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소나무의 나이테를 보았습니다. 간벌 차 막 줄기를 베어내 은은한 솔향기가 배어나는 소나무 그루터기의 절단면에서 이 나무의 나이만큼 생성된 가지런한 동심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동심원의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나이테가 성글은 것은 이 나무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입니다. 나이테란 그 나무가 자라온 일생과 주변 환경까지 일러준다 합니다. 어느 해에 가물었고 비가 많이 내렸는지, 또 산불이 나고 번개를 맞은 해는 언제인지 전문가들은 나이테를 보고 알 수 있다 합니다.
나무의 생장비밀을 알려주는 나이테는 수피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모습이 드러내려면 밑동을 잘라내야 하기에 어떤 나무든 생장비밀이 외부에 알려지는 그 순간에 운명적으로 자기 수명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는 끝내 자기 나이를 혼자 간직한 채 수명을 다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죽어서도 나이를 밝히지 않고 그 자리에서 썩어 사라지는 것이 또한 순리입니다. 이러니 나무들은 그 이웃들에 나이가 몇이냐고 물을 리가 없습니다. 물어보았자 몸속에 숨어 있는 자기 나이를 헤아려 대답해 줄 수도 없기에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의 나이 챙기기기는 좀 유난스럽습니다. 낳자마자 출생신고를 해 나이를 세도록 합니다. 나이를 세지 않다가는 적령기를 놓쳐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차야 자격을 주는 사회제도가 상존하는 한 어느 누구도 나이를 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년 생일차례를 빼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사람 말고 어느 생물이 매년 생일을 해먹으며 나이를 세는지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살아서는 생일을 차려먹고 죽어서는 기일을 챙깁니다. 예수님의 연세는 아예 이분이 태어난 해를 기원 삼아 매년 헤아립니다. 석가모니님도 공자님도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몇 주년 탄생을 기념한다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생일차례를 해드립니다. 나이를 헤아린다는 것이 이토록 세상살이를 복잡하게 만드는데도 사람들은 나이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입니다.
유별나게 국가원수의 생일을 챙기는 나라는 대체로 미개한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인당 국민소득이 단 100불도 되지 않는 자유당 정권 때 신문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기사가 꽤 크게 나곤 했다 합니다. 소득이 높아지고 살만해지자 대통령 생일은 완전히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는데, 아직도 북한만은 그렇지 않아 딱합니다. 북한이 얼마나 후진국인가는 역대 최고지도자들의 생일을 얼마나 성대하게 치르는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수 백 만 명의 아사자가 나 아직도 인민들이 외국의 식량원조로 끼니를 이어가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인 김씨 일가가 대를 이어 자기들 생일잔치에 열을 올린다는 것은 미개국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이를 묻지 않아도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 숲이 아닐까 싶습니다. 숲속의 나무들이 사람들처럼 나이를 챙기려 한다면 생일상을 차리고 기념식에 참가하기 바빠 고유의 임무인 광합성을 하는 일에 짬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의 탄생은 350만 년밖에 안되지만 지구상에 침엽수가 나타나 숲을 이룬 것은 중생대 때의 일로 얼추 계산해도 2억년이 넘으니 숲속의 나무들이 각종 기념일을 챙긴다면 사람보다 몇 십 배 많이 챙겨야 할 것입니다.
나이테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수피 안에 숨어 있듯이 우리 나이 역시 내면에 숨겨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몇 글자 적어보았습니다.
*위 글은 제 블로그에 올린 낙동정맥 종주기를 일부 개작한 글입니다.
2012. 8. 21일 산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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