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산행에세이

10.나비를 노래하다

시인마뇽 2012. 9. 9. 10:26

                                                     나비를 노래하다

 

                  

 

 

  연인지맥 종주 길에 오른 가평의 대금산에서 하얀 꽃에 내려앉은 표범나비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장마 비가 이틀 연속 내려 습한데다 하늘을 덮고 있는 시꺼먼 먹구름이 여차하면 큰비를 내릴 기세여서, 이맘때면 번갈아가며 합창을 해 산속을 떠들썩하게 했던 새들과 매미들 모두 숲 속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새들과 매미들은 행여 비에 젖을까 날개 짓을 그만두고 노래 부르기도 멈추었는데, 이들보다 훨씬 가벼워 바람을 안고서는 도저히 날 수 없는 작은 몸으로 이 높은 곳에 자리한 야생화 꽃밭으로 날아들어 제게 인사를 건네는 표범나비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나비는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아 불완전변태를 하는 메뚜기와는 달리 알-애벌레-번데기-성충의 네 과정을 모두 거쳐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으로,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후로는 2개월에서 1년까지 삽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약260종의 나비가 살고 있는데 이번에 만나본 나비는 주홍색 바탕에 검은 점이 고루 퍼져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나비로 집에 돌아와 도감을 찾아본 즉 작은은점선표범나비로 보였습니다. 네발나비과 은점선표범나비속에 속하는 작은은점선표범나비는 섬을 제외한 한반도전역에 두루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나비의 학명 속에 들어 있는 셀레네(Selen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바람의 신들과 어울려 노닌다는 계절의 여신으로, 이 나비는 학명에 어울리게 초가을까지 계절의 여신다운 아름다운 자태를 계속 보여주며 뽐내고 있다고 이원규/김정환 두 분이 같이 지은 “우리나비 백가지”는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나비들이 그 이름을 처음 들어도 친숙한 것은 나비박사로 알려진 석주명박사 덕분입니다. 이 땅의 나비들에 고유한 이름을 지어준 석주명님은 국어실력도 그 분야의 웬만한 학자를 뺨치는 수준이었기에 이토록 나름대로의 특징을 잘 드러내도록 나비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관모산지옥나비나 차일봉지옥나비는 지옥나비속에 속하는 나비들입니다. 이들 지옥나비들은 2천미터가 넘는 고산의 초본 대에서 사는 나비여서 이들을 만나보려면 이름그대로 지옥훈련에 가까운 고산등반을 마쳐야 합니다. 이번 대금산에서 작은은점선표범나비가 나풀거리는 것을 보고 참으로 곰살궂다 한데는 나비 이름도 한몫했다는 생각입니다.

 

 

  9시간 가까이 산행하면서 새소리를 들은 것은 딱 한 번으로 기억합니다. 어인 일인지 잠시 해가 났는데도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숨죽이고 있는 동안 산속에서 저희들을 반긴 것은 구름을 몰고 다니는 바람과 나풀나풀 팔랑팔랑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는 나비들이었습니다. 나비들은 그 종이 다양해 한 여름 중복 무렵 더위를 피해 일시적으로 활동을 멈추고 휴면에 들어갔다가 선선한 아침저녁에만 잠시 나타나 활동을 하는 나비들도 있고, 반대로 겨울잠을 자는 나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 모두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되고 이 애벌레가 보기 흉한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으로 재탄생해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나비들의 변신이 칭송받는 것은 마지막 단계의 변신이 추하지 않은 것을 넘어 극적으로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노년변신이 나비처럼 화려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노추(老醜)로 이어지지는 않아야 욕을 면할 것이라 생각하자 말년의 삶은 나비들이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민통선의 흰나비”는 제가 자주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정태춘님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를 듣노라면 나비는 그 특유의 화사함뿐만 아니라 그 자유로움 때문에도 엄청 탐이 납니다. 휴전선을 넘나드는 날 것들이 어디 나비뿐이겠느냐 만서도 정태춘님이 굳이 나비를 등장시킨 것은 이런 작은 통일에의 염원이 증폭되어 언젠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산행을 나비와 함께 해 행복했습니다. 언제고 걸어서 민통선을 넘는 날이 온다면 이번처럼 나비에 동행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태춘님의 “민통선의 흰나비”를 목청 높여 부르고자 합니다.

 

 

 

                   민통선의 흰나비

 

    맑은 햇살 푸르른 수풀  돌보지 않는 침묵의 땅

 

  긴 긴 철조망 살벌한 총구 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바람에 눕는 억새 위 팔랑거리는 흰 나비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기름진 땅, 무성한 잡초 흐드러진 꽃밭에서 쉴래

 

 

 

 

 

    소나무 그루터기 무너진 참호  녹슨 철모위에서 쉴래

 

 

 

 

 

    졸졸 시냇물 건네며 팔랑거리는 흰나비

 

 

 

 

 

    저 강도 넘어 가려네 저 언덕  너머  음

 

 

 

 

 

 

 

 

 

    해 기울어 새들 날고 서편 하늘 노을이 지면

 

 

 

 

 

    산봉우리 스피커, 초소위의 망원경 날개짓도 조심 조심

 

 

 

 

 

    외딴 아기 새 둥지 위  팔랑거리는 흰나비

 

 

 

 

 

    어두워 지기 전 가려네 저 너머로 음

 

 

*위 글은 2010년 7월10일  대금산을 오르내린 산행기록인 졸고 '한북연인지맥 종주기3"에서 따왔습니다.

 

                           2012. 9. 9일    산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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