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기10
*정맥구간:돌장고개-봉대산-배곡고개
*산행일자:2011. 1. 2일(일)
*소재지 :경남진주/사천, 고성
*산높이 :봉대산 409m, 양전산310m, 백운산 391m
*산행코스:금곡버스정류장-돌장고개-임도삼거리-봉대산-양전산
-부련이재-백운산-배곡고개
*산행시간:8시-18시(10시간)
*동행 :나홀로
낙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인근마을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밤하늘을 점점이 밝히는 수많은 별들을 보았습니다. 경남고성의 망림마을 정류장에서 진주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생각지 않게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꽉 채우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 했습니다. 오래 잊었던 별들을 다시 보게 되자 그동안 원래 하늘에 주소를 두고 있는 가장 큰 무리들이 바로 별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싶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십리를 걸어 나와 삽 십리 떨어진 읍내학교를 버스로 통학을 하느라 시골의 밤길을 많이 걸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려올 것 같은 별들이 밤길을 밝혀 손전등 하나 없이도 캄캄한 시골길을 잘도 걸어 다녔습니다. 한 여름 밤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별이 이 땅에 내려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게는 별이 아주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엄밀하게 말해 별(star)이란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를 뜻합니다. 별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것은 핵융합반응이 계속 일어나는 덕분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수소폭탄이 계속 만들어지고 폭발된다는 것입니다. 핵융합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지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기에 별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달 다음으로 밤하늘을 밝게 밝히는 샛별도 별이 아닙니다. 달과 샛별 모두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고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태양을 돌고 있는 수성, 금성의 내행성(內行星)과 화성, 목성, 토성 등의 외행성(外行星)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떠돌이별로 모두 별이 아닙니다. 우리와 가장 친근한 별은 태양일 것입니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발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태양계의 행성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태양처럼 학교에서 붙박이별이라 배운 항성(恒星)이 바로 별입니다. 우주에 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태양은 우리 은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별 중 그저 작은 하나의 별일뿐입니다. 지구와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을 돌고 있는데 그 공전주기가 지구의 공전주기 1년과는 비교가 안 되게 긴 2억년이 넘습니다. 우주의 모든 별은 소멸되고 또 새로운 별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집니다. 지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태양의 나이가 50억년이 다 되는 데 이 태양이 더 이상 핵융합반응을 하지 못해 소멸되는 데는 대략 50억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라 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할 뿐입니다.
별을 죽이는 것은 핵융합반응의 멈춤이지만 별빛을 죽인 것은 사람들이 만든 빛입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을 도심에서 만나볼 수 없는 것은 별의 핵융합반응이 멈춰서가 아니고 인간이 만든 전기 빛 때문입니다. 지구는 별이 아닙니다. 지구가 스스로 빛을 내려면 지구가 기체로 만들어져야하고 핵융합반응이 계속 일어나야 하는 데 그리되면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은 이에 고마워하지 않고 별을 흉내 내려 각종 빛을 만들어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듯 사람이 만든 약한 불빛이 우주가 만든 강한 별 빛을 가리는 바람에 도시에서 별을 만나볼 수 없습니다. 작은 산이 가깝게 있어 큰 산을 가리듯이 약한 전기 불빛이 강한 별빛을 먹어 삼킬 수 있는 것도 별들이 너무 먼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 빛이 지구에 다다르는데 8분이 걸립니다. 북극성은 태양보다 훨씬 멀어 그 빛이 이 땅에 오는 데 무려 약800년이 걸립니다. 인간이 만든 빛이 더 유용하다며 800백년 걸려 내달려온 북극성의 빛을 중간에 되돌려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북극성이 있어 진북(眞北)의 방향을 알 수 있고 그 덕분에 캄캄한 망망대해를 안전하게 항해해왔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그렇게 매몰차게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침8시 정각 금곡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진주의 최저기온이 영하8도로 떨어진다는 기상예보를 접하고 내복을 껴입어서인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금곡 행 버스를 기다리노라 십 수분을 서있었는데도 그다지 추운지 몰랐습니다. 7시15분을 조금 넘겨 26-3번 버스에 올라 아침 햇살을 가르며 반시간을 조금 못 달려 금곡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택시를 타려던 생각을 바꾸어 걸어서 돌장고개로 올라가 종주산행을 시작할 뜻으로 금곡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시골 소읍에서 활기를 찾기에는 너무 이른 휴일 아침 8시 경 미쳐 기지개를 켜지 않아 썰렁한 금곡시내를 지나 곧바로 돌장고개로 향했습니다.
8시40분 “부련이재11.2Km/무선산2.9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돌장고개에서 열 번째 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금곡시내에서 1002번 포장도로를 따라 20분여 걸어 올라선 돌장고개에서 산행채비를 마치고 사천 쪽으로 진행하다가 왼쪽 아래 중부고속도로 밑을 지나는 지하도를 건넌 후 왼쪽의 시멘트 길을 따라 수 분간 걸어 “부련이재10.37Km/돌장재0.83Km” 표지목이 서 있는 곳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응달 길을 십 수 분 걸어 올라선 묘지 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앞이 탁 트인 둔덕위로 올라서자 맞은편 채석장의 화강암 층리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왼쪽에 과수원이 자리한 임도를 따라 내려가 오른 쪽 아래로 금곡저수지가 보이는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바람도 숨을 고르고 있고 햇살이 활짝 퍼져 그냥 주저앉아 쉬어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과수원 옆길을 지나 덤불들이 꽉 들어찬 무명봉에 오른 시각이 9시42분이었습니다.
10시23분 임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덤불숲의 무명봉을 왼쪽으로 돌아 오른 쪽으로 진행하는 길에 오른 쪽 바로 아래 임도 길의 벤치를 보았습니다. 저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가 편한 임도로 가도 될 것 같은데 그리하지 않은 것은 가능하면 마루금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 종주산행의 정도여서였습니다. 과수원 옆길을 지나서 얼마 가지 않아 능선 길이 덤불숲에 막혀 사라졌습니다. 덤불숲을 피해가고자 왼쪽 아래로 돌아가 다시 능선으로 복귀했는데 일단 끊긴 길이 빙 돌아서 올라선 능선에서 다시 이어지지 않아 별 수 없이 오른 쪽 아래 임도로 내려가 왼쪽으로 임도 따라 걸었습니다. 수 분 후 도착한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오른 쪽 산길로 올라가 다다른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수분 후 "부련이재6.87Km/돌장고개4.33Km"의 표지목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에서 15분간 쉬었습니다.
11시45분 헬기장 바로 위 310m봉을 지났습니다. 15분간의 편안한 쉼을 끝내고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동쪽으로 수 분 간 이동해 헬기장이 들어선 310m봉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른 후 직진했습니다. 왼쪽 산허리로 삼베실주차장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나지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남진을 계속하면서 정맥 종주 때마다 느끼는 행복감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안한 능선 길을 혼자서 걷노라면 저도 모르게 이 길의 주인이 바로 저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뿌듯했습니다. 이 주인에 길안내를 하려는 듯 가끔씩 얼굴을 내보이는 작은 새들이 반가운 것은 나뭇잎이 무성한 한 여름이라면 박새처럼 작은 산새들은 얼굴은 고사하고 그 프로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하8도의 동장군도 한낮에 남중한 태양이 내리쬐는 열에너지에 그 위세가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따사로운 길을 제가 주인이 되어 걷는 행복감은 십 수분 지속되다가 가파른 오름길을 만나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크지 않은 암봉 왼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객숙치 봉우리에 올라선 것이 310m봉 출발 1시간 후인 12시45분이었습니다. 시장기가 느껴져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바로 아래 넓은 묘지로 앞이 탁 트인 객숙치에서 정남방향 멀리로 고봉을 보았는데 삼천포의 와룡산 인 것 같았습니다. 해발799m의 와룡산은 하루 전 신년 첫 해돋이를 삼천포 앞바다에서 맞이하고 인근 사량도의 지리산을 오른 후 다시 삼천포로 돌아오는 길에 눈여겨 보아온 터라 그 뒷모습도 눈에 익은 듯했습니다. 20여 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왼쪽으로 꺾어 동진했습니다.
13시30분 해발409m의 봉대산에 올라섰습니다. 객숙치에서 동쪽으로 40m가량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 안부를 지난 후 다시 100m넘게 고도를 높여 봉대산에 올랐습니다. 이틀간의 이번 산행에서 해발400m가 넘는 고봉을 오르기는 봉대산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봉우리를 올랐음을 증명하고자 작년 11월에 세운 정상석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북서쪽 먼발치로 진주시내 아파트들이 잘 보이는 봉대산을 출발해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첫 번째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낙남정맥 길을 그려놓은 안내판에서 현 위치를 확인하면서 친절하게 표지목도 곳곳에 세우고 도움 되는 커다란 안내판을 설치한 관련당국에 진정 고마워하는 것은, 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을 적대시(?)해 아예 길을 막고 못 가게 하는 국립공원과 너무 대비되어서였습니다. 두 번째 송전탑을 지나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14시18분에 해발310m의 양전산에 다다랐습니다.
14시38분 왕복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부련이재에 도착했습니다. 나무에 고정시킨 “고성 양전산 311m"의 팻말이 없었다면 쉽게 알아채지 못했을 양전산 정상을 출발해 남쪽 아래 부련이재로 향했습니다. 수피가 말끔하고 키가 훤칠한 서어나무와 눈인사를 나눈 후 묘지를 지나 부련이재로 내려가다가 억새가 홀로 곧추서서 햇살을 맞는 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초본식물들도 박장대소를 할 줄 안다면 아마도 저런 모습으로 웃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바람에 산들거리는 흰 수염의 억새를 보고 허리를 쥐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되어서였습니다. 고성 땅에 발을 들여 첫 번째 내려선 고개 마루 부련이재에서 종주산행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수정해 배곡재까지 진출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두 다리가 바빠졌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서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려간 안부가 임도가 지나는 문고개였습니다.
15시51분 해발391m의 백운산을 올랐습니다. 안부사거리 문고개에서 직진하여 묘목밭가 길을 올랐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경사가 가파른 된비알 길을 반시간 가까이 올라 고도를 150m가량 높이고 나서야 해발고도 300m가 조금 넘는 봉우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몇 개의 봉우리를 더 올랐습니다. 저의 산 오름을 환영하는 시꺼먼 까마귀와 회백색 수피의 서어나무들은 하루 종일 걸어도 단 한 명을 만나지 못한 제게는 더 할 수 없이 반가운 길동무들입니다. 왼쪽 아래로 영부저수지가 보이는 능선을 따라 걸어 다다른 백운산 정상에서 삼각점을 확인한 후 숨을 돌렸습니다. 낙엽 쌓인 편안한 길을 10분 남짓 걸어 이번산행에서 가장 높은 426m봉에 오른 시각이 16시16분으로 해넘이까지 1시간 남짓 남았다 싶어지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17시20분 배곡재에서 열 번째 구간종주를 끝냈습니다. 426m봉에서 왼쪽으로 수 분간 내려가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길가의 고혹적인 새빨간 열매가 여름 내내 돋친 가시로 산객들을 마구 찔러댄 명감나무 열매라는 것이 놀랍고 이 열매가 화려한 색상의 독버섯들과는 달리 하리(下痢)를 다스리는 약용으로 쓰인다는 사실 또한 놀라워 잠시 눈길을 주었습니다. 390m봉과 380m봉을 차례로 넘은 다음 전기철선을 지나 내려선 첫 번째 임도가 야베스농장 입구인 것 같은데 차단기가 길을 가로막지는 않았습니다. 어둠의 농도가 점점 진해지면서 발걸음은 더욱 빨라져 제 몸이 공기를 가르며 내는 바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묘지를 지나 다시 내려선 임도가 배곡고개가 아닌가 싶어 지도와 산행기로 확인해보았습니다. 배곡고개는 10여분 더 가야 했는데 중간에 높은 봉우리가 없어 별반 힘들이지 않고 묘지 몇 곳을 지나 목적지인 배곡재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위 묘지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왼쪽 아래 봉발소류지를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 찍었습니다. 애당초는 부련이재에서 종주산행을 마칠 뜻으로 돌장고개를 출발했는데 2시간 반을 더 걸어 배곡재에 이르고 나자 무사히 해냈다는 안도감과 희열감에 가슴 뿌듯했습니다.
18시 정각 망리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배곡재 오른편으로 볼록면경이 세워진 망림 가는 길은 그 왼쪽방향의 아스팔트길과는 달리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서인지 이 고개를 넘나드는 차량들은 단 한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지그재그를 그리며 망림 마을로 내려가자 아스팔트길이 33번 국도까지 이어졌습니다. 망림마을을 지나 국도변의 망림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스틱을 접어 넣은 후 인근 음식점으로 옮겨 저녁을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정류장에서 18시45분 경 고성에서 오는 시외버스를 타고 진주로 이동해 19시45분 발 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별 빛을 죽인 사람들은 그들의 빛으로 끝내 귀신도 같이 죽였습니다. 이제 귀신은 TV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그 모습을 보일 뿐 어디를 가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귀신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우리의 어르신들은 부뚜막, 뒷간 등의 집안이나 묘지나 숲속 등의 집밖에서 귀신을 많이 만났고 저도 어렸을 때 소복한 여인의 모습을 한 귀신을 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서 모 방학을 하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저녁에 논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데 하얀 소복한 여인이 자꾸 따라와 정말 무서웠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저 여자는 틀림없이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라 확신한 것은 때 마침 지나가는 군용차의 라이트가 비쳐지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라이트가 안 비치면 다시 나타나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죽으면서 이 땅에서 설화가 사라졌습니다.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들에 들려준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거의 다가 귀신이 나오는 설화였습니다. 설화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생성된 것으로 구전에 구전을 거듭해 제게 이어졌는데, 앞으로 제가 손자를 본다 해서 설화를 들려주기가 뭣할 것 같습니다. 이미 죽은 귀신을 되살릴 수 없는데 귀신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 가 싶어서입니다. 전기 빛이 죽인 것은 별빛과 귀신 그리고 설화만이 아닙니다. 설화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역할도 같이 죽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본 별들에 미안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전등을 켰습니다. 별은 아무래도 가슴 속에나 간직해야 할까 봅니다.
<산행사진>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낙남정맥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남정맥 종주기12(배치고개-봉광산-담티재) (0) | 2011.01.30 |
---|---|
낙남정맥 종주기11(배곡고개-대곡산-배치고개) (0) | 2011.01.27 |
낙남정맥 종주기9(고미동고개-무선산-돌장고개) (0) | 2011.01.05 |
낙남정맥 종주기8(유수교-진주IC-고미동고개) (0) | 2010.12.27 |
낙남정맥 종주기7(솔티고개-태봉산-유수교) (0) | 2010.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