각점을 확인하고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표지목이 삼도봉은 1.95키로가 남아 있고 밀목재에서 1.02키로를 걸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1124봉에서 삼마골재로 내려서는 길도 생각보다 길어 20분 넘게 걸었는데 사이사이로 맞은편의 석기봉과 민주지산이 얼굴을 내보여 인사를 해왔습니다만, 사흘 전에 오른 삼도봉만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천 미터가 넘는 능선 길에 뿌리를 내린 질경이의 끈질긴 삶이 대간을 종주하는 제게 참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16시29분 삼마골재로 내려서 사흘 전에 묵었던 해인산장 주인분에 전화를 걸어 비로 연기한 삼마골재-화주봉-우두령 구간종주를 성공리에 끝냈음을 알렸습니다. 삼도봉에서 내려오는 한 떼의 젊은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른쪽으로 난 황룡사 방향의 하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를 만나지 않았는데 하산 길이 엄청 질펀한 것으로 보아 그제 비가 많이 내린 듯 해 미니미골의 계곡물이 넘치지 않았을까 신경이 쓰였습니다.


  18시14분 물한리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 졌습니다.

비가 조금만 더 왔어도 건너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꽉 찬 계곡물을 몇 번이고 건너 다다른 한 곳에서 잠시 쉬었는데 영동군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명선거를 기원하고자 쌓아놓은 돌탑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물한리 마을 어귀에 세워진 큰 돌에 새겨진 글대로 민주지산 일대에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의 16%가 자생하고 있고 계곡의 수량도 풍부하고 깨끗해  물한리 계곡이 자연환경명소 100선중 10걸로 선정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들과 매미들이 울지 않아 일기예보대로 오후에 큰 비가 오리라 예상을 했는데 구름만 잔뜩 끼고 비가 내리지 않아 산행을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습니다. 25분 넘는 풀 숲길을 헤쳐 나갈 때는 혹시 뱀이 나타날 까 긴장을 했지만 나머지 코스는 구름 속을 드나들며 걸었기에 어제 하루산행이 편안했습니다. 제우스신의 구름놀음에 속지 않고 새들과 매미들이 예전처럼 울어댔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은 같이 살아온 식구가 빠져 나간 것처럼 허전함을 산속에서 가슴속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