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7
*정맥구간:영산대 갈림길-정족산-지경고개
*산행일자:2011. 8 30일(화)
*소재지 :경남양산
*산높이 :정족산701m, 노성산342m
*산행코스:영산대-영산대 갈림길-안적고개-정족산-공원묘지
-노성산-암리-지경고개
*산행시간:7시25분-15시50분(8시간25분)
*동행 :나홀로
낙동정맥 종주산행의 출발지가 부산역에서 점점 멀어져 경부선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것도 고작해야 앞으로 한 두 번 남은 것 같습니다. 이제껏 부산까지는 밤차로 이동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아낄 수 있었습니다. 차안에서 눈만 붙일 수 있다면 잠자리 문제도 같이 해결해주는 밤차가 딱 좋은데 이번 7구간 종주로 양산 땅을 벗어나 이마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간열차가 안 되면 심야버스로 이동하고, 심야버스도 여의치 못하면 별 수 없이 전날 내려가 하룻밤을 묵을 수밖에 없습니다. 낙동정맥 종주길이 강원도 땅으로 접어들면 아무래도 찜질방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야간열차를 이용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잠을 좀 잘 수 있느냐 입니다. 아무려면 집에서처럼 숙면을 취하기를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그동안 대간과 정맥 종주로 밤차를 많이 이용해와 이제는 웬만큼 시끄럽지 않고서는 몇 시간이고 편히 잠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천안역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 여러 분들이 기차에 오르고 나서부터 대구역에 이르기까지 내내 시끄러워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 같으신 이분들이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즐거워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감히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씀 드리는 사람이 없어 그분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냥 큰 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주위의 젊은이들 가운데 누구 하나 그 노인 분들에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독 노인 분들이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나이가 들수록 청력이 약해져 잘 듣지를 못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잘 안 들리면 자연 목소리가 커집니다. 제가 자식들로부터 좀 작은 소리로 전화를 하시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60대 중반에 접어든 최근의 일입니다. 이는 누구나 겪어야 할 일로 부득이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하겠습니다. 문제는 다음 이유입니다.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나이 많은 내게 어느 누가 말리랴 싶어 마냥 큰 소리로 떠드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십시오” 했다가는 “너는 어미애비도 없느냐”는 답을 듣기가 십상이어서 웬만큼 단단히 각오하지 않고서는 말씀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이 나라가 예의를 중하게 여기는 나라여서 나이 드신 분들과 큰소리를 냈다가는 불문곡직하고 나이 어린 사람이 질책을 받기 일쑤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아침7시42분 영산대를 출발했습니다. 범어사역 인근 남산시장 안 한 음식점에서 조반을 사든 후 시내버스를 타고 영산대로 향했습니다. 양산의 웅상농협 앞에서 하차해 택시로 영산대 안으로 들어가 지난번에 하산을 끝낸 법대(?)건물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왼쪽 산길로 들어선 다음 가파른 길을 서쪽으로 오르면서 낙동정맥이 지나는 이번 구간의 출발점인 양산대/짚신고개 갈림길 고갯마루까지는 반시간은 실히 걸리겠다했는데 중간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가야할 것을 왼쪽 길로 올라가는 바람에 10분이 더 걸렸습니다. 벤치가 세워진 영산대/짚북재 갈림길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며 본격적인 산행을 채비했습니다.
8시52분 영산대 갈림길 안부를 출발해 7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섭씨 30도를 웃돌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아 내리쬐는 햇볕이 엄청 따가웠습니다. 안적고개까지는 임도를 따라가는 편이 빠를 것 같은데 마루금대로 능선 길을 걸은 것은 초반부터 땡볕 길을 걷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임도 길 왼쪽의 산길을 따르다가 다시 임도로 나와 이 길을 따라 20분가량 진행하자 정자가 보였고 그 앞으로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지난번에 종주를 끝낸 곳은 영산대 갈림길 안부였고 이곳이 바로 안적고개임을 뒤늦게 알았습 니다. 왼쪽 대로로 직진해 올라가다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 대성암으로 가는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자 며칠 후면 이 산에서 사라질 매미들이 끝마무리 공연에 열중인데다 산새들도 그들의 합창에 가세해 엄청 시끄러웠습니다.
10시23분 왼쪽으로 대성암 길이 이어지는 대성재를 지났습니다. 키를 넘는 산죽들이 꽉 들어선 좁은 산길로 오르느라 숨이 막히는 듯했습니다. 557.6m봉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 앞이 탁 트인 작은 바위에 오르자 북서쪽 정면으로 정상이 암봉으로 대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정족산이 한눈에 잡혔고 그 산 너머 먼발치로 남북으로 뻗은 영남알프스인 듯한 산줄기가 꽤 높게 보였습니다. 방금 지나온 산죽길보다 더 어두운 산죽 길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낮추자 왼쪽으로 비포장도로와 맞닿은 안부 대성재가 보였습니다. 대성재에서 솔밭 길을 지나 정족산으로 향하는 중 개구리를 만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개구리를 보면 어렸을 때 시골에서 주로 개구리 뒷다리로 몸 보양을 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생기면서도 또 한편 그동안 꽤 여러 번 읽은 횡보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떠오르곤 합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횡보 염상섭에 깜박 속아 넘어가 개구리를 해부하자 김이 모락모락 났다는 묘사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양서동물인 개구리는 바깥 상황에 맞추어 체온을 조절하는 변온동물이어서 김이 모락모락 날 리가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대로 믿은 것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염상섭이 사실주의 작가라는 이름을 얻어 이제껏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입니다.
11시20분 해발700m의 정족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개구리와 눈인사를 나눈 후 큰 길을 따라올라 둔덕을 넘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펼쳐지는 자그마한 억새 풀밭이 우리나라 최남단의 늪지라는 무치늪이 아닐까 하면서도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둔덕을 넘어 안부로 내려서기까지 십 수 분간 땡볕에 시달리다가 얼마 후 정족산으로 이어지는 그늘 길로 올라섰습니다. 흙길은 이내 끝나고 암릉길이 시작된다 했는데 얼마 후 정족산의 정상을 받쳐주는 큰 바위들을 만났습니다. 조심해서 올라가 정상에 올라서자 지나온 산봉우리들과 지나갈 산줄기가 확연하게 잡혔습니다. 이번 산행 최고의 전망대인 정상에 올라 사방을 휘둘러본 후 태극기가 그려진 옆 봉우리로 다가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주 짧은 구간 줄을 타고 내려가 그늘 길에서 15분간 푹 쉬었습니다. 3-4분가량 내려가 만난 큰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머리 위로 남중한 태양의 직사광선을 군소리 않고 참아 낸 것은 마지막 남은 여름 며칠 간 들판의 곡식을 알알이 영글게 만드는 여름태양이 고마워서였습니다. 십분 남짓 큰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 쪽 아래로 큰길이 급하게 휘어지는 곳에서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662.5m/준-희”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려있는 이동통신탑 봉에 올랐다가 오른쪽 아래로 내려서 “운봉선화회원 추모비”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 삼덕공원묘지 안으로 내려섰습니다.
12시33분 삼덕공원 왼편의 무명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공원묘지 안에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길 왼쪽에 자리한 공원 안 “천주교인의 쉼터”묘지 앞에서 잠시 멈춰 기도를 올린 후 바로 아래 화장실 옆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바로 위 무명봉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모기들에 쏘인 손등이 보풀아 올라 근질근질했습니다. 올 여름 내내 쉴 새 없이 비가 내려 모기들에는 최악의 서식환경이었다는데 용케도 살아남은 모기들이 떼거리로 덤벼드는 바람에 이들을 쫓느라 점심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서쪽으로 방향이 확 바뀌면서 경사가 급해졌습니다. 한참 동안 내려가 만난 묘지는 솔발산 공원묘지로 일하는 그 규모가 산 너머 삼덕공원묘지 못지않게 커 보였습니다. 공원 한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듬직해 보이는 것은 여기 묘지에 묻혔다가 상공을 날아다닐 뭇 혼들이 잠시 쉬어갈 곳으로 이 나무만한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는 안부에 안치된 애국지사 한형석공의 묘지를 지나 다시 산길로 들어선 시각이 13시28분이었습니다.
14시14분 왼쪽 아래로 통도사C.C로 들어가는 길이 갈리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애국지사묘지를 지나 산길로 들어선지 20분 후 송전탑 앞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탄한 오름길이어서 힘든 줄 몰랐습니다. 조금 떨어진 408m봉을 지나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야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는데 어디가 삼거리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해 삼각점이 서있는 344.8m봉에 이르렀습니다. 여전히 표지기가 걸려 있어 별달리 의심 않고 그대로 진행해 안부로 내려섰는데 차들이 다녀도 될 만한 포장 안 된 넓은 도로가 이 안부를 지났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표지기가 매달린 왼쪽 길을 따라내려가자 얼마 안 있어 골프장이 보였습니다. 일단 삼거리 길가에서 멈춰 앉아 지도와 산행기를 보면서 골프장 통과 길을 탐색해보았으나 아둔한 제 머리로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한참 동안 고심했습니다.
15시50분 지경고개에 도착해 7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마냥 앉아있기가 불편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위쪽으로 난 길가 나무에 낙동정맥 표지기를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길 위쪽 산봉우리에 올라 골프장을 내려다보며 판단할 속셈으로 일단 이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골프장 동쪽 위에 난 길 시멘트 길이 끝나는 꼭대기에 올라섰지만 골프장이 전혀 보이지 않아 난감해하다가 왼쪽 능선에 붙어 있는 표지기를 보고 그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길이 잘 나있어 빠른 속도로 진행하느라 해발342.7m의 노상산을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났습니다. 종주산행을 다 끝내고 기차 안에서 지도를 다시 보며 노상산을 지났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만, 설사 미리 알았다 해도 봉우리다운 봉우리를 넘은 기억이 없어 이 봉우리가 노상산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길이 희미해진다 했는데 이내 길이 거의 보이지 않아 신경이 쓰였지만 차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이제 산길이 다 끝나간다 싶어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삼거리 둔덕에서 왼쪽으로 내려가자 축사가 보였습니다. 축사로 내려가 차도로 가고자 했으나 중간의 내를 건널 수 없어 다시 축사로 돌아가 위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개들이 저를 보고 큰 소리로 짖어댄 덕분에 한 아주머니를 만나 차도로 나가는 길을 안내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암리 버스정류장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밭에서 일하시는 한 할아버지께 여쭈어 왼쪽으로 차도를 따라 200-300m 걸어가면 다다를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나자 이제 다 왔다 싶어 그동안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찻길을 따라 서쪽으로 올라가 지경고개 마루에 다다랐습니다. 고갯마루에서 표지기를 확인한 후 고개를 넘어 천천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현대자동차 양산출고센터를 지나 다다른 한 음식점에서 맥주 한 병을 사든 후 택시를 불러 통도사로 향했습니다.
통도사가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단순히 천년 넘는 고찰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에는 법보사찰 해인사와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불보사찰 통도사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실로 수놓은 금란가사(金欄袈裟)가 봉안되어 있어 통도사가 불보사찰로 불리는 것입니다. 통도사에 봉안된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으로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인 서력 646년에 통도사를 창건해 모신 것입니다. 고찰이라고 모두 보배로운 사찰이 될 수 없듯이 연세 드신 노인의 모든 분들이 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나이가 한 해가 지나면 자동적으로 한 줄씩 늘어나는 나이테와 같은 나이라면 그 의미가 많이 감소할 것입니다. 연륜에 비례하는 경험과 경험이 함축하고 있는 지혜가 나이에 더해져야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색이 추하지 않고 창연한데는 각고의 아픔이 따랐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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