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며
미시령의 큰 바람도 마지막 대간 길에 짙게 깔린 안개를 거둬내지는 못했습니다.
아 바람!
땅가죽 어디에 붙잡을 주름하나
나무 하나 덩굴 하나 풀포기 하나
경전의 글귀 하나 없이
미시령에서 흔들렸다.
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
바람이 되어 흔들리고
설악산이 흔들리고
내 등뼈가 흔들리고
나는 나를 놓칠까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시인 황동규님이 노래한 대로 “미시령 큰바람”에 설악산이 흔들리고 내 등뼈가 흔들렸지만,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꿋꿋한 백두대간은 낮시간 내내 안개를 붙잡아 두었다가 저녁 늦게야 거두어들였습니다. 저녁 때 잠시 진부령 너머 향로봉을 보았을 뿐, 하루 종일 안개 속을 걷느라 대간 길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신선봉-진부령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총55회를 출산해 2006년 4월2일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대간 길은 백두산의 장군봉까지 뻗어나갔는데, 저는 겨우 40%를 이어와 진부령에서 멈췄습니다. 엄연히 대간 길이 60%나 남아 있어, 차마 완주를 했다고 법석을 떨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다가는 대간을 수호하시는 산신령께서 불호령이 내릴 것 같아 진부령의 기념비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완주세러머니를 대신했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으로 백두대간 종주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북으로 뻗은 대간 길이 열려 백두산 장군봉을 밟을 때까지 저의 대간 종주는 끝이 날 수 없습니다. 몇 번이고 한반도 남단의 진부령-천왕봉을 반복해 밟으며 대간길이 활짝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 완주의 기쁨도 비례해서 커질 것이기에 그 때까지 대간 완주의 소감표현도 미뤄 둘 뜻입니다.
백두대간 종주는 반 이상을 송백산악회와 함께 했습니다. 산악회원 아홉 분이 고교동문 이규성 교수가 다듬은 문안으로 완주패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루금 다 밟기를 꿈꾸던 그대,
오늘 드디어 뜻을 이뤘네.
대간의 기슭에서 만난 우리들,
당신의 아름다운 성취를 대간 길 끝 길에서
우정의 잔을 들어 축하합니다.
여러 차례 동행해준 산악회 회장님과 대장님, 그리고 동료회원들에 감사말씀 드립니다. 늦게나마 대간 길에 합류해 건필을 구사하는 고교동창 하이맛 이 규성교수, 한계령-1158봉 구간의 암릉길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자일을 챙겨준 경동OB산악회의 함기영 회장, 대간 완주를 축하하고자 먼 길을 달려와 함께 산행한 정병기, 유한준후배님에도 감사인사 전합니다.
한국의 산하에서 맺은 인연도 소중합니다. 일찍이 이 강토의 산줄기를 오르내리며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는 신경수님의 개척정신을 조금이나마 배워가고자 님이 먼저 밟는 그 길을 저도 이어 밟습니다. 저보다 몇 년 앞서 대간종주를 마친 진 혁진님이 올린 개념도와 산행기가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북한산님, 이송면님, 운해님, 요물님 산행기도 유용했습니다. 댓글로 격려해준 봉봉님, 범솥말님, 정선님, ottoban님, 영화님 모두 고맙습니다.
제가 가장 감사해야 할 것은 백두대간입니다. 이제껏 한마디 불평 없이 그 자리를 지켜와 저 혼자서 10시간 넘게 산행을 할 때도 항상 묵언의 말벗이 되어주었습니다. 저의 건강과 건각 그리고 건필이 가능하도록 보살펴 준 백두대간에 최고의 감사말씀을 올립니다. 또 대간 길을 지키는 나무들, 야생화, 새들과 산 짐승들, 그리고 이들과 벗하는 태양과 비,구름 및 바람들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온 세상 모두가, 그리고 모든 것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2012. 10. 21일 산본에서
*위 글은 2006. 4. 2일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작성한 백두대간 종주기의 내용 일부를 발체해 가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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