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 종주기8(유수교-진주IC-고미동고개)

시인마뇽 2010. 12. 27. 20:17

                                                          낙남정맥 종주기8

 

                                   *지맥구간:유수교-진주IC-고미동고개

                                   *산행일자:2010. 12. 23일(목)

                                   *소재지   :경남진주

                                   *산높이   :실봉산185m, 화봉산110m, 와룡산94m

                                   *산행코스:유수교-실봉산-진주IC-화봉산-와룡산-고미동고개

                                   *산행시간:9시10분-16시46분(7시간36분)

                                   *동행      :나홀로

 

 

  어제야 비로소 만4개월 만에 낙남정맥 종주 길에 다시 올랐습니다. 9-10월은 막내아들 결혼 날짜가 잡히면서 하객들에 올릴 책 발간에 바빠 짬을 내지 못했고, 11월-12월 두 달간은 연이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준비로 수도권 밖의 산들을 오를 만큼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12월12일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서 딱 한 주를 기다려 명성지맥의 두 번째 구간을 종주했고 그 나흘 후인 어제 다시 낙남정맥 종주 길에 나서 본격적으로 산줄기종주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정맥 종주를 이어온 저이기에 이제껏 짐 싸들고 집을 나서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는데 몇 달을 쉬고 나자 선 뜻 집을 나서지 못한 것은 때 마침 엄습한 강추위로 몇 번이나 생각을 바꾸곤 해서였습니다.

 

 

 

  이번에 종주 길에 오르는 것을 주저하게 한 것은 강추위만은 아닙니다. 아니 그 보다는 그새 새로 생긴 주저앉고자 하는 관성이 저를 더 머뭇거리게 했습니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운동 상태를 또는 정지 상태를 계속 견지하려한다는 것이 운동의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입니다. 지난 8월까지는 정맥을 종주하려는 관성이 강했다면 그 후 몇 달을 쉬고 나자 궁둥이가 더욱 무거워져 주저앉고자 하는 관성이 새로 생겼습니다. 관성은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으면 관성이 바뀌지 않듯이 웬만큼 충격적인 조치 없이는 습관 또한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어떤 습관을 갖느냐가 특별히 중요한 것은 웬만하면 우리는 습관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는 것이 힘이 덜 들고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습관은 어느 것보다 우선한 우리 삶의 추동력인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가 지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세 번째로 중요하다고 언급된 습관은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중한 것보다는 급한 것을 먼저 하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이것도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방송대 학생인 제게 시험이 중요하기는 해도 이 나이에 시험 성적을 갖고 어디 써 먹을 것도 아니기에 제 삶에 희열을 안겨주는 정맥종주만큼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급한 기말시험 준비를 먼저 하느라 소중한 정맥 종주를 쉬었습니다. 막상 시험이 끝나자 힘들고 단조로운 정맥종주가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해 이러다가는 힘들게 길들인 좋은 종주습관을 버리고 영영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싶어 이번에 혹한예보를 무릅쓰고 낙남정맥 종주 길에 다시 나선 것입니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40분여 기다려 올라탄 96번 시내버스가 반시간을 조금 못 달려 저를 내려놓은 정동버스정류장에서 왼쪽 포장도로를 따라 5-6분을 걸어 다다른 곳이 지난번 종주산행을 마친 유수교 앞이었습니다. 지난 8월 이 다리를 찾을 때는 진양호 물을 가화강으로 흐르게 하고자 정맥이 지나는 산줄기를 들어내고 쳐놓은 시멘트 방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냉기가 감지되어 시멘트란 역시 비열(比熱)이 낮아 외부온도에 민감하다 했습니다. 외부온도에 민감하기는 저도 마찬가지여서 강추위가 엄습해 기온이 영하로 급락한다는 기상예보를 접하고 겹겹이 껴입을 옷가지를 챙겼습니다.

 

 

 

  9시10분 가화강을 가로지르는 유수교 앞에서 낙남정맥의 여덟 째 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유수교를 막 건너 오른 쪽 으로 꺾어 외딴 집 한 채를 지났습니다. 곧이어 왼쪽 산길로 들어서자 이제 들머리를 확실히 찾았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푸르른 대나무 숲을 지나 홍수예경보시설이 들어선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 숨을 돌린 후 아침햇살이 다소곳이 내려 앉은 억새밭(?)을 지나 묘지가 들어선 173m봉에 다다랐습니다. 밤나무단지를 지나 파란 물탱크가 설치된 둔덕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임도를 따라걸었습니다. 좌우로 시멘트 길이 나 있는 안부사거리에서 "와룡산9.41Km/솔티고개6.93Km"의 낙남정맥 표지목을 보자 종주 꾼을 배려한 당국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10시42분 104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비리재에 도착했습니다. 낙남정맥 표지목이 세워진 시멘트길 안부에서 직진하여 청색의 대형 물통이 세워진 105m봉에서 과일을 꺼내 든 후 좌측사면이 감나무 밭인 과수원 윗길을 지나 비리재로 내려갔는데 수확 철인 가을에 이 길을 지나기가 상당히 눈치 보일 것 같았습니다. 지방도를 건너 똑 바로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목백일홍이라 불리는 배롱나무 묘목밭 위를 지나 128m봉에 이르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감나무과수원을 지나는 데 컨테이너 건물에 매여 있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길길이 날뛰며 짖어대 혹시라도 매놓은 줄이 풀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됐습니다. 컨테이너 건물 옆을 지나 내려선 포장도로를 따라 4-5분가량 진행하다가 7-8분을 되짚어 가 메모를 하느라 떨어뜨린 장갑 한 짝을 찾아 다시 컨테이너 건물 옆을 지났습니다. 왼쪽 아래로 다루황토집이 보이는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고개 마루를 얼마 앞두고 오른 쪽 산길로 다시 들어선 시각이 11시50분이었습니다.

 

 

 

  12시35분 해발185m의 실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방책선이 쳐진 고개 마루 조금 못미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서 절개면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꺾어 179m봉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가 “2000임도시설 내동 독산지구”표지비가 세워진 임도삼거리 안부에 내려섰습니다. 실봉산 정상이 0.6Km 남았음을 알리는 낙남정맥 표지봉이 세워진 임도삼거리에서 똑바른 방향으로 17분을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실봉산에 올랐습니다. 바로 아래 묘지에서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녹이고 김밥 두 줄을 꺼내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다가 13시가 다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실봉산에서 조금 내려가 좌측사면이 두릅나무 단지인 능선 길과 배추 밭을 지나 넓은 공터에 정자가 세워진 해돋이 쉼터에 이르렀습니다. 해돋이 쉼터를 오른 쪽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 만난 산강마을과 향촌마을이 좌우로 갈리는 임도4거리에서 직진해 넓은 임도를 따라 걷다가 오른 쪽 소로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그 다음의 갈림길에서는 오른 쪽으로 꺾어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14시13분 진주IC를 지났습니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임도 삼거리에서 왼쪽의 임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배나무단지를 지나 내려선 화원삼계탕 음식점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지하도를 지났습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3번 국도를 건넌 다음 굴다리 두 개를 더 지나 중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진주IC를 완전히 통과했습니다. 마지막 굴다리를 건너자 길 왼쪽으로 사유지이니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차도 따라 직진하다 왼쪽으로 꺾어 중부고속도로 밑을 지나는 또 하나의 굴다리를 건넜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민가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산으로 들어서기까지 으레 들어온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이내 고속도로 사면을 따라 올라선 봉우리가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그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해발110m의 화봉산이었습니다. 점심식사 후 시간 반을 훨씬 더 걸어 오른 화봉산에서 15분 간 쉰 후 14시52분에 정맥종주를 다시 이어갔습니다.

 

 

 

  15시33분 와룡산에 도착했습니다. 화봉산에서 조금 내려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북진하다가 밤나무단지를 만나 오른쪽으로 내려간 곳이 포장도로가 지나는 모산재였습니다. 길 건너 “등산로입구”라는 스텐레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묘지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자 밭이 나타났습니다. 위험하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 몇 걸음 나아가자 낭떠러지 절개면이 나타나 다시 나와 밭가를 따라 내려가 공사 중인 넓은 도로를 건넜습니다. 도로 건너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다가 오른 쪽으로 꺾어 허름한 집 몇 채가 좌우로 들어선 능선의 시멘트 길을 지났습니다. 대나무 숲속에 시멘트 구조물이 들어선 해발94m의 와룡산은 임도 길에서 오른 쪽으로 4-5m들어가 있어 표지기를 관심 갖고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일 것 같았습니다. 다시 와룡산 숲에서 임도로 다시 나와 십 수 분간 편안한 길을 걸었습니다. 한참을 걸은 후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면서 긴가민가해 한 할아버지에 낙남정맥 길을 여쭸더니 그대로 직진하면 산불감시소가 나타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종주 중에 정맥 길을 정확히 아는 현지 주민들을 만나보기 쉽지 않은 것은 이분들에는 정맥 길이 그저 이름 없는 동네 산줄기일 뿐이어서 그러한데 이번에는 두 번을 물어 모두 다 제대로 길안내를 받고나자 곳곳에 낙남정맥 표지목을 세운 것이 그냥 세운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가리켜준 대로 직진해 산불감시초소에 이른 시각은 16시5분이었습니다.

 

 

 

  16시46분 고미동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배 밭을 지나면서 한 겨울에 이 길을 지나기를 참 잘했다 싶은 것은 5년 전 한남정맥 종주 때 주인 할아버지가 과수원 옆을 지나지 못하게 해 먼 길로 빙 돌아간 기억이 나서였습니다. 과수원집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다다른 고개가 죽봉재로 왕복2차로가 이 고개를 지났습니다. 죽봉재 차도를 건너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따라 걸으며 배나무밭을 위로 지났습니다. 배나무 밭을 지나 이어지는 길이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마음 편히 걷다가 앞서 길길이 날뛴 개들보다 훨씬 더 광적으로 짖어대는 견공들 옆을 지나노라 귀가 다 먹먹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차도가 지나는 동리 위를 지나 다시 산길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감지되는 어둠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 과수원과 묘지를 지나는 중 잠시 멈춰 서서 서녘에 걸린 석양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왼쪽 소로로 내려가 문산면과 정촌면을 경계 짓는 고미동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농장” 표지목이 세워진 이 고개에서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왼쪽 정촌 쪽으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마침 진주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어 재빨리 올라타 하루 산행을 반추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게도 좋은 산행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산행기를 남기는 것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 것이 대학 3학년 때인 1970년이고 산행기를 빼놓지 않고 작성한 것은 2004년 이후의 일이니 산행시작 34년 만에 본격적으로 산행기를 쓰기 시작해 이제 만7년에 이르렀습니다. 때로는 산행기 작성이 산행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냥 사진만 올릴까 하다가도 그리해서는 산행 중 만난 산식구들과의 대화를 제대로 옮길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글 중심의 산행기를 작성해왔습니다. 산행기란 제게는 나무와 꽃, 새들과 산짐승, 바람과 구름, 바위와 계곡물 등의 산식구들과 나눈 대화록이기에 사진만 갖고는 부족합니다. 이에 먼저 오른 분들이 제게 했듯이 저도 뒤에 오르는 분들에 길안내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드리고 싶어 산행기를 남기는 것이기에 더 그러합니다. 이제는 산을 다녀온 후 산행기를 완성하지 않으면 뭔가가 찜찜해 개운치 못합니다. 세 살 버릇만 여든 살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50대 후반에 익힌 늦 버릇도 여든 살을 넘겨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 버릇 덕분에 이번에도 낙남정맥 종주기를 힘들게나마 완성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