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14
*대간구간:큰재-백학산-지기재
*산행일자:2005. 8. 6일
*소재지 :경북상주
*산높이 :백학산615미터
*산행코스:큰재-회룡재-개터재-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
*산행시간:9시39분-18시30분(8시간51분)
*동행 :나홀로
이제까지 천둥과 번개가 어제처럼 두려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 무렵 반시간을 훨씬 넘는 동안 바로 제 머리위에서 천둥이 계속해 쳐대는데 폭발할 듯한 굉음으로 자지러질 것 같았습니다. 벼락 맞기 십상이라는 고목들이 즐비한 대간 길을 쏟아 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혼자 걷느라 번쩍거리는 번개만으로도 가슴을 조였는데 곧바로 뒤이은 천둥의 폭파음으로 소스라치게 놀랬고 무서웠습니다. 이러다가 산속에서 벼락을 맞아 졸지에 횡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어 번개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스틱을 멀리 던져버리고 휴대폰이 들어 있는 배낭을 후딱 벗어 내동기친 후 땅바닥에 바짝 엎드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벼락 맞는 사람은 10명 정도라 하니 평생 벼락 맞을 확률은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적은데 어제는 그 확률이 마치 1이라도 된 듯이 겁나고 무서웠던 것은 천둥번개가 치는데도 산속에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속을 계속해 걸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자 그 다음부터는 천둥과 번개를 자연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사실 천둥은 하나도 무서워 할 것이 못됩니다. 천둥소리는 이미 다른 곳에서 일어난 번개가 광속과 음속의 차이로 뒤늦게 들리는 것이기에 그 소리가 아무리 커도 오직 소리일 뿐으로 오히려 벼락을 면한 확실한 증거인데도 그 굉음이 무섭고 떨렸으며, 그래서 그동안 저질러온 작은 잘못들을 모아서 한번에 벌을 받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경북 상주의 대간 길인 큰재-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 구간을 종주했습니다.
상주시에서 옥산까지는 아침8시50분에 출발하는 김천행 직행버스로, 옥산에서 큰재까지는 택시로 옮겼는데 버스비가1,400원, 택시비가 6,000원 들었습니다.
9시39분 큰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큰재를 알리는 표지석이나 표지목 대신에 세워진 백두대간안내도에 대간 길이 남한684키로, 북한315키로, 상주69키로로 적혀 있어 북한의 대간 길은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키를 넘는 풀숲으로 변한 폐교된 옥산초교의 인성분교를 지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대간 꾼들이 인성분교에서 야영을 하는 대간 꾼들이 꽤 있다는데 저 같으면 을씨년스럽고 황량해보여 선 뜻 내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10시57분 회룡재에서 1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큰재에서 산길로 들어서 동네 뒷산 정도의 낮은 능선을 편안하게 걸었는데도 등 뒤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큰재 출발 30분 후 내려선 시멘트 길을 따라 2분가량 전진하다 오른 쪽으로 난 산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회룡재에 다다르기 까지 길섶의 잡목과 산딸기 숲을 헤쳐 나가느라 산행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넘나든 흔적이 보이지 않는 회룡재 고개에서 목을 축인 후 땀에 흠뻑 젖은 런닝셔츠를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남방만 입고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12시 개터재에서 조금 올라선 능선 길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면서 20분을 쉬었습니다.
회룡재 출발 30여분 후에 무명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하면서 작다란 너덜지대를 지났는데 내리쬐는 햇빛이 돌들을 달구어 잠시 지나기도 후끈거렸습니다. 그나마 길 아래 너덜지대의 돌들을 칡넝쿨이 뒤덮어 열기를 덜어주었습니다. 개터재로 내려서자 왼쪽 밑으로 동네와 학교가 보였습니다. 회룡재와는 달리 사람들이 넘나드는 십자안부의 고개마루 개터재에는 질경이들이 수북하게 길을 덮고 있었습니다.
12시50분 30분을 걷고 나서 더위에 지쳐 능선에서 다시 쉬었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경사가 완만한 산길을 20여분 걸어 512봉에 올라서자 약하나마 바람이 불어와 시원했는데 그도 잠시였습니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길은 편했지만 남중한 태양이 내리쬐는 햇빛의 열기로 80키로가 넘는 몸을 계속해 옮기기에 너무 지쳐 쉬어가기 편안한 그늘을 잡아 짐을 벗어 놓고 목을 축였습니다. 한 낮의 찌는 더위를 잠시 피해 새들도 휴식을 취한 듯 조용했습니다.
13시44분 윗왕실재 위에 놓여진 생태다리(Eco-Bridge)를 건넜습니다.
산 속의 동물들이 이산 저산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도록 고개 마루에 생태다리를 놓는 것이 최근의 일인 듯싶은 것은 속리산의 눌재에서도, 구룡산의 도래기재에서도 생태다리공사가 한창인 것을 보아서입니다. 생태다리 밑으로는 차가 충분히 다닐 만한 넓은 임도가 나 있었습니다. 다리건너 나무그늘아래 짐을 풀고 꼬마토마토를 들어 백학산의 산 오름에 대비했습니다.
15시23분 해발615미터의 백학산을 올라서자 상주시청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저를 반겼습니다. 윗왕실재에서 정상까지 1시간 거리인데 한번에 오르지 못하고 백화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묘지를 조금 지난 곳에서 한 번 쉬었다 오르느라 반시간 가량 더 걸렸습니다. 이내 오른 쪽으로 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 임도를 고르고 있는 불도저 한대를 만났습니다.
15시55분 임도 바로 아래 계곡에서 등 멱을 했습니다.
계곡물을 페트병에 채운 후 오른 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서 대간 종주를 이어 갔습니다.
햇살도 약해지고 등 멱을 해서인지 다시 원기가 되살아나 이번에는 한 시간 가량 산길을 걸어 왼쪽으로 조금 더 가면 논이 나오는 삼거리고개마루에 다다랐습니다.
16시58분 발을 보살피고자 삼거리고개마루에서 쉬었습니다.
왼발에 무좀이 생겨 걷기가 불편해 발가락사이에 티슈를 끼어 넣었습니다. 마른 하늘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천둥소리가 머지않아 소나기가 쏟아질 것을 예고했습니다.
17시12분 삼거리고개마루를 출발했습니다.
논밭을 지나 산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키를 넘는 엉겅퀴 등의 잡초들의 풀숲이 길을 덮고 있어 이를 헤쳐 나가느라 짜증이 많이 났는데 개머리재의 과수원을 지나며 살갗 고운 연초록의 사과를 다시 보자 짜증이 싹 가셨습니다. 출발 20분 만에 포장도로인 개머리재를 건너 포도밭 옆을 지나 산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그새 그처럼 극성을 부렸던 햇살도 약해졌고 편안한 길이 계속되어 걸을 만 했습니다.
17시45분 산소 옆을 지나는 중 후드득 비 뿌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쉬어가겠다는 생각을 접고 비가리개로 배낭을 가리고 비옷을 꺼내 우중산행에 대비했는데 정작 겁이 난 것은 장대비가 아니고 끊임없이 번쩍이는 번개와 지축을 흔드는 천둥의 굉음이었습니다. 산 속에 비를 가릴만한 곳도 없고 낮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부지런히 걸어 빨리 지기재에 닿아야 과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천둥번개가 쳐대어 놀랬고 겁이 났습니다. 몇 번이나 스틱과 배낭을 저 만치 내 팽개치고 저 혼자 땅에 바짝 엎드려 마음속으로 아무 일도 없기를 빌곤 했습니다.
18시30분 지기재에 도착, 9시간의 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114에 문의해 택시를 부르고자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별 수 없이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청했습니다. 마침 상주로 가는 승합차가 멈춰서 19시경 상주에 도착, 목욕을 한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산에서 비를 꼬박 맞아 제가 앉았던 자리가 물기로 축축해졌는데도 싫은 기색을 전혀 내지 않고 저를 상주까지 태워준 젊은 승합차 주인분이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여주까지 내륙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천둥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퍼 부어 버스가 제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산속에서 급작스런 기상변화로 뜻하지 않게 위험에 처할 수도 있음을 체험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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