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3
*정맥구간:개금역-백양산-산성고개
*산행일자:2011, 7, 24일(일)
*소재지 :부산
*산높이 :백양산 642m
*산행코스:개금역-삼각봉-백양산-만남의 숲-만덕고개-산성고개
*산행시간:6시13분-15시48분(9시간35분)
*동행 :나홀로
정맥종주가 아니라면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대도시의 산들을 찾아 오르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명산100산에 들만큼 잘 알려진 산은 어느 곳에 소재하든 언제고 한 번은 찾아 오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산들은 설사 교통이 좋은 대도시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지역사람들이 우정 찾아 오르는 일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전 국토의 70%가 산이어서 평생 올라도 다 오르지 못할 만큼 좋은 산들이 도처에 있는데 굳이 다른 도시에 소재한 무명의 산들을 시간과 돈을 들이며 찾아 오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결코 많지 않을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한라산에 한라사가, 지리산에 지리사가, 그리고 설악산에 설악사가 없다고 이 산들을 절이 없는 산이라 할 수 없듯이, 부산에 부산이라는 산이 없다고 부산은 산이 없는 도시라 말한다면 틀립니다. 울산에 울산이, 그리고 양산에 양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없어도 이 지역의 영남알프스에 여러 명산들이 자리하고 있듯이, 부산 또한 부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없지만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산들은 꽤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선조들은 여기 한반도 제 1의 항구도시에 진남포나 목포처럼 **포(浦)라고 하지 않고 부산(釜山)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입니다. 부산이라는 이름이 산 모양이 솥 가마 같다하여 붙여진 것이고 솥 가마 형상을 한 산이 증산이라 한다는데 저는 아직 5만분의 1 지형도에서 그 산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한반도 남단의 항구도시인 부산의 산들을 오르내린 것은 전적으로 낙동정맥 종주 덕분입니다. 1대간 9정맥 중 하나 남은 낙동정맥을 마저 종주하고자 두 달 전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두 주전 개금역에서 두 번째 구간 종주를 마친 후 좀 쉬었다가 이번에 개금역을 출발해 산성고개에서 세 번째 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다음 날 오를 금정산은 4년 전에 한 번 다녀갔고, 아미산, 구덕산, 엄광산과 백양산 등은 3회에 걸친 종주 길에 모두 올라 낙동정맥에 자리한 부산의 산들은 이제 한 번씩은 다 오른 셈입니다.
아침6시13분 개금역을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산본의 집을 나와 열차로 부산에 내려간 다음 부산역에서 개금역까지는 전철로 이동했습니다. 4번 출구로 나와 개금3동주민센터를 거쳐 다다른 신개금LG아파트 입구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개화초등학교 정문에 이르기까지 성봉현님의 산행기를 몇 번이나 꺼내 읽었습니다. 이내 산길로 들어서 밭을 지나 한참 후 14번 송전탑에 이르렀습니다. 임도로 내려가 오른 쪽으로 몇 분간 진행하다가 왼쪽 좁은 산길로 들어서 능선으로 오르자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이 선명하게 보여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7시49분에 올라선 헬기장에서 앞서 지나온 엄광산과 구덕산을 조망한 후 조금 내려갔다가 바로 위 암봉인 387m봉에 올랐습니다.
8시41분 해발454m의 삼각봉에 올랐습니다. 387m봉에 올라 서쪽 아래 낙동강을 조망한 후 북쪽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백양산의 연봉 중 전망이 가장 빼어나다는 바위 봉우리 삼각봉에 이르러 또 다시 낙동강에 눈을 주었습니다. 387m봉에서는 서낙동강을 가지 친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가다 또다시 좌우로 나뉘는 을숙도(?) 북단이 잘 보였는데 삼각봉에서는 바로 위 서낙동강이 분류되는 물 갈림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삼각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완만한 정맥 길을 마음 편히 이어가는 중 눈길을 끈 것은 길섶의 야생화들이었습니다. 패랭이 꽃, 산나리 꽃과 이름 모르는 노랑꽃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화무십일홍을 떠올렸습니다.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께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찼습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라고 말씀을 남기셨듯이, 꽃의 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자태나 색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꽃을 피우는 생명의 능동성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9시51분 해발642m의 백양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송전철탑을 지나 오른 해발589.1m의 유두봉에 오르자 백양산 정상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넓은 헬기장에 세운 애진봉을 사진 찍은 후 올라선 백양산 정상에도 앞서 지나온 봉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돌무더기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 백양산은 부산 시민에 단순한 산이 아니고 소원도 함께 들어주는 영험한 산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동강만 내려다보다가 백양산 정상에 올라 그 반대편 아래를 조망하자 돔형의 부산월드컵경기장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인공물인 종합운동장이 자연물인 낙동강과 그 아름다움을 견줘볼 만하다 싶을 정도로 원형의 백색지붕이 부드러우면서 날렵해 현대적 감각의 아름다움이 빼어나 보였습니다. 정상석 위에 올려놓은 작은 돌 덕분에 몇 cm는 더 높아졌을 백양산을 출발해 북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방화선(?)을 겸한 능선 길이 넓고 높낮이가 별로 차이나지 않아 백양산 정상에서 산불감시초소 봉우리까지 이어지는 능선 길 양옆의 풀밭이 산상의 초원 같았습니다.
11시33분 만남의 숲을 지났습니다. 백양산 출발 1시간이 지나 표지목 상의 불웅령에 도착했는데 지도에 나와 있는 불웅령과 다른 지점이었습니다. 표지목에는 만남의 숲이 1.35km 남아 있는 것으로 적혀 있지만 제 지도에는 만남의 숲을 지나서 나와 있어 혼란스러웠습니다. 11시 경에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선 봉우리에 올라서기까지 방화선 능선 길을 1시간 넘게 편히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구름 덕분이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땡볕 길이라면 한 낮에 걷는 것이 극서훈련이었을 텐데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도 솔솔 불어 피서를 겸한 길이라 해도 될 만큼 시원했습니다. 돌무더기 위에 “만덕고개3.3Km"의 표지목을 세워놓은 산불감시초소에서 북동 쪽 만남의 숲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팔랐습니다. 깔끔하게 설치한 나무계단을 내려가 만난 안부 불태령고개에 “만남의 숲”이 조성되어 이 숲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성지곡에서 이 고개를 오르면 만덕사의 부처님 모습이 보인다고 해 불태령(佛態嶺)으로 불려왔다 합니다. 10수분 후 도착한 안부에 세워진 표지목에 이 고개가 1시간을 더 가야 다다를 수 있는 “만덕고개”로 적혀 있는 것은 분명 오기입니다.
12시56분 만덕고개에 이르렀습니다. “만덕고개”로 잘 못 적힌 안부에서 산성의 잔해로 보이는 나지막한 돌담 왼쪽 길로 한 봉우리를 우회해 솔밭 길을 걸었습니다. 남문 쪽으로 이어지는 왼쪽의 넓은 길 대신 가파른 오름길로 직진한 것은 마루금을 따르기 위한 것인데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가는 바람에 20분가량 헛걸음을 쳤습니다. 진행방향이 이상하다 싶어 내려오는 한 분에 여쭤본즉 이 길은 금정봉으로 오르는 길이니 다시 능선 삼거리로 돌아가 곧바로 내려가야 한다며 고맙게도 “쇠미산 구민의 숲” 안부사거리까지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쇠미산 구민의 숲”을 지나 데크 계단을 따라 내려서자 찻길이 지나는 고개가 보였는데 이 고개가 바로 만덕고개였습니다. 에코브리지로 만덕고개를 건너자마자 그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들면서 반시간 남짓 쉬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휴대폰을 켜자 모르는 번호가 계속 떠 전화를 걸어본 즉 졸저 “섬진강 둘레산줄기에서 길을 찾다”의 애독자 한 분이 걸어온 것이었습니다. 산성고개에서 하산 후 온천장역에서 이분과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 남은 구간 산행에 나섰습니다.
14시51분 금정산성 제2망루에 도착했습니다. 만덕고개에서 나무의자가 놓인 쉼터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오름 길로 고도를 150m가량 높였습니다. “금정산/철학로/어린이대공원” 표지목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금정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얼마간 오르자 부산시 북구청에서 세운 “이곳은 낙동정맥 구간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꽤 많은 묘비가 서 있는 100평은 실히 되어 보이는 묘역을 지나자 비가 후드득 뿌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굵어졌습니다. 비알 길이 끝나는 나무의자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배낭에 카바를 씌웠는데 비는 그리 오래 내리지 않고 얼마 후 멈췄습니다 . 쉼터에서 제2망루에 이르는 길에 큰 바위 사이 길을 몇 번 지났습니다. 519m봉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지나는 솔밭에도 “쇠미산 구민의 숲”처럼 쉬어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시멘트길로 올라서 오른 쪽에 비껴 있는 제2망루를 찾아 오른 것으로 금정산성의 입성신고를 가름했습니다.
15시48분 산성고개에 도착해 낙동정맥의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제2망루에서 산성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대체로 금정산성의 성곽을 따라 나 있었습니다. 서울의 북한산성처럼 깔끔하게 보수된 것 같지 않아 몇 곳에서 산성의 옛 자취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해발520m의 평평바위 대륙붕에 오르자 서쪽으로 시야가 탁 트여 상학봉과 파리봉을 일별했습니다. 남한산성이 연상되는 굴곡진 성곽 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금정산성이 겪은 역사적 고난은 무엇인지 새삼 궁금했지만 본격적인 산성 길 따라 걷기는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어 사진만 찍어 왔습니다. 산성고개에 다가갈수록 금정산의 고당봉이 더 가깝게 보였습니다. 데크계단 길을 내려가 산성고개에 도착해 203번 버스를 타고 온천장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독자 분과의 만남은 두 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저보다 몇 살 연하인 독자 분은 초면인데도 금년 봄 방송대를 졸업한 동문이어서 몇 번을 만나 뵌 듯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이 들어 공부하기가 쉽지 않아 입학 후 4년 만에 졸업을 하는 방송대학생들이 입학생들의 1/4이 안 된다는 데 60대초반(?)의 이분이 딱 4년 만에 졸업을 한 것은 참으로 장한 일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낙동정맥을 종주하며 부산의 산들을 오르내리고 나자 이제껏 멀기만 했던 부산이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다소 귀에 거슬리는 투박한 사투리도 살갑게 들렸습니다. 부산도 저와 같은 갑남을녀가 살아가는 사람 사는 곳이 분명하다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에서 우리의 산줄기가 뻗어가는 곳은 모두 우리들이 살아가는 우리의 땅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을 마다 않고 낙동정맥 종주에 나서기를 참 잘햇다 싶은 것은 부산이 낯설지 않고 부산시민이 참으로 정겹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낙동정맥의 나머지 마루금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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