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 종주기1(영신봉-의신갈림길-삼신봉)

시인마뇽 2009. 11. 3. 15:41

                                     낙남정맥 종주기1

                                 (섬진강 산줄기환주46)

                  

         *산행구간:영신봉-의신갈림길-삼신봉

         *산행일자:2009. 10. 24일(금)

         *소재지  :경남하동/산청

         *산높이  :영신봉1,652m, 삼신봉1,288m

         *산행코스:세석대피소-영신봉-의신갈림길-삼신봉-상불재

                   -쌍계사-향원슈퍼앞 버스정류장

         *산행시간:6시25분-17시42분(11시간17분)

         *동행    :나홀로

 


  섬진강산줄기 환주 차 아침 일찍 낙남정맥의 출발점인 해발1,652m의 영신봉에 올라섰습니다.

2007년5월 전남광양의 망덕산에서 시작한 섬진강산줄기 환주산행은 이 강의 서쪽 울타리인 호남정맥과 북쪽 울타리인 금남호남정맥을 차례로 밟은 후 동쪽 울타리인 백두대간으로 바꿔 타 남쪽으로 이어갔습니다.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으로 들어선 후 총6회 출산해 영신봉 아래 세석에 이르렀는데, 섬진강의 울타리 산줄기는 영신봉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나 낙남정맥으로 이어지기에 전날 들른 영신봉을 아침에 다시 찾아 올랐습니다. 백두대간의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해 옥산,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과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 하구 매리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그 길이가 도상거리기준으로 약 226km나 되는 낙남정맥은 낙동강의 남쪽 울타리 산줄기입니다.  이 낙남정맥이 영신봉에서 돌고지재를 조금 지나 낙남금오지맥이 갈라지는 547봉까지 섬진강의 동쪽 울타리도 겸하고 있어 이번에 낙남정맥에 발을 들인 것입니다.


  아침6시25분 세석대피소를 출발해 영신봉으로 향했습니다.

전날 밤 대피소에서 저녁8시에 소등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새벽2시에 잠이 깨 남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기가 고역이었습니다. 4시반 경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총총히 빛나는 별들로 밤하늘이 환했습니다. 지구에서 800광년 떨어진 북반구의 으뜸별인 북극성과 이 별을 맴도는 북두칠성을 모두 찾아내 오랜만에 인사를 했습니다. 인절미로 아침식사를 가름한 후 세석대피소를 출발해 영신봉에 오르자 일출을 먼저 맞는 촛대봉 주위가 불그스레해졌습니다. 몇 분을 기다려 해오름을 사진을 찍은 후 낙남정맥을 무사히 종주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사 하고 주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침7시 정각 해발1,652m의 영신봉을 출발해 낙남정맥에 첫발을 들였습니다.

영신봉에서 음양수까지 낙남정맥 길은 비탐방 길이어서 세석대피소로 되 내려갔습니다. 샘터에서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넉넉한 세석평전을 뒤로 하고 거림 가는 길로 내려가다가 7시30분 경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삼신봉으로 향했습니다. 산죽과 철쭉나무, 그리고 사스레나무들이 평원을 덮은 고즈넉한 길을 잠깐 동안 앞장서 안내해준 다람쥐가 귀엽고 고마웠습니다. 숲의 낙엽생산성분석을 위해 설치한 낙엽 포집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사진 찍어 왔습니다.


  영신봉에서 벗어났던 낙남정맥에 복귀한 것은 음양수에 다다라서였습니다.

넓적한 거암 아래 음양수 샘터도 오랜 가뭄으로 물이 거의 말라있어 과연 이 샘터가 비련의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낸 전설의 고향인가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득한 옛날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와 대성계곡에 자리 잡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 호야와 연진 부부는 안타깝게도 자식을 두지 못했다 합니다. 곰으로부터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연진 여인은 곧장 달려와 샘물을 퍼마셨는데 호랑이가 이 사실을 산신령께 고해바쳤습니다. 대노한 산신령은 음양수의 신비를 발설한 곰을 가두고 연진에게는 평생토록 세석의 돌밭에서 철쭉을 가꾸게 했습니다. 촛대봉은 연진이 이봉우리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의 산신령께 죄의 용서를 빌다가 그대로 굳어진 암봉이라 합니다. 연진 여인을 돕는 선한 일은 곰이 하고 산신령께 밀고하는 악역을 호랑이가 맡은 이 애틋한 전설은 그 프레임을 단군신화에서 따온 것 같아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8시26분 의신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대피소에서 1.2Km를 걸어 음양수에 이르는데 40분이 걸려 이런 걸음으로는 해지기 전에 쌍계사에 다다를 수 없겠다 싶어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평평한 좋은 길은 음양수에서 끝났고 이어지는 낙남정맥 길은 오르내림이 조금씩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오른 쪽으로 의신 가는 길이 갈리는 분기점을 지나 커다란 암봉인 1270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면서 호야와 연지부부가 함께 살았다는 대성골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침 햇살을 맞아 골짜기에서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새빨간 단풍잎을 보고 대성골이 숨겨놓은 지리산의 속살이 저리도 고혹적인가 감탄했습니다. 1270봉을 에돌아 올라선 능선 쉼터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나뒹굴어 지리산의 산신령께 부끄러웠습니다. 지리산을 105번 올랐다는 세석대피소에서 만난 한 분이 영신봉-삼신봉-상불재를 잇는 능선이 웅장한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길이라며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가라고 제게 일러주었는데 과연 그러했습니다. 대성골과 거림골을 가르는 이 능선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영신봉과 촛대봉이 북쪽으로 선명하게 잡혔고 북동쪽에 우뚝 솟은 천왕봉은 이 산의 주봉답게 참으로 의젓해 보였습니다.  


  10시11분 세석대피소에서 4.4km를 걸어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오른쪽으로 우회해 만난 석문은 속세의 일들을 다 내려놓고 산사로 들어서는 일주문 같아 이 문을 경건하게 지나야 삼신봉에서 삼신을 알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석문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넓적한 암봉에 올라 천왕봉을 향해 앉아 있는 한 분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혹시라도 이 분이 극락정토인 천왕봉으로 떠나는 반야용선을 기다린다면 여기보다는 반야봉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가닥 길을 오르내리며 길을 가로 막은 큰 나무를 밑으로 통과해 또 하나의 암봉을 우회하느라 진행속도가 많이 더뎠습니다. 재난구조용 이동통신 중계기가 설치된 헬기장에서 십 수분을 더 걸어 다다른 1214봉에서 짐을 내려놓고 7-8분을 쉬었습니다.


  11시45분 해발1,288m의 삼신봉에 올라 낙남정맥 첫 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1214봉에서 쉬는 동안 남쪽 먼발치에 자리한 삼각봉이 삼신봉이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감이었고 실제 삼신봉은 그 봉우리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 그 사이에 자리한 해발1200m대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4-5개는 더 오르내린 후에야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1214봉과 세석대피소5.5Km 지점 사이 능선 길에서 만나 본 지난여름 한몫했을 용담꽃 몇 송이와 방아깨비(?) 한 마리는 도망치는 가을에 몸을 맡기고 주저앉아 그 모습이 맥아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몇 곳의 암봉을 에돌며 삼신봉에 올라가 쉴 뜻이었는데 삼신봉은 꼭꼭 숨어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고사목 지대를 몇 번 지나 사람들이 올라선 거암의 삼신봉 앞에 다가섰습니다. 암봉인 삼신봉에 오르자 남쪽으로 낙남정맥이 지나는 외삼신봉이 보였고 서쪽으로 쌍계사 가는 산줄기가 뻗어 나갔습니다. 다음 산행의 들머리로 잡은 청학동이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제껏 걸어온 천왕봉은 북동쪽으로 조망됐습니다. 정오의 햇살이 따가워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서쪽으로 내려섰습니다. 바로 아래 청학동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낙남정맥과 헤어지고 쌍계사를 향해 직진했습니다. 

  

  13시22분 “삼신봉2.5Km/상불재2.5Km” 지점을 지났습니다.

서쪽으로 뻗어나간 수려한 산줄기가 쌍계사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 능선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 다다른 그늘진 고개 마루에서 짐을 풀고 건포도와 사과를 꺼내 들면서 10분여 쉬었습니다. 8km가 더 남은 쌍계사까지 가서 오후3시반에 출발하는 구로행 버스를 타려면 쉴 새 없이 내달려야하는 데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그 다음의 오후5시40분발 버스시간에  맞추기로 하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20분가량 걸어 올라선 1375봉은 "三神山頂 1,354.7m"의 정상석이 세워진 암봉으로 사방이 탁 트여 전망대로는 앞서 오른 삼신봉에 못지않았습니다. 삼신봉에서 내려선지 얼마 후 높다란 암봉을 에도는 중 삼신봉-상불재의 중간지점에 이르러 잠시 쉬었습니다. 능선 길로 올라서자 왼쪽 아래 청학동이 보다 가깝게 보였습니다.


  14시28분 상불재에 다다랐습니다.

삼신봉에서 “삼신봉2.5Km/상불재2.5Km” 지점에 이르기까지는 몇 곳의 암봉을 에도느라 오르내림이 심한데다 길바닥도 너덜이 많아 시간 반 가량 걸린 산행이 버거웠습니다만, 그 다음 상불재까지는 평평한 길도 있어 한결 수월했습니다. 남녀4명이 한 팀이 된 경상도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들의 대화가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지쳐 있어 저도 모르게 좀 조용히 하라는 곱지 않은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갈까 신경이 쓰였습니다. 삼신봉3.2Km 지점을 지나 삼신봉4.1Km 지점의 상불재에 이르는 동안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산줄기를 뒤돌아보면서, 삼신봉-상불재 능선도 영신봉-삼신봉의 산줄기처럼 중간 중간에 깎아지른 암봉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들을 에도느라 많이 지친 몸을 달랬습니다. 왼쪽으로 삼신궁 길이 갈리는 상불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이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가파른 너덜 길을 걸어 “삼신봉4.9Km/쌍계사4.1km” 지점에 다다른 시각이 14시50분으로 이런 속도라면 17시40분에 쌍계사를 출발하는 구례행 버스를 타는 데는 별 문제 없을 것 같아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5시58분 불일폭포 앞에 섰습니다.

“삼신봉4.9Km/쌍계사4.1km” 지점에서 7-8분 걸어 내려가자 너덜길이 끝나고 계곡물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 불일폭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까지 2Km 길은 참으로 편안해 속도를 한껏 냈습니다.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들이 숲을 이룬 고즈넉한 길을 지나 단풍잎이 새빨갛게 불타는 활엽수림에 들어서자 많이 지친 제 몸의 원기가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0.3Km 떨어진 불일폭포는 그 높이가 60m에 달하며 지리산의 10대 비경의 한 곳입니다만, 물이 조금밖에 흐르지 않아 초라해 보였습니다. 뱀사골에서는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었다 하는 데 용이 승천하다 살짝 꼬리를 쳐 만든 청학봉과 백학봉사이로 물이 흘러 만들어진 것이 불일폭포라 하니 그 규모가 웅장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불일폭포를 다녀오느라 24분을 까먹어 되돌아온 삼거리에서 쉬지 않고 쌍계사로 내달렸습니다.

   

  16시50분 쌍계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가 불일폭포 휴게소라고 문패를 달아놓은 초가집 앞을 지났습니다. 초가집 앞에 비스듬히 놓인 알록달록한 적청황록색의 파라솔을 보자 대간시인 이성부님이 덕유산의 단풍을 접하고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나라 산천에서 떠온 것임을 알겠다”고 노래한 뜻을 알 것 같았습니다. 하산 길은 넓어지고 불일폭포를 보러 올라가는 사람들은 많이 보였습니다. 쌍계사 경내로 들어서자 이 절도 규모가 엄청 큰 대찰이어서 다 들러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겠다 싶었고 그래서 대웅전, 팔상전, 9층석탑과 진감선사대공탑비 등 몇몇만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21년인 서력722년에 선종(禪宗)의 육조(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한 대비(大悲)와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다 지은 절이라 합니다. 이 절에 세워진 진감선사대공탑비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퍼뜨렸고 여기 쌍계사에서 입적하신 진감선사를 기리고자 세운 탑비로 통일신라의 문호 최치원이 직접 비문을 짓고 글을 쓴 것이어서 더욱 유명하다 합니다. 


  17시42분 향원슈퍼 앞 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쌍계사의 일주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중간에 화장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느라 바빴습니다. 넓은 주차장 한 구석에 자리한 화장실을 나와 이곳 초등학생에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묻자 앞장서 저를 향원슈퍼 앞까지 안내해 고마웠습니다. 17시40분에 의신을 출발한 버스를 몇 분간 기다렸다 올라 타 구례로 이동했습니다.


  땅거미가 내려 앉아 어둑어둑한 섬진강을 따라 십 수분을 달렸습니다.

향원슈퍼에서 남쪽으로 내달아 다다른 화개장터는 노래로만 들어온 곳인데 내려서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곳에서 구례로 가는 버스길이 섬진강 오른 쪽으로 나란히 나 있어 섬진강의 도도한 물 흐름을 내다 볼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을 더 출산해 하동의 두우산에서 섬진강 산줄기 환주를 끝내면 섬진강 상류에서 본류의 물줄기를 따라 이 강 하구까지 걸어볼 뜻입니다. 그 때는 이번에 버스로 가는 길을 두 발로 걸어 갈 것입니다. 버스 안에서나마 그 때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미리 맛본다 싶어 가슴이 뛰었습니다. 낙남정맥의 첫 구간을 마치고 이름만 들어온 쌍계사를 일별한 후 섬진강의 물 흐름을 지켜본 이번 행로는 제게는 분명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장시간 산행으로 왼쪽 발바닥의 인대가 늘어나 두 주간 산행을 하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도 가슴 뿌듯한 것은  축복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먼 곳을 동경하고 그리로 떠나는 나들이는  제 삶의 원동력이자 활력인 것이기에 저는 또 다른 나들이를 꿈꾸고자 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