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기3
(섬진강산줄기 환주48)
*정맥구간:고운동재-길마재-돌고지재
*산행일자:2010. 5. 19일(수)
*소재지 :경남하동/진주
*산높이 :칠중대고지565m, 방화고지652m
*산행코스:묵계초교-고운동재-길마재-칠중대고지-양이터재-방화고지-돌고지재
*산행시간:8시37분-18시30분(9시간53분)
*동행 :나홀로
꼭 한 달 만에 낙남정맥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난 달 고교동문 이규성 울산대 교수가 난코스(?)를 같이 해 그 다음부터 저 혼자서 이어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낙남정맥을 다시 찾은 것은 섬진강에 물을 대고 있는 산줄기 환주 산행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습니다. 2007년 5월 광양의 외망에서 망덕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그간 47회를 종주해 낙남정맥의 고운동재에 다다른 것이 꼭 한 달 전인 4월19일입니다. 이번에 이틀 연속 종주할 코스는 첫 날은 고운동재에서 돌고지재에 이르는 낙남정맥 길이고 둘째 날은 돌고지재에서 547봉에 이르는 낙남정맥 길과 547봉에서 수구재까지의 낙남금오지맥 길입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운동재에서 묵계초교로 하산했던 그 길을 이번에는 거꾸로 올랐습니다. 1시간 넘게 걸은 아스팔트길이 지겹지 않았던 것은 고운동재에서 이어갈 낙남정맥이 제게는 아직 발을 들이지 못한 미지의 길이어서였습니다. 미지의 길은 설렘의 길입니다. 저처럼 혼자 나서는 미지의 길은 그 설렘이 여럿이 같이 할 때보다 더합니다. 섬진강을 둘러싼 산줄기를 이어 걷는 섬진강산줄기 환주를 마칠 날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넉넉잡고 3-4번만 더 출산하면 망덕산 강 건너 동쪽의 두우산에 다다를 것인데 남은 길이 웬만한 종주 꾼이 아니면 좀처럼 발을 들이는 산줄기가 아니기에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두 해전 사고를 당한 후 미지의 산길이 마냥 설레는 길만은 아니지만, 섬진강산줄기환주만은 가슴 설레는 종주 길임이 분명합니다.
오전8시40분 묵계초교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11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진주로 내려가 찜질방에서 3시간가량 눈을 붙였습니다. 아침7시10분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는 청학동행 첫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은 한 달 전 친구와 함께 낙남정맥의 두 번째 구간종주를 끝낸 고운동재를 다시 찾아가서 세 번째 구간종주를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묵계초교에서 고운동재까지 한 시간 넘게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오전에는 비가 오고 오후에 갠다는 일기예보대로 두 세 차례 빗방울이 떨어져 아스팔트길이 후끈거리지 않았고 땡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산중턱에 걸려 있는 흰 구름이 산골짜기 청학동을 더욱 그윽하게 만들어 고운동재로 오르는 아스팔트길도 걸을 만 했습니다.
10시3분 고운동재에서 낙남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고운동재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왼쪽 아래 고운호가 잠시 안개를 제치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산야초를 재배하는 오른 쪽 사면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전기선을 쳐놓아 신경이 쓰였지만, 걱정했던 산죽 길은 길가의 키를 넘는 것들을 베어내어 지난번에 지난 산죽 길보다 훨씬 걷기가 편했습니다. 고운동재 출발 20분이 채 안되어 올라선 해발890m대의 봉우리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내려선 후로는 이렇다 할 갈림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조금 후 비가 점점 드세게 내린다 했는데 봉우리 두개를 넘는 동안 많이 사그라졌고 잘 정돈된 산죽 길을 지나자 완전히 그쳐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비둘기만한 이름 모르는 산새 한 마리를 온전하게 사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높낮이 차가 별로 없는 편안한 능선 길을 걸으며 실로 오랜만에 안온함과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11시31분 798봉에 도착했습니다. 8백m대의 봉우리를 몇 개 넘고 작은 늪지(?) 옆의 묘지를 지나 올라선 무명봉에서 3-4분간 쉰 후 편한 길을 걸어 다다른 한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동쪽으로 내려서자 비로소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798봉인 암봉에 올라서자 구름에 가렸던 산록이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햇살이 나뭇잎사이로 비비고 들어와 숲을 밝히자 이 산의 식구인 산새들이 환호했습니다. 100m가량 고도를 낮추어 깊숙한 안부로 내려갔다가 가파른 오름길을 걸어 오르느라 뒷다리가 당겼습니다. 한참을 걸어 올라선 790.4봉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지도상의 제 위치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기에 처음으로 짐을 벗어놓고 사과를 까먹었습니다.
13시2분 길마재로 내려섰습니다. 790.4봉에서 18분간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80m가량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경사가 급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 중 지리산에서 여러 번 본 노각나무가 눈에 띄어 잠시 멈춰 서서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비를 맞아 수피가 시꺼멓게 보이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묘지를 지나 옥종면과 청암면을 이어주는 해발500m대의 길마재에 도착했습니다. 일기예보대로 오후에 들어서자 비가 완전히 멈췄고 햇살이 뜨거워 시멘트 길이 지나는 고개 마루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밥을 꺼내들며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한 후 13시27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오른 쪽 아래 하동호가 꽤 넓게 보였습니다.
14시21분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565m의 칠중대고지에 올라섰습니다. 산불감시초소와 칠중대고지는 표고가 비슷했으나 그 사이에 500m대의 봉우리가 몇 개 있어 이들을 넘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느라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비가 내린 뒤끝이라 아직 지열은 없었지만 갑자기 더워진 공기가 온몸을 휘감아 칠중대고지에서 조금 떨어진 그늘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또 쉬었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안부로 내려가는 중 제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달아나는 덩치 큰 짐승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멧돼지가 틀림없어보였습니다. 오래 숨죽였던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어디서 한 잠 자고 가고 싶었지만 이번 산행의 끝 지점인 돌고지재에 언제쯤 다다를지 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얼마 후 왼쪽으로 확 꺾어 오른쪽은 자갈길이고 왼 쪽은 시멘트길인 양이터재에 내려선 시각이 15시 11분이었습니다.
16시25분 해발665.8m의 방화고지를 지났습니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고개 마루를 지키고 있는 양이터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내쳐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이제껏 제가 안부에서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 봉우리에서 쉬는 것은 올라갈 걱정 않고 마음 편히 쉬고 싶어서인데 이번처럼 한 여름 오후에는 더위에 많이 지쳐 안부에서 곧바로 봉우리를 치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양이터재에서 동쪽으로 반시간 가량 치고 올라가 다다른 646봉에서 바지를 내리고 거풍을 즐겼습니다. 평일 날 한적한 정맥 길을 종주할 때는 하루 종일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다여서 종종 마음 놓고 거풍을 즐기는데 이번에도 그러했습니다. 646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방화고지로 진행하는 동안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 몇 개를 넘었고 시꺼먼 싸리 밭도 지났습니다. 646봉 출발 35분에 다다른 방화고지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그리 깊지 않은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치켜 올라가 방화고지 출발 20분 만에 동쪽 맞은편의 652봉에 올라갔습니다. 15분을 쉰 후 17시 정각에 자리를 떴습니다. 652봉에서 남쪽으로 꺾어 급하게 내려선 것은 646봉에서 남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선 것과 흡사해 지도를 보면 지나온 길이 마치 계단처럼 이어졌습니다. 표지기가 많이 걸린 봉우리를 넘어 다 파헤쳐진 묘지를 지났습니다.
18시30분 59번 국도가 지나는 돌고지재에 도착해 세 번째 구간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길가의 명감나무와 산딸기가 그새 가시를 날카롭게 다듬어 놓은 것을 보고 언제 봄이 왔었던가 싶은데 벌써 여름이 다가왔음을 실감했습니다.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철쭉 꽃송이가 실 날 같은 가는 끈으로 꽃봉오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화무십일홍의 마지막 모습처럼 측은해 보여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억새 길을 지나고 묘지를 지나 삼각점이 세워진 401봉에 도착한 시각이 18시 정각이었습니다. 왼쪽 큰 길을 버리고 오른 쪽 희미한 수로(?)를 따라 내려가 탐스럽게 핀 산 목련을 보았습니다. 몇 걸음 더 옮겨 이름을 모르는 꺽다리 연분홍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짐을 벗어놓고 푹 쉬면서 꽃은 떼거리로 모여 있어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고지재를 지나는 59번 도로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길을 잘 못 들어선 바람에 연초록의 풋풋한 돌배(?)를 사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수로를 따라 59번 도로로 내려가 수준점이 세워진 왼쪽 돌고지재 마루로 옮겨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가슴 설레는 길을 9시간 가깝게 걸어 돌고지재에서 산행을 마무리 졌습니다.
1만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옥종으로 내려가서 진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 슈퍼마켓 주인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분은 짬이 나면 옥산을 자주 오른다면서 제가 타고 있는 낙남정맥이 남강 때문에 중간에 한 번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그 분 말씀이 옳았습니다. 낙남정맥은 다른 정맥과 달리 왜 그렇게 길이 끊겼을까 하는 의문을 푸는 데는 관련문헌들을 찾아 보아야하기에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그것도 모르고 종주 길에 오른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스승 한분이 있다 했는데 하동의 옥종 이 시골에서 제게 가르침을 줄 분을 만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정맥을 종주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런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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