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물도
*탐방일자:2010. 8. 29일(일)
*탐방지 :경남 통영 소재 소매물도 및 등대섬
*동행 :은하수산악회 회원
사진으로만 접해온 환상의 등대섬을 직접 가서 본다는 설렘과 꾸무럭거리는 날씨가 하 수상해 과연 배가 뜰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엇갈려 이틀 전에 예약한 소매물도 탐방여행을 취소할까 말까 밤새 고심했습니다. 제가 사는 서울근교 산본에서는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줄기차게 굵은 빗줄기를 뿌려댔지만 탐방당일 통영지역은 오후 되면 구름은 끼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고 해 한 번 믿어보기로 마음을 다자잡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 6시 군포시청 앞에서 산악회 차에 오르고 나서 제발 일기예보대로 오전에만 비가 오고 정오가 되자마자 뚝 그치고 구름만 다소 끼게 되기를 구름의 신 제우스에 간절히 빌었습니다. 이제껏 나이 60이 넘도록 제우스신과 다툼 없이 잘 지내온 제가 모처럼 큰 맘 먹고 바다 길에 나선다는데 제우스신의 친동생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제게 물세례나 바람세례를 퍼붓지는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집을 나선 것입니다.
이번에 찾아가는 소매물도(小每勿島)는 경남 통영시 한삼면에 소재한 섬으로 그 면적이 2.5제곱Km 밖에 안 되고 20여 가구만이 살았을 정도로 작고 한갓진 섬입니다. 통영 항에서 남동쪽으로 26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이 섬은 섬모양이 메밀을 닮았다하여 이름을 얻은 매물도(每勿島)에서 남서쪽으로 500m가량 떨어져 있고 고혹적인 등대섬과는 썰물 때만 열리는 자갈길로 이어집니다. 해안가의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어 풍광이 빼어난 데다 국내 여행작가들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아 CF에도 자주 나오는 등대가 이 섬에 위치해 있어 이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부근 수역에 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이 섬을 바닷물이 오염 안 돼 스쿠버다이빙을 즐겨하는 아들 며느리도 벌써 다녀왔습니다.
11시 조금 넘어 통영 항을 출발했습니다. 소매물도로 가는 꽤 큰 배에 올라 처음 몇 분간은 주변 풍경들을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오른 쪽의 케이블카가 연신해 오르내리는 미륵산은 지난 2월 금평마을-정상-수륙마을 능선을 종주한 바 있어 반가웠습니다. 간간히 해가 나기도 했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시지 않아 바다사정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언제 풍랑이 일지 몰라 불안했는데 하얀 요트 두 척이 유유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별 문제없겠다 싶어 안심됐습니다. 엄청 커 보이는 주황색 유조선을 사진 찍은 후 반대편으로 옮겨 한산도 제승대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제가 통영을 처음 찾은 것은 1975년 여름으로 지리산을 오르는 길에 들른 당시 충무시인 통영에서 한산섬을 다녀왔는데 이 섬에서 따 먹은 굴이 문제가 되었는지 밤새 잠 한 숨 못자고 토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속을 볶여 절절 매는 저를 극진히 돌본 한 여인이 그 두해 후 결혼한 집사람이었기에 스쳐 지나가는 한산섬에서 바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젊은 연인들을 태운 배가 첫 번째 기항지인 외항에 이르기 바로 전에 파도가 크게 치면 몸통 전부가 물에 잠길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바위섬을 지났습니다. 배창희가 곡을 짓고 노래 말을 붙였으며 김원중이 노래해 1980년대에 널리 따라 불린 “바위섬”을 흥얼대다가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부분에 이르러 멈췄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밀려오는 파도에 시달려 멍들었을 바위섬이 파도를 놔두고 애꿎게 나를 미워할 리가 없다 싶어서였습니다.
12시가 조금 못되어 비진도에 닿았습니다. 외항(?)에서 잠시 머무른 배가 다시 남진해 들른 섬은 안섬과 바깥 섬 사이에 개미허리 모양의 비진 해수욕장이 들어선 비진도였습니다. 여름 철 최적의 휴양지로 이름이 난 비진해수욕장도 철이 지나서인지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만 몇 명 보였을 뿐 썰렁할 정도로 한산했습니다. 비진도 앞 바다에 커다란 부표처럼 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승무원에 여쭈어 들은 답이 뗏목이라 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정방형의 평평한 뗏목은 강에 띄운 뗏목과는 달리 임시 작업장으로 일일이 선착장에 배를 대어 작업할 수 없기에 섬에서 가까운 곳에 뗏목을 띄우고 간단한 작업은 이 뗏목에 올라가서 한다는 부연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비진도 출발 몇 분이 지나자 염려했던 배 멀미가 시작됐습니다. 통영 항에서 비진도까지는 방파제역할을 하는 크고 작은 섬들 사이를 지나 멀미를 모르고 왔는데 비진도를 지나자 먼발치로 우뚝 솟은 바위섬만 몇 개 보였을 뿐 앞이 탁 트여 제가 탄 꽤 큰 배도 앞뒤로 또 좌우로 크게 요동쳤습니다. 피칭과 롤링이 장난이 아니어서 선실로 들어가 꼼짝 못하고 누워있느라 비진도-소매물도 간 바다 풍경을 사진 찍지 못했습니다.
12시반 경 소매물도에 다다랐습니다. 통영 항에서 시간 반을 운항해 내려선 소매물도 선착장은 어촌은 온데 간 데 없이 음식점만 잔뜩 들어섰고 공사를 하느라 길을 파내 어수선했습니다. 음식점과 민박집을 지나 돌계단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자 멀미로 보지 못한 선착장 앞바다가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돌계단을 걸어올라 능선 쉼터에 이르자 건너편에서 불어올라오는 해륙풍이 엄청 시원했습니다. 동백나무 그늘아래 쉼터에서 점심을 든 후 오른 쪽으로 몇 분 올라가 해발152m의 망태봉을 올랐습니다. 이 산이 이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에 42년 전 나라에서 밀수를 막고자 지금은 쓸모가 없어 내버려진 시멘트건물의 매물도감시서를 이곳에다 세웠을 것입니다. 망태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 그림 같은 등대섬이 통째로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은 후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계단 길을 내려가 해안가로 내려서자 망태봉을 받쳐주는 기암절벽이 볼만했습니다.
14시 조금 넘어 등대섬의 등대에 올랐습니다. 등대섬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만 길이 열려 아무 때나 쉽게 갈 수 있는 섬이 아닙니다. “모세의 기적”으로 명명된 열목대자갈길이 완벽하게 열리는 14시반경까지 기다릴 수 없어 반시간 먼저 구두를 적셔가며 70여m 거리의 몽돌열림길을 건넜습니다. 바닷길을 건너 첫 번째 들른 곳은 소매물도항로표지관리소였습니다. 1917년에 세워진 소매물도 등대는 그 높이가 16m이고 이 등대에서 발하는 빛이 비치는 거리가 48Km에 달해 남해안을 지나는 선박들에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널따란 태양전지집적판이 여러 개 있는 이 관리소의 지붕 색이 사진에서 보아온 주홍색이 아니고 연초록색이어서 비취색 바닷물과 잘 어울렸습니다. 깔끔한 계단을 따라 올라 다다른 등대의 위용이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등대의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소매물도의 공룡바위와 언뜻 보아서는 소매물도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매물도의 동쪽해안가의 곧추선 바위들이 절경이었습니다. 이들보다 더 빼어난 비경은 등대 좌우 끝 바로 아래 자리한 기암들이었습니다. 위에서 촛대바위와 병풍바위는 사진을 찍었으나 진시황제에 바칠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이 섬을 지난 서불(徐市)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새겨놓았다는 글씽이굴은 카메라에 담아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해 관광선을 타고 소매물도를 한 바퀴 돌며 해안가 기암절벽과 굴들을 사진찍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그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주상절리의 입석바위들이 연출한 해안가를 내려다보면서 어휘력이 부족해 묘사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사진으로 메울 욕심으로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15시55분 통영 행 배에 올랐습니다. 등대에서 내려가 몽돌열림길을 건넌 후 망태봉을 다시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산 허리를 오른 쪽으로 에돌아 점심을 들었던 쉼터로 돌아갔습니다. 출항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능선쉼터에서 반시간 가까이 머물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면서 넓은 풀밭 한 가운데로 낸 길 오른 쪽에 자리한 벌써 폐교된 학교건물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우산으로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장대비를 퍼붓는 하늘이 비를 멈춘 것은 배에 오르기 직전이었습니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군락지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배에 오르자마자 선실로 들어가 등을 눕혔습니다. 배 멀미가 걱정되어 그리했는데 피칭과 롤링이 오전보다 훨씬 덜해 별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배는 비진도와 외항을 들르지 않고 통영항으로 바로 가 소매물도로 갈 때보다 20분가량 시간이 단축됐습니다.
17시경 통영 항에 귀선해 소매물도 탐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번에 만나 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소문보다 심술이 사납지 않았습니다. 친형인 제우스신의 말도 잘 안 듣기로 이름난 포세이돈 신이 성질부리지 않고 8시간 동안 잘 참아주어 소매물도 탐방을 무사히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 귀가했습니다. 눈을 감고 얼마간 소매물도의 비경을 그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탐방한 소매물도가 앞서 다녀온 남해나 사량도보다 특별히 매혹적인 것은 등대 덕분입니다. 제가 등대에 다가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16m높이의 새하얀 등대가 낮에 보아도 아름다운데 캄캄한 바다를 지나는 뭇 배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사방으로 빛을 발해 도와주는 밤에 보게되면 아름다움에 더해 거룩해 보일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를 가끔 방문하는 등대지기 한 분은 서해의 외딴섬에서 등대를 지키며 우렁각시님과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당신의 블로그에 올려놓곤 합니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노래는 젊어서 즐겨 부른 영국민요 “등대지기”입니다. 거센 파도를 모으는 작은 섬인 소매물도에 가서 등대에 올랐어도 정작 등대지기님은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그 아쉬움을 아래 노래로 달래보며 소매물도 탐방기를 맺습니다.
등대지기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자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박이며 지새우는 기나긴 밤하늘
생각하라 저 바다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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