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기2
(섬진강산줄기 환주47)
*정맥구간:삼신봉-외삼신봉-고운동재
*산행일자:2010. 4. 19일(월)
*소재지 :경남하동
*산높이 :외삼신봉1,288m
*산행코스:청학동버스종점-삼신봉-외삼신봉-묵계재-고운동재-묵계초교
*산행시간:8시56분-15시59분(7시간3분)
*동행 :경동고 이규성동문
가파른 바위 길이 위험해 혼자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반년이 지난 어제서야 친구의 도움으로 이 길을 통과해 낙남정맥 종주산행을 재개했습니다. 작년10월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에 발을 들여 삼신봉까지만 진행한 것도 쌍계사를 들러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기실 그 속사정은 외삼신봉 바로 아래 직벽에 가깝다는 바위길을 혼자 내려가기가 겁이나 피했던 것입니다. 재작년 가을 용화산에서 추락 사고만 당하지 않았다면 별반 신경 쓰지 않고 지났을 이 바위 길을 지나지 못하고 반년을 문치적거리는 저를 보고 오랜 산 친구인 경동고교 이규성 동문이 동행하겠다고 나서주어 큰 숙제를 풀었습니다. 한 주전 용화산에서 같이 오른 성봉현님으로부터 새까맣게 잊어버린 하강법을 다시 익힌 후 20m 보조 자일을 갖고 내려가 이번에 잘 써먹었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막상 끝내고 나자 이런 길이 두려워 반년을 허송세월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어갈 꿈은 첫째가 섬진강산줄기환주산행을 마무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올해 안으로 낙남정맥을 마저 종주하는 것입니다. 이번 산행을 함께 해준 친구가 고맙고 또 고마운 것은 이제는 저 혼자서 이러한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서입니다.
전날 월출산을 올랐다가 천황사지로 내려가 광주를 거쳐 진주로 옮겼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내려온 친구와 함께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7시10분에 진주를 출발하는 청학동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동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청학동으로 가는 버스가 택시가 한 대 밖에 없다는 청암리를 거치고 묵계리를 지나 청학동에 이르기까지 잔뜩 찌푸린 날씨에 안개가 끼여 내내 답답했지만 차도 변에 만개한 벚꽃들만은 여전히 화사했습니다. 청학동 마을 끝자리의 종점에서 하차하자 이곳 주민들을 대신해 이들이 세웠을 솟대들이 저희들을 반겨 맞았습니다. 설마하니 이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장원공을 배출했을 리 없고 보면 여기 세워진 솟대들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기리기위해서가 아니고 이듬해에 풍년을 빌고자 세웠을 것입니다.
오전 8시56분 청학동버스종점을 출발했습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4-5분을 걸어 다다른 청학동공원지킴터에서 삼신봉으로 올라가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탐방로답게 길이 잘 나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돌가닥 길과 산죽 길을 이어가는 산 오름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새소리에 계곡 물소리가 더해졌지만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개 낀 산속이 약동하는 봄답지 않게 고요했습니다. 산수유 한 그루가 그나마 노랑꽃을 피우지 못했다면 봄의 징후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을 산길을 1시간가량 걸어 샘터에 도착했습니다. 좁다란 공터도 있어 야영하기가 딱 좋은 샘터에서 물을 떠 마신 후 0.8Km 떨어진 삼신봉으로 향했습니다.
10시26분 삼신봉에서 낙남정맥의 2구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샘터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15분가량 올라가 고개 마루에 이르렀습니다. 낙남정맥이 동서로 지나는 안부인 이 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0.5Km 남은 삼신봉을 오르고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0분 남짓 걸은 후 삼신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오르자 안개가 잔뜩 끼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린다는 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조망이 좋지않다고 투정부릴 계제는 아니었지만, 늠름한 천왕봉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기가 영 서운했습니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친구를 사진 찍고 나서 곧바로 삼신봉을 출발해 낙남정맥 종주 길에 들어섰습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앞서 지났던 고개 마루를 거쳐 외삼신봉으로 이어졌습니다. 고개마루를 지나 외삼신봉으로 향하는 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굵어져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 방수카바를 씌우고 비옷을 덧입었습니다. 고개마루부터 고운동재까지 비탐방로여서 걱정을 했는데 표지기가 걸려있고 길도 잘 나있어 한 걱정 덜었습니다.
11시15분 해발1,288m의 외삼신봉에 올라섰습니다. 잠시 비는 그쳤지만 정상석만 제대로 보일 정도로 여전히 안개가 자욱해 지리산의 마지막 고봉인 외삼신봉의 전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외삼신봉에서 조금 내려가자 걱정했던 바위 길이 나타났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준비해간 자일을 나무에 걸고 첫 번째 짧은 바위를 내려갔습니다. 두 번째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 길이 다행히도 7-8m 밖에 되지 않아 20m 보조자일로 충분했습니다. 하강을 마치고 나자 가파르기는 해도 두 구간 다 로프가 걸려 있어 보조 자일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별 문제 없겠다싶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혼자서 이 구간을 지나지 못한 것은 2008년 가을 이후 두 번째 구간 로프를 제거한 것으로 사진에 나와 있었기 때문인데 최근에 공원에서 로프를 다시 건 것 같습니다. 좀처럼 고도가 떨어지지 않는 능선 길이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키를 넘는 산죽들이 터널을 만들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통과해야 한다는 산죽 길이 하나 남은 걱정거리였는데 2007년 봄에 지난 금남정맥의 산죽길보다 오히려 쉬웠습니다.
12시57분 무명봉 바위에서 점심을 들면서 처음 제대로 쉬었습니다. 산죽 길을 지나 만난 나뭇가지들이 연출한 정경이 참으로 고혹적이어서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직 이 산등성에 봄이 찾아오지 않았기에 지난 가을 마지막 잎 새를 떨쳐낸 나뭇가지들이 앙상해 보였지만 겨울이 물러난 것은 분명해 그리 추워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자욱한 운무가 나뭇가지들이 연출한 굵은 직선과 섬세한 곡선을 가리지 않았고, 산등성을 넘나드는 바람도 나뭇가지를 흔들어대지 않아 모처럼 시간이 이 나뭇가지에서 멈춰 선 듯했습니다. 산죽 터널을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스틱을 접어 넣었더니 경사진 길이 조심스러워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릎통증은 아침에 파스를 붙인 것이 효과가 있어 전날 월출산을 오를 때보다 훨씬 덜했습니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 길이 북서쪽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바뀌면서 고도가 낮아졌습니다.
13시58분 묵계재에 도착했습니다. 남동 쪽으로 다시 바뀐 길을 따라 내려가 산죽길을 빠져나가자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사진에서 많이 본 듯해 가던 길을 멈추고 지도를 찾아 확인해본 즉 이곳이 바로 묵계재였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 목적했던 길마재까지 진행하는 것이 무리다 싶고 위험한 바위 길을 안전하게 지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어 여기 묵계재에서 구간 종주를 마칠 생각이었는데, 차도로 내려가는 남, 북쪽 하산 길이 어느 길 하나 분명하지 않고 풀숲이 우거져 난감해 하다가 샛길 하산을 포기하고 1시간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고운동재를 향해 곧바로 진행했습니다. 묵계재보다 200m 가까이 고도가 높은 991봉을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가팔랐고 이제껏 지나온 길보다 산죽이 더 빽빽이 들어서있어 뒷다리가 당겼습니다. 40분 넘게 들락날락하던 산죽 터널 길을 빠져나와 공터를 만났고 이 공터에서 7-8분간 쉬었습니다.
15시05분 고운동재로 내려섰습니다. 잠시 쉬었던 공터에서 산죽 길은 끝났고 경사가 완만한 내림 길이 고운동재까지 계속해 이어졌습니다. 접어 넣은 스틱을 다시 꺼내 하산속도를 높였더니 15분도 채 못 걸어 차도가 보였습니다. 고운동재로 내려가 길마재 길을 확인한 후 두 번째 구간의 낙남정맥 종주를 마치고나자 반년을 끌어온 숙제를 끝냈다 싶어 홀가분했습니다.
15시59분 묵계초교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왕복2차선 차도가 지나는 고운동재 고개 마루에서 고운호로 내려가는 길은 왼쪽으로 이어졌고, 저희 둘은 그 반대방향으로 내려가 묵계초교로 향했습니다. 고도가 낮아지자 나뭇잎이 파릇파릇하고 벚꽃이 만발해 춘색이 완연했습니다. 주룩주룩 비가 내려 우중충했지만 그래도 봄비여서 맞으며 걸을 만 했습니다. 청학동 입구를 지나 묵계초교 앞에서 하동 가는 버스가 저녁 5시10분에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맥주 몇 잔을 같이 들며 자축했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산본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산행은 비가 많이 와 목표한 길마재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외삼신봉 아래 바위 길을 안전하게 통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산행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구간들이어서 틈나는 대로 내려가 정맥 길을 이어갈 뜻입니다. 이틀간 비를 맞으며 산행을 했어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고, 우려했던 오른 쪽 무릎의 통증도 많이 가셨습니다. 이제 남은 나흘 밤낮을 중간고사 시험공부에 쏟아 붓고자 합니다.
함께 동행한 친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한 자리에서 묵묵하게 저를 기다려준 낙남정맥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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