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5
*정맥구간:지경고개-운봉산-화엄늪갈림길
*산행일자:2011. 8. 5일(금)
*소재지 :경남양산
*산높이 :운봉산534m
*산행코스:지경고개-군지고개-운봉산-597봉-화엄늪갈림길-홍룡사
*산행시간:6시50분-18시56분(12시간6분)
*동행 :나홀로
한여름 복더위를 이겨내는 극서는 보신탕을 들며 땀 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대장간에서 쇠를 단련시키는 일을 한다면 최고의 극서가 되겠지만 요즈음은 대장간이 거의 사라져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한 여름에 즐기는 극서는 단연 종주산행입니다. 훅훅 거리는 지열에 몸을 맡긴 후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이고 산줄기를 오르내리면 정신은 몽롱하지만 온몸의 노폐물이 땀으로 몽당 빠져나간 것 같아 몸만은 더할 수 없이 개운합니다. 산행이 최고의 극서로 효과가 있는 것은 산행의 반이 중력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력을 거슬려 진행하는 산행이 한 여름에 최고의 극서로 자리 잡을 수 잇는 것은 산행 중 몸에서 나는 열 때문인데 이 열은 몸무게에 비례해 발산하기에 배불뚝이인 제게는 그 효과가 더욱 극적입니다.
이번 낙동정맥 5구간 산행은 그 코스와 일기가 극서를 맛보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두루 갖추어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어서고 땡볕을 가릴 그늘이 전혀 없는 억새풀밭의 방화로 길이 시간 반 가량 이어지며 중력의 작용방향과 반대되는 까까비탈의 된비알 오름길이 50분 가까이 계속 되는데다 산행시간도 제 걸음으로 10시간가량 걸릴 것 같아 이번 산행만 무사히 마친다면 올여름 낙동정맥 종주는 어느 구간이라도 가볍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극서의 효과를 배가하는 데 제 멍청한 머리도 한몫 했습니다. 알바로 시간 반을 더 걷게 해 결국 12시간을 걸어 산행을 마쳤습니다. 흥룡폭포 앞에서 산행을 마친 후 택시를 부르지 않고 버스가 다니는 대석리로 걸어 내려가면서 이정도면 극서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다 싶어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침6시50분 지경고개에서 낙동정맥의 5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부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반시간 넘게 달려 다다른 범어사역에서 2번 출구로 나가 바로 아래 버스정류장에서 언양 가는 12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녹동정류장에서 하차해 곧 바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부산 고속도로 위를 건너는 녹동교를 건너자 골프장의 푸른 잔디밭이 보였습니다. 왼쪽 산길로 올라가 절개면의 꼭지점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 이슬이 내린 풀밭 길을 지나느라 바짓가랑이가 젖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휘어지는 산 죽 길을 따라 올라 나지막한 바위 봉우리에 오르자 홍살문이 연상되는 녹이 슨 철제 구조물이 서 있었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선 안부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 남락고개에 도착한 시각이 7시47분이었습니다. 고개 앞을 지나는 왕복4차선의 1077번 도로를 중앙분리대를 넘어 건넌 후 바로 앞 삼거리에서 잡목과 풀들로 길이 보이지 않는 능선 길을 타는 것을 포기하고 오른 쪽 시멘트 길을 따라갔습니다. 철제문이 굳게 잠긴 저택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맥 길을 만났고 조금 더 올라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9시5분 군지고개를 지났습니다. 시멘트 길에서 정북 쪽으로 이어지는 오른 쪽 산길로 진행해 올라선 276m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만난 시멘트길 고개 마루에서 잠시 쉰 후 다시 평탄한 산길을 이어갔습니다. 얼마 후 만난 철조망 울타리를 왼쪽으로 돌다가 곧바로 길이 아닌 것을 알아채고 다시 돌아와 오른쪽 아래로 우회해 유락농원이 보이는 군지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왕복2차선의 아스팔트 차도가 지나는 군자고개에서 들어선 동쪽 방향의 시멘트 길은 이내 비포장임도로 바뀌었고, 바뀐 이 길을 따라가다 8-9분 후 좁아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호젓한 길을 이어가다 잠시 가파른 길을 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299.4m봉에 이르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 만난 삼거리에서 표지기가 걸려 있는 오른 쪽 길로 들어서 꽤 높아 보이는 봉우리 하나를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골짜기 물로 얼굴을 닦는 등 여유롭게 진행해 오른 쪽 가까이로 송전탑이 서 있는 능선삼거리에 다다른 시각이 10시9분이었습니다.
11시29분 “437m" 봉에 되돌아왔습니다. 송전탑 옆 능선삼거리에서 표지기가 걸려 있는 왼쪽 길로 10분여 진행해 작은 돌무덤에 “437m”라고 쓴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 송전탑 바로 아래 삼거리에 이르자 표지기가 왼쪽으로 걸려 있어 그 길을 따라가다 이 길이 바로 앞에 지난 길인 듯싶었습니다. 정적에 파묻힌 평탄하고 그늘진 숲길을 한참 동안 걷노라면 저도 모르게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화로워 잠시나마 종주 중인 저 자신을 잊곤 합니다. 이 맛에 혼자서 정맥 종주에 나선다며 좋아하다가 깜박 길을 잘못 들어 심하게 알바를 할 때가 있는데 이번 산행이 그러했습니다. 이 길은 바로 앞에 올랐던 “437m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하는 편안한 길이어서 굳이 마루금을 따르지 않아도 좋은 일반 산객들이 운봉산을 오를 때 주로 걷는 길이었습니다. 뒤늦게 알바를 알아챘고, 할 수 없이 송전탑 아래 삼거리로 되돌아가 앞서 오른 한 분의 산행기와 지형도를 꺼내보고 그동안 지난 길을 꼼꼼히 짚으며 지금 제가 어디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한참 후 비로소 지도상의 제 위치와 가야할 제 길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송전탑 앞 삼거리에서 “437m”봉으로 진행하면서 확인한 나침반이 남서쪽을 가리켜 뭔가 이상하다 하면서도 표지기가 걸려 있어 그대로 진행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방금 내려온 가파른 길을 되올라가며 주인 잘 못 만나 생고생을 하는 두 다리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다리에 미안한 생각이 들면 들수록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알바를 자초한 제 머리통에 꼴통도 상 꼴통이다 하면서 화를 내다가 이 더위에 쓸데없이 열 낼 일이 아니다 싶어 그만두었습니다. 송전탑을 지나 다시 오른 “437m봉”에서 북동쪽으로 십분 가량 진행해 도착한 송전탑 앞 삼거리에 운봉산으로 이어지는 북동쪽의 제 길로 들어선 시각이 11시41분이었으니 대략 시간 반의 긴 시간을 알바로 허비한 셈입니다.
12시29분 해발534m의 운봉산에 올라섰습니다. 장시간 알바로 여유시간을 까먹어 마음이 급해졌는데 다행히도 길이 평탄해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20분여 내달려 만난 시멘트 길을 건너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140m가량 고도를 높여 올라선 봉우리에 세워진 “운봉산‘이라 쓰인 시멘트 기둥을 보고 이 산이 해발 534.4m의 운봉산 정상임을 알았습니다. 나무에 걸린 표지기에 ”낙동정맥 군지산 534.9m"라 쓰인 평범한 이 산에 올라 새삼 감격한 것은 긴 알바를 거쳐 힘들게 찾아 올랐기 때문인데, 먼발치로 보이는 원효봉 앞쪽의 536m봉에 이르는 넓은 방화로를 보고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섭씨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땡볕을 가릴 그늘이 전혀 없는 방화선 길을 키를 넘는 억새풀숲을 가르며 지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가는 한북화악지맥을 종주하며 체험해 익히 알고 있는 제가 더욱 겁을 먹은 것은 정면으로 조금 떨어져 보이는 곳에 곤두서있는 까까비탈의 꽤 긴 방화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운봉산에서 헬기장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방화로는 해발350m대의 성황당고개까지는 계속 내려가는 길인데, 13시41분 이 고개에 내려서서 시원한 골바람을 쐬며 15분 넘게 푹 쉬었습니다.
14시56분 596.6m봉에 올랐습니다. 상수원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는 성황당고개에서 왼쪽으로 신기산성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어 오르는데 50분가량 걸렸습니다. 습기 찬 풀 숲 길에서 내뿜는 지열에 얼굴이 후끈거렸고 복 더위의 열기가 코끝까지 치고 올라와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한 여름에 이런 된비알 길의 방화로를 오르는 일도 고된 일이지만 일단 오르고 나자 한 겨울 눈이 쌓인 이 길을 걸어 내려가는 것도 경사가 하도 급해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다람쥐길/신기산성/천성산”의 표지목이 서 있는 능선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7-8분을 더 걸어 삼각점이 박혀 있는 596.6m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설치된 벤치에 누워 잠시 쉰 후 북동쪽으로 내려가 도로 공사장(?)에 이르렀습니다. 오른 쪽 아래 비포장도로는 과거 지뢰를 매설한 군부대를 오른 쪽으로 우회하는 것 같았고, 저는 철조망을 따라 지뢰매설지역을 왼쪽으로 돌았습니다.
16시15분 “천성상/신기산성” 표지목이 세워진 군부대 후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공사장에서 몇 걸음 옮겨 “과거지뢰매설지역”이라는 표지물을 매달아 놓은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 앞에 이르렀습니다. 매설한 지뢰를 이미 7년 전에 제거한 바 있어 위험하지는 않으나 혹시라도 미처 제거하지 못한 지뢰가 단 몇 개라도 남아 있다면 이번 큰 비에 드러날 수도 있겠다 싶어 신경이 조금 쓰였습니다. 그래도 7부 능선(?) 쯤에 낸 그늘진 산 숲길로 우회하는 것이어서 철조망 울타리에 붙어 낸 길을 따라 긴 시간을 걸었어도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40분 넘게 걸어 “과거지뢰매설지역”이 끝나는 군사도로(?) 앞에 다다르자 오른 쪽 위로 군부대 후문이었을 것 같은 철조망 문이 보였습니다. 길바닥에서 20분 넘게 쉰 후 원효암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이내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 718m봉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안테나 철탑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718m봉에 올라서자 원효봉과 천성산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 바닷바람이 이런 것이다 싶을 정도로 동쪽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람이 드세 모자를 고쳐 써야 했습니다. 왼쪽 도로로 내려가는 길에 올 들어 처음 만난 뱀을 피해 가려다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종아리에서 쥐가 나 일어서지 못하고 절절 맸습니다. 3-4분 후 다행히 쥐가 쉽게 풀려 큰 도로로 내려서면서 정맥종주만 아니라면 굳이 고집부리고 718m봉을 올라갈 것이 아니라 곧바로 차도를 따라 걸어도 좋을 걸 그랬다 했습니다.
17시49분 “홍룡사/원효암/화엄늪”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718m봉에서 내려선 큰길을 따라 원효봉으로 올라가며 뒤를 돌아보자 지난번에 올랐던 금성산이 멀리 보였습니다. 오른 쪽으로 원효봉 길이 갈리는 “천성산3.6Km/홍룡사1.8Km/화엄늪1.7Km”의 표지목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직진해 원효암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는 이 암자를 2년 전에 한 번 둘러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사진만 몇 커트 찍고 암자를 빠져나가 홍룡사로 향했습니다. 원효암에서 10분 거리의 “홍룡사/원효암/화엄늪” 삼거리에 이르는 동안 잠시 멈춰 서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금정산에서 원효암에 이르는 힘들게 걸어온 길이 한 눈에 잡혀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원효봉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로 화엄 늪에 이르게 됩니다만, 이 늪은 다음 산행 시 친구와 함께 들르기로 해 이번에는 왼쪽으로 꺾어 흥룡사로 하산했습니다. 다음에 동행할 친구가 환경학을 가르치는 교수여서 화엄 늪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 것인바, 그 때 지율스님이 천성산 터널공사로 이 늪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엄청 걱정했던 도롱뇽을 찾아 어떻게 그동안의 터널공사에서 살아남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는지 물어볼 생각입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물어보고자 하는 것은 그 후 4대강 공사 반대에 나선 지율스님에 도롱뇽의 건재를 확실히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18시56분 홍룡사 앞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군지고개에서 운봉산에 이르는 길에 알바만 하지 않았다면 시간 반은 일찍 끝났을 이번 산행이 장장 12시간이 걸려 끝났습니다. 두 해전 겨울에 원효암을 출발해 40분가량 걸린 하산 길이 이번에는 거의 두 배가 걸렸습니다. 긴 시간 알바로 많이 지쳤고 여름 해가 길어 천천히 내려가도 해지기 전에 흥룡사에 닿을 것 같아 가다 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 하산 시간이 마냥 늘어졌습니다. 통나무계단 길을 걸어 내려가 천룡이 폭포 아래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홍룡폭포를 사진 찍는 것으로 낙동정맥 5구간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홍룡사에서 버스가 다니는 대석리까지는 한 번 걸었던 길이어서 택시 부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냥 걸어 내려갔습니다. 젊은 부부 한 쌍이 차를 몰고 대석리 방향으로 내려가다 저를 보고 차를 세워 동승을 권해왔습니다. 극서훈련은 이미 홍룡사 앞에서 성공리에 끝낸 것이기에 주저하지 않고 차에 올라 이분들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아침 일찍 녹동마을을 출발해 긴 시간 알바를 하고 땡볕의 방화로를 따라 걷느라 엄청 땀을 흘렸다고 말하자 피곤하시겠다며 사전에 저녁 약속이 되 있어 중간에 저를 내려놓고자 했던 계획을 바꾸어 대석리 시내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극서를 무사히 마친 기쁨에 젊은이들의 훈훈한 인정이 더해져 이만하면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정류장으로 옮기면서 지나가는 차에 좀 태워달라고 손을 흔들지 않는 것은 대다수가 그냥 지나쳐 행여 사람들에 실망을 할까 두려워서인데 이번에 만난 젊은이들은 달랐습니다. 무릇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다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땀내가 물씬 나는 행인을 스스로 차를 세워 태우는 것은 극서를 한다며 복더위에 종주산행에 나서는 일보다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금 감사인사 드립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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