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추풍령-작점고개-용문산-국수봉-큰재
*산행일자:2005. 8.10일
*소재지 :충북영동/경북상주/경북김천
*산높이 :국수봉763미터/용문산710미터/무좌골산474미터/금산370미터
*산행코스:추풍령-사기점고개-작점고개-갈현고개-용문산-국수봉-큰재
*산행시간:7시50분-18시(10시간10분)
*동행 :나홀로
추풍령은 노래 말처럼 구름이 자고가고 바람이 쉬어갈 만큼 그리 높은 고개가 아닙니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해발 221미터의 추풍령에서 정작 쉬어가는 것은 구름과 바람이 아니라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차들입니다. 조선시대 경상도와 한양을 연결짓는 백두대간상의 9개의 고개 중 가장 한가했던 추풍령이 1905년 개설된 경부선과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가 서울-부산의 중간지점인 이 고개를 지나면서 넘나드는 차들과 쉬어가는 승객들로 시끌벅적하고 부산하기 이를 데 없어졌습니다.
어제는 백두대간 종주를 충북 영동의 추풍령에서 시작해 경북 상주의 큰재에서 마쳤습니다. 구름이 자고가고 바람이 쉬어간다는 노래 가사가 비문으로 새겨진 추풍령 표지석을 이번 종주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참을 찾았습니다. 고개 마루에 세워진 표지석이 도로공사로 어딘가로 들어내졌다는 당마루 동네분의 말씀을 듣고 나자, 벌써부터 수많은 차들로 부산한 추풍령은 구름과 바람을 벗하며 쉬엄쉬엄 넘어가는 한가로운 고개가 아닌데 표지석이 너무 오래 그 자리를 지켰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7시50분 당마루의 힐튼장 옆길의 비닐 밭이 끝나는 곳에서 들머리를 찾아 금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밤 11시에 서울역을 출발해 새벽 1시30분 영동역에 도착, 역사에서 책과 더불어 2시간 반을 보냈습니다. 4시 조금 넘어 목욕탕을 들러 잠시 눈을 붙였다가 6시15분에 추풍령행 시내버스에 올라타 영동을 출발했습니다. 추풍령에서 하차하여 고개마루의 표지석을 찾아 헤매다 간신히 들머리를 찾아 산행준비를 끝내고 나니 어느새 50여분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8시14분 해발370미터의 나지막한 금산에 올랐습니다.
들머리를 막 지나자 희 뽀얀 줄기의 나무들이 곧게 뻗어 있는 모습이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야생화보다 더욱 식별하기 힘든 것이 나무일 듯싶은 것은 줄기와 잎파랑이의 차이가 꽃 모양의 다름보다 식별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왼쪽으로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낭떠러지가 보였는데, 이 낭떠러지 밑에 채석장이 들어서 있어 도로공사에 쓰이는 흙과 돌을 얻고자 금산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었습니다.
9시7분 매봉재에서 첫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금산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와 편안한 길을 걷다가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속을 비웠습니다. 영동에서 들은 순대국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드디어 탈이 나 뱃속을 뒤집어 놓기 시작해 별 수 없이 한적한 곳을 찾아 카타르시스를 했습니다. 날이 흐려오고 왼쪽 산 밑의 동네에서 공지사항을 알리는 스피커소리가 다른 때보다 크게 들려와 머지않아 비가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10여분을 쉰 후 들머리에서 찬 스패츠를 풀고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매봉재 출발 1시간 후에 436봉을 지났습니다. 추풍령에서 이곳까지 4.3키로의 산길을 2시간에 걸었으니 이 속도대로라면 저녁 6시안에 큰재에 다다를 것 같았습니다.
10시55분 난함산의 KBS송신소로 오르는 시멘트 차로를 만나 가까운 그늘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지도를 보니 사기점고개는 25분전에 지나쳤는데 산에서 내려와 임도와 만난 세 갈래길 분기점이 사기점고개였습니다. 사기점고개에 이르자 전망이 좋아 오른 쪽의 난함산이 제대로 조망되었습니다. 사기점고개에서 20분 남짓 걸어 다다른 이 곳에서 20분을 쉬어 비 오기 직전의 무더위로 지친 몸을 달랬습니다.
12시16분 작점고개의 능치쉼터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시멘트차로를 건너 들어선 난함산을 비껴서 봉우리에 올라서자 예상대로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양말이 젖는 것을 막고자 서둘러 비닐봉지로 발을 쌓은 다음 우의를 입고 비 가리개로 배낭을 가려 나름대로 철저히 우중산행에 대비한 후 난함산을 옆 질러 만난 시멘트차로를 따라 10여분을 걸어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어 10여분을 다시 걸어 충북 영동의 추풍면과 경북 김천의 어모면을 경계 짓는 작점고개로 내려섰습니다. 2차선의 아스팔트 차로를 건너 팔각정의 능치쉼터에 짐을 풀고 절편을 꺼내들었습니다. 줄기차게 비가 내리는 속에 정자마루에 등을 눕혀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을 편안히 쉬었습니다. 해와 비를 가리는 팔각정의 능치쉼터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에는 최고의 쉼터로, 오른 쪽으로 얼마고 내려가면 신애원 농장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어 하루 밤을 묵어가도 좋을 만한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12시 50분 계단이 설치된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비가 계속해 내리는 가운데 탐색전을 벌리듯 약하게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소리가 굉음으로 변했습니다. 작점고개 출발 40분이 조금 못되어 해발 474미터의 무좌골산에 올랐다 갈현고개로 내려섰습니다.
13시57분 기도터 바위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천둥번개와 억수같이 쏟아 붓는 비로 목원대에서 걸어놓은 표지판으로 갈현고개의 위치를 확인한 후 쉬지 않고 용문산으로 올랐습니다. 20분 가까이 올라 다다른 기도터 바위 옆에 검은 비닐을 씌운 가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용문산기도원의 산상 기도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15시4분 추풍령에서 14.2키로를, 작점고개에서 5.8키로를 걸어올라 해발710미터의 용문산 정상에 섰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 중간쯤의 산 중턱에서 잠시 쉬어 에너지를 비축했는데도 산마루에 올라서기는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염려했던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빗줄기만 계속되어 땡볕의 산길을 걷기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널따란 헬기장을 막 지나 삼각점을 발견하고 이곳이 용문산정상임을 알아챘습니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나 표지목은 없었지만 오른 쪽 산 밑에서 들려오는 목사분의 설교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 여기가 기도원이 들어 서있는 용문산의 정상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16시28분 이번 구간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 763미터의 국수봉에 올라섰습니다.
용문산정상에서 10분가량 내리막길로 내려갔다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는 편안한 길을 얼마고 걸었습니다. 지도상에는 용문산에서 국수봉까지 1시간 거리로 적혀 있지만 이번산행에서 마지막으로 힘든 산 오름이 될 것 같아 빗속에서도 걸터앉기 좋은 바위를 찾아 중간에 10분 가까이 쉬었다 15시 35분경 국수봉으로 향했습니다. 방금 전 용문산에서 경험했던 바라 바로 국수봉이 나타나기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저 봉우리려니 하고 부지런히 올랐는데 아님을 확인하기를 몇 번이고 계속하자 지친 것도 그러려니와 나중에는 질려버려 더욱 힘들었습니다. 산 오름 중 비가 멎고 천둥번개도 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국수봉에서 조금 벗어난 조망대에서 상주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데 안개가 시야를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한 저를 흰나비와 노랑꽃의 산나리가 위로해 주었었습니다.
16시37분 국수봉에서 급경사의 길을 따라 하산을 했습니다.
1시간 38분이 걸린다는 지도의 안내가 틀리지 않다면 저녁 6시안에 큰재에 닿기는 요망한 일이라 생각되어 하산속도를 냈습니다. 잡목과 풀들이 뒤엉킨 몇 곳을 지나느라 시간을 많이 썼기에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안개가 가셨다 다시 끼고 비도 그쳤다 다시 오기를 몇 번이고 반복되는 가운데 어둠이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자 불안해져 더욱 속도를 냈습니다. 아무리 하산 길이라 해도 1시간을 훨씬 넘게 쉬지 않고 걷기가 쉽지 않아 양 어깨에 전해진 배낭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졌습니다.
17시 40분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산길을 지났습니다.
조금 지나 산소를 만나자 살아생전 그토록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도 죽어서 관속에서 등을 눕히고 편히 쉬고 있는데 저 고사목들은 무슨 한이 남아 있어 눕지 못하는 것일 까 안타깝고 궁금했습니다.
18시 큰재에 다다라 10시간 10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큰재에 도착한 것은 비가 와서 쉬는 시간을 줄였고 지난 번 화령재-갈령고개 종주산행 중 카메라를 어딘가에 놓고 와 그 후로는 사진을 찍지 못해 산행이 빨라져 예정대로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고도계마저 약이 떨어져 작동이 안 되어 불편했습니다만, 이것저것 챙길 것이 없기에 산행만은 제 시간에 끝냈습니다.
옥산리에서 택시가 오기까지 짬을 내어 길옆의 폐교된 인성분교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상주시청에서 교육청으로부터 사들인 학교 건물은 아직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을씨년스럽게 보였습니다. 집이든 학교든 사람의 손길이 가야 그 건물이 살아 숨쉬는데 그렇지 못하면 자연 황폐화되고 그래서 을씨년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급속히 진행된 도시화로 벽촌의 작은 학교가 제 역할을 다 했듯이 얼마 후면 저 역시 제 일이 끝날 것입니다. 일을 끝낸 저의 자화상이 저 학교처럼 남들에 몰골사납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부터라도 제 모습을 잘 가꾸어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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