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歸巢)
“집 소”로 읽히는 한자 “巢”는 나무 위에 새 집이 있고 그 위에 세 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을 형상화 한 것으로 “새 집”을 의미하는데 이 뜻 외에도 “깃들이다”와 “모이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술이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도 자기 집을 용케 찾아가는 것은 귀소본능(歸巢本能)덕분인데 이 때 “巢”는 물론
집을 뜻합니다.
낙남정맥 종주 길에 새 둥지 “巢”를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대간과 산맥을 종주하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어도 어느 하나 전신을 내보이며 포즈를 취해주지 않아 온전하게 그들의 모습을 사진 찍은 것은 몇 번 안 됩니다. 이런 새들이니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둥지를 틀리가 없고 보면 산행 중에 새 집을 만나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들판이나 보리밭에서 여러 번 본 새 집은 멧새나 종다리들의 둥지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둥지 안의 알들을 집으로 가져가 또래 아이들에 자랑을 했던 일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미 새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짓거리였습니다. 동리 어귀 나무 위 높은 곳에 까치들이 지은 집들은 이번에 사진 찍어온 새 집에 비하면 대궐에 비견될 만한 큰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을 뒷받침하는 귀소성(歸巢性)은 동물이 먼 곳에 갔다가도 살던 집이나 둥지로 돌아가는 성질을 이릅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바로 위 형님이 산에서 때가치 새끼를 잡아다주어 한 해 여름 내내 방아깨비 등 곤충을 잡아다가 먹여가며 정성스레 기른 적이 있습니다. 가을이 되자 아침 집을 나가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기를 며칠 간 계속해 고맙다 했는데 어느 날 집을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아 어린 마음에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새들 또한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더 끈끈해 자기를 낳은 어미 새들을 찾아 산속 둥지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까치의 원거리 비행은 바로 귀소성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전날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도 자라난 집을 찾는 귀소성 덕분이라면 태어난 집에 대한 귀소성이 그 곳을 떠나 상당 기간 살던 집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강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또한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강하다는 명제가 참임을 밝히는 좋은 실례가 될 것입니다.
고개마루에서 만나본 새 집은 그 크기로 보아 때까치나 비둘기가 지은 집은 아닌 것 같고 박새나 곤줄박이가 아니면 동고비 둥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巢)의 형태가 잘 보존된 것으로 보아 몇 년된 고가(古家)는 아닌 것 같지만 텅 빈 둥지에서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혹시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느라 버려두고 간 폐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를 갔더라도 사람들처럼 크게 성공해서 언제고 새끼들을 데리고 이 집으로 금의환향 할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이 집이 그때까지 보존될지 걱정됐습니다. 혹시라도 그들 새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 집이 없어질 수도 있다 싶어 사진이라도 여기에 걸어놓으라고 이 집이 제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역할을 능히 해낼 수 있을만큼 이번에 제대로 사진을 찍은 것 같아 퍽 다행입니다.
금의환향하는 새들을 보고 시 한수 읊을 수 있다면 그 분이야말로 사람 사는 멋과 맛을 아는 분일 것입니다. 국문학자 조동일교수는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없이 세계를 자아화하는 문학갈래가 서정문학이며 이 갈래에 향가, 시조와 시(詩)등이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바로 자기 시를 통해 세계를 자아화하는 분이기에 사람 사는 멋과 멋을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새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를 노래한 한 분이 계십니다. 귀거래사를 읊은 분답게 "귀조(歸鳥)"라는 시를 남긴 중국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언제고 빈 둥지에 집 떠난 새가 다시 날아올 날을 기다리며 이 분의 4연시 귀조(歸鳥)"를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이 시는 태종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장기근교수게서 편저한 "陶淵明"에서 따왔습니다.)
歸 鳥
<一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들은
晨去于林(신거우림) : 아침에 숲을 나가노라
遠之八表(원지팔표) : 멀리는 하늘 끝까지 날기도 했고
近憩雲岑(근게운잠) : 가까이 구름 봉우리에 쉬기도 했지
和風弗洽(화풍불흡) : 그러나 화풍이 미흡하여
翻翮求心(번핵구심) : 날개 돌리어 본고장 되찾고저
顧儔相鳴(고주상명) : 서로 짝을 보며 우짖으며
景庇淸陰(경비청음) : 몸을 맑은 그늘에 숨기고자 하여라
<二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들은
載翔載飛(재상재비) : 훌쩍 날아 내닫노라
雖不懷遊(수불회유) : 이리저리 놀고 싶은 생각 없으나
見林情依(견림정의) : 숲을 보면 내 집인 듯 정을 쏟고
遇雲頡頏(우운힐항) : 구름 만나 아래 위로 날으면서
相鳴而歸(상명이귀) : 서로 울며 내 집으로 돌아오거늘
遐路誠悠(하로성유) : 참으로 길이 멀고도 아득하구나
性愛無遺(성애무유) : 본성으로 좋아하는 바 잊지 않으리
<三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들은
相林徘徊(상림배회) : 내 집 숲을 보고 배회하며
豈思天路(기사천로) : 하늘 높이 오를 생각 버리고
欣及舊棲(흔급구서) : 옛 집에 돌아온 일 기뻐하노라
雖無昔侶(수무석려) : 비록 옛날의 벗은 없으나
衆聲每諧(중성매해) : 모든 소리가 함께 어울리고
日夕氣淸(일석기청) : 밤 기운 더욱 맑으니
悠然其懷(유연기회) : 가슴 속이 유연해지네
<四 章>
翼翼歸鳥(익익귀조) : 펄럭펄럭 돌아오는 새는
戢羽寒條(집우한조) : 날개 거두고 고목가지에 쉰다
遊不曠林(유불광림) : 날아도 숲 멀리 가지 않고
宿則森標(숙칙삼표) : 깊은 숲 가지에 앉아 잠드네
晨風淸興(신풍청흥) : 맑은 아침 바람 일면
好音時交(호음시교) : 좋은 소리로 어울릴 뿐
矰繳奚施(증격해시) : 줄살도 이 새를 겨누지 않으니
已卷安勞(이권안로) : 피곤한 몸 이제는 안락하게 풀어라
*위 글은 2011. 3. 6일 낙남정맥의 마재고개-천주산-신풍고개 구간 종주기에서 일부를 옮겨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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