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가리왕산(加里旺山)
몇 해 전 경동고교 동문들과 함께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加里旺山)을 다녀왔습니다. 강원도에는 “가리(加里)”를 패미리 네임(family name)으로 갖고 있는 산들이 몇 있습니다. 홍천의 가리산(加里山)과 인제의 가리봉(加里峰), 그리고 정선의 가리왕산(加里旺山)이 그들입니다. 해발1,051m의 가리산은 우뚝 솟은 암봉의 정상에서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고 진달래꽃이 아름답다 해 명산100산의 한 산으로 선정됐습니다. 국립공원설악산의 남서부에 위치한 해발1,519m의 가리봉은 정상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암봉들이 연이어 있어 산세가 매우 급하고 험한 산입니다. 경남 함양의 백운산이 지리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로얄(royal)석이라면, 가까이 있어 관전평하기 가장 좋은 설악산의 중계석은 바로 이 가리봉입니다.
가리(加里) 패미리(family)의 세산 중에서 최고의 왕산(王山)은 단연 해발1,561m의 가리왕산(加里旺山)입니다. 가리왕산이 왕산인 첫 번째 이유는 이 세 산 중에서 고도가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산이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뭐니 뭐니 해도 높아야 합니다. 그래야 산자락의 오지랖이 넓고, 계곡이 깊어 유량이 많으며, 숲이 우거져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고 조망도 빼어납니다. 지리산은 주위의 어느 산보다도 훨씬 높기에 남해 섬 안에 있는 몇 몇 지리망산에서 이 산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조선의 시조시인 양사언이 “태산이 낮다 하되 땅 위의 뫼”라고 하지 않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로 읊은 것도 산의 대표적 속성이 주위보다 높다는 데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가리왕산의 넉넉함에 있습니다. 가리왕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들로 만들어진 설악산처럼 골산이 아니고 지리산을 닮은 넉넉한 육산입니다. 산 오름의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 계곡의 물 흐름도 야단스럽지 않고 여유롭습니다. 정상부근은 하늘이 활짝 열린 개활지의 평원이어서 암봉으로 이루어진 가리산이나 가리봉의 정상보다 한결 여유로워 여름 한 철 땡볕 더위만 아니라면 정상에서 푹 쉬면서 오래 머물다 가고 싶은 산입니다.
긴 시간 산행을 마치고 진부의 한 음식점을 들러 저녁을 들었습니다. 허해진 속을 채우고 나자 산림청에서 정상석 뒷면에 새겨 넣은 가리왕산의 유래가 생각났습니다. 갈왕(褐王)이 난을 피해 현재 절터라고 부르는 서심퇴(西深堆)에서 거처하였다 하여 갈왕산이라 불린 것이 가리왕산(加里旺山)으로 바뀌었다는 야사의 내용을 보고 갈왕이 어느 나라 왕인가 궁금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중국의 왕이라는 글도 있고 맥국(貊國)의 왕이었다는 산행기도 있습니다. 중국의 주왕이 경북 청송의 주왕산으로 피난 왔다는 전설도 있고 보면 그 산보다 훨씬 가까운 가리왕산으로 중국의 왕이 피난오지 못할 이유는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제가 맥국의 왕 쪽에 신뢰를 더 두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먼 옛날 맥국(貊國)이라는 소국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춘천에 자리를 잡았다는 춘천맥국설입니다. 삼국사기 권제1의 신라본기 제1에 신라의 3대 임금 유리이사금의 “즉위 17년 9월에 화려, 불내의 이현인이 공모연합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경을 침범하므로 맥국의 거수가 군사로써 곡하서쪽에서 이를 깨뜨리니 왕은 기뻐하며 맥국과 호의를 맺었다. 19년8월에 맥국의 거수가 금수를 사냥하여 왕에게 바쳤다.”고 적혀 있는데 이 맥국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춘천이라 합니다. 상고시대에 발해만을 사이에 두고 산동반도, 요동반도, 조선반도를 서로 연결하여 동이문화권을 만들었으며 북쪽의 예맥, 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를 세운 예맥족의 한 종족으로 알려진 맥족이 과연 북쪽에서 한반도 중심부인 춘천까지 진출해 맥국을 세웠을까 쉽게 믿어지지는 않지만 강원도의 용화산과 삼악산 모두 맥국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가리왕산의 갈왕도 맥국의 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가리왕산은 피난 온 갈왕에게 어느 나라에서 온 왕이냐 묻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가리왕산의 넉넉함이 배어나오는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의 훈훈함이라면 하얀 눈이 뒤덮였을 해발고도 1,561m의 정상에 올라서도 그리 춥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한 번 올라볼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2012. 12. 21일 산본에서
*위 글은 2009년9월7일자 가리왕산 산행기에서 일부를 따와 몇 군데 손을 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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