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명소탐방기1(청평사)
*탐방일자:2010. 10. 27일(수)
*탐방지 :강원도춘천시소재 청평사
*동행 :방송대국문과 현운재 회원
세 해 전 혼자서 청평사를 들렀을 때는 이 절을 감싸고 있는 오봉산 산행에 주목적을 두었기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배타고 소양호를 건너가 주마간산 격으로 이 절을 둘러본 후 곧바로 오봉산으로 오르느라 꼼꼼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몇 번이나 이름을 바꾼 청평사가 범상한 절이 아님을 그때 이미 감 잡았기에 현운재 동아리회원들과 다시 찾는 이번 탐방에 기대 거는 바 컸습니다. 방송대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는 현운재 회원들은 물론 신화를 전공하시는 오태권교수님과 함께 하는 탐방이어서 이번에는 천년고찰 청평사와 이절에 이르는 길옆의 계곡 그리고 이절에 터를 내준 오봉산 및 이들 모두가 어우러져 빚어낸 역사와 설화들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겠다싶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1)서울-청평사 선착장
아침9시반경 대절버스를 타고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선배 한 분이 이번 나들이를 함께 해 자칫 무료할 수 있는 이동시간을 공감의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춘천시내 봉의산을 화악산이 멀리보이는 7부능선까지 올랐다가 되 내려가 교외 닭갈비집으로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 만수 수위가 198m나 되는 거대한 소양댐에서 먼발치의 가리산을 조망한 후 소양호를 건넜습니다. 여객선이 강물을 가르고 달리는 시간은 10분 남짓한 정도로 짧았지만 절정에 이른 단풍이 주변 산들을 붉은 색으로 채색해 소양호 한 가운데서 바라보는 풍광이 참으로 볼만했습니다.
1)청평사선착장-청평사 입구
청평사선착장에서 하선해 산 속 깊숙이 자리한 청평사로 향했습니다. 갑작스레 밀려온 찬 기단이 한반도 상공을 뒤덮어 기온이 급강하한데다 햇살이 구름을 뚫지 못해 모처럼 나들이가 스산했습니다. 상가를 지나고 청평교를 건넌지 얼마 안 되어 매표소에 이르렀습니다. 이날 매표소에서 청평사의 입장료를 받지 않은 것은 1980년10월27일에 겪었던 치욕적인 법란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 합니다. 1980년대에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반문명적인 폭거에 불교계에서 분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싶으면서도 혹시라도 당시 불교계가 법란을 자초한 면은 전혀 없었는지 살펴보는 일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판승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 소리지만 사판승들의 비행이 극히 일부 스님에 국한되어 문제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전두환 정권은 겁 없이 전국의 사찰에 난입할 수 있었을 것이어서 하는 말입니다.
오른쪽으로 계곡을 끼고 오르는 청평사 길은 그 거리가 1.7Km로 짧았지만 참으로 정감 가는 길이었습니다. 물소리가 야단스럽지 않은 데도 길 아래 계곡에 물이 많이 흘러 크고 작은 폭포 몇 곳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는 발그스레한 단풍들과 맑은 물의 계류가 어우러진 길을 따라 오르며 “공주와 상사뱀”이라는 설화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설화의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당나라의 공주와 사랑을 나누다 왕에게 발각되어 처형된 평민청년이 상사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합니다. 점점 야위어간 공주는 여러 사찰을 찾아다니다 여기 청평사에 이르러 구성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상사뱀으로부터 풀려나 청평사를 찾아 기도를 드렸는데, 늦어지는 공주에 불안감을 느낀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 이 절 회전문에 들어서려던 찰라 벼락이 내리쳐 즉사했고 돌아온 공주가 폭포에 둥둥 떠 있는 상사뱀의 시신을 걷어 묻어주고 삼층석탑을 세웠다는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테마로 한 흔하디흔한 이 설화가 나름대로 갖고 있는 특이점은 주인공 공주와 청년이 모두 중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상사뱀의 달라붙음을 푼 곳이 다른 데가 아니고 절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력이 위대함을 일러주는 것이고, 그 절이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 절로 묘사된 것은 비록 불교가 중국을 통해 이 땅에 유입되었지만 부처님을 모시는 정성은 중국보다 이 땅에서 더 지극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남 고흥의 팔영산(八影山)에 관한 전설에도 중국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중국의 위왕이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손수 이 봉우리들을 수소문해 찾아 나섰다가 고흥반도에 자리 잡은 여덟 봉이 그림자의 주인공임을 알고 팔영봉으로 불렀다 합니다. 위왕은 첫 번째 봉우리를 중국에서도 공경 받는 공명의 도를 따르는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하여 유영봉으로 이름 짓고 이 산의 제 1봉으로 삼았다는 전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가 중국인에게 선망의 대상지가 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공주와 상사뱀”의 조각상을 조금 지나 다다른 구성폭포와 공주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공주가 이 폭포에서 몸을 씻어낸 후 상사뱀과 하룻밤을 보낸 곳이기 때문입니다. 상사뱀은 이 굴에서 공주와 함께 만리장성을 쌓았기에 이튿날 아침 범종소리에 맞추어 공주 몸을 풀어주었을 것입니다. 공주굴은 볼품없었지만 마음 가짐에 따라 아홉가지 소리가 들린다는 구성폭포는 오봉산 산신령이 그리 깊지 않은 계곡에 이런 폭포를 숨겨두시었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직벽의 바위를 타고 몇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와 이 폭포수를 아프지 않도록 밑에서 받아주는 소(昭)가 절경을 이루어 한 여름이라면 풍덩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상사뱀에서 풀려난 공주가 찾아가 기도를 올린 청평사로 오르는 길에 오봉산 부용봉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영지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문수원을 중창한 이자현이 일본 교토 사이호사의 고산수식 정원보다 200년 앞서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원인 고려정원에 자리한 영지는 이런저런 풀들로 덮여 아쉽게도 부용봉의 그림자를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3)청평사 경내
마당 한 가운 데 곧게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 사이를 지나 청평사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제선충으로 위기를 맞은 소나무들이 즐비한 이 땅에서 일주문을 대신할 정도로 잘 자란 이들 소나무에 고마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약 6천 년 전부터 이 땅에서 자라오면서 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소나무들이 역사상 유래 없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껏 잘 지켜온 극상림의 자리를 지구의 온난화로 중국의 장자가 천하에 쓸모없는 것으로 비하한 참나무에 물려줄 수밖에 없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희들이 제선충의 공격에 맥없이 죽어가는 소나무들을 이 땅에서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 옛날 춘궁기에 구황식물의 역할을 단단히 해 우리조상들을 살려낸 소나무의 은공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 절이 명찰로 이름을 넓혀간 데는 보물 제164호로 지정된 회전문(廻轉門)이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이 절에 들어서서 지나는 두 번째 문인 회전문에서 빙빙 도는 것은 실체의 문이 아니고 윤회를 따라가는 전생과 현생이었기에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공주를 찾아 나선 상사뱀이 이 문을 지나면서 벼락을 맞아 전생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회전문을 통과해 넓은 마당에 이르자 대웅전 너머로 준수한 암봉인 부용봉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웅전의 단청이 너무 깔끔해 천년고찰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 뒤 극락전 가는 길가에 자리한 800년 수령의 주목나무 두 그루가 백암선원, 보현암과 문수원 등 여러 번 이름을 바꾸다 1550년에 보우스님이 중건하고 청평사로 고쳐 부른 후 오늘에 이르는 이절의 역사를 증언해주었습니다.
청평사의 역사와 문화를 총정리해준 해설사 님이 제가 적을 두고 있는 방송대의 문화교양학과 2학년생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이번 탐방을 같이 한 일행 중에 포천에서 숲 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한 분도 있어 방송대를 다니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4)청평사-주차장
불과 한 두 시간 전에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데도 새 길을 걷는 것처럼 느낌이 색달랐습니다. 영지에서 수초 사이에 드리워진 부용봉의 그림자를 직접 보아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동굴로 돌아가는 공주도 새 길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구성폭포로 되돌아가 죽어 둥둥 떠 있는 상사뱀을 발견했을 때의 공주의 마음이 시원함에 그치지 않고 애처롭기도 했을 터이니 그 때 구성폭포의 물 떨어지는 소리는 아마도 단조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새 나뭇잎들에 안토시아닌 색소의 농도가 더해져 계곡의 단풍이 더욱 불타는 듯 했습니다. “공주와 상사뱀”의 조각상을 끝으로 당나라 공주와의 밀담을 끝내고 계곡을 빠져나와 청평사 탐방을 마쳤습니다.
* * *
주차장에서 대기한 버스에 올라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오봉산과 용화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배후령을 지났습니다. 두 산 모두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 100산에 들어 있는 산이어서 산세가 수려합니다. 한 나한님과 세 보살님 그리고 부처님 한분이 각각 한 봉우리씩 맡아서 자리 잡고 있는 오봉산이나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6억 7천만년 뒤에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용화수 밑에서 성도한 다음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할 것을 염원해 이름 지었다는 용화산 모두 백두대간의 매자봉에서 분기한 도솔지맥이 지나가는 봉우리들이어서 제게는 다 친근한 산들입니다. 꼭 두 해 전 배후령에서 용추산으로 오르다가 15m가량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흉추와 요추를 다섯 개나 분질러 먹고 헬기로 후송된 뼈아픈 경험이 있어 이 고개를 지날 때마다 산을 오를 때는 첫 째도 겸손이고 마지막도 겸손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떠올리곤 합니다.
서울로 돌아와 저녁을 든 후 밤10시경 해산함으로써 청평사탐방을 겸한 가을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 가을에 미안해하지 않도록 나들이를 주선한 팀장님과 나들이를 함께 해주신 오교수님, 그리고 무료해질 수 있는 버스안의 이동시간을 활력이 넘치도록 이끌어준 두 임 선배님들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또 힘들게 나들이 길에 오른 모든 팀원님들, 그리고 손님으로 함께 하신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자리를 같이 못한 1학년 학형들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입니다. 청평교를 지나자마자 저희들을 맞아 설화의 세계로 이끌어준 공주님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물론 청평사에 자리를 내준 오봉산도 고맙습니다.
<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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