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
*산행일자:2004년1월18일
*소재지 :충북 영동
*산높이 :가성산710미터/눌의산743미터
*산행코스: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
*산행시간:10시30분-15시(4시간30분)
*동행 :늘보산악회
어제는 뜻하지 않게 백두대간을 밟았습니다.
충북 영동의 궤방령에서 출발하여 가성산과 눌의산을 거쳐 추풍령으로 하산하는 짧은 구간의 백두대간을 탔습니다. 지난 주 설악으로 동계훈련을 다녀온 승진이와 강씨봉-국망봉을 오를 계획이었으나 발에 물집이 생겨 오랜 시간을 걷기에 불편하다하여 저 혼자 늘봄산악회를 따라 가성산-눌의산을 올랐습니다. 두 산 모두 처음 듣는 산이라 인터넷에 검색해봤으나 눌의산만 간단히 소개되어 있을 뿐 가성산은 찾아볼 수 없어 궁금했었는데 버스 안에서 지도를 받아보고서야 산행지가 백두대간임을 알았습니다. 같이 오르는 분들은 벌써부터 백두대간을 밟아온 터라 제 주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10시30분 양재 역을 출발한 버스가 3시간 만에 해발310미터의 궤방령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은 흐렸지만 춥지 않은 날씨여서 산행하기에는 좋았습니다. 궤방령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르면 작년 9월 오른 황악산에 다다르게 되나, 이번에는 그 반대방향으로 올라 능선산행을 계속했습니다. 능선을 종주하는 대부분의 산행이 그렇듯이 어제도 몇 번이고 봉우리를 오르내렸습니다.
11시20분 산행시작 50분 만에 어느 산소 앞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궤방령에서 이 곳까지 간혹 길을 덮은 눈이 더러 더러 있었지만 겨울 산이라면 여느 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정도여서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잠시 쉬는 동안 준비해간 식수로 목을 축인 후 바로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능선 오름이 계속되었지만 본격적인 눈길이 전개되어 힘든 줄 모르고 꽤나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12시 정각 어느 분에 여쭤보니 이곳이 가성산이라 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디지털 카메라를 작동시켜 주변의 설경을 옮겨 담았습니다. 따끈한 커피가 일미였습니다.
12시 15분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해발 710미터의 가성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앞에서 어느 분이 가성산 정상을 잘못 알려 줘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한 셈입니다. 표지석 옆에 배낭을 세워 놓고 여기 가성산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남겼습니다. 설경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작년 3월 가지산에서 설상 산행을 했을 때의 환희를 오랜만에 다시 맛보았습니다. 하산 길의 내리받이가 만만치 않아 보여 아이젠을 찼습니다. 궤방령에서 출발 시에는 선두에 섰으나 그 새 몇 분들에 추월당해 중위로 쳐졌습니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평탄한 길이 얼마고 계속되었습니다. 비로소 흰 눈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수 있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백의 깨끗한 눈을 밟노라면 어느 새인가 먼 옛날의 추억 속을 걷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도시에서 만나는 눈은 그로 인한 고통만 연상케 하여 반가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지만 어렸을 때 시골에서 맞은 눈이 다정다감했듯이 산 속의 눈이 그러합니다. 눈에 대한 찬사로 수필가 김진섭님의 “백설부”만한 것이 또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공중에서 난무하는 백설들의 무질서가 끝나고 이 땅에 자리 잡아 육면체의 결정으로 변화하는 그들의 운동을 관찰하노라면 최고도의 무질서가 바로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고 있음을 배웁니다. 그런데 작금의 이 나라의 혼란은 과연 어떤 질서를 잉태하고 있는지 걱정입니다. 스스로 정화하는 자연과는 달리 인간사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시 45분 해발 743미터의 눌의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에 올라서기 약 30분전에 또 다른 산소 앞에서 두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준비해간 절편과 여성총무 분이 건네준 정성어린 빵으로 요기를 한 후 정상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정상에서 일행 분의 도움으로 증명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가슴 뿌듯했습니다. 가성산 너머로 황악산이 선명하게 보였고, 삼도봉-민주지산의 능선인 듯싶은 연봉들이 아주 먼발치에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13시 50분 추풍령 행 하산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설경도 그 아름다움이 내려가는 정도만큼 줄어들 것이기에 미리 미리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아이젠을 차지 않은 60대의 두 분이 하산 길을 양보해주셔서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도구의 도움 없이 천천히 내려가시는 그 분들의 산행자세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급한 경사길이 끝나 아이젠을 벗어들고 속도를 내어 뛰었습니다.
15시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4시간 반 동안 11킬로를 걸었으니 산행속도가 시속 2.5키로인 셈인데 눈길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괜찮은 기록이다 생각했는데 저보다 먼저 하산하여 버스에 오른 분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추풍령에 다 내려오니 눈발이 드세졌습니다. 기왕에 내릴 눈이라면 산행 중에 내렸다면 설중등반을 즐겼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늘보산악회가 속도를 못내는 초보자들을 배려해 백두대간의 산행 길이와 시간을 정한다는 옆자리 분의 친절한 안내에 내년부터 오르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내친 김에 이 분들을 따라서 백두대간을 해볼까하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모든 이들이 백두대간종주를 꿈꾸고 있으며, 저 또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말입니다. 백두대간은 우리 국토의 척추입니다. 우리 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너도나도 끊임없이 밟는다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유행이 아닙니다. 백두대간 종주 역시 일시적인 유행이어서는 아니 되기에 백두대간의 종주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허가제가 도입되어야 이 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온전하게 유지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악인들은 다른 정맥이나 지맥부터 오르고 백두대간종주로 마무리하는 자세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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