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은 철모
화악지맥 종주 길에 녹이 잔뜩 슬은 철모 하나를 보았습니다. 세월이 머물다간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한 철모가 나무가지에 어떻게 해서 걸려 있는지 잘 모르지만, 시뻘건 녹이 덕지덕지 슬은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 버려진지도 몇 십 년은 족히 지난 것 같습니다.
수 십 년 동안 철모가 녹슬어가는 것을 지켜봤을 옆자리의 나무들은 아무런 상처 없이 잘 자랐습니다. 주변의 훤칠한 나무들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 녹슬은 철모를 쳐다보기가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내팽겨진 철모만큼은 아니라 해도 나무라고 마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삭풍이 나무 끝에 불 때면 가지의 잎들을 모두 떨어내야 했고, 엄청난 괴력의 태풍이 몰아칠 때는 뿌리 채 뽑히는 아픔을 참아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 나무들은 멀쩡한데 유독 철모에만 상흔이 심하게 남아 있어 더욱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똑같이 간난의 세월을 살아왔으면서 나무들과 철모의 모습이 저렇게 다른 것은 왜일까? 나무는 산이 만들지만 철모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산은 수많은 생물들에 상생의 장을 제공하지만, 사람들은 상쟁을 통해 생명을 이어오고 문화를 일굽니다. 사람 사는 집에서는 애완동물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물 몇 종만이 같이 살 수 있지만, 산에서는 온갖 생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본다면 산이 상생의 장이라는 제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생의 장에 뿌리박은 나무들은 세월과 벗하며 살아가면서 매년 한 줄씩 자기 몸속에 나이테를 그어, 뒤를 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세월에 벌써 한 해가 지났음을 알려줍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이 만든 철모는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빼어 닮아 세월에 맞서느라 상처를 많이 입은 것입니다. 잠시 머물다 갈 뜻으로 들러본 세월에 싸움을 걸어본 철모는 단순히 상처만 입은 것이 아니고 세월이 동원한 수분과 산소의 집요한 공격을 당해내지 못해 피부가 헐을 대로 다 헐었고, 급기야는 시뻘건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철모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하루라도 더 빨리 녹이 슬어 자신을 해체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철모가 흙으로 변해 상생의 장인 산으로 돌아갈 때 이 좁은 땅에서 시끄러움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종전(終戰)과 함께 숨죽였던 철모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 전쟁을 불러들일까 걱정되어서입니다.
산행을 마치고나자 녹슨 철모에 관심을 집중하느라 정작 철모의 주인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아 영 죄스러웠습니다. 이 땅을, 또 이 산을 지키려다 산화한 국군장병임에 틀림없을 진데 주인의 고귀한 뜻을 기릴 생각은 않고 애꿎게 철모가 녹슨 것만 만을 탓했습니다. 북위 38도선이 지나는 화악산을 이렇게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것도 이 땅을, 그리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내고자 온 몸을 바친 주인같은 분들 덕분인데 말입니다.
참혹한 역사의 처절한 흔적이 깔끔히 지워지지 않아 아직도 여기 저기 그 상흔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땅에 평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데 세월은 앞으로 내달리기만 합니다. 주인을 잃은 철모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죽어라고 내닫는 세월이 엄청 밉살스러웠을 것입니다. 역사를 외면하고 도망만 치는 세월을 붙잡고 버티느라 철모가 녹이 슬은 것이라면 그 시뻘건 녹은 역사를 증언하는 훈장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간난의 역사를 증언하고자 남긴 철모 사진을 여기에 함께 올리는 것은 앞으로 철모가 버텨낼 세월보다 더 오래 주인의 뜻을 기리고자 함입니다.
2012. 10. 15일 산본에서
*한북화악지맥 종주기에 실린 글을 일부 가필해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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