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10
*정맥구간:정상휴게소-고헌산-소호고개
*산행일자:2011. 10. 3일(월)
*소재지 :울산울주/경북경주
*산높이 :고헌산1,033m, 백운산893m
*산행코스:정상휴게소 삼거리-외항령-고헌산-소호령-백운산
-소호고개-태종마을입구삼거리
*산행시간:9시12분-15시23분(6시11분)
*동행 :나홀로
전날 밤 수원역으로 나가 인터넷에서 발권한 기차표를 챙기려고 지갑을 꺼냈다가 현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알고 적지 아니 당황했습니다. 낮에 은행에서 찾은 현금을 갈아입은 바지주머니에 두고 나와서인데, 수중에 든 돈 없이 먼 길을 떠나기가 아무래도 불안해 일단 다음 날 아침에 울산을 가는 첫 KTX로 표를 바꾼 다음 산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건망증이 염려되는 것은 혹시라도 치매증세가 시작된 것이 아닌 가 싶어서입니다. 저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글도 계속 써 머리를 바쁘게 가동해왔기에 누구보다도 치매가 늦게 찾아올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판사로 모 여자대학교 법정대학장까지 역임하신 한 분도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하니 속설처럼 머리를 쓰는 일을 좀 하는 것만으로 치매를 피해갈 수 없겠다 싶어지자, 최근에 겪은 일련의 망각증세들이 치매의 전조일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 어르신들이 망령(忘靈)들었다 하신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의 치매를 두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치매에 걸리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생명체임에 틀림없습니다. 가끔은 깜박깜박 잊고 지낼 만한 영혼이라도 존재해야 망령이라는 기능이 작동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새삼 이제껏 묵언의 대화를 나눠온 나무들은 치매로부터 완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일부학자들은 숲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나무들을 비롯한 식물체는 동물과 달리 영혼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인 듯합니다. 나무는 우리 인류에 혼이 깃든 어느 생명체보다 더 많이 혜택을 베풀고 있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혼령이 깃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아직까지 나무가 치매에 걸려 망령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치매에 걸린다면 아마도 이런 증세로 시달릴 것입니다. 우선 나이테를 만드는 일을 중단할 것입니다. 자기 나이를 잊어버렸는데 나이테를 몇 개 만들어야할지 어찌 알겠습니까? 나무가 언제 꽃을 피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려 시도 때도 없이 꽃이 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피는 꽃이라면 때를 맞추지 못해 조야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가지 끝에서 새싹이 돋아나는데 나무가 이를 잊어버려 잎을 키우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리되면 나무에서 잎이 사라지고 이어서 숲이 사라져 생태계가 완전 파괴되고 사람들이 발붙이고 살만한 곳은 모두 사라질 것이기에 말입니다.
나무가 치매에 걸리지 않아 망령을 부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무에도 영혼이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저처럼 홀로 종주산행을 하는 산 꾼에게는 얼마나 좋은 일이랴 싶다가도 그 영혼이 망령을 부려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사람들이 더러 더러 치매에 걸려 고생하는 한이 있어도 나무만은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이 백번 좋겠다 싶었습니다.
아침 9시12분 정상휴게소 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울산역에서 하차해 시내버스를 타고 언양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8시 반이 조금 지나 터미널을 출발한 338번 시내버스는 시골구석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이 버스 종점인 태종마을로 내달렸습니다. 정상휴게소 앞 삼거리에서 하차해 간단히 산행을 채비한 후 10구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왼쪽의 마루금을 따르지 않고 질러가는 찻길을 따라 외항령으로 올라간 것은 산행을 마친 후 태종마을에서 언양으로 나가는 오후3시반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지만, 출발부터 얌체 짓을 한 것이어서 부끄럽고 찜찜했습니다. 정상휴게소 출발 10분 후 다다른 외항령에서 오른 쪽 위로 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대략 고도를 5백m 가량 올리면 고헌산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집 근처 관악산을 올라가는 정도여서 마음 편히 진행했습니다. 나무 숲길은 30분가량 계속되다가 끝났고, 그 다음 왼쪽 소호분교 쪽이 탁 트인 넓은 능선 길이 고헌산정상까지 이어졌습니다.
10시33분 해발1,033m의 고헌산에 올랐습니다. 앞길이 탁 트인 능선 길을 걸어 오르는 중 부산에서 왔다는 50대의 남자 몇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분은 지금 오르고 있는 산이 고헌산인줄도 모르는 것으로 보아 그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 것 같은데 이분 또한 고헌산 산신령의 보살핌이 있어 아무 탈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른 쪽 멀리로 배내고개와 가지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능선을 따라 먼저 올라선 고봉은 고헌산 서봉으로 표지석에 정상보다 고도가 2m높은 1,035m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안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다다른 고헌산의 정상에 자리한 정상석은 그 규모가 서봉의 표지석보다 훨씬 커 이 봉우리가 이 산의 주봉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옛날 이 높은 곳에 올라 제물을 바치고 기우제를 지냈기에 이 산이 고헌산(高獻山)으로 불리는 듯싶은데, 기우제 덕분에 비가 내렸다고 믿어온 이 지방 백성들은 진정 이산을 높이 모셨을 것입니다. 데크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논 뜰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황금빛으로 채색되어 절로 풍요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동쪽의 산불감시탑으로 가는 능선 길에 내려앉은 가을이 길 끝의 돌탑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참으로 고즈넉해 보였습니다.
11시38분 소호령을 지났습니다. 백운산 정상에서 끝나는 넓은 임도가 산불감시탑에서 시작됐습니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임도의 바닥에 자갈이 널려 있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내려가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3백미터 넘게 고도를 낮추어 내려선 삼거리 안부 소호령은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절인 대성사를 지나자마자 있었으며, 왼쪽 아래로 소호리 길이 갈렸습니다. 하얀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핀 소호령을 지나 692.7m봉에 이르기 십 수분 전 왼쪽 산길로 들어섰다가 이 길이 묘지에서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임도로 되돌아 온 것이 이번 산행의 유일한 알바였으며, 그 시간도 왕복 4-5분에 불과할 정도로 짧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임도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서 직진해 올라선 임도상의 봉우리인 692.7m봉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드는 동안 오름 길에 흘린 땀이 식어 등 뒤가 서늘했습니다.
13시22분 해발 893m의 백운산 산마루에 올라섰습니다. 아침에는 냉기가 느껴지다가도 한 낮에는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어 가파른 임도를 따라 오르는 일은 여전히 덥고 짜증스러웠습니다. 620m대까지 내려갔다가 차바퀴 자국이 선명한 임도를 따라 3백미터 가까이 고도를 높여가며 백운산의 고스락에 올랐는데 날씨가 화창해 이 봉우리에 머물러야 했을 흰 구름이 자리를 옮겨 하늘 높이 떠다녔습니다. 백운산 정상에서 퍼져 쉬면서 이번에도 산신령을 알현했습니다. 재즈는 같이 들으러 다니면서 어찌 혼자 내려왔냐며 다음에는 수로부인들도 함께 모시고 오라는 신령님의 전언을 문자메시지로 보냈지만, 용왕이 길을 막아 오지 못했다는 수로부인들의 새빨간 거짓말 답신을 바로 올리지 못하고 13시37분에 짐을 꾸려 백운산을 떠났습니다. 임도가 끝난 백운산 정상에서 소호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전형적인 산길로 길이 아기자기했고 햇볕을 가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14시55분 소호고개에 이르렀습니다. 백운산에서 내려서는 길에 수녀님 일행 몇 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치맛자락이 긴 수녀복을 입고 오르는 수녀님을 보고 참으로 불편하시겠다 싶은데 간월산을 오를 때 만나 뵈었던 수녀님도 그리하셨던 것으로 보아 교회법에 그리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고래등바위가 어느 바위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북진을 계속하다 백운산 출발 반시간이 지난 14시6분에 해발845m의 삼강봉에 다다랐습니다. 여기 삼강봉에서 오른 쪽으로 분기되는 호미지맥이 끝나는 지점이 작년 가을에 다녀온 호미곶이겠다 하면서 왼쪽 길로 내려갔습니다. 암릉 길을 오르내리며 로프를 잡고 바위 길을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철쭉길과 싸리나무 길을 번갈아 지나면서 8백미터 대의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 소호고개로 내려가는 경사가 급한 길로 내려섰습니다. 쉬지 않고 내달려 생각보다 빨리 소호고개에 도착해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임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다 이내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15시23분 태종마을입구 삼거리에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소호고개에서 태종마을 입구까지 계속 넓은 길로 이어졌습니다. 시멘트 길과 자갈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임도는 지그재그 길이어서 좀처럼 고도가 떨어지지 않아 이러다가 15시30분 버스를 놓치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됐습니다만, 부지런히 걸어 내려가 태종 잿골 길로 내려서자 별장처럼 잘 지은 집들이 나타나 이제 다 내려왔다 싶어 안심했습니다. 좀 쉬어가라는 길 건너 할머니 한 분의 말씀에서 외로움이 짙게 배어나는 것을 감지했지만 버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몇 말씀 나뉘지 못하고 마을입구 삼거리로 내려갔습니다. “태종잿골길”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높이 걸려있고 그 옆 전신주 하단에 “레데꼬” 안내 판떼기가 낮게 걸려있는 차도삼거리에서 조금 내려가 옷을 갈아 입은 후 15시50분 쯤 아침에 타고 온 언양버스에 올랐습니다. 하루에 4대 밖에 다니지 않는 이 버스가 언양 가는 길에 들른 구석진 시골마을은 대원리(?)로 아침에도 들른 마을입니다. 논 떼기마다 가에 개집보다 네다섯 배 정도 되는 가건물이 서 있어 기사분에 여쭤본 즉 오리집이라 했습니다. 논에다 오리를 풀어 짓는 오리농사가 친환경적으로 이런 논에서 수확하는 쌀은 가격이 일반미에 비해 상당히 고가여서 이 마을 모두가 오리 농사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농사철 오리가 쉬는 곳이 바로 이 오리집으로 수확이 끝나면 모두 잡아먹는다 하니 오리 쪽에서 보면 이런 토사구팽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 정말 억울할 것입니다.
언양에서 남부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는 양산으로 내려갔다가 밀양을 지나 서울로 올라갔는데 5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밀폐된 공간인 버스 안에서 긴 시간 앉아 있기가 무료하기 짝이 없어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죽이기 일쑤입니다. 이번 산행을 결정적인 알바 한 번 없이 무사히 마친 것이 치매에 걸리지 않은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생각이 들자 안심됐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혹시 치매에 걸린 나무들이 있는 가를 유심히 보았습니다만, 그런 나무들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적어도 영혼을 갖고 있는 생명체만 걸리는 치매는 아무 것이나 걸리는 것이 아니라며 혼이 깃들지 않은 나무를 얕잡아 보다가 미국의 요절시인 조이스 킬머의 시 “나무”의 한 구절이 생각나 뜨끔했습니다.
“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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