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B-23. 향로산 산행기(춘천)

시인마뇽 2017. 7. 28. 22:17

                                                 향로산 산행기

 

                                          *산행일자:2017. 7. 27()

                                          *소재지 :강원 춘천

                                          *산 높이 :국사봉203m, 향로산315m

                                          *산행코스:국사봉-(택시로 이동)-향로산

                                            -국사봉:동심삐아제어린이집-국사봉-춘천한숲시티공사현장

                                            -향로산:송암체육관-향로산-칠전대우1차아파트

                                          *산행시간:3시간35

                                             -국사봉:1310-1424(1시간14)

                                             -향로봉:1522-1743(2시간21)

                                          *동행 :나 홀로



  안산(案山)이란 풍수지리에서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을 말합니다. 이번에 오른 향로산은 춘천의 안산으로 두 주전에 오른 진산인 봉의산과는 짝을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제가 굳이 복더위를 무릅쓰고 향로산을 오른 것은 이 산이 춘천의 안산이어서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산의 기상을 받고 태어난 춘천의 문학인 한 분을 기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130년 전에 이 산의 한 기슭인 송암리에서 태어난 청오 차상찬(車相瓚, 1887-1946)선생입니다.

 

   청오 차상찬 선생은 생각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저도 작년 봄에서야 선생의 존함을 접했습니다.   소설가 전상국 선생은 <전상국의 춘천산 이야기>에서 우리나라 잡지 언론의 선구자인 차상찬 선생이 향로산 자락 송암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했습니다. 춘천이 배출한 가장 걸출한 신문화인이며 민족운동가로 소개한 이 책을 통해 일제시대 최고의 민족잡지 <개벽>의 창간동인, 편집인, 발행인으로서 또는 기자로, 시인으로, 수필가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정환선생과 함께 어린이날을 만들었고, 고향청년 김유정이 들고 온 소설원고를 개벽사가 발행하는 <제일선>이라는 잡지(19333월호)산골나그네라는 이름으로 게재하여 김유정을 등단토록 한 분이 선생이라는 것도 같이 알았습니다. 그 후 과연 선생은 어떤 분인가 줄곧 궁금해 하다가 며칠 전 박길수님의 <한국잡지의 선구자 차상천 평전>을 읽고 전상국선생의 찬사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에 오른 산은 국사봉과 향로산입니다. 남춘천역 인근에서 점심을 든 후 멀지 않은 국사봉을 올랐습니다. 국사봉과 향로봉을 연계해 산행하겠다는 애당초의 생각을 접은 것은 국사봉 정상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찾지 못해서였습니다. 국사봉에서 하산해 향로봉 들머리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향로봉에서 내려선 칠전대우1차아파트에서 남춘천역까지 걸어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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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사봉 산행기


   남춘천역에서 남서쪽으로 걸어가 다다른 넓은 도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이내 만난 삼거리에서 넓은 도로를 건너자 도로 오른 쪽으로 동심삐아제어린이집 앞 들머리가 보였습니다.

 

   1310분 동심삐아제 어린이집 옆 들머리를 출발했습니다. 나무 계단 길을 올라서자 남쪽으로 능선 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출발 후 7-8분이 지나 북쪽으로 확 트인 개활지가 있어 그 아래 주택건설 공사현장과 도로 건너 아파트단지 및 대룡산 산줄기가 한 눈에 조망됐습니다. 산은 낮은데 생각보다 송림이 잘 보존되어 그늘이 진데다 날이 흐려 복중의 땡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산의 송림을 이룬 소나무가 잎이 두 개인 우리나라 소나무가 아니고 잎이 세 개인 리기다소나무라는 것을 안 것은  <전상국의 춘천산이야기>에 적힌 국사봉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평탄한 길을 20분가량 올라 체력단련장에 다다르자 몸에서 열이나 복더위가 느껴졌습니다.

 

   1340분 해발203m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한영교회길이 갈리는 체력단련장 삼거리에서 직진해 조금 더 걷자 나무계단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경사진 비알 길이었으나 산이 낮아서인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계단 길이 끝나고 정상에 이르자 국사봉망제탑(國師峰望祭塔)이 저를 반겼습니다. 한때 헬기착륙장이었던 이 산 정상에 망제탑을 세운 것은 1919년 고종임금 승하 때 슬픔을 몰래 나누기 위해 산에 올랐던 춘천사람들의 우국정신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망제(望祭)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를 이릅니다. 그렇다면 망제탑은 높은 산에다 세우는 것이 바람직할 텐데 낮은 이 산에 망제탑을 세운 것은 여기가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망제탑이나 충혼탑 모두 충성심을 기리는 탑임에는 다름이 없으나 충성의 대상은 망제탑은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그리고 충혼탑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기리는 것이어서 서로 같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충혼탑은 많이 보았으면서도 망제탑을 거의 보지 못한 것은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공화국에서 망제탑은 더 이상 세울 이유가 없어져서가 아닌 가 싶습니다.

 

   1424분 대림건설의 춘천한숲시티공사현장 건너편 도로에서 국사봉 산행을 마쳤습니다. 국사봉과 향로산의 연계산행이 본래 뜻한 바여서 정상에서 향로산으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을 찾았으나 끝내 제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서쪽 사면이 급경사인데다 설사 내려간다 해도 무성한 풀숲의 능선 길을 반바지를 입고 뚫고나갈 자신이 없어 연계산행을 포기했습니다. 정상에서 길이 잘 나있는 직진 길을 하산로로 택해 쉬지 않고 내려갔습니다.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자 체력단련장이 보였습니다. 들머리에서 정상을 거쳐 날머리까지 2Km도 안 되는 짧은 능선 길에 체력단련장이 세 곳이나 된다는 것은 이 산이 인근 주민들에 최고의 산책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체력단련장에서 동쪽으로 얼마간 더 내려가 도로변 절개지 꼭대기에 이르자 바로 아래 도로 건너편의 춘천한숲시티공사현장으로 드나드는 차량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절개지꼭대기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도로변에 내려서자 지열이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하산을 마치고 향로산입구인 향로산으로 이어지는 칠천사거리까지 걸어갈 생각으로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진행하다 뭔가 이상해 나침판을 보고나서 제가 남동쪽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앞에 보이는 가까운 산이 향로산이 아니고 안마산이다 싶어 돌아서서 반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길을 건너 공사현장을 지나고 더 걸어가 직진하면 시외버스정류장을 지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남춘역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택시를 만나 송암스포츠타운으로 향했습니다.

 

2.향로산 산행기


   택시 기사분에 향로산의 들머리가 송암스포츠타운 안의 실내테니스장 옆인 것을 실내수영장 옆으로 잘못 말해 몇 분간 왔다갔다하다가 일단 야구장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향로산의 들머리가 있지도 않은 실내수영장이 아니고 실내테니스장 옆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람들에 물어볼 심산으로 가까운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다가간 이 건물이 실내테니스장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놓인 것은 다른 분들이 올린 사진에 나오는 연못과 산행안내판, 그리고 하늘정원 길로 가는 넓은 길이 바로 앞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1522분 송암스포츠타운 실내테니스장 옆 정자에서 향로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행안내판 앞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하늘정원 길을 버리고 직진 길을 택해 우인정으로 향했습니다. 1-2분 직진하다 오른 쪽으로 몇 걸음 옮겨 다다른 정자 우인정은 소양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최고의 전망처입니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왼쪽으로 올라가 능선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7월이면 우리 산이 새 식구로 맞는 산주인이 있는데 버섯과 매미들이 그들입니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산에 올라가 버섯을 따다가 어머니에 드리면 찌개를 끓여 주시곤 했는데 이제는 어느 것이 독버섯인줄 몰라 만지기도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버섯을 보면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입니다. 향로봉을 오르며 만난 버섯은 하나같이 수더분해 겉모양이 화사한 독버섯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앞서 오른 국사봉보다 경사가 많이 져 왼쪽으로 하늘공원 길이 다시 갈리는 해발 250m가량의 봉우리삼거리에 이르는데도 땀이 많이 나 잠시 쉬면서 물을 마셔 목을 축였습니다.

 

1655분 해발315m의 향로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하늘공원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 길이 제법 경사지고 길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살짝 보이는 오른 쪽의 산줄기는 위치로 보아 지난 5월에 오른 드름산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해발고도를 65m 낮추어 내려선 깊숙한 안부사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지 말라는 군부대의 경고문을 읽었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해 얼마만큼 올라가자 똑같은 경고문이 다시 보여 금지선 안으로 잘못 들어가 오인사격사건이 정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이 잘 보이는 묘지를 지나며 드름산의 전모를 카메라에 옮겨 담고 나자 눈앞에 보이는 향로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꽤 가팔라 보였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어 오름 길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넓은 공터의 정상에 올랐어도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조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벤치에 등을 눕혀 쳐다본 하늘도 잎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743분 칠전대우1차아파트 앞에서 향로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저녁 시간에 산속의 향연은 매미의 울음소리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 했습니다. 덩치는 새보다 훨씬 적은데 소리가 더 큰 것은 떼거리로 울어대서입니다. 감미로운 쉼을 끝내고 정상에서 대우 아파트 쪽으로 하산하면서 못내 아쉬웠던 것은 청오 차상찬 선생의 고향인 송암리로 내려가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자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그재그 길이 나타나 이 길로 내려갔습니다. 한참동안 내려가 개활지에 다다르자 지난 5월에 오른 의젓한 모습의 금병산이 깔끔하게 보여 반가웠습니다. 차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고 이내 도로로 내려서자 건너편으로 칠전대우1차아파트가 보였습니다. 길 건너 아파트단지 입구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마시는 것으로 향로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단지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18분 후에 도착한다해 기다리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 중에 길옆 공원에 세워진 황영조 올림픽마라톤제패기념기념탑을 보면서 그 때의 감격을 되새겼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춘역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버스를 타는 대신 시내를 걷는 것이 미지의 도시와 보다 가까워지는 길임을 진작부터 알았기에 웬만하면 저는 걷는 편을 택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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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친 김에 청오 차상찬 선생에 대해 몇 말씀 더 드리고자 합니다. 고종24년인 1887년에 춘천에서 태어난 청오 차상찬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선생은 보성중학교와 보성전문을 졸업한 후 1920년 천도교를 배경으로 창간된 계몽교양지 <개벽>의 창간에 동인으로 참여했습니다. 1931년 개벽사를 이끌어온 소파 방정환 선생의 타계로 개벽사의 편집인 자리를 물려받은 선생은 7년간 개벽사를 거의 혼자서 끌어갔습니다. <개벽>을 위시하여 <혜성>, <무인>, <어린이>, <신여성>, <학생>, <제일선>, <별건곤> 등 개벽사에서 간행하는 각 잡지의 매호마다 선생의 투철한 계몽사상과 민족정신이 깃들이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국잡지의 선구자 차상천 평전>은 적고 있습니다. 1920년에 발간되어 19268172호로 폐간될 때까지 <개벽>을 통해 발표된 문학작품 수는 시분야가 380여편, 소설이 111, 희곡이 50여편, 수필이 40여편, 평론이 50여편, 기행문이 20여편, 동화 및 동시, 그리고 전기류가 50편에 이른다 하니, 설사 여러 편의 번역작품이 포함되었다 해도 우리 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하겠습니다. 염상섭, 김동인, 현진건, 나도향, 이익상, 주요섭, 박영희, 이기영 등은 물론 시인 김소월과 김억 등 거의 전 계파의 문인들에 <개벽>이라는 활동무대를 제공한 출판 편집인이 바로 청오 차상찬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평소 갈망한 대로 조국의 해방을 보고 그 이듬해 봄 타계했습니다. 2010년 대한민국정부는 선생의 문화창달 공을 기리기 위해 선생께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한국잡지의 선구자 차상천 평전>을 통해 선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이해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이 남긴 여러 장르의 글도 함께 읽어서입니다. 그 중 주국의 영토는 전 세계로 하되 미국과 같은 금주국은 특별식민지로 한다를 제 2조로 한 주국헌법(酒國憲法)’은 선생의 여유로운 익살이 느껴졌습니다


                                                                

                                                                        <산행사진>



1)국사봉





















2)향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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