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 종주기8(지경고개-신불산-배내고개)

시인마뇽 2011. 9. 7. 11:22

                                                   

                                                          낙동정맥 종주기8

 

 

 

                                     *정맥구간:지경고개-신불산-배내고개

                                     *산행일자:2011. 9. 5일(월)

                                     *소재지 :경남양산/울산

                                     *산높이 :신불산1,209m, 영축산1,059m, 간월산1,069m

                                     *산행코스:지경고개-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배내고개

                                     *산행시간:8시48분-18시24분(9시간36분)

                                     *동행 :나홀로

 

 

  신불산을 지나는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이산의 억새평전에서 훈련을 했을지도 모르는 신라의 화랑을 떠올렸습니다. 신라의 고도 서라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위에 넓은 평전이 있는데 수려한 산천을 찾아 심신을 닦는 화랑이 이런 곳을 그냥 빼놓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관련기록을 찾지 못해 이곳이 훈련장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신라의 명승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천성산이 그리 멀지 않기에 화랑들이 원효대사를 기리기위해서도 이 산길을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향가에 등장하는 화랑은 모죽지랑가의 죽지랑, 화랑일것으로 추정되는 찬기파랑가의 기파랑과 혜성가의 세 화랑입니다. 융천사가 지어 불길한 혜성을 퇴치했다는 혜성가(慧星歌)에는 “세 화랑의 산 구경을 오심을 듣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홍기삼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세 화랑의 무리가 지금의 금강산인 풍악에 놀러가려고 하는데 혜성(慧星)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여 낭도들이 의아해 하며 여행을 중지하려 했다 합니다. 그때 융천사가 향가를 지어 부르자 괴성이 곧 사라지고 일본병도 환국해 오히려 경사스럽게 되었고 이에 대왕이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에 놀러 보냈다는 것이 이 노래 내용의 요지입니다. 서라벌에서 그 먼 풍악까지 놀러갔는데 이 가까운 신불산 정도라면 왔어도 몇 번은 왔을 것입니다.

 

 

 

  신라의 화랑이 낙동정맥이 지나는 이 산줄기를 원행 코스로 삼았음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만 있다면 영남알프스라 명명한 이 산길을 화랑로(花郞路)로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삼국사기에 분명히 적혀 있는 북한산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이름을 바꿨다며 삼각산으로 고쳐 부르자는 주장도 있는데 관련기록만 확실하다면 굳이 유럽의 알프스산맥에서 이름을 따다가 쓸 일이 없잖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북한산에 관련된 삼국사기의 기록을 옮겨 놓습니다.  신라본기 진흥왕 편의 “16년 정월에 비사벌에 완산주를 두었다.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을 확정하였다(十六年, 春正月, 置完山州於比斯伐, 同十月 王巡行 北漢山 拓定封疆).”는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산의 본래 이름도 북한산이 분명합니다.

 

 

 

  아침8시48분 지경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야간열차에서 잠을 설쳐서인지 5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어디다 흘려 아침부터 찜찜했는데, 그에 더하여 통도사버스터미널에서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지경고개까지 걸어가는 데 넉넉잡고 20분이면 족한 거리를 길을 잘 못 들어 빙 돌아가는 바람에 한 시간이 거의 다 걸렸습니다. 지경고개를 출발해 통도사버스터미널쪽으로 차도를 따라가다가 첫 삼거리인 35번 국도를 건넜습니다. 오른 쪽으로 2-3분 걸어 가 만난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좁은 길을 따라갔습니다. 황태구이식당을 지나 차도를 건넌 다음 오른 쪽으로 몇 걸음 옮겨가 OK목장식당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난 시멘트 길로 들어서자 구름이 6부 능선쯤에 내려앉은 영축산이 가깝게 보였습니다. 밭 사이 농로를 따라가다 전통손두부집 앞에서 차도를 건너 오른 쪽 고갯마루 쪽으로 가야 할 것을 생각 없이 직진방향의 시멘트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엉뚱한 데서 반시간 가량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시멘트 길로 저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길이 끊겨 다시 차도로 돌아갔습니다. 반시간 가량 알바를 한 후 되돌아간 차도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이동해 표지기가 붙어 있는 고갯마루에 이르자 영축산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어렵게 제 길을 찾았지만, 버스터미널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이래저래 1시간 넘게 헛걸음을 해 어느새 10시가 거의 다 됐습니다.

 

 

 

  10시26분 오른쪽으로 방기리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영축산 안내판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왼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영축산 정상 방향으로 난 산길을 따라 가다 거의 다 뚫린 철조망펜스를 지났습니다. 몇 분후 골프장 왼쪽으로 난 풀숲 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20분 가까이 큰 키의 억새 등 잡풀에 얼굴이 계속 스쳐 짜증이 났습니다. 골프장 위 방기리 갈림길에서 조금 더 올라가 왼쪽 산길로 들어서자 이제야 비로소 길다운 길에 들어섰다 싶었습니다. 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두 시간 넘게 걸었어도 쉬고 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한 것은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다 까먹어 서두르지 않으면 해떨어지기 전에 목적한 배내고개까지 진출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차가 다녀도 될 만한 넓은 임도를 가로 질러 곧바로 치고 오르기를 몇 번해 다다른 해발660m대의 임도 길에서 첫 쉼을 가진 시각이 11시18분이었으니 버스에서 내려 3시간20분 동안 쉬지 않고 걸은 셈입니다.

 

 

 

  11시48분 취서산장에서 십 수 분간 쉬었습니다. 방기리갈림길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1.9Km로 표지목에 적혀 있었지만 갈림길에서 표고를 700m이상 높여야 정상에 이를 수 있어 결코 이번 산 오름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상을 0.6Km 남겨놓은 곳에 자리 잡은 허름한 취서산장에 올라 그 앞마당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먼발치로 구름이 정상을 살짝 덮은 금정산이 보였고 천성산과 정족산이 점점 가까이 보였습니다. 오로지 두발로 저 먼 길을 걸어온 제가 하도 대견스러워 맥주 한 캔을 사들어 자축한 후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홀로 정상을 향해 떠났다는 큰 개를 찾아 내려오는 산장 주인을 뒤로 하고 십 수분을 더 오르자 너덜이 보였습니다.

 

 

 

  12시40분 해발1,059m의 영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너덜 오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고갯마루에 올라선 후 너덜지대 위쪽의 암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조금 더 진행하자 오른쪽으로 영축산의 정상석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가 정상에 올라서자 울산에서 왔다는 젊은 두 분이 같이 식사를 하시자며 인사를 건네 와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북쪽으로는 신불산을 거쳐 가지산에 이르는 주능선이 깔끔하게 보였고 남서쪽으로는 7년 전 가다가 되돌아온 시살등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정상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하늘 위로 자리를 옮겨 제게 자리를 내준 덕분에 그림 같은 영남알프스의 주능선을 멀리까지 조망하고 나자 그 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 정상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원경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쓰고 간 초록색 모자를 삼각점 위에 놓고 근경을 사진 찍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좋은 산행되시라는 울산 젊은이들의 인사말에 고맙다며 답을 한 후 억새 향연이 펼쳐지는 초원으로 내려섰습니다.

 

 

 

  산중의 음식은 그 무엇이 되었든 시내 음식보다 몇 배 더 맛있어 점심시간이 마냥 기다려집니다. 달랑 한 두 팩의 떡만 준비해가는 제게도 점심시간은 더 할 수 없이 달콤한 시간인데 나름대로 안주인께서 정성들여 싸준 음식을 가지고 올라왔을 울산 젊은이들에는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높은 데까지 힘들여 갖고 올라온 음식을 나뉘고자하는 것은 우리네 상정입니다. 또 이를 진정 고마워하는 것 또한 상정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음식은 더 할 바 없는 인사말이었기에 진지 드셨느냐고 어르신들에게 문후인사를 올렸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음식이 동네의 새 소식을 실어 나르는 훌륭한 매체였다고 말씀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시골 동네에서 시루떡을 돌리고 또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시루떡은 그냥 떡이 먹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루떡은 귀한 손님이 오셨거나 크고 작은 집안 행사가 있을 때 빚는 떡이기에 이를 받으면 떡을 돌린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물어 확인 한 후 떡 그릇을 비워 돌려보내주곤 했습니다. 먹을거리도 짐이기에 무작정 많이 싸갖고 산을 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산중의 점심상이 잔칫상처럼 남아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처음 보는 이에게도 같이 들자고 권하는 것은 음식나누기의 아름다운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을 나누는데 음식만큼 좋은 것이 없어서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14시21분 해발 1,209m의 신불산을 올랐습니다. 등산로가 한 눈에 잡힐 만큼 넓고 분명해 모처럼 길을 잘 못들 일을 걱정하지 않고 편히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산들바람을 맞느라 긴 머리를 풀고 너울너울 춤을 추는 억새들도 달포후면 완전히 황금빛으로 변해 여기 억새평전에 장관을 연출할 텐데 그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기가 아쉬웠습니다. 왼쪽 아래 백련암(?)에서 올라오는 한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1026m봉을 넘었습니다. 띠 동갑인 이분은 1980년대에 백두대간에 발을 들여 다섯 번이나 종주를 마친 베테랑이어서 그간의 경험을 듣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배움이었습니다. 1026m봉에서 신불재로 내려가 억새 평전 한 가운데 자리한 쉼터에서 점심을 든 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돌탑이 세워진 신축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파레소폭포로 하산한다는 띠 동갑내기분과 사진을 찍은 후 저 혼자 간월산으로 향했습니다.

 

 

 

  15시55분 해발1,069m의 간월산을 올랐습니다. 신불산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바닥이 지난 4월에는 더러 더러 얼음이 살짝 얼어있었는데 이번에는 물기가 남아 있어 여전히 미끄러웠습니다. 간월산장 옆 간월재 쉼터에서 한 차례 쉬면서 간월산을 다녀오신 수녀님을 뵈었습니다. 금욕과 봉사로 한 평생을 살아가시는 수녀님께 등산이 혹시라도 고행을 의미한다면 평상화로 간월산을 다녀오신 것도 신앙생활의 일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고차가 150m가량 나는 간월산에 올라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 것은 여기서부터 배내봉까지는 영축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확 트인 길이 아니고 좁은 산속 길을 걸어야 해서였습니다.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어 따갑던 햇살에서 저녁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치고자 간월산 정상에서 뜸들이지 않고 곧바로 배내봉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온 몸의 에너지를 두 다리에 모은 후 최대로 속력을 높여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800m대로 고도를 낮추었다가 900m대의 봉우리 몇 개를 넘는 동안 거의 내내 능선 바로 아래 그늘진 숲속 길을 걸었습니다.

 

 

 

  17시27분 해발966m의 배내봉에 이르렀습니다. 간월산을 출발해 한 시간 쯤 걸어 다다른 무명봉에서 10분가량 쉰 후 간월산보다 훨씬 가깝게 보이는 배내봉을 향해 빨리 걸었습니다. 오른쪽 동쪽사면이 까까비탈인 산길이 외길이어서 길 잃을 걱정 않고 내달려서인지 간월산에서 배내봉까지 2시간쯤 걸리리라 생각했는데 그 보다 반시간을 앞당겨 일찍 도착했습니다. 숲속 길을 빠져나와 확 트인 배내봉에 이르자 다음에 오를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정상을 살짝 가린 구름이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아 산행을 다 마칠 때까지 가지산의 정상을 보지 못했는데, 가지산이 구름에 둘러싸이는 것이 늘 있는 일이어서 인근의 다른 남쪽지방 산들과 달리 3월에도 쌓인 눈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직진방향으로 오두봉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기까지 평평한 큰 길이 계속되어 찬찬히 초가을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8시24분 배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오두봉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배내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내내 나무계단 길이어서 하산 길이 편했습니다. 서쪽 멀리로 보이는 천황산(?)도 북쪽 가까이 보이는 가지산과 마찬가지로 구름이 정상을 덮었습니다. 구름 속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던 태양이 얼굴을 내보였을 때는 이미 석양이었는데 배내고개에 내려서자 다시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겨 사방이 어둡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두 편 밖에 없는 버스는 벌써 떨어져 만 오천 원이 드는 택시를 불렀습니다. 울산역으로 나가 저녁7시22분발 서울행 KTX에 올라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옛날 화랑이라면 신불산 산줄기를 원행한 후 택시를 타지 않고 말을 탔을 것입니다. 또 저처럼 KTX를 타고 서둘러 서울로 내빼지 않고 천천히 서라벌로 입성했을 것입니다. 화랑들이 영남알프스 길을 걸은 것이 확인만 된다면 배내고개 쯤에 역참을 만들어 울산역까지 말을 타고 가보는 관광프로그램도 꾸며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뀔 이름의 화랑로만은 옛 그대로 천천히 걸으며 화랑들처럼 유람해보고 싶어서입니다. 그 때보다 수명은 몇 십 년 늘어났는데 그 긴 인생을 내내 달릴 수만은 없지 않나 싶기도 해서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