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에 고마워하며
그동안 잘 이어온 산줄기가 하천 앞에서 뚝 끊어지고 물 건너 산줄기와는 물 위에 세워 놓은 다리로 밖에 이어질 수 없다면, 또 그 산줄기가 다름 아닌 산경표(山經表)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 정맥의 산줄기라면, 필히 그럴만한 곡절이 있을 것입니다. 호남정맥을 종주하다가 딱 한 곳에서 정맥 길에 밤나무 밭을 만들어놓고 사유지라며 다니지 못하게 해 물이 조금 흐르는 골짜기를 건넜다가 복귀한 일은 있어도 정맥을 종주하다가 하천을 만나 끊어진 산줄기를 다리를 건너 이어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을 수 없다는 산자분수(山自分水)의 원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자연의 질서입니다. 어떠한 산줄기도 물을 건너 이어질 수 없기에 물 건너 산줄기는 새로운 산줄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리가 이러한데도 우리 산줄기 족보의 고전이라 할 산경표(山經表)에 이번에 종주한 낙남정맥이 가화천에서 끝나지 않고 다리 건너 산줄기로 이어져 김해의 분산(盆山)에서 끝나는 것으로 나와 있는 데는 그럴만한 곡절이 있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솔티고개에서 시작해 가화천을 가로지르는 유수교에서 낙남정맥 종주를 마쳤습니다. 다리를 건너 낙남정맥의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와 어째서 낙남정맥 길이 물 위 다리로 이어지는가를 알아보았더니 치수(治水)를 목적으로 낙남정맥의 산줄기를 끊어내고 그 자리에 물줄기를 낸 것입니다.
원래 낙남정맥의 산줄기는 유수교에서 남쪽으로 수 십m 떨어진 곳에 동서로 이어졌습니다. 이 산줄기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갈라지는 물은 가화천으로 흘러들어갔고 북쪽으로 갈라지는 물은 남강으로 유입됐습니다. 의령군과 함안군의 남강하류 지역과 삼랑진에서 물금에 이르는 하폭이 좁은 낙동강 유역 일대의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남강에 다목적댐을 건설하면서 수제문을 따로 만들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갈 강물 일부를 가화천으로 방류해 사천만으로 흘려보내고자 낙남정맥을 잘라내고 물길을 낸 것입니다.
낙동강 유역의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낙남정맥은 허리를 잘라내는 아픔을 감수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남강댐은 다른 댐과는 달리 수문이 두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남강으로 방류하는 본문이고 또 하나는 가화천을 통해 남해로 물을 흘려보내는 제수문입니다. 며칠 전 수자원개발공사는 남강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를 막고자 제수문을 열어 강물을 방류했습니다. 이때 제수문으로 방류한 강물이 본문으로 방류한 강물보다 훨씬 많았다 합니다. 만약 낙남정맥의 산허리를 잘라내어 제수문을 만들지 않았다면 낙동강 하류지역은 강물의 범람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낙남정맥의 허리를 잘라내지 않았다면 남강을 다스리는 치수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치수를 위해 아픔을 감내 한 것은 낙남정맥만이 아닙니다. 호남정맥도 전북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 섬진강의 물을 공급하고자 옆구리가 뚫리는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이렇듯 치수(治水)는 산허리를 잘라내거나 옆구리를 뚫어야 할 만큼 지난한 일입니다.
낙남정맥을 잘라내고 수로를 낸 가화천이 그 위를 비행하는 두루미들로 마냥 평화로워보였습니다. 그러나 속사정은 그렇지 못한 모양입니다. 홍수피해가 줄어든 낙동강 유역의 주민들은 남강댐이 고맙겠지만 유로가 13km 밖에 안 되는 가화천을 통해 남강댐의 담수가 너무 많이 사천만으로 흘러들어가 바닷물의 온도가 내려간다 합니다. 수온 저하로 양식업이 피해를 보는 등 사천 쪽 주민들이 입는손해가 적지 않나 봅니다. 이렇듯 치수 사업에는 갈등이 따르기에 이를 조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렇다고 갈등이 두려워 치수사업을 포기한다면 자연과 인간은 더 큰 피해를 당할 것입니다. 더러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 하는 것이 치산치수입니다. 다만 아무리 공익을 위해 하는 일이라 해도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억울해 하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한 후 해야 할 것입니다. 낙남정맥도 사전에 단도리를 잘 했으리라 믿고 허리를 내주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치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낙남정맥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2012. 10. 17일 산본에서
* 위 글은 2010. 8. 23일 종주한 낙남정맥의 종주기에서 따와 가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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