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지기재-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
*산행일자:2005. 8. 2일
*소재지 :경북상주
*산높이 :윤지미산538미터
*산행코스: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전위봉-윤지미산-화령재
*산행시간:9시40분-17시10분(7시간30분)
*동행 : 나홀로
어제는 해발 200-500미터대의 낮은 대간 길을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경북 상주의 대포리에서 모서를 넘는 지기재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신의터재를 거쳐 윤지미산을 오른 다음 화령재로 내려서기까지 모처럼 편안한 산행을 즐겼습니다. 이 구간의 대간 길은 낮은 지대이고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서인지 길섶에 십수기의 묘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백두대간은 산 사람에는 종주 길을 내주고 죽은 사람에는 명당자리를 내 주는가 봅니다. 어쩌면 대간 길 전부가 우리 조상들이 편히 등을 눕힐 수 있는 명당자리인데 다른 구간은 너무 높아 묘 자리로 쓰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도가 낮은 이 구간에 산소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9시40분 상주시 출발 40여분 만에 해발 200미터대의 낮은 고개마루인 지기재에서 하차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안내판에서 조금 내려와 오른 쪽의 포도밭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곧 바로 사과밭을 지났는데 사과나무에 열린 풋사과들의 연초록 피부색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이 사과들이 익지 않고 이대로 있으면 좋겠다고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해본 것은 깜박 잊고 카메라를 집에 두고 와 이 곱디고운 사과를 사진으로 남길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마을 어귀에서 오른 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서 십분 가까이 걷자 다시 시멘트 농로가 나타났습니다. 이 농로에서 표지리봉을 잠시 놓쳐 십분 가량 알바를 하다가 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제 길을 찾아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10시31분 암릉 길을 올라 다다른 능선에서 첫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이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서야 제대로 대간 길을 밟게 됩니다. 날씨가 무더워 경사도 완만하고 길이도 10여미터 정도로 짧은 슬라브의 암릉 길을 오르는데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오후 늦게 내린다는 비가 차라리 지금 퍼부어준다면 고맙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람 한 점 없는 찜통더위의 위세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도가 낮은 대간 길이 동네를 끼고 돌아서인지 송전탑을 지나기까지 여러 기의 묘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11시29분 지기재에서 4.6키로 떨어진 해발 280미터의 신의터재에 도착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 고개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끝내 전사한 의병장 김 준신선생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상주시에서 기념비로 표지석을 세웠고 이 주위를 쉼터로 꾸며 놓았습니다. 당시의 임금 선조의 무능에도 불구하고 왜군을 물리 칠 수 있었던 것은 육지에서의 지방 민초들의 끈질긴 의병활동과 바다에서의 불세출의 장군 이순신의 승전, 그리고 때 맞춰 수명을 다한 일본의 전범 풍신수길의 죽음이었다고 생각해온 제가 항상 궁금해 하는 것은 임란이 끝나고 37년 만에 발발한 병자호란 때에는 왜 의병이 궐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조선이 청나라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망한 주 원인이 왜란의 의병이 호란에서 이어지지 못해서였다면 조선 조정이 왜란 중 의병으로 죽어간 백성들과 그 후손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나자, 이 나라 정부에 6.25 때 희생된 분들과 그 후손들을 제대로 보살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싶어졌습니다.
11시40분 신의터재를 출발해 윤지미산으로 향했습니다.
찻길을 건너 밭길로 들어섰다 이내 오른 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소를 지날 때마다 햇빛을 가릴 나무들을 모두 쳐내 목뒤가 따가웠습니다. 다른 산처럼 대간 길에 어쩌다 산소가 보이면 이정표로 삼을 만해 반가웠는데 너무 자주 보이자 그 때마다 땡볕 길을 지나기가 짜증스러웠습니다.
12시 51분 어린 감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밭길을 지나자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바로 소나기로 변해 장대비가 쏟아 졌습니다. 잽싸게 비옷을 꺼내 입고 배낭을 비 가리개로 가린 후 잠시 숨을 고르는 중 비를 맞고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고 나서 매미는 비가 올 낌새만 있어도 노래를 멈추는 털이 있는 새들과는 다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며칠 전 남원의 고남산을 비를 맞으며 오를 때 매미소리를 듣지 못했음은 아마도 매미가 고도가 높은 곳에는 추워서 살기가 적당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13시43분 해발 538미터의 무지개산을 얼마 앞에 두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윤지미산으로 향했습니다. “산 그리고 사람들”의 GPS 측정치로는 지기재에서 이곳까지 8.6키로, 그리고 화령재까지 7.1키로 남았다하니 이번산행으로 총 15.7키로를 걷는 셈입니다.
14시 41분 300미터대의 무명봉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무지개산 어깨지점에서 이봉우리에 오르기 까지 200-400미터대의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렸는데 산길이 편안하고 비온 뒤끝이라 선선해 힘든 줄 모르고 한 시간을 걸었습니다. 잣나무와 낙엽송들이 이룬 숲이 막 목욕을 끝내서인지 그 색깔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15시31분 윤지미산 정상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중턱의 바위에서 잠시 쉬며 남은 떡을 마저 들어 요기를 하고 나자 얼마 전 제 옆을 쏜살같이 질주해 숲 속으로 도망친 동물이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토끼보다는 다리가 길고 등치도 조금 컸고, 멧돼지라면 그리 잽싸게 도망갈 놈이 아니고 생김새도 훨씬 준수했습니다. 아마도 고라니가 아닌 듯싶은데 카메라에 옮겨 담지 못해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15시52분 해발 538미터의 윤지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작은 돌무덤위의 작은 표지석이 500미터대의 아담한 윤지미산과 잘 어울렸는데 비를 가릴 목적으로 나뭇가지에 줄을 매어 쳐놓은 비닐카바는 이 산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산 밑에서 들려오는 라디오소리와 공사장의 기계소리도 이 산속의 청음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10분 가까이 급경사 길을 내려서자 완만한 하산 길이 이어졌습니다.
몇 기의 묘를 지나고, 들깨 밭과 인삼밭을 지나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당진-상주 고속도로를 내느라 공사가 한창이었고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대간 길의 나무들이 베어져 있었습니다.
17시10분 해발320미터의 화령재에 내려서 지기재-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 구간의 종주산행을 마치고 길 건너 팔각정으로 올라가 비를 피했습니다. 택시를 불러 화령으로 옮긴 후 상주로 가서 저녁 7시 반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고 나자 하루산행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지나갔습니다.
어제는 빗속의 산길을 걸으며 소리바다를 헤엄쳐 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도가 아주 낮은 편안한 길을 느긋하게 걸었기에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새소리, 매미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숲 속을 내달리는 어느 짐승의 뛰어가는 소리와 먼발치 골짜기를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 등이 듣기 좋았던 소리였다면, 공사장의 기계소리, 라디오 소리, 동네 어귀에 매워 둔 개들이 발악하는 소리와 천둥소리는 아니 들어도 좋은 소리였습니다.
소리란 물체가 진동했을 때 청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답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무엇이건 움직이면 그 움직임이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파동으로 우리 귀에 전해지기에 소리가 난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청음이든 소음이든 소리가 없는 세상은 이미 살아있는 세상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어떤 종류든 소리 없이는 살아갈 수 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리를 잘 듣고 즐기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소리를 듣고 그 새가 어떤 새인가를 알 수 있다면, 바람소리를 듣고 그 바람이 어떤 비를 몰고 오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면, 산속에서 먼발치의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어떤 짐승인가를 알 수 있다면 산행이 훨씬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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