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수필습작

거짓폭로와 사회비용

시인마뇽 2011. 1. 23. 08:06

 

                                                   거짓폭로와  사회비용

 

 

 

  며칠 전 국회의원 한분이 의원총회에서 다른 의원의 아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추가 입학했다고 폭로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가 재빠르게 해당 학생의 추가입학 경위를 상세히 발표해 이 의원이 폭로한 내용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언론은 사실 확인 없이 폭로한 의원이 곤경에 처했음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이번과 같은 거짓 폭로는 우리 사회에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국회발언은 그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발언의원에 면책특권이 보장되어 국정감사나 각종 청문회에서 크고 작은 의혹 모두가 사실 확인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폭로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항다반사로 있어 왔습니다. 면책특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회밖에서도 선거 기간 중에 각종 유언비어가 날조되고 유통되는데, 이는 폭로로 얻을 이익을 다 얻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진위가 법정에서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그간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거짓폭로로 인해 이 사회가 부담해온 비용은 엄청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제껏 허위내용을 폭로한 사람들로부터 이 사회가 부담한 비용을 제대로 환수했거나 사과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작년 말 그 말썽많던 천성산 터널이 개통됐음에도 그 위 습지는 말짱해 도롱뇽의 개체수가 줄지 않았다 합니다. 천성산에 고속전철 터널을 뚫으면 산위 습지의 물이 빠져 도롱뇽이 말라죽을 것이라며 100일간 단식농성을 벌여 공사를 중단시킨 여 스님은 그동안의 주장이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자기 잘못으로 엄청난 액수의 공사비가 추가되고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 데 대해 이나라 국민들에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거짓 폭로로 인한 사회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전체가 신뢰가 결여되어 진위를 가리는 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서입니다. 검은 돈 거래를 척결해야 할 고위 경찰간부들이 브로커와 야합해 이익을 취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덕으로 여겨온 정치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 사회에서 가장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며, 최고로 순수해야할 소위 시민단체들의 지도자조차 권력욕을 드러내 보이고, 청부(淸富)로 존경받아야 할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경제인들이 탈세사건에 연루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일반 시민들을 교화하고 구원하는 일을 도맡아 온 종교인들이 속세의 중생들보다 더 열심히 염불보다 잿밥에 신경 쓰다 사고를 치는 일들이 적지 않았으니 이 나라 지도층 그룹이 일반시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지도층뿐만 아니라 이 나라 최고의 심판기관인 법원도 신뢰를 받지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판결내용과 관계없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하는 것도 실은 법원이 신뢰받지 못해서입니다.

 

 

  이 사회에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고 오로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외눈박이들이 적지 않아  사실의 의도적 왜곡이나 악의적 조작이 쉽게 먹혀드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화학자 제임스 콜만 교수가 지은 “내츄럴리 데인저러스(Naturally Dangerously)"라는 책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국의 한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캠페인을 벌였다 합니다. 무색무취한 “일산화이수소”가 심각한 수화현상을 일으키고,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을 일으키며, 땀이 많이 나게 하고, 구토를 일으키며, 또 기체 상태에서는 심각한 화상을 입히는 데다 이 화학물질이 말기 암 환자의 종양에서도 발견됐고 땅을 침식시키는 산성비의 주요 요소라며 50명의 학생들에 이 화학물질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해달라고 캠페인을 벌였다 합니다. 캠페인 결과는 놀랍게도 43명이 흔쾌히 서명했고 6명은 결정을 보류했으며 서명에 반대한 사람은 단 한명으로 그 물질이 바로 산소 1원자와 수소 2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물이라며 서명하지 않았다 합니다. 이 학생이 "일산화이수소"를 물이라고 똑바로 이야기했다면 어느 누구도 물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같이 합리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도 이런 조작이 가능한데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이 나라에서는 더허면 더하지 절대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모 TV 프로그램을 보고 수많은 군중들이 광화문에 모여  데모를 벌이는 바람에 이 나라가 시끄러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분명한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고 제작되었는데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수많은 군중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반대시위를 계속해온 것은 저는 거짓말의 진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우병에 걸린다는 프로그램을 보고 분개해 광화문에 나간 많은 시민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미친 소 수입반대를 외치는데 무슨 수로 광우병이 걸린다는 처음 생각이 신념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정당화를 통해 인지부조화를 극복해나가면 이 과정에서 애당초 잘못된 생각도 차츰 신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일단 신념으로 진화하면  반대정보가 아무리 과학적이라 해도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조작된 정보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게 됩니다. 군중들이 모여 집단적 광기에 빠지는 것은 이들의 생각이 신념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념화는 자기정당화를 꾀하게 되어 거짓말을 진화시킵니다. 나치즘의 광기가 가능했던 것도 잘못된 생각이 신념으로 굳어지고 자기정당화과정을 거쳐 심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엇 에런슨과 캐럴 태브리스는 그들의 저서  "거짓말의 진화:자기정당화의 심리학"에서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취하는 자기정당화라 했습니다. 사실의 의도적 왜곡이나 악의적 조작이 무서운 것은 거짓말이 급기야 자기정당화로 발전하고 그래서 불신이 팽배해 이로 인해 이 사회가 부담해야 할 이런 저런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서울대가 그동안 신뢰를 쌓아오지 못했다면 이번의 거짓 폭로로 부정입학에 대한 확신은 전 국민들에 확산됐을 것입니다. 학부형들로부터 입학관련 소송이 봇물을 이루었을 것이고 그리되면 입학사정의 근간이 불신 받아 이 나라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이 신속히 마무리되어 엄청난 사회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 데는 서울대학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재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두 의원 간의 진실공방이 치열했을 것이고 진실이야 무엇이든 상관 않고 여론은 두 패로 갈라져 끊임없이 갈등이 확산됐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신속하고도 적절한 조치로 일찌감치 폭로내용이 허위로 밝혀진 이번 거짓 폭로사건에서 최고의 승자는 서울대학교라는 생각입니다. 폭로내용이 허위로 밝혀지기까지 입었을 한 의원과 그 아들의 정신적 상처는 오래 갈 것입니다. 허위사실로 비방한 의원도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공이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는 신속하게 진위를 밝혀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자 거짓 폭로 의원이 바로 사과를 한 일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 의원이 크게 반성해서 국민들에 이번 폭로를 사과를 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학사행정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아온 서울대학교의 권위에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빨리 사과를 했을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1950년대 말 무소불위로 권력을 행세한 이기붕의 친아들이자 이승만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이 서울대에 입학하고자 여러모로 애썼으나 거절당해 육사를 들어갔다 합니다. 그동안 서울대에서 학사행정을 공정하게 해왔기에 신뢰가 쌓였고 그 신뢰 덕분에 그토록 인화성 높은 사건을 재빨리 진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대의 발표내용을 믿는 시민들이 법원의 판결을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았기에 거짓 폭로 의원이 사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거짓 폭로사건을 통해 얻은 큰 교훈이 있다면 이 나라 공공기관의 신뢰도를 서울대만큼 올린다면 사회적 갈등의 대부분이 문제없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이 풍미하는 이 사회에서 그동안 서울대가 어떻게 신뢰를 쌓아왔나를 배우는 데서 사회비용을 줄이는 열쇠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원칙을 지키고 공정하게 일을 해왔다는 것이 바로 그 열쇠일 것입니다. 신속한 조치로 문제해결에 결정적 도움을 준 서울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습니다.

 

 

                                                 2011년1월22일 산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