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비행
마지막 서봉지맥 종주 길에 경기도 평택의 도대 사거리에서 하늘을 나는 철새 청둥오리(?)와 텃새 까마귀를 보았습니다. 철새 청둥오리가 >자 형 편대를 이루고 가지런하게 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보고 앞자리의 영도자 새 한마리가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서란 다중을 위해 명령을 따르고 지킬 때 이루어집니다. 인간사회에서는 그 명령이 법률에서 나오지만 저런 새들은 비행을 선도하는 새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이 새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날다가는 죽음에 이른 다는 것을 본능으로나 경험으로나 익히 알고 있기에 저토록 가지런하게 편대를 이루고 비행하는 것입니다. 텃새 까마귀는 날아가는 방향도 같지 않았으며 떼를 지어 나는 것이 아니고 두 서 너 마리가 하늘을 조금 날다가 이내 내려앉곤 했습니다. 이들의 날개 짓이 자연스럽기는 해도 질서정연하지 않은 것은 이들은 멀리 날아갈 필요가 없고 또 멀리 날아가서는 안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늘을 비행하며 철마다 살 곳을 찾아다니는 철새들이 텃새를 내몰고 자리를 잡아 텃새노릇을 하는 일도 있다 합니다. 그들은 길 잃은 철새들이 아니고 이주한 외래새 들입니다. 저는 그런 철새들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저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다 새로운 땅에 정주한 해외교민들이 바로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롭게 터 잡은 외래 철새와 다름없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한반도에서 온 백성이 영원히 텃새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도 조선조는 5백 년 동안 내내 대문을 잠가놓고 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막아왔기에 안에서만 머리 터지게 싸워온 것입니다. 대문만 열어놓으면 잘도 날아다니는 것을 그토록 오래 잠가놓았기에 아직도 안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버릇이 얼마간 남아 있습니다만, 이들이야 거의다가 한 줌도 안 되는 정치인들이고 대부분은 철새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비행하면서 새 터를 찾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느라 쌈박 질을 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질서정연한 철새들의 비행을 보고나자 대한민국 건국 후 이 나라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철새들을 이끄는 영도 새들처럼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반석 위로 올려놓았는가 하면 텃새처럼 안에서 터를 더 차지하고자 제로 썸(zero sum)싸움에 몰두한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3.1절을 하루 앞두고 이 나라 지도자들이 우리 민족이 어떻게 이끌어왔는가를 잠시 되돌아보게 한 철새들이 이 땅에서 편히 머물다가 돌아가기를 빌어봅니다.
서해안의 평택호를 둘러보는 것으로 서봉지맥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저의 종주산행이 철새들의 비행인지 아니면 텃새들의 나들이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득하게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기 저기 산줄기를 밟고자 종주 길에 오르는 저를 보면 철새를 닮은 것 같은 데 그렇다고 아주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며칠 후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제 터를 확인하는 것이나 떼를 지어 나서지 않고 저 혼자서 산 나들이를 나서는 것은 영락없이 텃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새와 텃새 중 누구를 닮아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이들 모두 날개 짓이 가능한 새들이기에 날개 죽지만 꺾이지 않는다면 얼마간은 멀리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남서봉지맥을 마치면서 나이 80이 넘어서도 날개 죽지가 멀쩡해 정맥이고 지맥이고 가리지 않고 그 위를 날 수 있기를 욕심내 봅니다. 철새라도 좋고 텃새라도 무방한 것이 새들처럼 날아다닐 수 있다면 계속해서 '먼 곳에의 동경'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먼 곳에의 동경'은 제게는 실존의 증거이자 살아가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2014. 4. 15일 산본에서
*위 글은 2010년 2월 28일 산본 수리산의 감투봉에서 평택호를 잇는 한남서봉지맥 종주를 마치고 쓴 산행기에서 일부를 발췌 가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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