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산 산행기(춘천)
산행일자:2017. 8. 10일(목)
소재지 :강원 춘천
산 높이 :해발134m
산행코스:우두온수지 맞은편 충렬탑입구-우두산 정상
-우두온수지 버스정류장
산행시간:12시48분-13시25분(37분)
동행 :나 홀로
작년 봄 강원대 대학원에 진학한 후 그동안 낯설었던 춘천과 보다 가까워지고자 틈나는 대로 시내 산을 올랐습니다. 춘천분지순환등반로를 따라 걷는 3차례의 종주산행 길에 드름산, 금병산, 수리봉, 대룡산을 올랐고, 순환등반로에서 떨어져 있는 명봉, 구봉산, 봉의산, 국사봉, 안마산은 따로 올라갔습니다. 경기도 산본에서 통학을 하느라 짬을 내기가 여의치 않아 아직도 오르지 못한 춘천의 산들이 꽤 많습니다. 낯선 도시와 친해지는 데는 그 도시의 산들을 오르고 나서 산행기를 남기는 것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어서, 미처 오르지 못한 춘천 시내 산들은 계속 산행을 이어갈 뜻입니다.
이번에 오른 산은 춘천시내 우두동에 자리한 소머리 모양의 우두산(牛頭山)입니다. 해발고도가 134m에 불과한 낮은 산을 오르고 나서 산행기를 쓴다는 것이 낯간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택시기사 분으로부터 충렬탑은 알아도 그 탑이 자리한 산이 우두산이라고 알고 있는 기사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그러했습니다. 산의 사전적 정의는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입니다. 우두산도 그 정상에 충렬탑을 세울 만큼 주위의 땅보다 높이 솟아 있고 또 그 밑으로 소양강이 흐르고 있어 산의 형상을 두루 갖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저 높이가 낮다는 이유로 우두산을 산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면, 이 산을 오르고 남기는 이 글을 두고 산행기가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 낮인 12시48분 우두온수지 길 건너편에서 우두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남춘천교에서 잡아탄 택시가 빗속 길을 달려 제2소양교를 건넌 후 충열로를 따라 북진하다가 우두산 입구에 이르기까지 20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오른 쪽 위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길옆의 “善山金氏宗山”의 표지석과 바로 뒤의 무덤 2기가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었는데, 충렬탑이 들어선 이 산이 국유림이 아니고 선산 김씨(善山金氏)의 종산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고 차도로 흘러내려가는 물이 제법 많아 우산으로 몸은 가릴 수 있었지만 신고 간 구두에 물이 스며들어 젖는 것은 막지 못했습니다. 주차장을 지난 지 몇 분 안 되어 왼쪽 위로 충렬탑이 보이는 넓은 공터에 이르렀습니다. 산은 낮은 데도 고송이 여러 그루 보여 선열들의 충절을 기리기에 이만한 산이 흔치 않겠다싶었습니다.
13시1분 해발134m의 우두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 산 꼭대기에 충렬탑이 세워져 그 아래 공터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충렬탑의 참배 길과 다름없었습니다. 몇 계단을 올라 곱게 자란 진초록 잔디 밭 한 가운데로 낸 길을 걸어 꽤 가파른 계단 앞에 이르자 충렬탑의 전모가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두 단계로 된 계단의 첫 번째 계단을 오르자 횡으로 16개 6.25참전국의 국기들이 게양되어 있었습니다. 이 깃발들을 사진 찍고 나서 두 번째 계단을 올라 한반도와 두 장병 상이 조각된 충렬탑 앞에 이르러 묵례를 올린 후 탑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춘천전투에서 희생된 순국선열들의 충절을 가슴 속 깊이 새겼습니다. 동쪽 아래로 탁류가 흐르는 소양강이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충렬탑에서 공터로 내려가 참배를 마쳤습니다.
춘천충렬탑에 관한 수많은 글 중에서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구석구석”에 실린 아래 글만큼 간명하게 잘 쓴 글을 찾지 못해, 여기에 그 글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충렬탑이 자리한 우두산 지역은 6·25 개전 초기(1950.6.25~6.28)국군 제2군단의 창설 모체부대였던 제6사단 장병들이 애국적인 춘천시민과 한 덩어리가 되어 인해전술의 파상공격을 자행해 온 북괴군 제2군단 예하 제2, 제7사단의 주력을 섬멸함으로써 한국전쟁 초기 전선에서 유일하게 승전보를 올렸던 유서깊은 곳이다. 당시 북괴가 춘천 및 우두산 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속전속결의 남침계획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고, 적 제2군단장이 전격 해임되는 등 6.25 전사상 가장 빛나는 전승의 기록을 남겼던 전적지이다. 특히, 이 당시 전투에서 춘천시민, 학도호국단학생 그리고 제사공장 여성근로자들이 국군장병과 더불어 탄약을 운반하고 전투에 참가하는 등 시산혈해의 격전을 벌여 빛나는 승리를 가져옴으로써, 민·관 총력전의 귀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뜨거운 반공 애국정신과 자유 수호 의지를 만천하에 드높였던 성스러운 곳이다. 6·25당시 전사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3군단 제29사단 장병들이 건립하였으며, 매년 6. 6일 현충일 행사가 실시되고 있다.
충렬탑 참배를 마치고 공터에서 멀지 않은 우두정(牛頭亭)을 들렀습니다. 밋밋한 모양의 단층 정자 우두정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인지 먼지가 보였습니다. 이 정자 앞의 안내판에 따르면 여기에 조양루(朝陽樓)가 세워졌던 시기는 1938년부터 2012년까지입니다. 조양루란 고종임금이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춘천이궁의 문루를 일컫는 것으로 고종27년인 1890년에 이궁 안에 세워졌다가 일제시대인 1938년에 이곳 우두산으로 옮겨졌다 합니다. 강원도는 이궁(離宮)들어선 수부(首府)도시 춘천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와 더불어 역사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2012년 조양루를 이궁의 터가 있던 도청 청사 안으로 옮겼다 합니다.
13시25분 우두온수지에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40분도 채 안 걸린 우두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번 우두산 산행이 예정에 없던 것이어서 신사화를 신고 가 물을 잔뜩 머금은 흙길을 걷지 못하고 바로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갔습니다. 좀 뜸해졌다 싶은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고, 길옆에 서 있다가 질주하는 자동차들로 물세례를 받을 까 겁이 나 충열로를 건너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충열로를 건너 다다른 버스정류장에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시내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우두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지난 봄 대학원에서 같이 강의를 듣고 있는 한 분이 책 한권을 주어 흥미롭게 읽은 일 있습니다. 그 책은 1935년 춘천시의 공무원이었던 가와노반세이가 지은 『춘천풍토기』로, 춘천의 역사, 문화 행정과 산업이 자세히 소개된 종합풍속서입니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서 번역해 내놓은 이 책에 춘천의 명소가 여러 곳 실렸는데, 그 중 저자가 천착했던 곳이 여기 우두산이었습니다. 『일본기』에 따르면 소잔오존이 일본에서 건너와 나무를 심는 등 강원도를 경영한 곳이 우두산이라는 것으로, 일본은 이곳에다 신사건설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신사건설추진은 해방과 더불어 무산됐지만 일제강점기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이곳 우두산에 충렬탑 대신 신사가 들어설 뻔 했습니다.
높이는 낮아도 이야기 거리가 많은 산이 우두산인 것 같습니다. 이 산 인근의 신북읍 발산리와 천천리 일대는 맥국의 성터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이 산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할아버지 묘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빗속에 오르느라 이야기의 현장을 다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길을 알았으니 조만간 다시 가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 뜻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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