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3(고기리-매요마을)

시인마뇽 2007. 1. 3. 08:31
                                          백두대간 종주기3

     

                  *대간구간:고기리-여원재-매요마을

                  *산행일자:2005. 7. 28일

                  *소재지  :전북 남원

                  *산높이  :고남산846미터/수정봉805미터

                  *산행코스:고기리-가재마을-수정봉-입망치-여원재-고남산-매요마을

                  *산행시간:7시-16시(9시간)

                  *동행      :나홀로

 


 

  퍽이나 단조로운 산행으로 어제 하루를 보냈습니다.

쏟아 붓는 장대비를 맞으며 하루 종일 솔밭 길을 걷다가 산행을 마쳤기에 산행기를 남기기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종주산행이었습니다. 시인 이 성부님처럼 백두대간 종주기를 한편의 시로 남길 수 있다면 고심할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제게는 어제처럼 단조로운 산행을 마치고 나면 어떻게 산행기를 써야 하나 난감했습니다. 제게는 산행기가 산행 중 관찰되는 작은 변화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적어가는 기록이기에 그렇습니다.


  새벽부터 아침식사를 하느라 수선을 떨었어도 노고단-만복대-고기리구간의 산행기를  정리해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올리느라 아침 늦게야 송학모텔을 나섰습니다. 산행기란 바로 바로 정리해야 현장의 생동감을 제대로 전할 수 있기에  산행기를 제때 쓰고자  인터넷이 설치된 방을 잡느라 만원을 추가 지불했습니다.


  아침7시 고기리-여원재-매요마을 구간의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모텔을 나서기 직전에 그제 스틱을 잠시 머문 간이정류소에 두고 왔음을 알고 나서 서둘러 정류소에 갔는데 고맙게도 스틱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새 그 정류소를 지나간 승객들이 몇 분은 있었을 터인데 남의 물건에 손을 안대는 이곳 분들의 정직함에 고개 숙여졌습니다. 정류소 맞은편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가재마을을 지나다  노치샘에서 백두대간을 뛴다는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옆 가게에서 일 만원에 민박하고 밥 한 끼를 무료로 대접받았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식사 두 끼를 포함해 5만원을 쓴 제가 느낀 것은 이제는 정보가 바로 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7시22분 노치샘을 출발해 수정봉으로 향했습니다.

81세의 할머니가 길을 잘못 든 저를 불러 세워 노치샘으로 안내해주시지 않았다면 초반부터 쓸데없는 발품을 팔 뻔 했습니다. 이제껏 가재마을을 지켜온 고송 4그루를 카메라에 담은 후 된비알을 치고 올라 25분 만에 주능선에 올라선 다음,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몇 개의 봉우리를 연이어 오르내렸습니다.


  8시29분 해발805미터의 수정봉에 올랐습니다.

일기예보대로 큰비가 내릴 것 같다는 예감을 갖게 하는 것은 짙은 구름과 서쪽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었습니다. 온 산이 소나무 밭인 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솔밭사이로 난 길의 길섶에 잡목이 없어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수정봉에서 아주 짧은 돌가닥 길을 지나 다시 솔밭사이로 난 길로 들어섰습니다.


  9시7분 해발 545미터의 안부인 입망치를 지났습니다.

소나무 밑에는 웬만한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야생화들도 볼 수 없어 황량했는데 입망치로 내려서는 중 드물게 둥굴레 군락지가 눈에 띄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오른 쪽 밑으로 밭이 보였고 그 밭 너머로 동네가 보였습니다. 입망치에서 다시 산을 올라 700미터대의 무명봉에 올라서는 중 상석이 제법 큰 산소를 지났는데 잡초가 무성한 채 방치되어 있어 여기 묻힌 분의 후손들이 욕들을 듯싶었습니다.


  9시43분 해발 700미터대의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에 시멘트블록이 몇 개 놓여 있어 편하게 앉아 쉬었습니다. 큰비를 몰고 올 듯한 바람이 드세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돌 가닥 길을 지나 여원재로 하산했습니다. 반시간 조금 넘게 내려와 임도를 만나 조금 걷다 우측 길로 들어서 여원재로 향했는데 소나무들을 제때 간벌을 해주지 않아 아름드리 소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한 쪽으로 휜 잔챙이 소나무들만 즐비했습니다.


  10시50분 해발 470미터의 여원재로 내려섰습니다.

아스파트길로 내려서는 날머리에 “운성대장군”의 큰 석상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밭일을 하는 아낙네 한분에 근처에 식사할 만한 곳이 있나를 물었더니 없다고 답을 해와 쵸코렛으로 출출함을 달랬습니다. 도착 15분 후에 여원재를 출발해 고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장동 동네와 밭둑길을 지나 출발 10여분 후에야 산속으로 들어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1시49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서둘러 점심을 들었습니다.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하면 어디 앉아서 식사할 만한 곳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바쁘게 짐을 내려놓고 쵸코파이를 먹었습니다. 방금 지나온 무명봉이 앉아 쉬기에 훨씬 좋았는데 비탈길에 서서 먹기가 조금은 불편했지만 어느새 가는 비가 장대비로 변해버려 서둘러 식사를 끝내야 했습니다.


  13시9분 산중턱에 자리 잡은 산소에서 떡을 꺼내 들었습니다.

한 시간 넘게 내린 비가 잠시 멈춰 정신없이 내달려온 산 능선이 한눈에 조감되어 놓칠세라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지도상의 함민성터를 언제 지나왔는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비가 세차게 뿌려 구두와 그 속의 양말이 모두 젖어 질퍽댔고 바지 또한 물먹은 길섶의 풀숲을 헤쳐 오르느라 흥건히 젖어 사타구니가 시원할 정도였습니다. 20분 동안의 긴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해 다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13시50분 해발 846미터의 고남산 정상에 섰습니다.

로프의 도움을 받아  암릉 길 몇 곳을 오르는데 비에 젖은 바위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러웠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아 정상에서 아무것도 조망할 수 없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것을 포기하고 4키로 떨어진 매요리로 서둘러 하산해 10여분 후 통신기지를 우회해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몇 번을 차도와 산길을 반복해 15분가량 걷다가 좌측의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억수같이 퍼붓는 비로 더 이상 산행기록을 남기지 못해 언제 통안재와 유치재를 지나왔는지 알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경사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걸을 만 했고 산행 중 기록과 촬영을 접고 오직 내달리기만 해서인지 지도상의 시간보다 약 30분을 단축해 매요마을로 내려섰습니다.


  15시50분 매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사치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집으로 돌아갈 까 아니면 이곳 매요마을에서 민박을 하고 다음 날 치재까지 종주할 까 고민하다 하루를 더 묵어 치재까지 마칠 뜻으로 민박집을 찾았으나 어느 누구하나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아 허탕치고 매요마을을 빠져 나왔습니다. 마을회관에 동네잔치가 열린 듯싶은데 눈길하나 주지 않아 시골인심이 이리도 사나와졌나 싶어 서운했고 이들을 이리도 각박하게 만든 무질서한 관광객들이 저일 수도 있어  되돌아봤습니다.


  16시 운봉-인월 지방도로변에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도로변의 제기공장 주인분이 택시를 불러주어 운봉으로 나갔습니다.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켜 먹고 민박을 알아보았으나 학생들이 먼저 와 있어 안 된다고 해 인월로 나왔는데 여관잡기도 귀찮고 또 남부지방에 큰비가 내린다고 해 함양으로 나가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나흘예정의 종주산행을 이틀로 줄이고 남은 구간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고리봉 중턱에서 시작된 솔밭은 매요리 마을까지 이어졌습니다. 산행이 끝날 즈음 계속되는 솔밭의 단조로움에 질려버려 지겨워졌습니다. 땅에 떨어진 황적색의 솔잎 낙엽이 잡목들의 푸르름과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뺏어가 황량함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간벌조차 제대로 안된 솔밭에 가느다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그 사이를 지나노라면 답답하기 그지없었고 비에 젖은 소나무의 등줄기가 더욱 시꺼메져 우중 산속을 더 빨리 어둡게 해 산행을 서두르게 했습니다.


  어제의 우중산행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산중의 동물들이 모두 숨죽이고 숨어있어 어제는 산속을 걷는 제가 산의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재잘대던 산새들이 제일 먼저 비가 오는 것을 알아채고 울음을 멈추었고  산객들을 위협하는 멧돼지도 털이 젖을까 외출을 삼가고 오로지 양서류인 개구리와 그 친구들만 저를 반겼기에 마치 제가 산중의 왕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우중산행이 좋았던 것은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으며 오랜 시간 저 스스로를 성찰하고 되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비와 구름과 바람을 벗 삼은 어제의 산행은 단조로웠지만 기억될만한 산행이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