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기2
*정맥구간:감천고개-구덕산-개금역
*산행일자:2011. 7. 11일(월)
*소재지 :부산
*산높이 :시약산565m, 구덕산560m, 고원견산504m, 엄광산504m
*산행코스:감천삼거리-대티고개-구덕산-구덕령-엄광산-개금역
*산행시간:6시21분-15시19분(8시간58분)
*동행 :나홀로
요 며칠 사이 정말 큰비가 내렸습니다. 부산을 관통하는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온통 흙탕물로 꽉 차 조만간 큰비가 또 다시 내린다면 강물이 범람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도 했습니다. 낙동강본류와 서낙동강분류가 에워싼 김해공항이 물에 잠길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낙동강의 수위가 높아 보였습니다. 저런 정도의 물높이라면 지난 달 아미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하구의 작은 등들은 물에 잠겨 속등으로 바뀌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낙동강의 흙탕물을 보고 채만식선생의 소설 “탁류”를 떠올렸습니다. “탁류”에 배경이 된 곳은 금강하구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1930년대의 우리 사회가 그 배경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긴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사는 군상들이 만들어낸 물 흐름이 깨끗하고 또 깨끗한 청류일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 속이고 해하며 살아야 했기에 탁류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사회에서 탁류를 헤쳐가며 살아가는 주인공 초봉에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채만식 선생이 이 소설을 통해서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장마 비가 빚어낸 탁류가 더럽고 지저분한 쓰레기를 쓸어가듯이 세상의 몹쓸 것들을 탁류가 전부 쓸어가 우리 사회가 맑아지기를 염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기를 달리한 오늘에도 도처에서 탁류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를 멍들게 하는 갈등과 대립을 저 낙동강의 탁류에 흘려보내고 청류를 맞이할 수 있다면 채만식 선생도 환생해 다시 글을 쓸 마음이 내킬 것입니다.
전날 밤 수원역을 출발해 새벽4시가 조금 넘어 부산역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다섯 시간 동안 잠을 푹 잘 수 있었던 것은 기차에서 읽으려고 챙겨둔 책을 집 나설 때 깜박 잊고 놓고 온 건망증 덕분입니다. 나름대로 챙긴다 하는데 거의 한 두 가지를 빼놓고 집을 나오는 건망증이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해지는 것을 막지 못해 겁이 나기도 합니다. 책만 두고 온 것이 아니고 장갑도 빼놓고 왔으니 저의 걱정이 단순히 기우라고 할 일만도 아닌 듯싶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지도를 보고 산길을 찾아가는 일이 건망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서인지 그런대로 잘 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침6시21분 감천고개를 출발했습니다. 감천삼거리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내려가 육교 아래 건널목을 건넌 다음 고려페인트가게 앞 좁은 차도를 따라 쭉 올라갔습니다. 슈퍼미화당삼경점을 막 지나 오른 쪽으로 꺾어 올라간 부영벽산아파트106동 앞 삼거리가 마루금이 지나는 능선으로 이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괴정배수지와 성불사를 지나 들어선 산길을 따라 올라 우정탑이 들어선 247.2m봉에 다다르기까지 산행시작 후 딱 1시간이 걸렸습니다. 올 들어 처음 본 연분홍 패랭이꽃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묘지들이 들어선 밋밋한 능선 길로 들어서자 맞은편의 구덕산기상관측소가 잘 보였습니다. 시큼한 산딸기가 제 맛을 내지 못하는 장마철에도 볕들 날이 있으니 어제가 그러했습니다. 까치고개에 이르기 직전 허리를 굽히고 밭일을 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사진 찍으면서 스물두해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까치고개에서 길을 건너 슈퍼를 들러 캔 커피를 사마신 후 오른 쪽 옆 골목길을 따라 가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8시12분 대티고개에 다다랐습니다. 까치고개에서 골목길을 지나 들어선 산길을 따라 걸어 나지막한 구릉을 넘었습니다. 마루금이 지나는 산마루에 이르지 않고 그 왼쪽 아래에 난 밭가의 큰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주택가를 지나 내려선 차도를 건너 오른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삼거리에서 다시 차도를 건넜습니다. 오른 쪽 위 대티고개 마루를 향해 가다가 버팔로대티점을 막 지나 왼쪽 계단으로 올라섰다가 이내 오른 쪽 길을 따라 산비탈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골목길을 지나 다다른 “구덕산/천마산 일원등산안내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갈 지(之)자로 오르는 비알 길이 가파른 비알길이어서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하늘색 철책과 돌담을 쌓은 박씨 묘에 이르기 바로 전 그늘에서 이번 산행 처음으로 15분을 쉰 후 9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구덕산으로 향했습니다.
담 벽에 이런 저런 그림을 그려 넣느라 요란한 색상의 산비탈 골목길을 지나는 중 40여 년 전 돈암동 산꼭대기에다 방을 얻어 자취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연탄파동만 일어나면 산꼭대기 동네에는 연탄차가 올라오지 않아 별 수 없이 산 밑 가게에서 사 들고 올라가야했는데 거의 매년 겨울 한 두 번은 이런 난리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새끼줄에 연탄을 4장 씩 꿰어 양 손에 8장을 들고 산비탈 골목길을 오르곤 했는데 내린 눈이 얼어 빙판 진 길을 오를 때는 혹시라도 미끄러져 연탄을 깨트릴까봐 여간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산동네가 6.25전쟁 때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동네 아낙들도 저처럼 그 겨울에 저 밑에서 사 날라야하는 연탄파동을 겪었을 것이다 싶어지자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때 제가 죽어라고 공부한 것은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사회이동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데, 요즘은 그 믿음이 사라져 그 때의 경제적 여건을 감안해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해졌을 등록금이 더 비싼 것으로 느껴지기에 “등록금 반값”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귀에 솔깃하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10시14분 해발565m의 구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꽤 넓은 박씨 묘역을 지나 만난 산불감시초소에서 구덕산기상관측소가 바로 앞에 보여 다 올라왔다 싶은데 오름 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름 길이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데도 땀을 뻘뻘 흘려야 했던 것은 해를 가릴 숲이 없어서였습니다. 관측소 왼편으로 길이 나있어 그 쪽으로 조금 가다가 다시 돌아와 오른 쪽으로 옮겨 “구덕산기상관측소”정문 앞에 이르자 돔형의 지붕을 한 관측소 건물이 더욱 커 보였습니다. 정문 앞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가다 오른 쪽 산길로 들어가 2-3분 올라가 해발고도가 565m로 새겨진 구덕산 정상석 앞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옆 나무그늘 이래에서 땀을 식히며 16분간 푹 쉰 후 시멘트 길로 돌아가 오른쪽으로 4-5분가량 걷자 부산항공무선표지소 정문이 나타났습니다. 길이 이곳에서 끝나 더 이상 시멘트 길을 이어가지 못하고 부산항공무선표지소 건물을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고자 오른 쪽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능선에서 이 건물 울타리를 따라 조금 내려갔다가 배수로를 따라 올라 항공무선표지소울타리를 반 쯤 돌자 오른 쪽 아래로 승학산 가는 내리막길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한데다 철쭉나무 가지들이 얼굴을 때려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11시59분 구덕령 고개에서 차도를 건넜습니다. 항공무선표지소울타리에서 벗어난 지 20분이 조금 지나 구덕산과 승학산 사이의 안부를 지나는 시멘트 길에 내려섰습니다. 넓은 공터인 안부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곳에서 기상관측소까지 차도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아까 무선표지소 정문 앞에서 기상관측소로 되돌아갔으면 시멘트 길을 따라 이리로 내려올 수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안부 쉼터에서 차디 찬 식혜와 식수를 사 마셔 배를 불린 후 11시17분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구덕령고개로 내려가면서 황토 빛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을 보았습니다. 김해비행장을 가운데 두고 낙동강본류와 서낙동강분류로 갈라져 흐르는 낙동강이 온통 흙탕물로 변해버린 것을 보고 지난 4월 김해의 동어산에서 내려다 본 새파란 강물을 먹어 삼킨 장맛비의 위력이 대단함을 실감했습니다. 자그마한 문인석들이 눈길을 끄는 구덕문화공원을 지나 구덕령고개에 다다랐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대진슈퍼 앞에서 산 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차도를 따라 4-5분을 걸어가자 등산로 입구에 정자가 보여 십분 가량 쉬어 갔는데, 엄광산까지 넓고 그늘진 흙길로 연결되어 앞서 구덕산을 오를 때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초록색철조망울타리가 끝나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 “내원정사0.5Km/엄광산정상0.6Km"의 표지판이 서 있는 편백나무 숲속 쉼터에 도착한 시각이 12시34분으로, 이곳에서 점심을 들면서 20분가량 쉬었습니다.
13시44분 해발504m의 엄광산에 올라섰습니다. 편백나무 숲속 쉼터에서 고원견산으로 오르는 길이 조금 가팔랐지만 그늘 속을 걸어 생각보다 덥지 않았습니다. 엄광산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가 지도에 나와 있는 해발504m의 고원견산인 줄 안 것은 그 반시간 후 삼각점이 서 있는 같은 높이의 동쪽 봉우리를 오른 후였습니다. 고원견산의 정자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부산 앞바다가, 그리고 왼쪽으로 낙동강이 잘 보였습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데다 먼저 올라와 쉬고 있는 한 아주머니께서 시원한 냉수와 찐 감자를 주어 잘 먹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동쪽으로 진행해 삼각점만 있고 정상석이 서있지 않은 해발504m의 엄광산에 다다르자 한 젊은이가 엄광산이 가까우냐고 물어왔습니다. 이 봉우리는 지도에 나와 있는 엄광산이고 저기 송전탑왼쪽의 봉우리에 “엄광산”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명쾌하지 못한 것 같아 찜찜했습니다. 해를 가릴 나무가 없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개금역으로 하산하고자 남서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발을 들였습니다. 때마침 그 길로 올라오는 한 분이 있어 개금역 가는 길을 물었더니 뒤로 돌아가야 길이 있다고 응답해와 멈춰 서서 지도를 꺼내봤습니다. 이분 말씀대로 4-5분가량 오던 길로 되돌아가자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나 있는 하산 길이 보였습니다.
15시19분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개금역 3번 출구 앞에서 2구간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엄광산에서 지도를 꺼내보지 않고 남서쪽으로 진행했었다면 알바 한 번 크게 치를 뻔 했는데 다행히도 알바를 면해 하산 길이 편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고 길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어 두 번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이 더위에 알바를 면한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이어서 군소리 한 마디 안하고 하산했습니다. 임도를 건넌 후 몇 분을 걸어 내려가 “부산지구EM발효제생산연구소” 정문 앞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여기서부터 개금전철역까지는 집들이 꽉 들어찼고 도로가 나 있어 마루금을 찾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고 또 그리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겠다 싶어 포기하고 이사람 저 사람한테 가는 길을 물어 개금역을 찾아갔습니다. 부산의 백병원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내려가 찾아간 개금전철역이 마루금에 위치해 있음을 확인한 후 지하로 내려가 전철을 탔습니다.
귀경길에 밀양 벌을 덮은 드넓은 낙동강을 보았습니다. 줄기는 물에 잠겼고 가지만 고개를 바짝 들어 숨을 쉬고 있는 나무들이 여기 저기 눈에 뛸 정도로 밀양 벌을 가득 메운 시뻘건 탁류를 보고,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는데 앞으로 내릴 큰비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됐습니다. 밀양 벌을 흐르는 강은 낙동강의 본류가 아니고 지류입니다. 지류의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것은 물 흐름을 더디게 하는 삼각주가 잘 발달된 하구가 가까워서입니다. 정부는 온갖 욕을 다 들어가며 낙동강을 포함한 4대강의 강바닥 흙을 파냈습니다. 준설의 목적이 강바닥을 깊게 해 보다 많은 물을 담아두어 홍수피해 줄이기와 물부족문제를 풀기위해서라면 "4대강 살리기" 역사는 이번 장마에 그 효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또 하나의 실패한 토목공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 과연 효험을 보았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회자되어 밀양 벌을 흐르는 낙동강의 저 탁류가 준공을 눈앞에 둔 “4대강 살리기”의 끊임없는 시비논쟁을 싹 쓸어가기를 희망하며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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