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명소탐방기1
*탐방일자:2010. 5. 9일(일)
*탐방지 :충북단양 도담삼봉, 온달산성, 온달굴 및 충주호 장회나루-옥순대교
뱃길 연봉(옥순봉/구담봉/제비봉)
*동행 :경동고 동문등 16명
(24회 김남진부부, 김주홍부부, 서중원부부, 이규성부부, 이기후부부, 이달헌부부,
장광종부부, 우명길, 29회정병기)
연단조양(鍊丹調陽)은 신선이 먹는 환약인 연단(鍊丹)과 빛이 골고루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어 살기 좋은 고장을 뜻하는 조양(調陽)이 합쳐진 말로 충북의 단양(丹陽)이 바로 이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되었다고 단양군청의 홈페이지는 전하고 있습니다. 신선이 불로약을 들면서 다스렸다는 살기 좋은 단양의 명소 몇 곳을 탐방하면서 기대했던 신선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대신에 신선도 감탄했을 절경 몇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번 단양탐방이 제게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은 제 성(姓)이 단양(丹陽)이 본관인 우 씨(禹 氏)이기 때문입니다. 우 씨의 본관은 단양뿐이어서 고려조의 유학자 역동 우 탁선생의 본관도 이곳 단양입니다. 충주호 담수로 수몰되기 전에 한 번 단양의 시가지를 걸어보고 싶어서 바로 한 해전인 1985년(?) 여름 집사람과 함께 이곳을 찾아 하룻밤을 묵어갔습니다. 그때 도담삼봉, 석문과 고수동굴을 탐방한 후 배를 타고 유람한 것은 분명한데 정확히 어디를 가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 후 백두대간 종주 차 신시가지 단양에서 잠만 자고 간 일은 수차 있었지만, 작정하고 단양의 명소를 찾아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25년 만의 일입니다.
이 고장 출신 이기후 고교동문의 주선으로 단양 명소 몇 곳을 탐방했습니다. 멀게는 온달굴의 지층이 생성된 4-5억 년 전에서 가깝게는 온달산성을 축성한 고구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단양을 관통해 흐르는 한강이 셈했을 오랜 세월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달굴과 온달산성, 한강 속의 도담삼봉, 한강에 물길을 내준 옥순봉, 구담봉과 제비봉 등이 이번에 찾아본 명소들입니다.
1)도담삼봉
아침10시가 조금 넘어 단양시가지에서 멀지 않은 도담삼봉을 맨 먼저 찾았습니다. 1985년 처음 찾은 도담상봉은 그 후에도 근처를 지나면서 먼발치서 바라다보기는 여러 번 했습니다. 3개의 암봉과 가운데 봉우리 중턱에 세운 정자가 한강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배를 타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는 도담상봉은 전설에 따르면 강원도 정선의 삼봉이 홍수 때 떠내려 온 것이라 합니다. 정선군에서 단양군에 삼봉을 차지한 대가로 세금을 물리고자 했으나 어린 나이의 삼봉 정도전이 아무 쓸 데 없는 삼봉을 도로 가져가라고 꾀를 내어 세금을 물지 않았다 하니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관과 민을 가리지 않고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15년 전 이곳에 들렀을 때는 반대편 남쪽에서 배를 타고 도담상봉을 둘러본 후 건너편에서 내려 산 중턱의 석문을 오른 기억이 나는데 당시는 카메라가 없어 사진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장마철이면 가슴까지 찼을 물이 많이 빠져 허리까지 드러낸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해 합동사진을 찍고 나서 다음 탐방지인 온달산성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저녁노을이 드리운 도담상봉의 절경을 보았으면 딱 좋았을 것을 그리 하지 못한 아쉬움은 조선조 단양군수를 역임한 퇴계 이황선생의 시 한수로 달랬습니다.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산은 단풍으로 물들고 강은 모래 벌로 빛나는데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삼봉은 석양을 이끌며 저녁노을 드리우네
爲泊仙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신선은 배를 대고 길게 뻗은 푸른 절벽에 올라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별빛 달빛으로 너울대는 금빛 물결 보러 기다리네
(한시 번역은 최인호님의 소설 “유림”에서 따왔습니다. )
2)온달산성
도담삼봉 다음으로 단양군의 영춘면 하리에 조성된 온달관광지를 찾은 것은 온달산성과 온달굴을 탐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온달관광지에 조성된 곳곳을 다 들를 생각이 아니어서 입장료 5천원이 조금 과하다 싶었지만 온달산성 한 곳만 둘러보아도 그 값어치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관광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천추태후”와 “태왕사신기”등 역사드라마의 촬영지인 세트장을 그냥 지나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들머리에서 온달산성까지 산행거리가 0.9Km라 하는데 경사가 급한 편이어서 계단을 해놓았습니다. 중간 지점에 설치된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 후 다시 올라온 만큼을 더 올라 온달산성에 이르렀습니다. 산성 아래 남한강의 물 흐름은 물론 한강을 끼고 낸 도로와 통행차량들이 선명하게 보여 이 산에 산성을 쌓은 이유가 한강 유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반시간 남짓 걸어 산성 앞에 다다랐습니다. 외곽둘레가 682m인 온달산성은 반달 모양의 석성으로 성안에 우물터가 남아 있고 성벽 바깥부분에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으며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고 단양관리공단에서 발행한 안내 팜프레트에 실려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성안으로 들어서자 경사진 공터에 풀들이 잘 자라고 있었고 노란 아기똥풀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오른쪽 아래가 직벽의 성벽인 성곽을 따라 소나무 몇 그루가 서있는 꼭대기까지 오르자 맞은 편 산들이 그림에서 본 중국의 장가계와 비슷한 산세를 하고 있어 독특했습니다. 한 바퀴를 빙 돌아 성곽 문을 나서면서 산성의 보존상태가 좋아 길쭉한 돌들을 정성들여 쌓은 선조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온달은 후주 무제가 요동을 침략했을 때 이를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평강공주와 결혼한 평원왕의 부마이기도 했습니다.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장군은 신라가 빼앗아 간 한수 이북의 땅을 되찾아오겠으니 군사를 내달라고 요청하며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領) 서쪽 땅을 고구려 것으로 되돌리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으로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 온달장군의 관(棺)이 옴짝달싹도 하지 않다가 평강공주가 “사생(死生)이 정해졌으니 아! 돌아가소서”하고 빌자 비로소 움직였다 합니다.
온달장군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고구려 군을 이끌고 내려와 신라군과 전투를 치르는 중 전사한 곳이 아차산성이고 그 아차산성이 남한강 상류의 온달산성을 가리킨다는 단양의 향토사학자 한 분의 주장은 소수의견일 뿐,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은 서울의 아차산이라는 것이 역사적 정설인 것 같습니다. 남한강변 한 산봉우리의 해발385m -554m 지점에 설치된 이 성이 앞으로도 계속해 온달산성으로 불리려면 단양군의 향토문화원은 이 성이 아차산성임을 역사적으로 고증해 그 사실이 각종 역사서에 실리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3)온달동굴
화강암이 주인 한반도에서 석회암이 몰려 있는 곳은 강원도와 충청북도 그리고 경상북도 일대입니다. 석회암을 주원료로 하는 시멘트 공장들이 주로 이 지역에 몰려 있듯이 석회동굴 또한 그러합니다. 경북울진의 성류굴, 강원삼척의 환선굴과 충북단양의 고씨동굴 모두 석회암이 지하수에 녹아 만들어진 석회동굴이라는 점이 용암동굴인 제주의 만장동굴등과 대비되는 점입니다. 온달관광지 안에 자리한 온달동굴도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동굴내부에 잘 발달된 종유석과 석순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261호로 지정된 영춘남굴이 온달동굴로 불리는 것은 온달산성 밑에 위치해 있고 온달장군이 수양하던 곳이어서 그렇다합니다. 총길이가 700m정도이고 입구의 높이가 2m 정도인 온달동굴은 그 개방구간이 450m의 짧은 거리여서 반시간도 안 걸려 동굴 안을 휘둘러보고 나왔습니다. 이 동굴이 발견된 지층은 4-5억년에 형성된 전고생대 대석회암층으로 이 지층을 이루고 있는 석회암이 지하수에 녹아 굴이 만들어진 것은 10만 년 전 이내의 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습니다. 굴 입구는 그 높이가 2m정도여서 머리가 닿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지나야 할 정도로 낮은 곳이 많아 헬멧을 쓰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머리를 다치기 십상일 것 같았습니다. 형광등은 켜졌지만 컴컴할 정도로 불 밝기가 희미해 사진을 몇 장 못 찍었는데 다 나와서 동굴 안을 환하게 밝히지 않은 것이 그 안에서 몇 만 년을 이어온 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굴 안에서 사진을 찍는 일 조차 삼가는 것이 좋았을 것을 그리 하지 못했습니다. 종유석과 석순은 다른 동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바닥에 흐르는 물의 양은 다른 동굴보다 훨씬 많아 물이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고 굴안이 더 서늘했습니다.
굴 안을 빠져 나오자 5월의 훗훗한 공기가 제 몸을 휘감았습니다. 영양왕께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領) 서쪽 땅을 고구려 것으로 되돌리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한 온달장군이 한가하게 이 굴 안에서 수양이나 하고 앉아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전투를 끝내고 잠시 짬을 내어 이 동굴 안에서 머리를 식힐 수는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4)충주호 장회나루-옥순대교 뱃길(옥순봉/구담봉/제비봉)
온달관광지에서 단양시내로 옮겨 점심을 사 든 후 장회나루로 가서 옥순대교를 왕복하는 관광선에 올랐습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려 올라탄 관광선은 관광버스와는 달리 단체관광객을 위한 고객서비스가 극진했습니다. 항로 길의 명소 안내를 끝내자마자 어느 초등학교학교동창들만을 위해 노래방을 열어준 관광선의 서비스는 조용히 주변 경관을 완상하고 가겠다는 개별 관광객의 뜻을 저버린 빗나간 것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저들 단체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다면 이 관광선도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생존을 위한 서비스다 싶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내국인들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속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배안에서 춤을 추고 괴성을 질러대며 노래하는 것을 어찌 볼 런지 모르겠습니다.
장회나루에서 옥순대교를 가는 배에서 퇴계선생과 고매한 사랑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 두향의 묘지를 보았습니다. 구담봉 강 건너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묘가 두향의 묘임을 안 것은 관광선의 안내 덕분이었는데, 작가 최인호님은 여기 장회나루에서 한 선원의 도움으로 쾌속정을 타고 강 건너 두향의 묘를 직접 찾아가 술 한 잔을 바치며 제향을 올렸다고 그의 소설 “유림”에 자세히 적어놓았습니다. 관기였던 두향이가 퇴계 이황선생을 모신 것은 고작 9개월이었는데 관기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 후에도 두향은 종신 수절을 하다가 퇴계선생이 세상을 뜨신 후 지금은 물에 잠긴 강선대에서 몸을 날려 생을 마감했다 합니다.
옥담대교를 끝으로 장회리선착장으로 회항하는 길에 퇴계 이황선생께서 단양8경으로 명명한 옥순봉(玉筍峰)과 구담봉(龜潭峰)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퇴계선생께서 “단양산수기”에 밝힌 옥순봉의 단양8경 지정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구담봉에서 여울을 거슬러 나가다가 남쪽의 언덕을 따라가면 절벽 아래에 이른다. 그 위에 여러 꽃 봉우리가 깍은 듯이 서 있는데, 높이가 가히 천길 백 길이 되는 죽순과 같은 바위가 높이 솟아 있어 하늘을 버티고 있다. 그 빛이 혹은 푸르고, 혹은 희어 푸른 등나무 같은 고목이 아득하게 침침하며 우러러볼 수는 있어도 만져볼 수는 없다. 이곳을 내가 옥순봉이라 이름 지은 것은 그 모양 때문이다.”
(윗 글은 최인호님의 소설 “유림”에서 따왔습니다.)
충주호에 면해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서 있고 그 기암 위에 거북모양의 바위가 얹혀 있으며 강물에 비친 그림자는 거북이가 떠 있는 것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구담봉(龜潭峰)의 높이는 해발335m으로 “높이가 가히 천길 백 길이” 된다는 옥순봉(玉筍峰)보다 49m가 더 높습니다. 충주호와 어우러져 가히 절경을 빚은 구담봉과 옥순봉을 둘러 본 후 장회나루에 돌아온 저희들을 반 긴 것은 선착장 남쪽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710m의 제비봉이었습니다. 옛날 천지개벽 때 제비가 앉을 만큼만 남았다 하여 제비봉으로 불린다는 이 산을 저는 아직 오르지 못했는데 남쪽에서 충주호를 조망하기에 이만한 산이 없다 합니다.
단양명소탐방을 마치고 버스로 귀경했습니다. 이번에는 명소탐방에 그쳤지만 다음에는 저 혼자 내려가 단양 우 씨의 뿌리를 찾아 나설 생각입니다. 탐방을 주선해준 이기후 동문에 감사하며 단양명소탐방기를 맺습니다.
<탐방사진>
1)도담삼봉
2)온달산성
3)온달동굴
4)충주호 장회나루-옥순대교 뱃길(제비봉/구담봉/옥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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