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기9
*지맥구간:고미동고개-무선산-돌장고개
*산행일자:2010. 12. 24일(금)
*소재지 :경남진주시/사천시
*산높이 :무선산278m
*산행코스:고미동고개-진주축협생축사업장-봉전고개-무선산
-돌장고개-금곡버스정류장
*산행시간:9시2분-14시52분(5시간50분)
*동행 :나홀로
낙남정맥(洛南正脈)의 낙남(洛南)은 낙동강(洛東江)의 남쪽을 뜻합니다. 여기서 낙동강이란 낙동강의 본류에 이 강의 제1지류인 남강(南江)이 더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남강이란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경상남도의 의령군과 함안군을 같이 만나는 창녕군 남지읍 대안리에서 낙동강의 본류에 합류되는 강을 이릅니다. 이 강에 물을 대주는 산줄기가 바로 제가 종주하고 있는 낙남정맥입니다.
낙남정맥으로부터 물을 받아 흐르는 남강이 만들어낸 최대의 도시는 서부경남의 중심도시인 진주입니다. 남강의 원류인 남계천이 덕천강과 합수되는 곳이 진주의 진양호로, 여기서 합수된 강물이 남강댐을 거친 뒤부터 남강으로 불리면서 진주시를 남북으로 가르며 관류(貫流)합니다. 조일전쟁에서 조선군이 대승을 거둔 3대 대첩의 하나가 김시민 진주목사가 진두지휘해 왜군을 격파한 진주대첩인데 그 진주대첩이 치러진 곳이 바로 진주성입니다. 애석하게도 적의 유탄에 맞아 김시민 장군은 전사했지만 진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둔 조선군도 그 다음 해 2차 침공을 막지 못하고 대패하면서 진주대첩에서도 의병장으로 참전했던 경상우병사 최경창은 남강으로 뛰어내려 자결했습니다. 최경창의 부실(副室)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스께를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한 곳이 진주성의 의암입니다.
다음 종주 산행은 진주시를 벗어나 고성에서 끝납니다. 그동안 총 여드레 밤을 묵어간 진주 시내를 낙남정맥 종주를 위해 다시 찾는 일은 다음 산행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동과 사천 및 진주시 곳곳을 왕래하는 버스 편이 많아,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직통버스로 이곳 진주로 내려와 하루를 묵은 후 아침 일찍 들머리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제가 진주를 처음 찾은 것은 집사람과 연애할 때 지리산을 오르고자 이곳을 경유했던 1975년 여름이었으니 어언 35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 지리산을 오르고자 한두 번 들른 일은 있지만 하룻밤 묵은 일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낙남정맥 및 낙남금오자맥종주로 몇 밤을 묵어가자 그새 정이 들었는데 이제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자 서운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아침 9시2분 고미동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26-3번 버스를 타고 경상대로 가서 산행시간을 벌고자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제 목적지가 문산과 정촌의 경계인 고미동고개이며 고개 가까이에 “이름 없는 목장”이 있다고 알려줘도 나이든 기사분이 내비게이션으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그냥 가다가 나중에야 길을 잘 못 든 것을 알고 다시 돌아와 제 길을 찾아가느라 택시 탄 보람도 없이 시간과 돈 모두 더 들었습니다. “家族農場” 표지목이 세워진 과수원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가며 주인집 앞을 지나 감나무 밭이 끝나는 곳까지 오른 다음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직 햇살이 퍼지지 않아 손끝이 시렸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견딜 만 했습니다. 좌측사면이 과수원인 능선 길을 지나 무명봉에 올라서자 햇살이 퍼졌고 오른쪽으로 내려갈 때는 햇빛을 바로 받아 선글라스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똑바로 눈을 뜨기가 불편했습니다. 산행시작 1시간이 거의 다 되어 왕복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가리재에 내려섰습니다.
10시30분 진양축협생축사업장 앞을 지났습니다. 애당초 택시기사분이 저를 내려놓고자 했던 고개는 고미동고개가 아니고 관봉초교를 지나는 가리재였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나 고미동고개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가리재에서 헤맬 뻔 했다 생각하자 앞으로는 내비게이션을 손쉽게 다룰 줄 아는 젊은 기사의 택시를 이용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무선산을 4.4Km 앞에 둔 가리재에서 나무계단 길로 올라섰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아스팔트길로 내려가는 중 소나무 밭 한 가운데 공터를 가득 메운 억새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너울거리는 평화로운 정경에 눈이 가, 이때가 아니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싶어 잠시 멈춰 서서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내려선 아스팔트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진양축협생축사업장 앞을 지나면서 할아버지 한 분에 길을 물었습니다. 이분 역시 낙남정맥 길을 잘 알고 계셔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면서 왜 쓸쓸하게 혼자 다니느냐고 혀를 차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길이란 그것이 산길이든 인생길이든 동행이 있어야 걸을만하다 함을 오랜 삶을 통해 체득하신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생축사업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마루금에 들어서 있는 생축장을 우회해 10시51분에 올라선 170m봉에서 덤불 숲속에 숨어 있는 삼각점을 확인한 후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진을 시작했습니다.
12시25분 해발278m의 무선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170m봉에서 초반에 70m가량 고도를 낮추어 내려갔다가 올라선 봉우리에서 225m봉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산길이 소나무 밭 사이로 이어져 남의 집 과수원 길을 지날 때보다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남강의 지류인 문천강 줄기가 한눈에 잡혔고 오른 쪽 아래로는 용동소류지가 보였습니다. 소나무에 이어 참나무와 밤나무들이 들어선 능선 길을 걸으며 가끔씩 지나가는 비행기가 내는 기계음도 저를 반기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보다 그다지 크지 않아 자연의 청음에 묻히는 듯 했습니다. 170m봉을 출발한지 1시간이 채 안되어 왼쪽 아래로 용전소류지가 내려다보이고 작은 바위돌이 몇 개 박혀있는 225m봉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귤을 까먹었습니다. 225m봉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걸어 송전탑과 작은 묘지를 지나 금곡면과 정촌면을 가르는 봉전고개에 다다른 시각이 12시4분이었는데, 왕복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차들은 별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길 건너 나무계단에 올라서서는 계속해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봉전고개 출발 20분이 지나 무선산 정상에 거의 다 올라가서야 경사가 완만해졌습니다. 잡목을 베어낸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본 후 "돌장고개2.89Km/와룡산9.20Km"표지목이 세워진 바로 아래 삼거리에서 모처럼 편히 쉬며 점심을 들었습니다.
13시59분 돌장재에 도착해 아홉 번째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돌장고개2.89Km/와룡산9.20Km"표지목 앞을 12시42분에 출발해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묘지를 지난 후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능선 정상에 올라선 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274m봉에 도착했습니다. 274m봉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왼쪽으로 꺾어 동진해 다다른 185m봉에서 다시 오른 쪽으로 꺾어 남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돌장고개로 내려서기까지 길 찾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시야가 탁 트이는 겨울철에 산행을 한 덕분일 것입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 묘지 몇 개를 지나 돌장재에 도착하자 1002번 지방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나란히 지나, 앞서 지나온 봉전고개와는 달리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산행을 끝내기는 이른 시각이지만 더 이상 진행했다가는 부련이재에 다다르기까지 적당히 탈출할 만한 데가 없어 해떨어진 후에도 산행을 해야 할 것 같아 무리하지 말자며 돌장재에서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14시52분 금곡면의 금곡정류장으로 이동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1002번 지방도로를 따라 사천 쪽으로 올라가 중부고속도로를 건너는 지하도를 확인한 후 다시 돌아가 금곡으로 이동했습니다. “연화산도립공원”의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고성 땅이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으로 진주시를 들를 일도 없겠다 싶어 산행이 일찍 끝났으니 이 참에 진양호와 진주성을 들러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금곡시내로 내려갔습니다. 길거리 점포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아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 겨울 거리가 더욱 황량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가 간신히 잡아탄 26-3번 버스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침 제가 탄 버스의 종점이 진양호여서 진양호를 먼저 찾았습니다. 거대한 댐에 담수된 새파란 물이 저녁 햇살을 받아 잔잔한 물결이 찰랑거리는 섬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진양호의 수문은 이곳 외에도 한 군데가 더 있으니 그곳이 바로 전날 출발지인 유수교 위에 있는 수문인데, 낙동강하류가 범람위기에 처하면 이 수문을 열어 진양호의 물 일부를 사천만 앞바다로 흘려보낸다 합니다. 댐 주위만 일별하고 호반 둘레 길을 빙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진주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의 다가 진주성 앞에서 하차해 공북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작년 7월 이 성을 돌면서 들르지 못한 국립진주박물관을 먼저 찾았습니다. 2층의 임진왜란실을 먼저 돌아보며 천자총통 등 왜란 때 사용된 무기들을 훑어보았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을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 본 후 박물관을 빠져나와 촉석루로 옮겼습니다. 전시에는 장병을 지휘하는 지휘소로, 평시에는 풍류를 즐기는 놀이터로 쓰인 촉석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의 누대로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았다 하여 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의로운 여인 논개가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 이 누대에서 승리의 자축연을 벌이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으며 그 후 146년이 지나 1740년에 이르러서야 이 누대 옆에 논개사당인 의기사를 지어 그녀의 의로운 죽음을 기렸습니다. 촉석루에 올라 석양을 반사하는 남강을 지켜보면서 저 강이 증언하는 논개의 의로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과연 이 나라를 잘 지켜내고 있는 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북한의 무력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되고 연평도 주민이 사망한 일을 두고 모두가 합심해 북한을 규탄하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좌우로 갈려 갈등하는 모습들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이 의로운 여인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시민장군 전공비 등 몇 곳을 더 둘러보고 촉석문으로 빠져나가 진주성 탐방을 마친 후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남아 있는 낙남정맥을 종주하는 길에 웬만하면 가까운 명소나 유적지를 들러볼 생각입니다. 그리하면 그동안 몰랐던 가야를 새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전에 가야에 관한 몇 가지 책을 미리 사서 읽어볼 뜻입니다. 저는 이 길이 낙남정맥 종주기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옛부터 진주 지역에서 애창되온 민요 "진주난봉가"를 올리며 종주기를 맺습니다.
진주난봉가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시어머님 하시는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아가
진주낭군을 볼라거든 진주남강에 빨래를 가게
진주남강에 빨래를 가니 물도나 좋고 돌도나 좋으니
이리야 철석 저리야 철석 어절철석 씻고나 나니
하날 겉은 가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 못 본 체로 지내가네.
껌둥빨래 껌께나 씻고 흰 빨래는 희게나 씨여
집에라고 돌아오니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아가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낭군을 볼라그덩
건너 방에 건너나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바라
건너 방에 건너나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보니
오색가지 안주를 놓고 기생첩을 옆에나 기고 희희낙락하는구나.
건너방에 건너나 와서 석 자 시 치 멩주 수건 목을 매여서내 죽었네.
진주 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첩으야 정은 삼 년이고 본 처야 정은 백년이라
아이고 답답 웬일이고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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