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 종주기9(배내고개-가지산-정상휴게소)

시인마뇽 2011. 9. 27. 09:38

                                                      낙동정맥 종주기9

 

                                 *정맥구간:배내고개-가지산-정상휴게소                                

                                 *산행일자:2011. 9. 26일(월)

                                 *소재지   :울산울주/경북청도 

                                 *산높이   :가지산1,241m, 능동산983m, 상운산1,117m

                                 *산행코스:배내고개-능동산-가지산-쌀바위-상운산-운문령-정상휴게소

                                 *산행시간:7시50분-17시12분(9시간22분)

                                 *동행      :나홀로 

 

 

  낙동정맥 종주 길에 숨 가쁘게 가지산을 오르면서 몇 번이고 자문한 것은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하는 명제였습니다. 라이브공연을 하는 대학로의 한 째즈 카페를 들르지 않았다면 사흘 전인 지난 금요일에 이 산을 오르도록 계획되었는데 이틀 전에 방송대의 동아리학형들로부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째즈공연을 함께 보러가는 바람에 가지산의 산신령을 사흘씩이나 늦게 뵌 것입니다.

 

 

 

  째즈냐 등산이냐는 두 취미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어서 크게 고민되는 일은 아닙니다. 어느 것을 선택한다 해도 즐거움의 양에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생활 차원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슬 푸른 10월 유신이 있었던 1972년 가을 공무원의 이석을 절대 금지하는 포고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며칠 고민 끝에 오대산을 몰래 다녀온 것은 지금 생각해도 백번 잘못한 일입니다. 그때 군내 최대의 운동회가 개최되어 어수선하던 때였기 망정이지 이석이 들통 났다면 바로 파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됐다면 공부하나 잘한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대학을 졸업시킨 어머니께서 아들 잘못 두었다는 조롱 때문에 동네에서 고개를 드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불효가 따로 없는 즉, 어디서 그런 만용이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지금 제게 굳이 직업을 대라하면 방송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이라 답할 뜻입니다. 다 늦은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소리도 더러 듣지만 제가 좋아 택한 것이기에 어느 과목도 소홀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제 학생이 된 이상 제가 최우선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공부입니다. 젊은 학생들처럼 졸업해서 어디에 써먹겠다는 것이 아니어서 공부하는 것이 직업이라 말하기가 조금 뭣하지만 그렇다고 취미삼아 하는 것은 분명 아니고 일삼아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째즈카페에야 정말 어쩌다 간 것을 산신령께서 이미 알고 계셔서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며 혼을 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저 또한 째즈가 산보다 더 좋아한 것이 아니고 공부를 같이하는 학형들이 좋아서 간 것이라고 이실직고해 일단 매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젠가 산신령께서 째즈가 아니고 “너는 공부가 더 좋더냐?”고 물어 오신다면 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대학원에 진학해 더 공부하고 싶고 내친 김에 박사과정도 밟고 싶은 제게 산과 공부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정말 고민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방송대에 입학한 후 매주 두 번 하는 산행을 한 번으로 줄이고 시험이 임박해서는 산행기를 쓰지 않을 속셈으로 집근처 산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난 6월에 시작한 낙동정맥 종주를 언제 딱 끝내겠다고 아직까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 해도 매주 한 번 하는 산행을 거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해야 한다면 아마도 공부를 포기할 것입니다. 산행은 제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신앙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산신령께서 “너는 정말 공부가 더 좋더냐?”라고 물어 오시지 않도록 산행을 거르지 않으면서 공부 또한 제대로 하기 위해서 산과 공부 외에 다른 일에 눈을 돌리지 않을 각오입니다.

 

 

 

  아침7시50분 배내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밤차 타고 내려간 부산역에서 첫 전철을 타고 노포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로 위 노포버스터미널을 아침6시30분에 출발해 40분 후 도착한 언양에서 18,000원을 들여 택시타고 배내고개까지 간 것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해서였습니다. 해발 6백m대의 배내고개는 아침공기가 싸늘했습니다. 고갯마루 정자에서 산행채비를 마친 후 건축 중인 휴게소를 지나 능동산 들머리의 나무계단 길로 올라섰습니다. 8년 전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천황봉과 재약봉을 차례로 오른 후 표충사로 하산한 일이 있는데 그 때는 캄캄한 밤에 산행해서인지 이 고개에서 능동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마치 처음인 듯 생소했습니다. 길 양쪽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나무계단을 오르는 중 두 곳의 전망대를 지나면서 남쪽 건너 간월산-배내봉의 능선 길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석남고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해 산마루에 오르자 표고가 해발983m임을 알리는 능동산 정상석과 두 기의 돌탑이 저를 반겼습니다. 서쪽 먼발치로 보이는 천황봉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다시 삼거리로 되 내려갔습니다.

 

 

 

  10시 정각 능동산과 가지산 사이의 가장 깊은 안부 사거리인 석남고개를 지났습니다. 능동산에서 되 내려간 삼거리에서 석남고개로 내려가는 정맥 길은 정북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삼거리에서 나무계단 길을 따라 해발 700m 대로 내려서자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얼마간 이어져 한껏 속도를 높였습니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나지막한 813.2m봉을 넘어 석남고개로 내려가는 중 죽어 길바닥에 나자빠진 비둘기만한 제법 큰 새를 보았습니다. 보다 힘 센 놈의 공격을 받고 당해내지 못해 죽은 것으로 보이는 이 새의 시신을 보고 이것이 자연의 냉엄한 질서다 싶었습니다. 하늘을 가리는 철쭉 숲을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다가 능선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제 길이 아닌 것 같아 삼거리로 되 돌아가느라 10분가량 까먹은 것이 이번 산행 중 유일한 알바였습니다. 돌아간 삼거리에서 오른 쪽 능선 길을 따라 수분을 걸어 오른쪽 아래로 석남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랐고 직진해 조금 내려가 돌무더기가 자리한 안부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해발740m(?)대의 안부에서 조금 더 올라 만난 삼거리는 석남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으로 이번 산행 처음으로 이곳에서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1시48분 해발1,241m의 가지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삼거리에서 10분가량 쉬는 중 석남사에서 올라온 젊은 세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뉘었습니다. 저도 이분들처럼 작년 3월 석남사를 출발해 이 길로 눈이 꽤 많이 쌓인 가지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계절이 바뀌어서인지 오름 길이 그리 눈에 익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피소에서 시작된 나무계단 길이 꽤 길었는데도 계단 간의 간격이 적당해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계단 길이 끝나는 1160m봉에 오르자 가지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그림 같은 산줄기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왼쪽 아래로 제일농원 길이 갈리는 안부삼거리에서 가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중 뒷덜미에 내려앉은 한 낮의 햇살이 여전히 따가워 이것이 밀려나는 여름의 마지막 저항이다 했습니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가지산 정상은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지나온 길이 남쪽 멀리로 희미하게나마 영축산까지 보였고 다음에 지나갈 고현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한 편에 모자를 벗어 놓고 째즈 카페를 들르느라 이번 산행이 사흘 늦어져 정말 죄송하다고 산신령께 고한 후 쌀바위 쪽 길로 조금 내려가 그늘진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12시33분에 오후 산행을 재개했습니다.

 

 

  13시46분 해발1,114m의 상운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3월에 가지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쌀바위를 경유해 석남사로 내려가려다 눈이 많이 내려 경사가 엄청 급하다는 쌀바위-석남사 길이 위험하다고 어느 한 분이 귀띔을 해주어 그 길을 포기하고 제일농원 길로 코스를 바꾸어 하산했습니다. 1년 반 만에 다시 오른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능선 길을 반시간 가량 이어가 헬기장을 지나고 쌀바위에 이르자 두 개의 거암이 주위를 압도해 과연 명불허전이다 했습니다. 백구 한 마리가 배를 바닥에 깔고 늘어지게 쉬고 있는 모습이 하품이 날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쌀바위에서 잘 닦인 임도를 따라 몇 분을 더 걸어 다다른 전망대에서 왼쪽 산길로 올라갔습니다. 경사가 급한 길을 땀을 내며 올라 다다른 봉우리가 상운산으로 해발고도가 1,114m임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 있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빼어난 상운산에서 정북 쪽의 첩첩이 보이는 산들을 사진 찍은 후 오른 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 길을 이어갔습니다.

 

 

 

  위 거암이 쌀바위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이 바위틈에서 쌀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 바위아래에서 열심히 수도 정진한 스님께서 매일 탁발하러 아랫마을에 내려가는 것이 딱해 바위틈으로 매일 쌀을 흘려주신 분은 이 산의 질서를 세우시고 다스리는 가지산의 산신령이 틀림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위틈을 들쑤신 아랫마을 사람들에 더 이상 쌀을 내려주지 않고 물만 흘려보낸 분도 역시 이산의 산신령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산신령을 흠모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든 마냥 자비나 사랑을 베푸는 부처님이나 예수님과는 달리, 우리네 인간들과 지근거리에 있으시면서 인간들과 애환을 같이 하시고 상도 주시고 혼도 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산신령은 원래 이런 분이시니 얌체 짓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있지 못하시고 쌀 대신 물을 내려 보냈을 것입니다.

 

 

  14시57분 운문령에 내려섰습니다. 상운산에서 오른 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다 수 분후에 만난 암봉이 귀바위인 것 같은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바위의 크기나 자태가 앞서 지나온 쌀바위에 비견할 바 못되지만 그래도 귀바위라는 귀한 이름을 얻었는데 그에 걸 맞는 전설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궁금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운문령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빤히 보이는 능선 길을 한참 동안 걷다가 홍수예경보시설인 “석남사우량국” 앞 임도로 내려선 시각이 14시41분이었습니다. 임도를 건너 지름길로 내려가 다시 만난 임도에서 더 이상 지름길로 가지 않고 잘 나있는 임도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큰 알바를 하지 않아서인지 산행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일찍 임도로 내려선 후로는 69번 지방도가 지나는 운문령까지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운문산생태경관보전지역 환경감시소를 지나 내려선 운문령에서 15시에 언양 가는 버스가 곧 있을 것이라 해 이만 산행을 접고 버스를 기다렸으나 10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아 다시 차도 건너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17시12분 정상휴게소 앞 삼거리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운문령 가게에서 사들은 맥주 한 캔에 들어 있는 화학에너지가 어느새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어 가파른 894.8m봉을 힘든 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운문령 위 하얀 집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한동안 정북쪽으로 완만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소나무 쉼터를 지나 894.8m봉 바로 밑에서 경사가 급해졌지만 미량의 알코올 덕분에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왼쪽으로 문복산 길이 갈리는 894.8m봉에서 “낙동정맥” 표지석을 확인한 후 오른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790m봉에서 도계 길을 따라 직진하지 않고 왼쪽으로 확 꺾어 경상북도 경주시 권역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 “一松樹木園”이라는 돌기둥이 서 있는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길 오른 쪽에 자리한 광활한 풀밭을 채운 것은 억새풀이어서 아직도 방목장으로 쓰이는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길 건너 고헌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는 이 길을 따라 내려가 만난 921번 지방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조금 옮겨 “대현3리 A지구" 승강장 앞에 다다랐습니다. 921번 도로와 외항재 길이 만나는 삼거리인 승강장 앞에서 산행을 마무리 한 후 17시30분 버스를 타고 아침에 출발한 언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산신령께서 “너는 째즈가 더 좋더냐?”며 골탕을 먹이려 작정하셨다면 이번에도 큰 알바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석남고개에 이르기 몇 분전 삼거리에서 밀양 쪽으로 계속 내려가도록 내버려두셨다면 운문령까지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차 안에서 줄곧 생각한 것은 째즈카페로 한 번 산신령을 모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내는 소리가 산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때는 특별히 부탁해 째즈 음악에 능하기로 이름난 이정식님의 색소폰 연주를 들려드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생명체는 사람 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족해하신다면 다음에는 제가 하모니카를 갖고올라가 한 곡조 불러올리겠습니다. 늦게온 제게 알바라는 벌을 내려주시지 않은 신령님,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