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 속으로”를 보고나서
혼자서 뭘 보러 나서는 것이 왠지 궁상맞고 청승스러워 좀처럼 공연장을 찾지 못합니다. 자연 연극이나 오페라는 물론 영화와도 소원하게 되고 그래서 혼자해도 좋은 독서와 등산에 더욱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일 년에 고작해야 두 세편밖에 영화를 보러가지 않아 웬만한 화제작이 아니고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제가 며칠 전 작년 3월 독립영화 “워낭소리”본 후 처음으로 극장을 찾아가 전쟁영화 “포화 속으로”를 보았습니다. 올해가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해라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한 편은 꼭 보아야겠다고 별러 오다가 마침 집 근처 한 영화관에서 “포화 속으로”가 상영된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확인, 만사 제쳐놓고 이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KBS나 MBC등 공중파 방송에서 한국전쟁 관련 드라마를 TV로 내보내 일부러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얼마든지 전쟁관련 드라마를 볼 수 있는데도 제가 굳이 극장을 찾아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아기자기한 애정영화와는 달리 스펙터클한 전쟁영화는 대형 스크린으로 보아야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아 영화 “포화 속으로”를 정말 감명 깊게 잘 보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중학교 다닐 때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빨간 마후라”를 본 후로 전쟁을 주제로 한 우리 영화를 본 것은 “포화 속으로”가 처음입니다. 그동안 TV를 통해서는 “싸리골 신화”, “웰컴 투 동막골”이나 "태극기 휘날리며" 등 몇 편을 보았지만 극장을 찾아가 대형스크린으로 전쟁영화를 본 것은 무려 40여년만의 일이어서 감동이 몇 배 더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이 할리우드 영화를 따라잡지 못했고, 그 후로는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북한을 자극할 만한 전쟁영화가 별반 만들어지지 않아서인지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외하고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볼만한 영화를 접할 수 없었습니다. 세 번의 서해교전과 천안함 피침사건을 겪은 후 그동안 북한의 실체를 바로보지 않고 애써 외면해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나를 새삼 돌아보는 중이어서 반공영화(?) “포화 속으로”를 관람한 것은 제게는 오랜 가뭄 끝에 맞이하는 단비 같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념이 아닌 인간을 그리겠다는 이재한감독의 시도는 일단 성공했다 싶습니다. 북한군 대장이 포항으로 진격하면서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학도병들에 항복의 기회를 주는 장면이나, 녹록치 않은 낙동강전투를 치르면서도 내버려두고 온 학도병들을 구하고자 포항으로 되돌아가는 국군장교의 모습에서 이념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휴머니즘을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권상우, 차승원, 김승우 등의 쟁쟁한 스타들과 연기경쟁을 벌인 최승현의 학도병 대장 연기가 참으로 돋보여 얼마 전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보았던 어설픈 연기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스펙타클한 전쟁 영화치고는 매우 단순합니다. 총알을 겨우 한 발씩 쏜 것으로 훈련을 끝낸 71명의 학도병 소년들이 모두들 떠난 포항을 지켜내고자 북한군 진격대장이 이끄는 인민군유격대를 맞아 혈전을 벌이다 산화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가 수많은 관객에 감동을 준 것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주인공들이 앳된 소년들이고 개성이 뚜렷한 4명의 주인공들이 호연을 해서였지만, 천암함 피침사건으로 전쟁과 안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다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자 이만하면 한국영화도 허리우드의 블록버스터영화를 제압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절로 생겼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던져준 첫 번째 화두는 전쟁입니다. 전쟁이란 적으로 하여금 이쪽 의지에 굴복하게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행위라고 정의한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역저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계속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한민족전쟁사”를 쓴 온창일 박사 역시 전쟁은 정치집단간의 조직적이고 유혈적인 무력충돌로 정의했습니다. 이 두 분의 의견을 종합한다면 전쟁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폭력행위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동네 패거리들의 떼 싸움과 구별되는 것은 정치적 명분이고, 또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피 말리는 협상과 다른 점은 무력이 뒤따른 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이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포화 속으로” 산화한 수많은 국군과 학도병들의 희생 및 유엔군의 우세한 무기에 힘입어서였지만, 또 하나 시민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시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국시로 하는 정치적 명분을 선점한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수많은 전투로 이루어집니다. 한국전쟁은 거의 한반도 전역에서 치러졌기에 이 전쟁을 통해 잃어버린 인명과 재산피해는 남북한 모두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컸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6.25전쟁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모처럼 원점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경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종료 57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의 국력을 비교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북한에 압승했습니다. 전쟁의 목적이 적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대한민국은 종전 후 벌어진 총성 없는 전쟁에서도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71명의 학도병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이 나라가 천안함 피침으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주먹만 세면 이길 수 있는 골목싸움이 아닙니다. 현대전은 군인들만 싸우는 옛날의 전쟁이 아니고 온 국민이 국부를 다 동원해 싸우는 총력전입니다. 기습공격으로 한두 번 천암함을 침몰시킬 수는 있어도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이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민들이 굶주리며 싸울 수는 없는 것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겠다는 정치적 목적은 정당한 명분을 잃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 상당부분은 졸고 "대성산 산행기"에서 따왔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하는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본 것은 민족입니다. 1776년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서명응(徐命膺)이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연을 보고 그 못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성리학적 태극의 오묘함으로 인식했을 뿐 민족의 발상지라는 그래서 한민족이라면 당연히 공유하는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는 것을 그의 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이영훈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이 땅에서 쓰인 것은 100년 정도 밖에 안됐습니다. 20세기 초 서양에서 중국과 일본을 거쳐 들어온 "nation"과 "nationalism"을 번역해 쓴 것이어서 생각만큼 오래된 단어가 아닙니다. 동아일보가 우리 민족의 웅혼을 일깨우고자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를 실은 것이 1921년의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민족이라는 단어가 이 나라를 풍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반국가보다 반민족을 더 큰 죄로 받아들이는 민족지상주의자들은 동족이라는 이유로 북한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눈감고자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찬승 교수의 저서인 "민족 민족주의"에 따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산주의를 주창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민족 혹은 민족주의가 근대이전에는 결코 존재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고, 스탈린도 자본주의시기의 특수한 산물인 민족은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사회주의 단계를 지나 공산주의 단계에 이르면 사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도 그동안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북한이 말끝마다 민족과 민족주의를 들먹이는 것을 보노라면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습니다. 북한이 우리에 같은 민족이라며 손을 내밀려면 공산주의 단계에 이르면 민족이 사멸할 수 밖에 없다는 바로 그 공산주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민족을 부정하는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동족을 상대로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이기에 동족의 젊은이들이 타고 있는 천암함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어뢰공격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한 비록 같은 민족이라해도 주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야 71명의 학도병들이 지켜낸 우리나라를 수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국가인 대한민국의 존재를 망각하고 감상적인 민족과 민족주의에 눈멀고 귀먹어서는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오랜만에 본 영화여서 사념 또한 많습니다만 한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했습니다. 오늘의 발전을 가져오기까지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제가 참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봅니다.
2010년 7월14일 산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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